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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스트리트를 무너뜨리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反월가 운동
2011년 12월 04일 (일) 13:54:27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월스트리트를 점유하자’란 구호로 뉴욕에 모인 시위대들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뉴욕에서 시작된 이번 시위는 마치 지난 ‘아랍의 봄’ 민주화 과정에서 보듯 밑바닥에서부터 일어나는 민의의 발현으로 분석된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밝혔다.

지난 9월 17일부터 시작된 월가 점령 시위는 당초 타락한 금융당국의 무능과 월가의 탐욕에 대한 분노로 시작되었으나,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환경, 교육, 의료, 사형제, 마약, 미국의 대외정책 등 다양한 의제로 확산되었다.
   
▲ 지난 9월 17일부터 시작된 월가 점령 시위는 당초 타락한 금융당국의 무능과 월가의 탐욕에 대한 분노로 시작되었으나,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환경, 교육, 의료, 사형제, 마약, 미국의 대외정책 등 다양한 의제로 확산되었다

시위대 주도층은 20~30대 젊은이
“돈을 그만 찍어내라. 그냥 은행들을 망하게 하라” “월가를 무너뜨리자. 월가를 처형하자” “전쟁에 쓰는 돈을 청년 실업에 투입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전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주코티 공원의 자유광장 바닥엔 종이상자를 뜯어 쓴 적나라한 구호들이 빼곡했다. 경찰이 스피커 사용을 불허하자 시위대는 연단에 선 사람의 말을 릴레이식으로 뒤로 전하는 ‘메아리’ 방식으로 메시지를 나눴다. “10월 15일 ‘월가를 점령하자’의 이름으로 프랑스·스페인과 유사한 총파업을 합시다. 하릴없는 젊은이들의 시간 때우기용 장난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시위대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음식과 생필품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퍼지자 자유광장엔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피자·이불·우산 등이 쏟아져 들어왔다. 시위 현장 중계자로 자원해 일하는 블라드 테이츠버그(39)는 “며칠 전까지는 배고픔이 가장 큰 문제였는데, 이제는 넘치는 음식을 보관할 방법을 찾느라 고민하고 있다. 우리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뉴욕 월가의 시위대는 대부분이 20~30대 젊은이였고 광장 한복판엔 이곳에 상주하는 청년들이 이불 대신 사용하는 푸른 비닐이 널려 있었다. 시위대는 자유 광장을 이집트 반정부 시위의 중심지였던 카이로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빗대면서 “우리는 모두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더는 참을 수 없는 좌절한 젊은이들”이라고 말했다. 캘리포니아대에서 비교인문학을 전공한 제이슨 데릭(25)은 졸업 후 1년 동안 두 개의 파트타임 직업을 거쳤다고 했다. 햄버거 가게 종업원, 그리고 정원사였다. 데릭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졸업했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일자리 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월가의 부자들이 수천달러짜리 샴페인을 터뜨리고 외국 휴양지에서 정신 나간 댄스파티를 열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면서 “1%의 부자가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 데만 급급하는 사이 아메리칸 드림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왔다는 엘리아나 포르토(24)는 디자인을 전공하고 건축 회사에 허드렛일을 하는 파트타임 직원으로 들어갔다가 그나마도 지난 9월 일자리를 잃었다. 포르토는 “회사는 비용 절감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미국의 99%가 경제난으로 허덕이는데 월가의 금융기관들만 로비와 부정부패로 배를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주도하는 ‘월가 타도 시위’는 SNS에 힘입어 보스턴·시카고·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각 도시와 캐나다 몬트리올·체코 프라하·호주 멜버른 등 해외로도 번졌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워싱턴 DC, 로스엔젤레스 등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도 이를 이슈화하는 등 정치 쟁점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의사당 앞 광장에는 수천명의 시위대가 모여 “로비스트, 금융 재벌이 아닌 우리에게 돈을 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벌어진 시위에서는 시위대 중 일부가 은행에 난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약 10명의 시위대가 뱅크오브아메리카 은행 지점에 들어가 바닥에 앉아 피켓을 흔들고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모두 체포됐다. 시위는 필라델피아, 보스턴, 앵커리지, 솔트레이크 시티 등 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참가 인원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연방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지역 정치인들까지 시위 현장을 둘러보고 일부는 시위대를 격려하고 희망을 잃지 말자고 주문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0월 6일 기자회견을 열어 시위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었다. 그동안 월가 등 대기업들과 불편한 관계에 있던 오바마 대통령은 “시위대의 분노는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백악관이 추진해온 금융개혁에 저항하는 월가와 공화당을 반개혁 세력으로 지목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도, 댈라스 연방준비은행장 등도 시위대에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워싱턴의 아이디어스 포럼에 참석해 “시위대가 요구는 미국의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중산층이 고통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시위 주도 세력은 보수 풀뿌리 운동 티파티 처럼 ‘진보 티파티’ 운동을 조직하자고 의견을 내고 있다. 미 전역에 시위대가 이처럼 퍼져나가는 배경에는 지난 수년간 중산층은 물론이고 미국의 대다수 시민들이 부동산 거품 붕괴와 이에 따른 금융 위기, 경기 침체로 생활고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와도 제대로된 일자리를 찾기 힘들고, 맞벌이를 해도 자기 집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이 와중에 실업률은 9%를 넘었지만 연방 정부가 실업수당 등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부분은 재정 적자로 더욱 작아지고 있다.

왜 ‘월 스트리트’를 선택했나
   
▲ 오바마 대통령은 “시위대의 분노는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백악관이 추진해온 금융개혁에 저항하는 월가와 공화당을 반개혁 세력으로 지목했다
월 스트리트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다. 실업과 생활고에 시달린 미국의 젊은이들은 시위를 지속하고 있으며 이런 반기는 미 전역은 물론 외국으로까지 확산하는 추세다. 이들이 처음 시위 장소로 월가를 선택한 이유는 월가가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월가는 지난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로 전 세계 많은 사람이 경기침체와 고통을 받게 한 곳이다. 미국으로 한정해 놓고 보면 이후 몇 분기에 걸쳐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면서 기록상으로는 금융위기가 극복된 것으로 평가됐지만 실상은 그 이후 지금까지 각종 세제 혜택과 두 차례의 양적 완화(QE) 등 일시적인 부양책으로 연명해온 것에 불과하다. 이 와중에 많은 서민이 일자리를 잃었고, 주택경기가 침체하면서 수백만 명이 집을 잃은 반면 정작 금융위기의 주범인 월가 금융인들은 여전히 배부른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많은 직원을 해고함으로써 실업자를 양산하고도 정작 경영자는 고액의 연봉을 챙기고 있으다. 특히 고위급 임원들은 경영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은 뒤에도 스톡옵션과 현금 등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퇴직금을 받아 회사를 떠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노동 계급으로 대표되는 ‘메인 스트리트’와 부자들로 상징되는 ‘월 스트리트’ 간의 갈등은 이전에도 존재해왔지만 요즘과 같은 불황기를 맞아 더욱 심화하고 있으며 결국 일부 젊은이들에 의해 시작된 월가의 시위는 점차 주목을 받으며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 이 시위는 불과 30여명의 젊은이들이 시작했다. 학력은 높지만 9%에 달하는 실업의 벽을 넘지 못하고 실업수당으로 연명하던 사람들이 사회 부조리에 항의하는 뜻으로 월가에 모여 분노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시위가 현재 진행형이라 그 목표와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금융당국의 무능과 월가의 탐욕이 분노의 주된 대상이었지만 참가자들이 다양해지면서 이제는 교육이나 의료, 사형제도, 마약 등에 대한 목소리도 많이 나온다. 코넬 웨스트 프린스턴대 교수는 미국 독립방송 데모크라시 나우와의 인터뷰에서 “아랍의 봄에 응답해 미국의 가을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위대들도 아랍의 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곤 한다. 뚜렷하게 부각한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어려운 계층이 각자의 신념에 따라 저항운동을 펼치는 양상도 띠는 것이다. 진보정치활동 및 반전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온 할리우드 여배우 수전 서랜던도 지난 9월 28일 이 시위에 참가했다. 그녀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간에 너무 큰 간격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시위를 정치와 연결해서 보는 시각도 많다. 계급 간 갈등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주요 지지계층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월가가 미국에서 가장 큰 정치자금을 대는 곳이라는 점도 고려할 대상이다. 월가의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미국을 개혁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고통받는 시민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논리도 여기서 나온다. 이런 대의에는 꽤 많은 사람이 동조하고 있어 시위대 수 자체가 수천 명으로 늘어났고 이들에게 음식과 각종 생필품을 지원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이 시위는 여느 시위와는 달리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은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금융위기의 근원이라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재정 적자를 이유로 실업대책을 세우지 못하게 하면서 부자들에게 세금을 추가로 걷는 것에는 반대하는 공화당이 시위대의 주 규탄 대상이 되고 있다. 프랭클린 마셜 대학교의 테리 마돈나 교수도 “이번 시위가 계급투쟁의 일부"라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사시위 벌어져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진정한 대중 운동이 우리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지냈던 엘 고어 전 부통령은 지난 10월 12일(현지시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미국 뉴욕의 월가 점령 시위에 대해 지지의 뜻을 밝혔다. 9월 17일 뉴욕 주코티 공원에서 시작된 ‘월가 시위’가 미국 각 도시는 물론 전 세계로 확산되며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시위의 방향성이 불투명해 자본주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거대한 사조로 인정받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월가 시위는 불과 3주 만에 미국 전역으로 번져나갔다. 워싱턴DC와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에서 동조시위가 이뤄졌으며, 대형 노조가 가세하면서 규모가 커지고 조직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시위 열기는 해외로도 번져 인접한 캐나다와 멕시코는 물론 태평양을 건너 호주·일본·유럽 등에서도 유사시위가 벌어졌다. 한국 등 전 세계 40여개국에서 유사 시위도 열렸다. 초기에는 단순히 젊은 실직자들이 모여 불만을 터뜨리는 수준으로 평가됐으나 이후 이들의 분노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와 이제는 중장년 층도 스스럼없이 참여하고 있다. 실제 시사주간 타임이 지난 10월 9~10일 이틀간 미국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0월 1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가 시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좋게 본다’가 25%, ‘다소 좋게 본다’가 29%로 호의적 반응이 54%에 달했다. 반면 부정적 반응은 23%에 그쳤다. ‘잘모른다’는 무관심층은 23%였다. “전쟁을 끝내라”, “연방준비제도를 폐쇄하라”, “돈이 아닌 사람을 사랑하자”, “우리는 전쟁과 인종차별, 억압이 아닌 직장과 건강보험, 교육을 원한다”…. 월가 점령 시위대의 구호는 지금도 여전히 다양하다. 반전(反戰), 여권 신장, 인종차별 반대, 종교자유, 등록금 인하 등 다양한 요구사항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광범위한 계층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데 힘을 발휘하지만, 시위의 힘을 응집시켜야 할 때는 약점으로 작용한다. 이렇다 할 시위 지도부가 없고 조직력도 약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도 시위의 목표가 정돈되지 않아 진전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올해 노벨평화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라이베리아 출신 평화운동가 리머 보위는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 특강에서 “사람들이 더 이상 방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위는 좋은 징후지만 시위대는 이제 ‘월가를 점령한 이유’를 말해야 한다”고 구심점과 방향성이 없는 시위대의 현주소를 지적했다. 한편 미국에서 상위 1% 소득의 부자들이 약 30년간 거의 3배로 수입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 부자들의 부 편중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월가 시위대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 미국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큰 도시는 조지아주 애틀랜타로 조사됐다. 미 의회예산국(CBO)이 10월 2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1% 소득자들은 1979년부터 2007년까지 28년간 275%의 실질 소득 증가를 나타낸 반면, 하위 20% 소득자들은 같은 기간 18% 오르는데 그쳤다. 상위 20%와 하위 20%를 뺀 중간계층(60%)의 소득 증가율도 40%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 보고서는 국세청(IRS)과 인구통계국 자료를 이용해 1979년부터 2007년까지 소득수준별 미국 가계의 세후 소득 변화를 추적한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 미국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가구 소득에서 상위 1%의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도 1979년 8%였지만 2007년에 17%로 늘었다. 상위 20%의 소득 비중은 1979년 43%에서 2007년 53%로 늘었다. 상위 20% 소득이 나머지 80%보다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의회예산국은 대기업 임원들에 대한 지나친 과다 보상과 고소득자에게 유리한 자본 이익 등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빈부격차 심화에 대한 공감과 분노가 전 세계적 현상
   
▲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 시티에서 지난 10월 15일(현지시간) '세계 점령의 날'을 맞아 열린 거리시위 참석자가 정의 실현를 갈구하는 피킷을 들고 금융 탐욕과 균등한 재분배를 촉구하는‘월가 점령’시위에 연대감을 표하고 있다
스페인의 텐트 시위 등에 영향을 받아 미국 뉴욕 리버티 플라자 공원(주코티 공원)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불과 한달여 만에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올해 초 아랍 국가에서 일어난 민주화 혁명인 ‘아랍의 봄’에 비유해 ‘미국의 가을’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월가 점령’ 시위는 이제 미국의 국경을 벗어난 전 세계적 이슈로 확장되고 있다. ‘월가 시위’는 ‘아랍의 봄’은 물론 과거 어느 시위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하나의 주제를 놓고 시민들의 시위가 유행병처럼 전 세계에 급속도로 확장되는 양상은 역사상 이번이 거의 처음이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그만큼 세계가 좁아진 탓이기도 하지만 ‘1% 대 99%’라는 빈부격차 심화에 대한 공감과 분노가 전 세계적 현상임을 반영한다. ‘월가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지도자 없는, 직접민주주의에 의한 의사결정 구조다. 이는 ‘인터넷 광장’ 문화가 빚어낸 결과로 보인다. 리버티 플라자 시위대의 실무그룹 일원인 블랙 페더(19·대학생)는 “시위대 안에 리더십과 계급 서열이 없다는 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힘”이라며 “이것이 의사결정을 느리게 하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누구나 참가할 수 있게 한다. 전세계로 급속도로 확산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주장했다. 금융자본주의와 빈부격차 확대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월가 시위’의 외형은 평화적 운동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일어나는 민주화 혁명과 가장 큰 차이를 나타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월가 시위’는 최대한 합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시위를 할 때는 수천 명이 행진을 해도 경찰 저지선(폴리스라인) 안쪽 인도를 벗어나지 않고, 리버티 플라자의 위생 악화를 이유로 강제퇴거를 요구하자 스스로 대청소를 하며 타협을 시도했다. 또 “부자들을 잡아먹자”, “은행을 강탈하라” 등 일부 구호는 매우 과격하지만 말만 그럴 뿐, 이들의 저항은 피자 종이상자에 슬로건을 적어 흔들고, “부자 증세”, “월가 규제” 등 주장을 외치고, 행진하는 게 전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던 ‘아랍의 봄’에 비해 비장함이나 절박함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한다. 하지만 10월 15일 시위에 참가한 마디하 타히르(31·컬럼비아대 박사과정)는 “평화시위가 외연을 더욱 확장할 수 있었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시위에 참가하는 어른들이 부쩍 늘어난 것도 평화시위가 가진 힘”이라고 평가했다. <분노하라!>의 저자 스테판 에셀도 최근 미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평화시위의 힘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렸다. 미국의 많은 정치·사회학자들은 ‘월가 시위’에 대해 “언젠가 소멸하겠지만, 미국 정치권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시위대는 ‘혁명’이라는 구호를 자주 언급하고 있지만, 이때 말하는 ‘혁명’이란 ‘급진적인 체제전복’ 성격을 지닌 일반적 의미보다, 오히려 ‘점진적 변혁’ 쪽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 반세계화 활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은 이번 시위를 1999년 시애틀에서 촉발된 반세계화 시위와 비교하며 “당시는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주요 8개국(G8) 등이 주최한 정상회의를 목표로 삼았는데, 이는 일시적이었다”며 “또 경제가 호경기였던 당시보다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져 있는 지금이 변혁을 위해선 더 좋은 시기”라고 말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는 최근 칼럼을 통해 ‘월가 시위’에 대해 “1968년 봉기 이후 미국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라며 “시위는 이미 성공했고 앞으로 오랫동안 그 유산을 남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지금은 신자유주의에서 포스트신자유주의 과정으로 넘어가는 중인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불확실한 포스트체제 속에서 정치적 주체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니까 시민들의 자발적 대응이 나오는 것”이라며 “자발성에 기초한 이런 형태의 운동은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 청년들이 주도하는 ‘월가 타도 시위’는 SNS에 힘입어 보스턴·시카고·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각 도시와 캐나다 몬트리올·체코 프라하·호주 멜버른 등 해외로도 번졌다

월가 시위, 노조를 바꾸다
3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반(反) 월가 시위가 미국 각계 직능단체 노조의 노동운동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둘의 공생관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기존 노조는 처음에는 월가 시위대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하지만 노동단체가 수년 동안 이끌어내지 못한 시민의 관심과 공감을 단시간에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아 월가 시위대의 투쟁 전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피켓 시위 같은 기존의 투쟁방법만 이용해 온 노조는 최루가스나 체포 장면 등 시위모습을 인터넷에 올려 시민의 지지를 끌어 모은 월가 시위대처럼 이제는 소셜미디어 이용에 힘쓰고 있다. 트럭운전사조합에서는 매일 블로그 이용을 강화했고 투쟁 모습을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 올리고 있다. 각 노조 지도부는 전국적인 시위를 계획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이면서 일반 조합원들도 동참하는 방법을 고려하는 한편 월가 시위대의 구호도 차용하고 있다. 이동통신업체 버라이존에 맞서 투쟁 중인 통신노조는 월가 시위대의 ‘우리는 99%다’는 구호와 비슷한 “99%를 위해 행진하라(March for the 99 percent)”라는 구호를 만들고 시위에 나섰다. 도·소매·백화점 노조연맹의 스튜어트 아펠바움 위원장은 “월가 시위가 노조를 바꿨다”며 앞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행동하는 데 더 적극적인 노조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 노조가 이처럼 월가 시위대의 투쟁 방법을 받아들인 가운데 시위대에 대한 지원에도 나서면서 둘 사이의 협력 관계는 좀 더 탄력을 받고 있다. 노조는 시위대에 텐트나 난방기구, 음식을 보내고 시위대를 쫓아내지 못하도록 정치권을 압박하는 등 직접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월가 시위대도 노조의 이런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11월 9일 트럭운전사조합의 시위에 100여명이 지원에 나서기로 하는 등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노조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버팔로를 점령하라(Occupy Buffalo)’ 시위대 지도부인 아서 브라운은 반 월가 시위가 미국의 정책과 정치를 바꾸려면 기존 노조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이 운동을 시작했지만 이를 끝낼 능력이나 경험은 없다”면서 미국의 정치 지형을 바꾸려면 노조의 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존 노조와 월가 시위대의 이런 공생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시위에 참여한 한 대학생은 “노조가 우리를 지지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시위대가 공식적으로 노조를 지지할 수는 없다”면서 반 월가 시위대는 자주적인 단체며 자주성을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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