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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적인 필리핀 정치 행태에 경종 울리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디바오, 16대 필리핀 대통령 당선
2016년 06월 06일 (월) 01:39:11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필리핀 말카냥 대통령궁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다바오시장을 새 주인으로 선택했다. 필리핀 유권자들이 막말 논란에도 불구하고 두테르테 시장을 새로운 지도자로 뽑은 것은 정치 변혁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장정미 기자 haiyap@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당선자는 여론조사 수치를 넘어서는 여유 있는 승리를 거둔 것으로 집계됐다. 개표가 거의 마무리된 5월10일 밤(이하 현지 시각) 두테르테 후보는 유효 투표의 38.6%인 1567만표를 얻어 951만표(23.4%)에 그친 집권 자유당 소속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을 600만표가 넘는 큰 차이로 따돌렸다. 선거 직전인 5월 초 진행된 여론조사 때 지지율(33%)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두테르테 당선자는 “국민의 통치 위임을 겸손히 받아들인다. 자나 깨나 온 힘을 다하겠다”고 당선 소감을 전했다.

필리핀, 소수 유력 가문이 지배하는 행태 답습
막말과 거친 언사 때문에 ‘필리핀 트럼프’로 불리는 야당 PDP 라반의 대선후보 로드리고 두테르테 다바오(필리핀 민다나오섬 남동부 도시)시장이 필리핀 16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것은 ‘소수 유력 가문의 족벌 정치’가 지배해온 후진적인 필리핀 정치 행태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본인 능력과 무관하게 정치 유산을 물려받은 후손들이 승승장구하는 ‘가문 정치’에 염증을 느낀 필리핀 유권자들이 두테르테 시장을 선택했다는 평가다. ‘부녀(父女) 대통령’, ‘모자(母子) 대통령’이 일반적인 현상이 될 정도로 권력이 세습되는 필리핀은 소수 유력 가문이 국가를 지배하는 후진적인 행태를 답습해 왔다. 정치적 연고가 없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은 그야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찾아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사회 구조’에서 유력 정치 가문 출신이 아닌 두테르테 시장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필리핀 정계의 이변으로 평가된다. 필리핀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유력 가문으로는 아키노, 마카파갈, 로하스 등이 꼽힌다. 현 15대 대통령인 베니그노 아키노 3세는 세계 최초의 ‘모자(母子)’ 대통령 주인공이다. 그의 모친은 1986년 반(反)마르코스 열풍을 타고 11대 대통령에 당선된 코라손 아키노다. 코라손 아키노 전 필리핀 대통령은 남편 베니그노 아키노 주니어 상원의원이 1983년 독재자 마르코스에게 암살당하자 정치가로 변신해 필리핀 최초 여성 대통령이 됐다. 2009년 8월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 사망으로 촉발된 애도 분위기에서 베니그노 아키노 3세는 2010년 5월 실시된 제15대 대선에 전격 출마해 당선됐다. 마카파갈은 ‘부녀(父女) 대통령’을 탄생시킨 가문으로 유명하다. 필리핀 두 번째 여성 대통령에 오른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전 대통령은 필리핀 9대 대통령이었던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의 딸이다. 그녀는 2001년 조지프 에스트라다 13대 대통령이 사임하자 나머지 임기를 승계해 14대 대통령에 취임했고 2004년 대선에서 당선됐다. 이번 16대 대선에서 아키노 대통령 지지를 받고 집권 자유당(LP) 후보로 나선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도 유력 정치 가문 출신이다. 로하스 전 내무장관은 1946년 필리핀 독립 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동명의 마누엘 로하스 전 대통령의 손자이자 게리 로하스 전 상원의원 아들이다. 이처럼 소수 유력 가문이 주기적으로 권력을 넘겨받듯 국가를 지배하는 족벌 정치가 필리핀 발전을 막고 부패를 낳은 주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필리핀 정치가문의 힘이 나라보다도 강하다”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필리핀 경제 성장 기조 흔들리나
‘더티 해리’ 혹은 ‘필리핀 판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다바오 시장이 필리핀 신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필리핀 정계 뿐 아니라 경제 및 외교계도 긴장하고 있다. 두테르테가 ‘막말 강성 정치인’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외교 정책이나 경제철학 등은 대부분 두터운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지난 5년 동안 연평균 6.3%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세계은행(WB)으로부터 ‘떠오르는 호랑이’라는 칭송마저 들었다. 그러나 경제 문외한인 두테르테의 집권으로 필리핀 경제 성장 기조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의 영토분쟁은 물론 전통적인 우방인 미국과의 마찰마저 예상되고 있다. 두테르테는 세계무대는 물론 필리핀의 중앙 정치 무대와도 거리가 있었던 인물이다. 두테르테는 지난 11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공화당 대선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처럼 험한 막말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필리핀 주류 정치인이 아닌 ‘아웃사이더’일 뿐 아니라 입이 몹시 거친 점 등 트럼프와 닮은 점이 많아 ‘필리핀판 트럼프’라는 평을 듣고 있다. 한편 필리핀 중앙은행 총재인 아만도 데탕코는 지난 5월13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두테르테가 대통령에 올라도 “평상시와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데탕코 총재는 두테르테가 "최근 몇 년간 낮은 인플레이션과 높은 성장세를 가능하게 해준 현재의 경제 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기대했다. 두테르테의 당선 직후 다바오 상공회의소의 보니파시오 탄 소장도 “두테르테는 다바오시에 많은 투자자들을 성공적으로 유치했다”며 “두테르테 시장은 말로 내뱉은 것은 실천하고 만다”고 깊은 신뢰를 표한 바 있다. 필리핀 경제는 지난해 5.8% 성장세를 나타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 주변국을 압도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견조한 내수 소비에 힘입어 올해에도 필리핀 경제성장률이 6%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필리핀 중앙은행은 전일 기준금리를 4%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데탕코 총재는 올해와 내년의 물가상승률을 각각 2.1%와 3.1%로 전망하며 중앙은행의 목표 수준인 2~4% 내에서 관리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물가가 안정적으로 관리될 전망이고 가계 및 정부 지출이 내수 수요를 지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대출도 두 자리 대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고 유동성도 적당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며 금리 동결의 이유를 밝혔다. 데탕코 총재는 필리핀의 경제가 ‘급격하게 이룬 기적’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는 필리핀 경제의 양호한 성장세가 ‘수년간의 구조 개혁과 적절히 시행된 경제 정책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정부가 바뀐다고 해도 이러한 노력은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확신을 표했다. 

美, 새정부의 대중국 정책 변화 가능성에 주목
지난 5월9일 치러진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법보다 주먹’을 내세우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후보가 당선되면서 미국이 긴장하고 있다. 필리핀과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미국은 두테르테 새 정부의 출범이 양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 주시하고 있다. 두테르테는 지난 4월 자신을 비판하는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와 호주 대사에 대해 “입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것”이라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두 나라와) 외교관계를 잘라 버리겠다”고 막말을 서슴지 않았다. 앞서 두 대사는 두테르테가 지난 1989년 성폭행 당해 사망한 호주 여성선교사 사건을 언급하면서 “그녀의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바오) 시장인 내가 먼저 (성폭행)했어야 됐는데란 생각을 했다”고 말한데 대해 강력히 비난했었다. AP통신은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될 경우 미국의 동남아시아 외교 정책에 있어 핵심국가인 필리핀과의 관계에 새로운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고 최근 지적한 바 있다. 중국이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계속 확대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게 필리핀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두 나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많은 부침을 겪어왔지만, 베니그노 아키노 현 정부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있어 든든한 지원군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카티나 애덤스 국무부 대변인은 최근 브리핑에서 “필리핀 대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차기 필리핀 정부와 강력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미국 정부에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두테르테가 대통령이 되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두테르테가 ‘법보다 주먹’을 앞세우고 “인권법은 필요없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범법자들은 전부 죽여 버리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온 것도 미국 정부로선 곤혹스런 점이다. 인권을 무시하는 필리핀 새 정부를 지지했다가는 미국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두테르테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에는 유세과정에서 했던 발언과 행보와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란 지적도 있다. 미 국방부 고위 관리 출신인 비크람 싱은 최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두테르테를 비롯해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일단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면 “중국으로부터의 막중한 압력을 실감하게 돼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원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미국은 두테르테 정부의 대중국 정책의 변화 가능성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ABS-CBN 등 현지매체들과 블룸버그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두테르테는 지난 5월9일 개표 결과 자신의 대통령 당선이 확신해진 후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과 필리핀이 자원이 풍부한 연안지역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개발을 위해 협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의 주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조건으로 내걸기는 했지만, 새 정부에서 중국과의 경제협력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두테르테는 남중국해 도서지역을 둘러싼 중국과의 갈등에 대해 “직접 중국과 대화하겠다”며 양자회담 개최를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영토갈등을 양자회담보다는 국제 재판소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아키노 현 정부의 정책과 크게 차별화되는 것이다.

中, 필리핀 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기대
필리핀 대선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이 당선된 중국 정부는 이런 대선 결과에 따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5월10일 중국 신화왕은 싱가포르 연합조보를 인용,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중국을 상대로 제기한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과 달리 두테르테는 “다자회담을 통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면서 이같이 전했다. 언론은 또 지난 2004년 두테르테가 한 중국 기자에 “나의 외조부는 중국인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중국 혈통이 있다”면서 “많은 중국인이 오래 전에 필리핀으로 와서 경제와 사회에 중요한 공헌을 해 왔고 나는 이런 중국 혈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중국 언론은 또 두테르테가 또 다바오시 시장 자격으로 수차례 중국을 방문했고 투자, 무역 등 면에서 중국과의 협력 강화에 주력해 온 것을 주목했다. 그는 남중국해 분쟁에 관련해 현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과 달리 중국과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 있고 공동 자원개발에 나설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그는 최근 중국에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지난 4월 경선 연설에서 “남중국해 분쟁을 국제중재를 통해 해결하는 것을 반대하고 분쟁을 한동안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중국 언론은 ‘필리핀의 트럼프’ 두테르테가 한 말을 완전하게 믿어서는 안 되지만 그의 집권으로 아키노 정권 때 최악의 상황이 된 중-필리핀 관계가 개선될 것에 대해 기대해 볼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필리핀이 PCA에 중국을 상대로 제기한 남중국해 분쟁 조정신청은 5월 말이나 6월 초 판결이 이뤄질 예정이다. 중재결과는 필리핀에 유리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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