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진숙은 기억을 작업의 주요 토대로 삼는 작가다. 나진숙 작가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반성한다. 그가 반성하는 기억은 자신의 삶에서 비롯된 것일 뿐 아니라 동일한 공간 안에서 함께 호흡하며, 공동의 삶을 꾸려가는 우리 자신의 것이기도 하다.

▲ 나진숙 작가는 내용과 형식의 편안한 조화속에서 그의 작품들은 조용히 관객들에게 다가가 소통하는것이다.

나진숙 작가가 기억의 반성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단편적으로 지나가버린 과거를 회상하거나 그리워하는 것처럼 단순히 과거 지향적이며 수동적인 차원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삶의 가치와 의미를 현재와 미래의 차원에서 고양하고 독려한다는 점에 미래지향적이다.

관찰과 사유의 과정 거친 작품 창조
나진숙 작가의 작품은 철저하게 관찰과 사유의 과정을 거쳐 태어난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구상성과 추상성이 동시에 드러나며 형식상으로의 해석과 내용상으로의 해석이 이중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나무, 고무, 닥종이, 하드보드, 글루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는 작가는 다양한 기법으로 이 재료들을 다룬다. 그러한 결과물로 나오는 작품 역시 어느 한 장르나 어느 한 매체로 한정되기보다 평면, 부조, 영상, 설치 등 장르와 장르 사이를 횡단하게 된다. 이처럼 그의 작품에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혼재하기 때문에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으나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십분 발휘되어 각양각색의 것들이 서로 어울려 종합적인 의미망을 띠게 할 뿐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와 공감할 수 있도록 내면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작은 부분들이 모여 큰 하나를 이루는 기억의 기본구조처럼 그의 작업들은 작은 판 위에 새겨진 상징들이 모여 큰 전체를 구성한다. 한편 이들은 나무 조각이나 고무판 위에 양각이나 음각으로 새겨진다. 또한 닥종이 위에 옮겨진 채 영상작품과 조화되기도 한다. 기억의 반영물인 그의 작품들은 평면에 국한하지 않고, 3차원의 입체적인 공간을 적극 창출한다. 작가는 “이미지들이 서로 짝이 맞기도 하고, 맞지 않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고 기억하는 것이 항상 파노라마처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엉뚱한 것이 나오기도 하고. 그런데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나하나는 서로 짝이 안 맞을 수 있지만, 계속 판을 이어나가서 크게 만들고, 그 판을 멀리서 봤을 때 하나의 커다란 이미지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채로운 재료와 기법을 사용하는 나진숙 작가를 두고, 나무와 고무판에 이미지를 새기고 캐스팅한다 해서 조각가라 부르거나, 영상을 도입한다 해서 영상작가라 부르기는 힘들다. 그가 사용하는 모든 방법들은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바, 즉 내용을 지칭하기 위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형식과 내용의 조화는 미술에 있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너무나 진부한 것일 수도 있다. 이와 반대로 작가 나진숙은 다른 그 어떤 작가보다도 내용에 가장 잘 어울리는 형식을 끊임없이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또 찾아낸다. 그러한 노력 뒤에는 작가의 예리하고 미묘한 감성이 내재되어 있으며 내용과 형식의 편안한 조화 속에서 그의 작품들은 조용히 관객들에게 다가가 소통하는 것이다.

▲ 나진숙15_The Wave II_installation by carved rubber blocks_2006

과거와의 온전한 소통과 화해 꿈꾸다
나진숙 작가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난 후 결혼과 육아로 잠시 작품에서 손을 놓는 듯 하였다.). 그러다 불현듯 다시 작품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창작의욕이 되살아나며 자유를 호흡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귀국 후 국립현대미술관의 창동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 네덜란드 아른헴에 있는 Stichting Atelierbeheer SLAK의 단기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 경기도 영은미술관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 등에 참가하며 작품세계를 넓혀온 나 작가. 제5,7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제1,2,3,5회 서울현대조각공모전 입선 HIGH MARKS전 장려상, 미국 볼티모아 밀레니엄 조각가전 The Best of Show Award), 미국 Towson University Fellowship, 2007 문예진흥기금 시각예술분야 선정, 2009서울문화재단 시각예술지원기금지원 선정 등 화려한 입상 경력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은 나진숙 작가는 지금까지 총 12회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그룹전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그의 작품은 현재 영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대학교 반도체연구소 등 국내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기도 하다. 현재 갤러리 유중 관장, 이화여대 조소과 겸임교수, 한국조각가협회 이사, 서울시 미술장식 심의위원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나진숙 작가. 앞으로도 겹겹이 쌓아올려지고 다듬어지는 꽃, 조개, 구름, 나무, 잎사귀, 날개, 알의 형상 등을 통해 과거와의 온전한 소통과 화해,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한 순례를 떠는 나진숙 작가의 작품세계가 기대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