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간의 문제’는 예술가들의 영원한 화두다. 주목받는 작가 권여현은 그리스 신의 이름들이 빈번히 등장하는 ‘숲 시리즈’를 통해 인간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전한다. 이 시대에 그리스 신이라니?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소재가 현 시대에 대한 반어로써 도리어 신선하다.

▲ 작가 권여현은 그리스 신의 이름들이 빈번히 등장하는 ‘숲 시리즈’를 통해 인간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전한다.

양치류가 우거진 숲, 나무둥치를 아무렇게 감싸거나 늘어져 있는 공기뿌리, 현란한 야생화와 열매들, 생명의 근원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에 벌거벗은 인간, 인간의 탈을 쓴 짐승, 짐승 얼굴을 하고 있거나 짐승의 탈을 뒤집어쓴 인간이 등장한다. 숲에는 현대와 고대의 이미지들이 여기저기, 숨은그림찾기를 하자는 것 같기도 하다. 그의 숲 시리즈에는 그리스 신의 이름 외에도 현대의 철학자, 또는 신화가 된 사라의 이름이 제목에 등장하기도 한다. <디오니소스의 숲>에는 늘어진 공기뿌리들이 나무와 뒤엉킨 숲에 술잔을 들고 있거나 마시는 사람, 뱀, 물개, 원숭이가 등장한다.

1980년대 말의 연작 중에 <던져짐>이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짐’을 이야기하지만 홀로 선다는 자의식과 작가로서의 결기가 느껴진다. 1990년대의 분장 퍼포먼스는 투지에 찬 군인, 신기로 번뜩이는 무당, 지친 광부, 여자, 슈퍼맨, 수도사, 거지 등 다양한 부류의 인간에 자신을 대입시켜가며 ‘나’를 탐색해 가는 작업이었을 것, 이후 ‘나’에서 ‘나와 타인’의 관계를 성찰하는 단계로, 그리고 작가로서 성숙단계로 진입한 현재, 나와 타인과의 관계성을 넘어 인간의 근원적 문제로 심화시킨 <숲>시리즈는 이전과 확연히 구별되는 작업으로, 회화에서도 같은 그림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식을 엿보게 한다.

▲ 디오니소스의 숲Dionysus in bricolage forest 227x181cm oil on canvas 2010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 의식이 강한 작가로 알려진 그는 회화 사진 설치 입체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업을 전개해 왔는데 그 각각의 작업들이 하나의 프로젝트에 의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계되면서 ‘나’에서 보편적 인간의 문제로 심화시켜 나간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및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한 작가 권여현은 지금까지 총 31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제9회 창작미협 공모전 대상,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제13회 중앙미술대전 우수상, 제10회 석남미술상, 제1회 한국일보 청년작가전 우수상, 제5회 하중현미술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국내외 유수의 그룹전에 참가하며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