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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진공상태에 빠진 예멘
33년 독재정권 붕괴되나
2011년 07월 01일 (금) 00:52:56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지난 6월 3일 대통령궁을 향한 반정부군의 포격으로 부상을 입은 뒤 6월 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가 머무르고 있다고 사우디측이 밝혔다. 살레 대통령은 심장 7.6㎝ 아래에 포탄 파편을 맞고 가슴과 얼굴에 2도 화상을 입었으며 뒤통수에도 상처를 입었다.
 
지난 6월 발생했던 포격으로 살레 대통령과 함께 있던 경호원 7명이 사망했고 총리와 부총리, 의회 상·하원 의장도 부상을 입어 단체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로 갔고, 대통령 유고에 따라 부통령의 직무대행 체제로 돌입하는 등 정권 공백 상태다. 치료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내전 와중에 가족과 측근들을 이끌고 해외로 피신한 것은 망명으로 해석되며, 예멘이 이집트·튀니지에 이어 독재자 축출 혁명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살레 일가가 여전히 공화국수비대를 비롯한 예멘의 정치·경제 요직을 꿰차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예멘 정국은 ‘살레 복귀→권력 재장악→반정부 시위 및 내전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예멘, 32년 만에 철권 통치에 대한 사임 촉구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고무된 예멘 국민 수천 명이 지난 1월 22일 수도 사나에서 32년 간 장기 독재를 계속하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예멘에서 철권 통치를 휘둘러온 살레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이 같은 시위는 이번이 처음이다. 예멘 국민들은 예멘이 아랍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빈곤하고 정부는 부패한데다 정치적 자유는 거의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식수도 고갈되는 등 불만이 많았지만 지난 32년 간 살레 대통령의 강압에 눌려 시위다운 시위를 단 한 번도 갖지 못했었다. 살레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는 그동안 예멘 반체제운동가들에게도 넘을 수 없는 한계선으로 받아들여져 왔었다. 한편 살레 대통령의 귀국이 늦어지면서 살레 대통령의 거취 문제를 놓고 물밑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압두 알 자나디 예멘 공보부 차관은 “살레 대통령은 여전히 예멘의 합법적 지도자”라며 “권력 승계는 민주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야권은 살레 대통령이 귀국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과도정부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반정부 시위대들은 33년간 지속된 살레 대통령의 독재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는 기쁨에 광장에 모여 춤추고 노래를 불렀으며 감사의 의미로 소를 도축하기도 했다. 그동안 살레 정권을 지지해 왔던 미국은 예멘내 불안이 계속되자 살레 대통령의 퇴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예멘의 정정 불안으로 예멘이 알카에다 테러 조직의 또 다른 집결지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서구의 외교가에서도 미국과 사우디가 살레 대통령의 귀국 전 예멘의 정권이양 계획에 합의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치 전문가인 압둘라 하미다딘은 “사우디는 살레 대통령의 퇴진만이 피를 덜 흘리고 불확실성을 덜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라며 “사우디는 정치적 공백으로 예상할 수 없는 미래가 닥쳐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우디에 살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많다는 점도 예멘의 정권이양에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미 볼티모어 토슨대의 찰스 슈미츠 교수는 “이들은 허리케인의 눈과 같다”라며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살레 대통령의 장기 부재는 다양한 전선(戰線) 구축
   
▲ 살레 대통령은 지난달 반정부군의 포격으로 부상을 입은 뒤 사우디아라비아로 가서 머무르고 있다
예멘 사태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부상 치료 차 예멘을 떠났지만 권력 공백을 수습할 정치개혁 로드맵이나 확실한 대안 세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살레 대통령의 장기 부재는 다양한 전선(戰線)을 만들고 있다. AFP통신은 6월 11일(현지시간) “예멘 정부군이 이날 남부 아비안주(州) 진지바르 지역 등에서 이슬람 무장세력과 교전을 벌여 21명을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아비안주 관계자는 이날 교전이 군 수송차량에 대한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시작됐으며, 정부군도 1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아비안과 샤부와 등 예멘 남부 5개주(州)는 살레가 지난 5월 말 시위대 진압을 위해 정부군을 대거 철수시키면서 사실상 치안 공백에 처한 곳들이다. 이 틈을 알 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세력이 재빨리 파고들며 반독재 투쟁에 머물렀던 예멘 시위 정국의 흐름을 바꿔 놓고 있다. 살레 대통령의 부상 전까지 예멘 내전은 살레 대 반정부 시위대에 동조하는 하시드 부족의 대결 구도였다. 하지만 예멘 정부는 최근 살레를 부상케 한 하시드 부족과 휴전에 합의한 뒤 이젠 남부 도시 탈환에 힘을 더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예멘에선 살레 대통령의 공백에도 내전이 끝나기는커녕 정치적 혼란만 가중되는 양상이다. 가장 큰 원인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논의 구조가 전무하기 때문. 대통령직 권한 대행을 맡은 아브드 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은 살레가 퇴진을 공식화하지 않는 한 권력이양 논의에 착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살레 대통령 복귀 전까지는 아예 야권과 대화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살레 일가가 여전히 공화국수비대를 비롯한 예멘의 정치·경제 요직을 꿰차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예멘 정국은 ‘살레 복귀→권력 재장악→반정부 시위 및 내전 확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AP통신은 “공화국수비대 사령관인 살레의 장남 아흐메드가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해 대통령궁을 오가며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재자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미온적 태도도 문제로 지적된다. 사우디는 살레 대통령 이후 권력 이양 절차를 담은 걸프협력협의회(GCC) 중재안을 주도한 국가이다. 게다가 부상한 살레의 신병을 확보, 마음만 먹으면 그를 설득할 수단도 가졌다. 그러나 사우디는 예멘 사태의 해법으로 GCC 중재안을 고수하고 있다. 오사마 노갈리 사우디 외무부 대변인은 “살레의 부재는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고 못박았다. GCC 중재안은 최종 서명의 주체를 살레 대통령으로 명시해 놓았다. 이는 살레가 권좌를 유지할 때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의 축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예멘 국민의 정서와 거리가 멀다. AFP통신은 또 사우디 내부소식통을 인용, “살레가 폐와 호흡기 쪽에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어 예멘 정부 관계자들의 면회 요청도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 보도가 사실로 판명돼 살레의 치료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면 예멘은 겉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수도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예멘은 이집트와 달리 정해진 절차에 따라 위기를 타개하고 새로운 정치 구도를 확립할 시간적 여유를 갖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사우디가 살레 대통령을 배제한 권력이양 논의를 꺼리는 이유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알 카에다의 위협이 큰 탓이다. 예멘과 국경을 맞댄 사우디는 살레가 불명예 퇴진할 경우 알 카에다의 족쇄가 풀릴 것을 걱정한다. 알 카에다의 테러를 봉쇄할 능력을 갖춘 정권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 예멘 반정부 시위대가 수도 사나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의 부재를 자축하고 있다

살레 일가는 여전히 정부 활동에 영향력 행사
예멘 야권이 부상 치료 차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고 있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을 대신해 권한 대행을 맡고 있는 아브드 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과 권력 이양에 관한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고 지난 6월 13일 밝혔다. 살레 대통령 부재 이후 야권과의 대화 중단을 선언한 하디 부통령이 협상 재개를 공식 발표함에 따라 4개월여를 끌어 온 예멘 사태가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압둘라 오우발 야권 대변인은 이날 “집권 국민의회당(GPC) 인사들과 야당 지도자들이 걸프협력협의회(GCC)가 제안한 중재안에 따라 살레 퇴진에 대한 협상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예멘 여야는 살레 대통령이 사우디로 떠난 이후 처음 만났으며, 이날 회동은 하디 부통령의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오우발 대변인은 술탄 알 부르카니 사무총장 등 GPC 지도부가 대거 회의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하디 부통령이 전격적으로 권력이양 협상에 응한 것은 살레의 조기 복귀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예멘 정부 고위관리의 말을 빌려 “살레 대통령이 위독한 상태는 아니지만 건강을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살레 대통령 부재와 맞물려 그의 퇴진을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한층 격화하자 서방의 압력에 직면한 예멘 정부가 대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양측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현지 목격자들은 “협상장 주변을 살레의 장남 아흐메드가 이끄는 공화국수비대원들이 에워쌌다”고 말해 살레 일가가 여전히 정부 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살레 대통령에 충성하는 군인들과 반정부 세력도 병력을 대폭 늘려 수도 사나의 주요 지점에서 대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5월부터 반정부 시위대 편으로 돌아선 하시드 부족이 무력 대응을 불사하면서 정치권 논의는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날도 예멘 제2의 도시 타이즈에서는 정부군가 주요 부족 세력 사이에 교전이 벌어져 정부군 탱크 2대와 군용차량 6대가 파괴됐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아랍혁명 변수는 부족갈등·군부·석유
각국의 혈연과 종교, 정치 시스템과 사회 구조의 차이는 반정부 시위가 전개되는 양상까지 갈라놓았다. 이집트와 튀니지는 국민의 98%가 같은 혈통이다. 또 종교적으로 튀니지는 인구의 98%, 이집트는 90%가 이슬람 수니파다. 이런 민족적, 종교적 동질성은 시위대를 하나로 묶고 부족·종파간 분쟁으로 빗나가지 않게 하는 접착제 구실을 했다. 반면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은 부족 국가의 특성이 아직 강하다. 시리아는 이슬람 수니파 74%, 시아파 16%, 기독교 10%로 나뉜데다, 시아파 중에도 극소수인 알라위파의 아사드 가문이 정치·경제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예멘은 영국의 분할에 따라 1990년 통일 전까지 30년 가까이 남-북 예멘으로 분단돼 있었다. 1978년 쿠데타로 집권한 살레 정권은 유력 가문인 하시드 부족과 오랜 갈등을 빚어왔다. 리비아도 수도 트리폴리를 중심으로 한 서부와 반군 세력의 거점인 벵가지를 중심으로 한 동부가 역사적으로 대립해왔다. 게다가 무아마르 카다피는 집권 이후 의도적으로 동부 토호세력들에 대한 차별정책을 펼치면서 부족·지역간 갈등을 키웠다. 리비아, 시리아, 예멘 등의 이런 사정은 반정부 민주화 시위가 다양한 세력의 이해관계가 얽힌 권력다툼 양상으로 꼬이게 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 군부 튀니지와 이집트 군부는 시위 초기 일찌감치 중립을 선언하거나 무력 개입을 자제했다. 두 나라에서 시위대에 대한 발포는 모두 내무부 소속 경찰과 보안군의 소행이었다. 특히 이집트 군부는 1952년 ‘나세르 혁명’으로 집권한 이후 이스라엘과 서방에 맞선 범아랍 민족주의의 견인차로 국민의 신망을 받아왔다. 이집트와 튀니지 시민들은 탱크 위의 군인들에게 꽃을 주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리비아, 예멘, 시리아의 군부는 사실상 독재정권의 사조직 성격이 강하다. 시리아 군대가 시위대에 대한 발포를 거부한 지역 경찰들을 처형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나, 예멘에서 일부 군 지도부가 이탈해 시위대 쪽으로 돌아섰음에도 무자비한 유혈진압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스로 보수 성향이라고 밝힌 영국 언론인 멜라니 필립스는 지난 5월 자신의 누리집에 쓴 글에서 아랍세계에 대한 서구의 태도를 한마디로 이렇게 규정했다. 그는 “영국과 미국, 유럽은 아랍의 독재정권 교체를 돕는다지만,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에서 그들의 외교정책은 앞뒤가 안 맞는 혼란에 빠졌다”고 꼬집었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에 대해선 미사일을 퍼부으면서, 시리아의 민간인 대량살상 사태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 접경국인데다, 서방으로선 헤즈볼라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과 이란에 대한 지렛대로서 활용가치가 크다. 서방으로선 섣불리 개입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영국은 사우디로 피신한 예멘의 살레에게도 ‘기소 면제’와 ‘재정 지원’을 대가로 퇴진을 회유했다. 서방은 ‘대테러 전쟁’의 전략적 동맹국인 예멘의 민주화보다 급격한 정변을 막는 데 관심이 크다. 반면 서방이 리비아 내전에 무력 개입한 것은 카다피 정권이 서방과 대립해온데다 양질의 석유자원이 풍부하다는 점이 큰 요인이 됐다. 리비아는 저유황 경질유의 세계 1위 수출국이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교수(중동정치학)는 “카다피 정권이 정통 이슬람의 권위를 부정하는 세속주의 정책을 펴와 아랍연맹(AL)에서조차 따돌림을 당한 것도 이슬람권 국가에 대한 서방의 무력 개입의 부담을 덜어줬다”고 말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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