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임영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조각가 임영희는 이전의 모더니스트들처럼 아이디어를 가진 주문자의 입장보다 작업의 전 과정에 개입하는 창조자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조각은 전통적 장인정신을 기반으로 한 작가적 노고와 높은 숙련도를 요구하는 지난한 작업과정의 산물이다.

▲ 조각가 임영희는 이전의 모더니스트들 처럼 아이디어를 가진 주문자의 입장보다 작업의 전 과정에 개입하는 창조자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임영희 작가는 설치와 조각, 해체와 접합을 통한 새로운 형식적 가능성을 모색해왔다. 그의 인체 소조작업은 물론 90년대 중반 이후 천착해온 철조용접작업에서 일관되게 탄탄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한 인물상으로 ‘장인정신의 결정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금속을 주재료로 사용해 작업적 지평 넓히다
작가 임영희가 집요하게 관심을 보였던 조각소재는 금속과 나무 등 재료 그 자체다. 알루미늄과 스텐, 그리고 철 사이를 종횡하며 창작에 몰두하는 그는 금속재료의 표현적 가능성과 효과에 완전히 매료된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현대적 개념의 조각재료로서의 철은 1950년대 후반 당시 젊은 작가들의 앵포르멜 조각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 당시 박종배,오종욱, 최기원 등은 철조용접조각의 비정형적 특성을 통해 전후 기계문명의 비인간적 상황과 기득권 수호에 연연해있던 아카데미즘에 대항해왔다.이러한 점에서 임영희 작가가 금속을 주재료로 사용해 작업적 지평을 넓혀가는 것은 그의 작가적 진정성과 예술적 성취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난 6월 가졌던 그의 개인전에서 작가는 조각이라는 개념을전제로 하면서 설치의 형식을 혼용한 주목할ㅇ만한 작품들을 출품했다. 이중 <토니와의 대화>는 장방형의 나무토막 2만개를 이용하여 거대한 두상을 만들고 가변설치 형식으로 재료를 늘어놓아 대상과 재료의 존재론적 의미를 자문하면서 형식적 변주를 모색하는 작품이다. 이 거대한 인물두상은 무표정하게 공간을 응시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은연중에 드러내면서 강력한 아우라를 발산한다.또 다른 작품 <Space-공간이야기>나 <Nirvana> 역시 이전에 작가가 철조작업으로 자주 선택했던 모티브를 취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목재를 정교하게 이어 붙여 재료의 질감과 구축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 역시 설치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완성태로서의 조각과 가능태로서의 설치의 장점을 두루 보여주고 있다. <Existence-Ⅱ>는 아크릴로 수십 개의 의자를 만들어 배열함으로써 존재와 부재의 공시적 성격을 보여주면서 가변설치의 조형성을 극적으로 연출시킨다. <Existence-Ⅰ>은 합성수지로 등신대의 백호 형상을 만들고 줄무늬는 갖가지 의미의 기호를 날인하여 표현했다.이는 작가가 대학 졸업 후 탄탄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한 인물상을 통하여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처한 모순적 상황과 자기소외의 문제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사유케 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곤 했다는 점에서 이전조각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작가가 백호의 몸에 여러 가지 기호를 각인한다든지 발자국의 형상을 첨가함으로써 여전히 순수조각과 개념조각, 입체와 설치, 사실성과 사의성의 경계에서 조각의 개념을 확장하고자 하는 의도는 숨기지 않았다.

▲ Space-story

‘조각적 힘’과 ‘장인적 노고’의 전통적 가치 보여줘
작가 임영희의 작업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문맥을 참조하면서 조각의 형식개념과 장르개념에서 일탈한 분방한 예술표현을 보여준다. 동시에 조각적 힘과 장인적 노고라는 전통적 가치는 여전히 그의 작품에서 유효하다. 작가는 연장들과 토치를 쥐고 재료들이 지닌 육중한 매스와 볼륨을 해체해 나가면서 이때 드러나는 물질들의 속성에서 강한 쾌감을 맛보곤 한다. 이는 마치 콩깍지가 자신을 태워 콩을 익히는 것과 비견되는 피학적 창조행위로, 진정한 예술가들이 예술적 성취를 이루고자 삶을 불사르는 노력의 일환이다.이러한 작가의 노력은 자연적 체계의 내부에 존재하는 근원적 질서를 요추하려는 긴장과도 비교되며, 역으로 말하면 그 같은 자연적 체계들의 핵심으로부터 그의 노력이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각가 임영희는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에서 Art & art history MFA를 받았다. 국내외에서 9차례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취리히 아트페어(스위스) 등 다수의 아트페어에 참가하였다.국내외 단체 및 초대전에 130여 회 참여하였고 제 30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을 비롯한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경력이 있으며 부산 롯데호텔 및 다수의 공공조각을 설치한 바 있다. 서울시립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한 작가는 유타주립대 Visiting Artist로도 활동했으며 현재 동대학교, 충남대학교, 덕성여자대학교 등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