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묵화는 특히 현란한 채색을 피하고 먹의 정신성(精神性)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양식으로, 예로부터 많은 문인과 선비들이 즐겨 그렸다. 동양인의 미의식과 사의(寫意)를 반영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 작가 김영호는 일탈의 자유로운 운필을 통해 또다른 수묵의 심미에 다가 간다고 이야기 했다.

중국인들은 먹색이 모든 색을 다 함유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질료적(質料的) 성격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정신성이 강한 재료로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먹만을 써서 그리는 수묵화는 채색화가 지닐 수 없는 담담한 맛과 운치를 구현하기에 좋은 양식이었던 것이다.

분방한 운필에 의한 속도감과 풍부한 먹색이 특징
일반적으로 수묵하면 떠올리는 것이 산수나 문인화의 화목이 고작이다. 관념이란 길들여진 인식에 다름 아니다. 오랜 시간을 통해 수묵은 산수나 문인화를 다루는 매재로 인식돼왔다. 산수나 문인화가 아닌 다른 화목을 수묵으로 다룬다고 했을 때 당연히 낯설음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작가 김영호는 이러한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작가 김영호의 작업은 수묵으로부터 비롯된다. 그의 작업은 수묵이 지니고 있는 전통성에 바탕을 두고 현대라는 시공을 여하히 수용해 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맞춰져 있다.김영호는 과거로부터 현대에 까지 수 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강한 생명력을 수묵을 통해서 찾았으며 수묵을 작품제작 재료 이상의 정신적인 가치를 작품에 부여했음을 말한다. 수묵은 종이와 물과의 조화를 통해 추상성의 우연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수묵의 발묵 효과를 작품에 유희하듯 즐기고 있다. 풍부한 묵운(墨韻)과 분방한 필치로 이루어진 그의 작업은 특정한 법칙이나 규율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발현되는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성질이 강한 것이다. 틀에 구애되지 않는 일탈의 자유로움이 두드러진 가운데 수묵 특유의 그윽한 맛이 어우러지는 화면은 전통적인 화론이나 조형 규범에 의해 해석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작가 김영호는 이미 모필에 의한 유려한 선에 의한 조형, 혹은 먹을 마치 금처럼 아껴 쓴다는 고전적인 수묵관에서 벗어나 분방한 일탈의 자유로운 운필을 통해 또 다른 수묵의 심미에 젖어들고 있다. 그의 수묵은 분방한 운필에 의한 속도감과 풍부한 먹색이 특징이다. 의자라는 특정한 사물을 통해 발현되는 그의 필선들은 반복과 중첩이라는 극히 단순한 행위의 집적을 통해 무게와 깊이를 구축해 나간다. 그것은 농담을 나누고 형태를 구분하는 목적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수묵 자체가 지니고 있는 자유로운 표현 양태에 더욱 주목하는 것이다. 결국 그에게 의자, 혹은 부수적인 사물들은 자신의 운필과 수묵에 대한 이해를 수렴해 내기 위한 도구적 방편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으로 그 형태는 객관적 합리성을 지닌 것이라기보다는 흐트러지고 일그러진 가운데서 오히려 묘미를 드러내는 것이다. 의자는 부재의 증명처럼 빈 공간속에 놓여있으면서 공간에 대한 신체의 기억을 화면에 투사한다. 빈자리에 와 앉기를 호명하면서 공간의 놓여있던 사물의 몸과 기억, 표정을 보여준다. 이 표정은 뚜렷이 나타나기도 하고 희미하게 사라지기도 한다. 이렇듯 김영호의 의자 연작시리즈는 공간에 대한 의식과 평면성의 확보하고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화면연출이라는 측면에서 진보적이요, 작업에 대한 의지에서 정신의 신생을 보여주었다.

▲ 견고한 구조 작품크기:213cm×170cm 재료:장지,수묵제 작년도:2011년

전통적 수묵의 가치를 재발견하다
작가 김영호는 1995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했으며 2004년 동 미술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였다. 2003년 공평아트센터에서 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홍대 현대미술관 등에서 기획 개인전 및 초대전을 개최하였으며 2011년 5월 인사아트센터에서 6회 개인전을 개최하였다.MBC전국수묵대전에서 연속으로 두 차례 특선을 수상하였으며 동아미술제, 신진작가공모전, 신미술대전에서 입선을 수상하였다. 국내와 일본, 프랑스 등에서 50여회 기획전, 초대전, 단체전에 참여 하였고 시연회, 한일현대미술작가회, wave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최근 김영호의 수묵표현은 단지 전통적 수묵표현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소극적 방법이 아니라, 그 동안 한국화단이 안고 있던 빈약한 소재주의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작가적 열정과 맞물리며 용묵의 다양한 은유와 자유분방한 필치에 의한 표현형식을 찾는 과정에서 전통적 수묵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적극적 방법의 산물로 평가받고 있다. 수묵으로 작업을 하는 그 맛에 취한 채 작업한 듯 다양한 수묵의 유희를 즐기고 있는 작가 김영호. 동양화라는 전통적인 매체를 사용한 그의 이러한 자세는 동양화의 침체기라는 분위기 속에서 희망적인 모습을 전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