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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총재 일본 총리 등극
거침없는 독설의 언변가 아소 다로, 대한민국의 외교 향방은
2008년 12월 13일 (토) 15:34:02 안상호 기자 press83@

3전4기’의 도전 끝에 총리 자리에 오른 아소 다로에 대한 평가는 국·내외에서 극명하게 엇갈린다. 주변국들엔 평소 잦은 망언을 일삼는 일본 우월주의자로 비치지만 일본에서는 유머감각이 넘치는 친근한 정치가란 평가가 주를 이룬다.

안상호 기자 an9809@

일본의 새 총리에 ‘극우 강경 매파’인 아소 다로(麻生太郞·67) 자민당 총재가 선출됐다. 9월 22일 5명이 출마, 실시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67%의 지지율을 차지해 당선된 아소 다로 총재는 24일 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실시된 총리 지명 선거에서 478표 가운데 337표를 획득해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의 후임 총리로 선출됐으며, 후쿠다 야스오 총리 사임 이후 리더 부재의 혼란 정국을 연출해온 일본은 일단 안정을 찾게 됐다.
하지만 한국, 중국 등과 같은 주변 국가들은 아소 다로의 총리 취임에 대해 다소 우려 섞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온건파에 속하던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와는 달리 그는 강경 극우파에 속하는 대표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아소 다로는 누구인가?
아소 다로 신임 총리는 일본 자민당 소속의 강경 보수 정치가이자 아소 시멘트 사장이기도 하다. 제1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개조내각 및 제3차 고이즈미 개조내각의 외무대신을 지냈으며 요시다 시게루 전 수상의 외손자이다.
아소 다로 총리는 일본 중의원에서만 26년을 활동한 ‘정치통’이다. 1971년 정계에 입문해 자신의 출생지인 후쿠오카에서 9선 의원을 지냈으며, 1996년 자민당 부간사장 등을 거쳐 2003년 총무대신, 2005년 외상, 지난 8월 당정 개편시 자민당 간사장에 선출됐다. 총리 취임에 대한 야심을 품고 있던 아소 다로는 2001년부터 선거 때마다 입후보를 했지만 세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와의 대결, 2004년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지난해 9월에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당내 세력을 확고히 했을 뿐 아니라 대중적 인지도도 크게 높여 스타총리에 목말라 있던 일본 국민의 환영을 받는다.
아소 다로 총리 역시 후쿠다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정치 가문 출신이다. 그의 증조부 아소 다키치(麻生太吉)는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인 강제 징용으로 악명 높았던 ‘아소 탄광’의 창업주로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다키치의 아들이자 아소 간사장의 부친인 아소 다카키치(麻生太賀吉) 역시 후쿠오카에서 중의원을 지냈다. 외조부는 종전 이후 일본을 재건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이며, 장인은 스브키 젠코(鈴木善幸) 전 총리이다.
1940년 9월생으로 일본의 대표적 귀족학교 가쿠슈인(學習院) 대학을 졸업하고 미 스탠퍼드와 영국 런던대 대학원을 거쳐 귀국 후에는 가업인 아소 시멘트의 사장을 역임해 주력 산업을 탄광업에서 시멘트업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업을 했던 경험과 경제기획청장을 지낸 바 있는 아소 다로 총리는 스스로를 ‘경제통’이라고 칭한다. 
격의 없는 농담과 독설로 ‘달변가’라는 평가를 얻기도 하지만 그만큼 말실수도 잦아 ‘망언 제조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 일본 클레이 사격 협회 회장, 일본 농구 협회 회장 등 각종 스포츠 단체의 임원을 겸하고 있다. 만화를 좋아하며 선임 총리들과는 달리 멋 부리기를 좋아하고 웃음이 헤퍼 일본 국민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미지로 다가서 있다.

후임 총리후보 1순위 아소 다로
<신념(信念)과 국익(國益)이 충돌할 경우에는 국익이 먼저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대표적 인물>
후쿠다 총리에 이어 ‘넘버 2’인 아소 다로(麻生太郞)의 총리 취임은 전개 뻔한 드라마와도 같았다. 후쿠다 총리가 지난달 1일 사실상 정적이나 다름없는 아소 간사장을 기용할 때부터 일본 정계에서는 두 사람이 선위(禪位)를 밀약했다는 소문이 나돌았을 정도다.
공동여당인 공명당의 절대적인 지지를 업고 있다는 점도 이점으로 작용했다. 공명당은 차기 집권을 위해 일찌감치 후쿠다 총리로는 가망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아소 간사장을 차기 총리감으로 밀어왔던 것이다.
 
한국, 중국 등 대(對) 아시아 외교는?
미 뉴욕타임스(NYT)는 일본의 아소 다로 총리를 두고 ‘호전(好戰)적 민족주의자’라고 혹평했다. 지난 9월 25일(현지시각) NYT는 ‘아소 다로의 복귀’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2005~2007년 외상을 지낼 때 일본의 식민주의적 업적을 찬양하고 전시(戰時) 잔혹행위를 정당화함으로써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었고 긴장관계를 불러오는 등 이웃나라에 호전적인 민족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다”고 소개했다.
   
▲ 독도를 비롯 앞으로 한-일 양국의 험난한 외교가 될듯한 이명박대통령과 아소다로총리

일본 전문가인 개번 매코맥 호주국립대 명예교수는 지난 9월 24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종속국가 일본’(창비) 출간 기자간담회를 갖고 “아소 다로 일본 총리는 무늬만 민족주의자이고 사실은 (미국의) 종속주의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의 관점은 서양 출신 일본 학자들이 아소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를 ‘민족주의자’로 바라보는 주류 시각과 대치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고이즈미 전 총리나 아소 총리 등의 강경 발언은 내셔널리즘에 기댄 게 사실이지만 이는 지지층 결집 등을 위한 ‘수사(레토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일본 집권세력이 추구하는 것은 미·일 동맹 강화”라며 “이는 미국과의 정치, 군사, 경제적 결속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 패권에 한 발 더 다가서겠다는 노림수”라고 설명했다. 또 고이즈미 전 총리 집권 이후 미국에 대한 종속화 경향이 가속화한 것과 관련, “과거의 종속이 일본의 주권을 담보한 상대적 종속을 의미했다면 고이즈미 이후의 종속은 미국으로의 완전한 종속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대표가 집권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온건 비둘기파’인 후쿠다 총리와는 달리 아소 다로 신임 총리는 ‘강경 극우 매파’의 대표주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아소 다로의 총리 취임에 대한 한국 내 반응은 다소 냉소적이며, 독도 및 교과서 문제로 냉각기에 접어든 한일관계의 향방은 더욱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들 전망이다. 온건 ‘비둘기파’인 후쿠다 총리 시절에도 독도 영유 논란이 불거질 만큼 일본 내 보수 우경화가 심해지고 있는데 ‘강경 매파’의 대표격인 아소 다로가 총리가 됐으니 역사나 독도 문제에 있어 지금보다 더욱 나빠질지언정 개선될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아소 다로 총리는 고이즈미, 아베 전 총리 못지않게 역사 문제에 있어 보수 성향을 지닌 데다 ‘망언 제조기’라 불릴 정도로 직설화법을 구사하므로 개인적인 성향이나 그동안의 망언을 살펴보면 우려스러운 측면이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선 아소 다로 신임 총리의 집안과 한국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오랜 악연으로 이어져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후쿠오카 지방의 토호세력인 아소 다로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1만여 명의 조선인 징용자들을 강제로 노역시킨 규슈의 아소 탄광을 경영했고, 아소 다로 본인은 32세 때 아소시멘트 사장을 지낸 적이 있다.
그가 내뱉는 망언들은 일본 우월주의와 역사 인식을 내포하고 있어 주변국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는다. 2003년 5월 도쿄대 특강에서 뱉은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은 조선인의 희망에 따라 이뤄졌다”, 총무상으로 재임 중이었던 2005년 10월 “하나의 문화, 하나의 문명, 하나의 민족, 하나의 언어를 갖고 있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등의 발언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해서도 그는 “야스쿠니 신사는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와도 같은 곳이며 이곳에 대한 참배는 정당하고 앞으로도 계속하겠다”는 발언과 함께 적극 찬성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 2003년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한국과 중국이 반발하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문제 삼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천황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지난 2007년 미 하원을 통과한 위안부 비난 결의에 대해서는 ‘일본군의 강제적 성 노예화’라는 기술과 관련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으며, 유감스럽다”고 말해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드러냈다. 한중 간 외교 문제에 민감한 사안인 야스쿠니 참배 문제에 대해서는 “타국이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을 수 있다”며 오히려 한국과 중국의 과민반응이 문제라는 의견을 내비친 바 있다.
이 때문에 아소의 집권은 아시아 중심 외교를 표방했던 후쿠다 정권에 비해 한일 관계를 더욱 경색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근현대사 교수는 아소 다로의 총리 선출 전 인터뷰에서 “아소 다로의 총리 취임은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역사 문제 등에서 본인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 타입이기 때문에 한일관계나 역사 갈등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소는 한국, 미국 등과 같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나라들과의 관계에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여 왔다>
하지만 개인 성향이 아무리 보수적이라 해도 국가 총리로서는 다를 수 있다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개인으로서의 아소’와 ‘총리로서의 아소’는 또 다를 것이라는 주장이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아소 다로 총리가 외상으로 재직하던 시절 한일관계를 살펴보면 그전과 비해 특별히 나빴던 것은 없다. 그리고 북핵 및 동북아 안보 문제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높다”고 말한다. 도쿄의 외교소식통도 “아소가 외상으로 재직하던 때 한·일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망언을 하지도 않았다”며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외상 재직시 그는 한국, 미국 등과 같이 민주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나라들과의 관계에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여 왔으며, 아베 전 총리와 달리 대북 강경론자가 아니란 점, 고이즈미 전 총리와 같은 한국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를 잘 아는 외교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자민당 총재 선거 토론회에서 아소다로는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란 점에서 일본과 가깝다. 한국은 연계해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대”라고 평가한 바 있다.
독도 및 교과서 문제로 냉각된 한국에 대한 관계는 어떨지 모르지만 후쿠다 정권 들어 다소 소원해진 미·일 관계는 더욱 긴밀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그의 외교 성향으로 볼 때 서로의 필요에 따라 이어가는 전략적 호혜관계는 냉각될 가능성이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 고이즈미 정계은퇴

독도나 역사 교과서 문제는 이미 갈등 상황으로 노출된 재료인 데다 한국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끌고 간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일관계는 갈등에서 회복으로 넘어가는 시기라는 게 주된 시각이다.
오히려 후쿠다 전 총리에 비해 정치적 입지가 탄탄한 아소 다로 신임 총리가 북한 핵문제나 동북아 안보, 경제협력 등에서 더욱 쉽게 풀어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장악력 약한 온건파가 위기 때 대외 강공책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아소 다로 총리는 그 반대라는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대해 “역사적으로 어떠한 악연도 없는 일본인과 황인종들이 금발의 서양인보다 중동 외교를 더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비판하던 것처럼 아소 다로 신임 총리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무장해 유약하다는 평가를 받은 후쿠다 야스오 총리와는 전혀 다른 정치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총리 아소’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외교 노선을 구축할 것임을 표명했다. 9월 24일 취임식과 29일 소신 발표에서 아소 다로 신임 총리는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우호적으로 끌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일 정계의 실력자인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는 “한국 문제에 있어서는 아소 다로가 더 유연하게 대처할 것이다. 두고 보아라”라며 한국 정부 관계자를 안심시켰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일 것이다. 그는 외상 재임 중 강성 발언은 했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하지 않았다. 주변국과의 외교 관계에 있어 타협할 것은 과감히 타협하는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개인적 성향만 두고 우려할 필요는 없다”며 “정치기반을 배경으로 다른 한일관계를 풀어가는 데 유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상과는 다른 내각 구성
<내각 구성에 있어 젊은 정치인의 기용으로 참신함을 보였지만, 아소 다로 자신을 비롯, 각료 18명 가운데 12명이 선대가 정치인이었던 ‘세습 정치 가문’ 출신이란 점은 ‘그들만의 잔치’라는 위화감으로 작용할 것이다.>

아소 다로 신임 총리는 한국이나 중국에서 우려했던 보수 우파 일색의 조각은 일단 피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신의 정치 노선에 따라 보수 우파 인물들을 골고루 포진시키기는 했지만, 11월에 실시될 예정인 총선에 대비해 선거에 강한 세습 의원들을 발탁하고 최연소 여성 각료를 기용하는 참신성도 보여줬다.
아소 다로 총리는 조각을 발표하면서 “국민이 안심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제1야당인 민주당과 벌일 결전을 위해 국민을 위한 조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내각은 물론 자민당 내에서의 권력을 강화해 소수 파벌 출신이란 한계를 극복하고 ‘친정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도 보였다. 자민당 내 2인자인 호소다 히로유키를 간사장에, 내각 살림을 책임지는 관방장관에 가와무라 다케오 같은 실무형 정치인을 앉힌 것이 이런 그의 의도를 말해 준다. ‘포퓰리즘 정치’를 펼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젊은 정치인 가운데 자신과 성향이 유사한 보수 우파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전 경제산업상을 재무상 겸 금융상에 임용해 사실상 주요 경제 정책을 모두 맡겼다. 아소 다로 총리는 “세계적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 문제에 적극 대처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금융위기의 여파를 최소화해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의도다.
아소 다로 총리의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등용은 주변국과의 외교를 중시한다는 의지를 표방한다. 외무상에 전 문부상 겸 과학기술청 장관이었던 나카소네 히로후미가 임용된 것이다. 그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의 장남이며 일본 대입시험에 한국어가 제2외국어로 채택되게 하는 등 한국과는 깊은 인연이 있다. 2002년 월드컵 때는 도쿄 시내 한국대사관에 동료 의원 10여 명과 함께 와 한국을 응원하기도 했다. 한국과 각별함을 유지하던 그는 고이즈미 정권 때는 빛을 보지 못했다. 2005년 중의원 해산을 불러온 우정(郵政) 민영화법안에 반대표를 던져 고이즈미에게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버지 나카소네가 2003년 중의원 선거에서 고이즈미의 ‘정치인 74세 정년론’에 밀려 강제로 은퇴당한 데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카소네는 “미·일 동맹을 축으로 삼아 한국·중국 등 이웃나라와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의 차녀인 유코(優子) 중의원이 소자화(少子化) 담당상으로 발탁된 것은 유권자들에게 신선함을 주기 위함이다. 2000년 오부치 전 총리가 재임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망하자 외국 유학 중 귀국해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하지만 내각 구성에 대해 심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소 다로 자신을 포함한 각료 18명 가운데 12명이 선대가 정치인이었던 ‘세습 정치 가문’ 출신이어서 국민에게 ‘그들만의 잔치’라는 위화감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잠잠한 아소 다로
평소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개혁 노선을 표방해온 그는 최근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와 관련, 미국·유럽 등 주요국과의 공고를 확고히 하고 저소득층에 대한 감세 및 국가 재정의 긴축을 통해 일본의 위태로운 경제 상황을 극복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외신들은 이 같은 그의 노력이 이미 전체 GDP의 150%에 달하는 일본 국가 채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일본의 현 정치 상황으로 볼 때 야당이 장악한 참의원과 경기후퇴 등 안팎의 걸림돌 때문에 험난한 국정 운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후쿠다 총리의 사임에 대해 일본 언론과 국민이 대체로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어, 아소 다로 신임 총리가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모두가 우려하는 대로 그의 보수 우파적인 정치 성향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와는 달리 각료에 오른 후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 방문하지 않겠다고 공헌한 바도 있다. 또 지난 2005년 외상 취임 이후 한국과 중국에 관해서는 나름 입조심을 해왔기에 국내 정치와 외교를 잘 버무릴 수 있지 않겠느냐란 시각도 있다.
지금 당장은 일본 경제가 극심하게 나빠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주변국가와의 소모적 외교싸움보다는 자국 경제에 집중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전에 그가 타국이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을 수 있다며 오히려 한국과 중국의 과민반응이 문제라는 식의 의견을 내놓은 것을 보면 그의 망언은 정치권의 안정을 위한 자국 내 인기를 얻기 위한 포석이 아닐까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한국이 그가 어떻게 하는지만 기다려 거기에 맞춰 외교를 따라갈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일본과 독도 영유권 문제 및 과거 청산 문제로 불편한 상황에서도 공생할 수밖에 없는 가깝고도 먼 일본과의 숙제를 잘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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