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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 사건의 진범’ 밝혀지나
14년 만에 붙잡힌 이태원 살인사건 용의자
2012년 01월 01일 (일) 23:41:58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14년 전 진범을 가리지 못한 채 미제로 남은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최근 미국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은 1997년 4월3일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발생했다. 당시 홍익대에 다니던 대학생 조중필(당시 23세)씨가 흉기로 무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그날 햄버거 가게에 있던 재미동포 에드워드 리와 미군속의 아들인 혼혈 미국인 아더 패터슨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둘 다 당시 18세였다. 검찰은 이들 중 리를 살인 혐의로, 패터슨을 흉기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했으며, 그해 10월 1심 재판부는 리에게 무기징역을, 패터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살해 용의자 미국서 체포돼 송환 재판 받아
1998년 1월 2심 재판부는 리에게 징역 20년을, 패터슨에게 장기 1년6개월, 단기 1년의 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1998년 4월 대법원은 리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으며, 1999년 9월 재상고심에서도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확정했다. 이에 패터슨이 진범으로 지목되고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했으나, 2심 선고 뒤 복역하다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패터슨은 이미 1999년 8월 당국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떠난 뒤였다. 법원은 숨진 조씨의 유족들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했다며 국가가 3천4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개정을 요구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으며 ‘이태원 살인사건’이라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법무부는 2009년 패터슨에 대해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패터슨은 최근 미국에서 체포돼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서 송환과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강제 송환 재판이 얼마나 오랜 기간 진행될지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언제쯤 밝혀질지도 현재로선 쉽게 예측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건 해결에 14년이나 허비된 것은 정작 우리 검찰이 수사와 공소유지 과정에서 제 구실을 못한 탓임을 대법원 판결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8년 4월 대법원 2부의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검찰의 수사 결과가 가진 결함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검찰은 당시 수사를 통해 범행 현장에 패터슨과 함께 있던 에드워드 리를 진범으로 규정,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재판부는 우선 사건 직후 리는 자신의 혐의를 적극 부인하면서 범행을 숨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패터슨의 행적은 판이했음에도 검찰이 이를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패터슨은 범행에 사용된 칼이나 피 묻은 증거물을 인멸하려 했으며, 범행 직후 주변 친구들에게 “내가 한국남자의 몸을 칼로 찔렀다”는 등의 말까지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상처 위치와 방향을 볼 때 피해자보다 덩치가 큰 사람의 범행”이란 부검의 의견을 유력한 증거로 내세웠지만, 법원은 “소변보는 자세 등에 따라 가변적일 수 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또 리가 칼을 어떻게 쥐고 있었는지, 어느 부위를 몇 차례 찔렀는지를 패터슨이 지나치게 자세히 진술한 대목도 오히려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유족에 대한 국가배상을 판결한 2005년 9월 대법원 3부의 판결문에서는 패터슨의 출국정지를 제때 연장하지 않은 등 검찰의 부적절한 업무처리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당시 담당검사는 소속 직원이 유흥업주의 뇌물을 받아 구속되는 사건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출국정지 기간을 깜빡 잊었다는 것이다. 법무부로부터 패터슨의 출국정지 기간이 만료됐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검사가 급히 연장 요청을 지시했지만 패터슨은 이미 그 틈을 타 미국으로 떠난 뒤였다. 더욱이 검찰은 패터슨의 출국정지를 요청했던 9개월 동안 추가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비판을 샀다.
   
 

<이태원 살인사건>, 영화와 실제 무엇이 다른가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의 용의자 체포 소식에 2009년 만들어진 동명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사건은 2009년 <이태원 살인사건>이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전국 관객수 53만5000여 명을 기록했다. 1997년 실제 사건과 12년 뒤 만들어진 영화는 얼마나 닮았고 얼마나 다를까. 영화는 주인공의 이름을 실제 용의자의 이름과 다르게 했다. 영화 속에서 현재 미국에서 재판 중인 아더 패터슨은 ‘피어슨’으로, 대법원에서 무죄로 풀려난 에드워드 리는 ‘알렉스’로 바뀌어 등장한다. 이것 외에 영화는 사건의 맥락을 따라 전개된다. 영화 속 박대식 검사(정진영 분)는 미국 범죄수사국(CID)의 결론을 뒤집고 알렉스를 살인 혐의로, 피어슨을 흉기 소지 혐의로 기소한다. 검사는 불우한 환경의 피어슨이 아닌 부유한 집안의 알렉스가 범인일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결정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싸움 끝에 알렉스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고,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영화는 끝난다. 실제 사건에서도 에드워드와 패터슨은 각각 살인죄와 폭력행위 등 처벌에관한 법률위반 및 증거인멸죄로 기소된다. 에드워드는 1심에서 무기징역, 2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 상고한 그는 98년 대법원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고 99년 재상고심에서 무죄를 확정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2심 판결 후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98년 8·15 특사로 석방된 패터슨에 대해 출국 금지 조치하고 재수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99년 인사이동 과정에서 패터슨의 출국 금지가 연장되지 않았고 패터슨이 이 틈을 타 미국으로 도피해 수사가 중단됐다. 영화에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패터슨의 도미 후 피해자 조씨의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또 패터슨과 에드워드, 그의 부모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담당 검사의 불합리한 업무처리 방식으로 유족들은 공식적인 방법으로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겪을 것이 명백하다"는 판결과 함께 원고 일부 승소해 3400만 원의 배상을 받았다. 미국으로 도주한 용의자와 가족에 대한 소송에서도 유족은 “피고는 2억700여만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판결문에서 드러난 ‘이태원 살인사건’ 부실 수사
   
 
14년 전 이태원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김락권 금천경찰서 강력팀장은 “유력한 용의자인 아더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 모두 살인사건과 관련해 공동정범 혐의가 있다고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보냈다. 하지만 검사는 다르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신분을 의식해서인지 “법원과 검찰의 판단은 내가 평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얼굴에는 안타까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 팀장은 1997년 4월 용산경찰서 강력반 소속 형사로 있으면서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사건 발생 다음날 유력한 용의자에 관한 제보를 받은 미군범죄수사대(CID)는 한국 경찰과 공동으로 미8군 영내 드래건호텔에서 미 군속 자녀인 아더 패터슨(당시 18세)을 체포했다. 그는 “당시 CID의 수사도 철두철미했다. 패터슨이 자기 소유의 흉기를 미8군 영내 하수구에 버렸다고 진술하자 미군 소방대를 동원해 하수구 덮개를 하나하나 다 들춰내 수색했다”고 말했다. 밤늦게까지 장시간의 수색 끝에 흉기가 발견되자 현장에 있던 수사 담당자 모두가 환성을 질렀다. 범행 도구는 살인사건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 자료다. 그러나 패터슨은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초지일관 부인했다. 오히려 자신의 친구인 에드워드 리(당시 18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리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수사팀은 혈흔이 선명하게 남은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를 발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 결과 피해자 고(故) 조중필씨의 혈흔으로 확인됐다. 살인 가담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리가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가 나온 것이다. 경찰은 강남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부친과 함께 있던 리를 긴급체포했다. 대질신문까지 벌였지만 둘의 진술은 팽팽히 맞섰다. 리는 경찰 조사에서 “한국 남성이 화장실에 들어가자 패터슨이 따라 들어갔다. 그가 얼마 뒤 나와서는 ‘내가 일을 저질렀다’고 했고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럼 가서 직접 보라’고 했다. 가서 보니 사람이 죽어 있더라”고 진술했다. “신발의 피는 그때 튄 것”이라고 했다. 패터슨은 “내가 주머니칼을 자랑하며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고 리가 칼을 가져갔다.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리가 화장실에서 한 남성을 찔렀고 남성이 내게로 쓰러지면서 피가 묻었다”고 상반되게 진술했다. 리는 조사 도중에도 히죽거리며 함께 있던 아버지에게 “담배 좀 달라”고 해 수사관을 당황케 만들기도 했다. 히스패닉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패터슨은 멕시코계 갱단 소속임을 암시하는 문신을 손등에 지니고 있었다. 김 팀장은 “흉기를 원래 소유한 것, 하수구에 버린 것, 피 묻은 옷을 없애려고 시도한 것 등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패터슨에게도 살인혐의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리와 패터슨을 살인사건의 공동정범으로 판단한 경찰과 달리 검찰은 ‘피해자의 상처 위치와 방향을 볼 때 피해자보다 덩치가 큰 사람일 것’이라고 한 부검의 의견을 유력한 증거로 키 180㎝가 넘는 리만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리는 증거 불충분으로 1999년 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고 패터슨은 흉기소지 등의 혐의로만 기소돼 1년6개월 형을 받고 복역하다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1999년 8월 검찰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떠난 패터슨은 지난 5월 미국에서 체포돼 구금된 상태에서 한국 송환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을 받고 있다. 김 팀장은 “얼마 전 피해자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니 14년 전 사건의 안타까운 기억이 되살아났다. 빨리 패터슨이 송환돼 한국 법정에 서길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그리 쉽게만 풀리지는 않을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법정에 세우기 위해선 공소시효가 결정적 변수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아더 패터슨에게 공소시효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패터슨이 지난해 5월 미국에서 붙잡혀 현지법원에서 한국 송환을 위한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그를 데려와 우리 법정에 세우기 위해서는 공소시효가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패터슨의 미국행이 공소시효 정지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놓고는 엇갈린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은 패터슨이 미국 법원에 제출한 변론서 내용을 공개하며 “형사소송법 253조 3항(시효의 정지와 효력)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이 조항은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공소시효를 정지하도록 한 것이다. 패터슨의 준비서면에는 ‘수사 초반부터 대한민국 사법기관과 협조했음을 분명히 한다. 한국 사법체계는 (법을) 엄격히 적용했으며 유죄판결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형기를 마쳤다’는 등 도주가 아니라는 입장이 담겨 있다. 주 의원은 “논란의 여지는 있으나 검찰로서는 패터슨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출국했다는 점을 증명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에 공소시효 정지사유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도 “수사 도중이 아니라 한국에서 판결을 받고 떠난 것”이라며 “변호인들이 (패터슨을) 변호하게 된다면 그건(공소시효 정지)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냈다. 주 의원은 공소시효 정지 논란이 있는 만큼 하루빨리 패터슨을 송환해 오도록 정부에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그는 “현재 공소시효가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범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신속히 신병을 인도받아 수사가 이뤄지도록 총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 1997년 서울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아서 패터슨에 대해 공소시효에 앞서 미리 기소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패터슨 측이 공소시효 만료를 노리고 미국 재판에서 이의제기를 하는 등 송환을 지연시킬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기소되면 공소시효는 자동 중지돼 시간 끌기 작전은 무용지물이 된다. 검찰은 패터슨이 형사처벌을 피할 목적으로 도주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공소시효 정지 요건 입증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1998년 4월 대법원에서 에드워드 리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취지의 판결이 나오면서 패터슨을 수사대상으로 보고 있었다”며 “고등법원에서 리에 대한 사건을 다투는 한편 패터슨에 대해 혐의점을 두고 있던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패터슨은 검찰이 출국정지 기간을 미처 연장하지 못한 틈을 타 도주했다. 도주 뒤 곧바로 검찰이 기소중지를 했고 유족들도 패터슨을 고소한 상태”라며 공소시효 정지 논란을 일축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도 “우리가 미국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는 의미 자체가 신병을 보내주면 구속해서 기소하겠다는 뜻”이라며 “여러 정황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공소시효 정지가 가능한지를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이 패터슨의 송환 재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패터슨이 도주했다고 보는 근거를 댈 수는 있지만 그쪽 변호사가 이런 정황을 (재판 지연 등에) 이용하려 할 것”이라며 “최대한 빨리 데려오는 게 급선무인 만큼 이런 얘기들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용의자 아서 패터슨 미국 도피 후에도 범행 계속
‘이태원 햄버거 가게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미국에서 송환 재판을 받고 있는 아서 패터슨이 동료들에게 범행을 시인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1997년 이태원 햄버거집 살인 현장에 함께 있었던 에드워드 리(32)의 친구 최모씨는 “200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바에서 리, 패터슨과 만났다. 패터슨은 그 자리에서 ‘내가 조중필을 죽였다’고 얘기했다. 칼을 들고 흔들면서 자신이 갱스터라고 자랑했다”고 밝혔다. 최씨는 “그 이후로도 패터슨은 스무 차례 이상 조씨를 죽였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덧붙였다. 당시 최씨가 ‘한국 법정에 설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느냐’고 묻자 패터슨은 ‘그들은(한국인들은) 어떻게 할 수 없다’면서 한국을 조롱했다고 최씨는 전했다. 최씨는 “당시 패터슨의 대답을 메모도 하고 녹취도 했다”며 “메모는 지금 없고, 녹취파일은 일부 손상됐지만 미국에서 복원해 17일쯤 서울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가 패터슨을 찾아간 것은 범행 현장에 있다가 살인범으로 몰린 리가 절친한 친구여서라고 말했다. 리는 범인으로 기소돼 3년간 옥살이를 하다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최씨는 친구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을 보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패터슨을 찾아냈다고 했다. 그는 또 리가 숨진 조중필씨(당시 23세)의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리는 살인범은 아니지만 당시 패터슨의 친구였던 만큼, 피해자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리는 한국에 거주하며 결혼해서 자식까지 두고 있으나 현재 사업 때문에 미국에 머물고 있다. 최근 패터슨이 미국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리는 숨진 조씨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최씨가 받아 적은 편지에서 리는 “그동안 철도 없고 무섭기도 하여 이렇게 시간이 지나게 된 시점에서야 편지를 쓰고 친구를 통해 전달하게 된 점을 사과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자식을 낳아 길러보니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살인 사건의 진실을 그대로 밝혀 유족들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썼다. 숨진 조씨의 가족들은 그러나 “아직도 리가 공범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편지를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패터슨은 현재 한국 송환 여부에 대한 미국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패터슨은 미국으로 도망간 지 1년 만인 2000년 조직폭력단 활동과 총기 상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이태원 살인사건 당시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만 구속 기소돼 복역했으나 1998년 8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검찰은 패터슨의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았고 그는 이 틈을 타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는 2009년에도 흉기 폭행과 강도 유괴 등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1997년 당시 한국 경찰과 같이 수사했던 미 육군 범죄수사대(CID)는 패터슨이 히스패닉계 갱단인 ‘노르테 14’의 단원이라는 조사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미국 검찰은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을 받아들여 올해 5월 17일 캘리포니아에서 패터슨을 체포하고 구금한 뒤 법원에 보석 금지를 신청했다. 검찰은 전과기록을 토대로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패터슨의 변호인은 6월 8일 보석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거부했고 패터슨은 다음 날 구속 수감됐다. 그는 현재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고 있다. 패터슨의 변호인이 보석 신청을 내며 제출한 변론서에 따르면 패터슨은 2002년 9월 캘리포니아 주 서부 샐리너스 시의 2년제 대학인 힐드 칼리지에 입학했다. 컴퓨터정보기술을 전공했고 4점 만점에 3.05의 학점으로 총 99학점을 이수해 2004년 7월 학위를 받았다. 첫 학기에는 수강 과목 전부 A학점을 받았으며 출석률(90∼98%)도 높았다. 그는 졸업 후 할리우드의 한 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로 일하며 2007년에는 우수 트레이너 증명서를 받았다. 직장 동료들은 “지각 한 번 없이 하루 12시간씩 일할 만큼 성실했다”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변호인은 또 “성실한 학창시절을 보냈고, 어머니를 잘 모시는 사랑받는 청년”이라고도 했다. 그는 자신의 명의로 로스앤젤레스의 한국인 밀집 거주지인 라피엣에 40만 달러(약 4억7000만 원) 상당의 주택을 갖고 있었고, 일본 스즈키 사가 만든 고급 오토바이도 소유하고 있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하면서 재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이 일자 2009년 12월 법무부를 통해 뒤늦게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미국 법원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 검찰은 “(영화, 언론 보도 등) 미디어가 국민 정서를 다시 자극했다”며 “우리 국민은 한국과 미국 정부가 피의자를 기소해 정의를 실현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요청서에 썼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찬운 교수는 “범죄인 송환은 수사당국의 강력한 의지가 필수”며 “검찰의 실수로 용의자를 놓친 만큼 신속히 재수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패터슨은 미국 검찰이 체포영장을 청구한 지 7일 만에 체포됐다는 점에서 검찰의 범죄인 인도 청구가 더 빨랐다면 신병도 더 일찍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주한 뒤에도 기소중지만 했고 2009년에서야 범죄인 인도 요청을 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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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수
(112.XXX.XXX.84)
2015-09-23 06:55:29
패터슨
힐드대학을 찾아보니 지금은 폐업했고 몰(상가내)에 있는 학원 정도의 수준이었군....
전체기사의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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