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그 정신을 옮겨 다시 태어난다. 그 돌에 피가 돌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띄고 수더분한 자세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중략) 오늘 그의 조각 앞에서 나는 잃어버렸던 심성을 되찾으며,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은다” - 소설가 윤후명

▲ 조각가 오채현은 작품 하나하나 선을 중요시하며 토속적인 작품으로 만드는데 열정과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다.

조각가 오채현이 주목을 받고 있다. 조각가 오채현은 서양미술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유학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얼굴과 선을 가장 토속적인 작품으로 구현해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바티칸의 의뢰로 가장 한국적인 성모상 제작
지난 2005년 성모마리아를 조선여인으로 묘사한 조각이 세계 가톨릭의 본산인 로마의 바티칸으로 보내져 화제가 되었다. 이 성모상을 조각한 이가 바로 조각가 오채현. 그는 한국의 산과 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으로 10개월간 정성들여 다듬은 성모상을 바티간으로 보냈다. 2미터 높이의 조각상은 마리아가 한복을 입고 가슴을 드러낸 채 발가벗은 아기 예수를 업고 머리엔 물동이를 지고 있다. 특히 이번 조각상은 성염 주 교황청 한국대사의 의뢰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앞서 2002년 경기 안성 대천동 성당의 방성복 안드레아 신부가 오채현 작가에게 가장 한국적인 성모상 제작을 의뢰해 완성한 조각상을 성염 주 교황청 한국대사가 유심히 보았던 것. 오채현 작가는 “아이를 키우고 밭일을 하면서 건강한 삶은 이어온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라며 “척박한 땅에서 살아온 어머니의 모습, 호미 들고 밭일을 해 손마디가 굵어진 모습, 그것이 바로 우리시대, 우리 땅의 성모”라고 강조했다.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형상의 원초성, 향토적이고 소박한 형상의 세계의 근원은 다름 아닌 우리미술의 풍부한 전통이며 또한 순진하고 꾸밈없는 어린이의 세계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는 강렬함보다는 부드러움이 세련된 감각보다는 질박한 심성이 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한다. 오채현 작가의 작품이 지닌 매력이라면 단연 자연의 이치와 섭리에 순응하려는 너그럽고 온화한 심성을 모나지 않은 둥글둥글한 형태와 풍만한 신체로 표현함으로써 그 작품들이 마치 모성(母性)과도 같은 인자함과 푸근함으로 자아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너그러움이 그의 작품이 가진 투박함을 오히려 살아있는 형상으로 발전시키는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기교부리지 않는 소박한 자세 또한 그의 작품이 지닌 친화력을 돋보이게 한다.

▲ 성모자상

파격은 역동적인 발전의 흐름
평론가 박영택은 작가 오채현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계곡과 산에서 오랜 시간을 그렇게 뒹굴어 생긴 형태와 피부, 색감과 질감을 존중하면서 그 돌에서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형태를 파내는 것, 물질 속에서 감춰진 생명의 형상을 밖으로 가시화시키는 것, 그것이 그에게 조각이다”고 평한 바 있다. 현재 작가 오채현의 조각은 국내에서는 용인 미리내 성지와 정동진 조각공원, 춘천 시립호반공원, 대학로에 설치되어 있으며 해외에는 독일 쾰른의 뮐러브루네르트 갤러리와 이탈리아 루카 판타지앤조 갤러리, 일본 고베 미쇼칸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다.
작가가 조각가로서 명성을 쌓게 된 데에는 우리 것에 천착해 전통의 미학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평론가들의 이야기다. 대학에서 서양조각을 배웠으나 늘 전통적인 조각을 가슴에 품었던 작가는 전통민속관과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장승과 토우, 민화, 암각화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해 작품으로 소화해 발표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왜 이런 조각을 하느냐”는 담당 교수의 꾸지람이었다. 결국 작가는 동서양은 다르지만 통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서양미술의 본산인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이태리 까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를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만의 세계로 각국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는 최근 몇 년간 창작한 일련의 작품들 -풍만하고 다리가 짧으며 허리가 긴 동양의 여인상, 화를 내는 듯 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을 통해 그를 지탱해 주었던 어린 시절의 전원생활과 신화들에 대한 기억을 잃지 않은 채 그가 속했던 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하여 준다. 오채현 작가는 “전통을 바탕으로 할 지라도 그것을 고수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면서 “파격이야말로 과거로부터 현대를 거쳐 가는 역동적인 발전의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