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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다
(사)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 신용식 수석부회장
2009년 03월 06일 (금) 14:10:34 안상호 기자 press83@newsmaker.or.kr

 

   
▲ 신용식수석부회장은 자신이 장애인이었기에 누구보다 장애인들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고, 사회의 편견과 내면의 힘든 고통을 견뎌내 오며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진력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복지시설이 거의 전무하던 1981년. 우리나라 장애인 단체로서 사실상 효시로 출발한 (사)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가 처음 출범한 시기이다. 지금은 웬만한 전철역에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지만, 그러한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기까지 몇 십 년의 세월이 흘러야 했고, 그러한 시설이 갖추어지기 까지는 이곳 (사)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의 힘이 컸다. 그 중에서도 신용식수석부회장은 자신이 장애인이었기에 누구보다 장애인들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고, 사회의 편견과 내면의 힘든 고통을 견뎌내 오며 장애인들이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자 진력하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오른쪽 무릎 아래를 절단한 신 부회장은 고향인 청주를 떠나 서울에서 한편으로는 싸움꾼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보수우익의 선봉장으로 생활했다. 외롭고 힘든 객지생활 속에서도 청주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하는 등 자타가 인정하는 학구파였던 청년 신용식은 이승환 총재가 이끌던 호국청년연합회 대변인으로, 정일권 전 총리께서 이끌던 자유수호구국연합회 전국청년조직국장으로 전국조직을 결성하는 등 치열한 구국운동에 앞장서 오던 보수우익의 대변자였다. 그러다가 1999년, 홀연히 고향인 청주에 와서 새로운 삶을 구상하게 된다. 남은 인생을 장애인복지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별안간 장애인 복지에 투신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우려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크게 3분기로 나눌 수 있는 인생에서 1기는 배우는 시기, 2기는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시기, 그리고 3기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시기라고 하는데 지금이 바로 내 인생의 3기라고 생각한다.” 라는 그의 확신에 찬 말을 듣고 모든 이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죽마고우인 남상래를 만나  장애인을 위해 함께할 것을 제안, ‘삼십고초려’ 끝에 어렵사리 승낙을 얻어낸 후에 그의 구상은 구체화 된다. 전직 영어교사로서 영어학원 설립을 준비 중이던 남씨는 신 부회장의 열정과 소신에 감복하여 그를 따르게 되었고,  2000년 1월 충북도내 8개 단체를 규합하여 연합회를 결성하고 신용식씨가 연합회장으로 장애인복지운동을 시작할 때 사무처장으로 함께 일하게 된다. 본인도 3급 지체장애인인 남씨는 지금 충북신체장애인복지회 회장이다.
 
연합회 출범 후 청주 기독교방송과 공동으로 사랑의 음악회를 개회하고, 휠체어농구단을 창단하는 등 활발하게 복지운동을 펼쳐나가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시련이 닥치게 된다. 2000넌 3월, 당시의 검찰은 범죄단체수괴 혐의로 그를 구속기소 하였고, 5년간의 옥고를 치르게 된다. 보수우익의 일원으로 반평생을 바쳐 구국운동을 해왔다고 자부하는 그로써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으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고, 장애인복지를 위해 여생을 바치려는 그의 계획도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하지만 5년간의 수감생활동안 장애인동지들을 위하려는 그의 신념은 점점 더 확고해지고 구체화 된다.
   
▲ 장애인에 대한 복지시설이 거의 전무하던 1981년. 우리나라 장애인 단체로서 사실상 효시로 출발한 (사)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가 처음 출범한 시기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지금의 건실한 사업으로 거듭 나

2005년 두 죽마고우가, 한사람은 중앙회 수석부회장으로 한사람은 충북복지회장으로  참여한 (사)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는 이제까지 구태의연하게 해오던 장애인복지의 틀을 과감히 깨고, 새로운 형식의 복지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 중증 장애인 합동결혼식, 자립 작업장 운영, 문화센터 설치 등을 통해 장애인의 실질적인 복지 증진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시행착오가 지금의 이곳을 있게 만들었다”고 말하는 신 부회장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장애인인 자신마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장애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업의 목적을 깨닫게 되었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 현재 2020년까지 장애인복지에 관련한 계획을 세운 후 그에 따른 연구와 개발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크게 3가지로 분류되는 이곳의 3대 중점사항은 첫째, ‘사랑의 끈 연결고리운동’으로 장애학생과 사회 지도층 인사를 연결, 후원인 지원그룹을 형성, 2020년까지 100만 명의 후원인 그룹 참여회원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으며, 둘째는 ‘장애인 지역문화복지센터’를 16개 시, 도에 한 곳씩 설립할 계획이며, 마지막으로 ‘지원을 통해 고용과 삶과 참여를 보장’하는 사회적 기업을 설치,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장애인도 복지시혜자가 되어 기부문화 선도할 수 있어
    
장애인복지법이 제정되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되는 등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지고, 각종 복지혜택이 도입되어 장애인의 삶이 예전에 비해 나아지고는 있지만, 신 부회장은 아직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명 선진국에서도 장애인복지에 조그마한 틈이 있을 수 있고 그 틈 때문에 장애인들의 불편이 이어질 수 있지만, 그늘진 곳을 보듬어주는 기업, 시민단체, 그리고 개인독지가 등의 활발한 지원이 있기에, 그만큼 장애인복지에 대한 수준이 높다고 설명하는 신 부회장은 “아직 우리나라는 그러한 지원을 위해 선뜻 나서는 사람이 부족하여 안타깝다”고 토로하면서 “그래도 예전에 비해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희망은 있다. 그리고 제아무리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모든 것을 다 해줄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 (사)한국신체장애인복지회가 중심이되어 경증장애인이 중증장애인을 도와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복지를 실현하겠다. 장애인들도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복지시혜자’가 될 수 있다. 우리가 기부문화의 선도자가 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앞으로 신부회장의 바람처럼 장애인에 대해 더욱 따뜻한 관심과 진심어린 기부문화의 정착을 필자 역시 바래본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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