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서의 풍경은 수많은 화가들이 다루었던 주제이며, 흔한 주제다. 영국의 화가 컨스터블은 아름다운 19세기 풍경을 그려, 감동을 주었으며 인상주의 화가 모네 역시 반짝이는 빛들을 화폭에 옮긴 풍경화로 늘 보아오던 풍경 이상의 풍경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풍경화는 우리를 유혹하며, 풍경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그림을 보는 순간 스스로를 잊게 만든다.

▲ 작가 이만나의 작품은 그렇게 '풍경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정제된 감각, 서정성이 조화를 이룬' 수작들이다.

작가 이만나는 풍경 자체를 낯선 재료로 간주한다. 귀국 후 첫 국내 개인전 으로 ‘깊이 있는 표면’에서 작가는 벽에 걸친 넝쿨과 숲 등의 식물 풍경을 재해석한다. 면벽 수행하듯 낯설게 자연을 바라본 시선을 목탄 드로잉과 물감을 흩뿌려 쌓는 방식으로 표현하면서 불가사의한 자연 풍경을 펼쳐낸다. 작가 이만나의 작품은 그렇게 ‘풍경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정제된 감각, 서정성이 조화를 이룬’ 수작들이다.

가시적 세계의 이면과 내부를 구현하다
작가 이만나의 그림은 분명 특정 대상의 재현이고 가시적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은 그 이면을, 세계의 내부를, 자신의 속을 뒤집어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외부세계를 관습이 아닌 그것 자체로 생생하게 접촉할 때 생기는 생소함을 그리고자 한다. 그러니까 의미가 소멸된 사물 자체를 바라보게 되는 순간, 순전히 보고 있는 그 자체를 그리는 것이다. 기능과 의미가 지워진 자리에는 기묘하고 낯선 이미지만 남게 된다. 이런 생경한 이미지로부터 사물은 비로소 의미의 대상이 아닌 ‘의미의 주체’가 된다. 알려진 모든 선입견과 편견이 지워진 지점에서의 사물과의 우연한 만남, 맞닥뜨림, 그리고 이로부터 또 다른 가능한 세계와 대면하는 것이 그의 그림이다.그것은 분명 여기, 이곳의 풍경이지만 동시에 이곳에 없는 풍경이기도 하다. 일상과 비일상 사이에 있는 묘한 풍경이다. 있으면서 부재한, ‘없지 않은’ 그런 풍경이다. 따라서 그것은 현실과 비현실, 시각과 비시각,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 위치한 모호한 풍경이 되었다. 모든 대상은 표면, 피부만을 보여주지만 작가는 그 이면을 생각해본다. 분명 껍질은 본질은 아니지만 그 이면을 상상하게 해주는 불가피한 표면이다. 표면을 통해 무한한 공간을 연상해보고 들어가 본다. 그림이란 것 역시 부득이 사물의 외피를 주어진 캔버스의 표면 위로 밀착시키는 일이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내부를, 어떤 이면을 암시하는 일이다. 그것은 너무 깊은 표면이 된다. 때문에 작가 이만나의 그림은 어둡고 흐릿하며 깊다.가물가물한 그림의 피부에는 물감의 얼룩과 흔적들이 뿌옇게 성에꽃처럼 피었다. 그 꽃들이 순간 풍경이 되고 나무가 된다. 작가는 도시의 야경과 나무, 담쟁이 등을 그렸다. 자신의 일상의 동선에서 늘상 보던 것들이다. 매번 보아서 익숙하고 잘 알 것 같은 대상들이지만 볼수록 그것들은 낯설고 기이하다. 특히 초월적이고 신비스러움을 고양시키는 밤은 그 낯설음을 증폭시킨다. 그는 부분적으로 빛의 편애를 받는 건물과 정원, 나무를 섬세하게 주목했다. 그가 본 자연은 인간의 관리와 통제 속에서 심미적으로 혹은 기능적으로 축소되고 왜곡된 상태로 길들여진 이른바 ‘가축화된 자연’이다.

▲ 벽 앞의 풍경, 캔버스에 유채, 170 X 227 cm,2009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선 유도하는 작품 세계 구축
서울대학교 및 동대학원의 서양화과를 졸업한 작가 이만나는 독일 브라운슈바익 국립조형예술대학교에서 2009년 마이스터슐러(최고학위과정)를 취득하였다. 4회의 개인전 및 다수의 국내외 그룹전에 참가하였으며, 현재 영은미술관 창작스튜디오의 입주작가로 활동 중이다. 작가는 독일에서의 5년간 유학생활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펼쳐 보이며, 예술을 통한 소통이 오히려 언어의 소통의 벽보다 낮음을 실감했다. 그는 “처음에는 지구반대편에서 온 낯선 이의 작업을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가슴 뭉클했지만, 어느 덧 내 주변에 이제는 한국에 대해 나보다 잘 알게 된 미술애호가도 생기고, 적극적으로 전시를 기획해주는 기획평론가도 생기게 되었다”면서 “2008년에는 그해 우수한 학생 작품만을 모아 전시하는 ‘Excellent’ 전시에도 뽑히게 되었다.베를린이나 하노버, 쾰른 등 다른 도시에서 전시할 기회도 점차 늘어났고 그 기회들은 또 다른 소통의 기회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귀국 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그는 “나에게 원은 더 이상 둥글지 않다. 일상의 수레바퀴는 이미 궤도를 벗어났으며, 어디를 향해 갈 지 모르지만 이제 그 도전이 두렵지 않다. 내 선택이 실수였더라도, 그 위에 또 다른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진화할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낯설고 비현실적인 것을 느끼고 감지시키는 세계의 피부를 더듬고 있는 작가 이만나. 작품을 통해 결국 습관에 의해 가려진 현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유도하며 그림이란 ‘우리의 일상적인 비전과의 투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NM

출처- 박영택 선생님의 전시 서문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