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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氣)와 運을 이어주는 칡서 분체(糞體)
신관의 힘으로 생로병사, 길흉화복 처방
2008년 12월 13일 (토) 15:18:08 안상호 기자 press9809

   
▲ 동양칡서연구소 안중선 소장은 40여년간 연구하고 터득해온 힘이 넘치는 칡서 분체를 마지막 신관의 신분으로 세상에 알리고자 기서예(氣書藝)를 탄생시키고 있다.
제정일치 시대 때 하늘의 명을 왕에게 전달하던 신관(神管)들이 쓰던 상형문자(象形文字), 점을 칠 때 사용한다 해서 ‘점사(占辭)’, 또는 ‘복사(卜辭)’라고 하였으며, 칡으로 만든 붓으로 왕에게 전달했다 해서 ‘칡서’라고 한다. 붓은 수려하고 부드럽게 쓸수 있으나 글자의 힘이 약해지는 반면 칡서는 쓰면 쓸수록 힘이 강해지면서 서체에 원초적인 생명력을 발산시킨다.

안상호 기자 an9809@naver.com

고려의 대학자 안향 선생의 후손인 안중선은 40여 년 전 신관의 마지막 후손인 한 중국인에게 신관들만의 언어인 ‘칡서 분체(糞體)’를 직접 전수받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이후 국전 심사위원 이었던 근당(根當)선생을 비롯한 여러 대가에게 전통적 서법을 사사하면서 태고의 갑골문자와 상형문자, 전서체에 대한 서법을 자신이 직접 연구하고 터득하였다.
자연의 모든 것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이 있다. 참숯을 갈아 만든 먹물을 흠뻑 먹은 칡으로 만든 붓으로 우리 전통의 한지위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는 칡서는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이 하나 되어 기와 혼이 담겼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의 칡서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에너지가 넘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우주만물의 삼라만상속에 12지신의 어우러짐과 거대한 자연의 위대함 느끼게 하고 뇌와 가슴속에는 무엇인가 꿈틀거리게 하는 강렬한 생명의 힘을 갖게 한다.
우리는 그의 칡서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작품을 완성하는데 10초가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가지고 있는 자신의 모든 기(氣)를 집중하여야만 비로소 하나의 그림의 이루어진다.  

우연(偶然)과 우연이 만난 숙명
안중선(동양칡서연구소장) 선생은 40여 년 전 속리산에서 고대 신관들의 언어인 전설의 ‘분체(糞體) 칡서’를 만나 체득했다. ‘하늘의 뜻을 전하는 자’. 절대권력의 상징이었던 신관들만의 언어인 ‘칡서의 서체’를 안중선 선생이 ‘분체’라 명명하였다.
신관들만의 암호 문자라 할 수 있는 분체 칡서는 문자와 종교의식이 밀접히 연관되어 있던 고대부터 태동한 영험이 깃든 서체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의미가 있다. ‘고대로 돌아간다’는 원시반본이란 가장 강력한 힘을 의미하며, 강력한 힘이란 세계 역사와 전설 속에서만 살아있는 신의 징표이자, 존재를 뜻한다. 다시 말해, 원천적인 권위를 품고 있다는 말이다.
이 서체는 인간의 원초적이고 심오한 영적 세계에 부흥한 것으로 동양 신비주의의 근원이자 우주 에너지의 암호라 할 수 있다. ‘분체(糞體)’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특이하게도 인체기관 중 항문의 힘으로 글씨를 표현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 서체는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내공과 신필 경지의 필력으로만 가능하니, 어느 것에도 거슬림이 없는 영혼의 자유로움과 염원이 이루어지는 근원적인 힘을 지닌다.
   
▲ 강한 필력과 기를 발사하는 ‘칡서

 살아있는 氣가 담긴 영혼의 서체- 분체(糞體)
분체는 문자와 종교의식이 밀접하게 연관된 고대신화시절의 서체로 인간의 길흉화복을 기원하던 이식에 사용되었던 갑골문자(최초의점서)와 상형문자를 기초로 글자의 자획을 파자(跛字)한 후 조합(調合)해서 인간의 운명(運命)을 이어주는 강력한 힘을 표현하는 서체이다. 
칡서는 신관들의 영험에 이해서 인간들의 생로병사와 길흉화복에 처방되기도 하였고 제후나 왕족들을 명명하였고 인간의 운명을 역에 의한 사주팔자에 따라 부족한 것은 채워주고 나쁜 것은 없애주는 대체에너지로 행화작행(行化作行)하여 기(氣)와 운(運)을 소통시켜주었다. 신관들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칡서의 기력과 영험함은 중국 은나라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지만 안중선 선생은 오랜 시간동안 연구하여 생동하는 기(氣)를 느낄 수 있게 현대적으로 재현하였다. 분체(糞體)의 종류를 보면 글을 위주로 그림의 형태를 표현하는 서화체(書畵體), 그림속에 글을 표현하여 현실과 영혼의 접목을 나타내는 화서체(畵書體), 천상천하를 형상화한 화화체(畵畵體)가 있다.

칡서 세상에 선보여
인간의 신체는 대우주의 축소판이다. 대자연의 원기는 끊임없이 순환한다. 인간은 기혈의 원활한 흐름이 막히는 등의 이유로 병이 생긴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 등 세계 각 국을 돌아다니며 기공의 세계를 일반에게 알리고 보급하는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90년 초 일본 NHK방송에 출연해 강연을 하기도 했는데, 병원에서 수술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된 일본 전 수상 다나카씨 가족 중 한사람의 퇴행성 디스크를 치료했다.
안중선의 칡서가 일반인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 일본인 관광객들이 인사동을 관람하면서 우연히 일본관광객 중 한사람이 안중선선생의 그림을 사가게 되었는데 그 그림이 암으로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고바야시(여,53세)에게 전달되었다. 그 그림은 병실에 걸리게 되었고 신기하게도 암의 완치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졌는데 담당의사도 그저 기이할 뿐이라고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안중선 선생은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인사가 되었고 작업실엔 일본인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다.
하늘의 도리를 깨우친 남자, 현재에 다시없는 도인, 인간의 모든 병을 고치고 세상을 이롭게 하고 싶다는 안중선은 이 세상을 구하고자 강림한 마지막 신관이 맞는 듯하다.
마지막 신관 안중선 선생의 작품들은 강한 필력과 기를 발사하는 ‘칡서’이다. 이 영험의 칡서를 12월 17일부터~23일까지 인사동에 있는 이즈갤러리(구, 학고재)에서 ‘알몸’이란 주제로 전시를 한다. 안중선 선생의 칡서전은 2009년 1월 3일부터 8일까지 일본 후쿠오카의 에루가라 호루(elgala hall)에서도 열린다.

안중선 그는 누구인가?
안중선을 설명하려면 많은 수식어가 필요하다. 지성과 재능, 순수함과 끼, 미술과 음악, 기와 혼이 담긴 칡서, 화가로서 서예가로서 동양철학가로서 삶을 자아내는 그는 꾸준한 기공수련으로 아직도 20대 청년의 젊음을 간직하고 있다. 초등학교시절부터 대학까지 각종 백일장 및 문단을 휩쓸며 시인으로서 소설가로서 수필가로서  학창시절 전국에 이름을 떨치며 문단에서 인정받는 작가였으나 당시 건강회복의 내용이 담긴 책 ‘울타리 없는 남자’ 가 판금조치 되면서 작가의 꿈을 잃은 채 아직도 금서작가로서 22년째를 맞고 있다.
충청도에서 유명한 만석꾼이자 독립유공자의 자손으로 태어난 안중선은 상당히 총명하였으나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으로 약골체질로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은 소년이었다.
그는 초등학교시절 사서삼경과 명심보감을 독파하였고,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나 환쟁이로 취급하는 아버님의 완고한 반대로 예술의 길로 가지 못하고 어린나이에 신문배달을 하면서 독립생활을 하였다.
신문배달과 판매에 남다른 사업수완을 발휘하면서 6개월 만에 종로에 50년 넘게 지금까지 살고 있는 100평이 넘는 집을 장만하고 그 나이에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부를 이루고 초등학교 시절 그는 기사를 두고 시보레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이한 소년이었다. 이때부터 안중선은 사업가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10대 후반에는 강남의 신사동 일대 대부분의 땅을 매입하여 개발을 하면서 건축시장에서 떠오르는 부동산 갑부로 그야말로 떼돈을 벌여 들였다.
박정희대통령시절에는 동탑훈장을 수여받았고 헬기구호성금으로 1억 원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당시 국내 대기업의 평균기부금이 3000만 원 정도였으니 가히 그 돈의 가치를 짐작할만하다.
그 후 돈이라는 물질에 정신이 지배되지 않기 위해서, 또 세상의 공부를 체험하기 위해 40년 전 당시 일반인들은 감히 상상도 못할 해외유학길에 올라 20년 동안 한국과 외국을 드나들며 모스크바대학에서 동양철학을 강의도 하면서 스위스, 미국, 중국, 인도, 이탈리아, 대만 등에서 신학, 철학, 경영학, 한의학 박사를 취득하는 등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였다. 프랑스유학시절에는 세느강 뽕니프(당시 부랑자거리)다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숙식을 해결하였고 체구가 작은 동양인의 그림은 서양인에게는 무척 신비로웠고 소문과 방송을 타면서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되어, 그의 그림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으며 노틀담성당의 거리공연을 하면서 하루의 수익으로 약 6개월 정도의 생활비를 벌어들이는 그의 독창성  있는 공연과 그림은 이곳 예술의 나라에서도 화제가 되어 주목받았다.
그러나 해외유학이 쉽지 않았던 시절 남의 명의로 여권 및 비자를 발급받아 20여년을 그렇게 해외를 넘나들며 공부를 하였고  지금에 와서는 그 흔한 외국대학 졸업장이나 박사 학위증도 모두 남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졸업장이나 학위증에 대한 욕심을 전혀 없다고 했다.
서울대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했던 지금의 안중선 선생은 40여년간 연구하고 터득해온 힘이 넘치는 칡서 분체를 마지막 신관의 신분으로 세상에 알리고자 기서예(氣書藝)를 탄생시키고 있다. NM


안중선 칡서 분체 작품전
인사동 이즈갤러리 12월 17일~ 23일
일본 후쿠오까 에루가라호루 2009년 1월3일~8일
02-741-0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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