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2.3 금 15:25 전체기사 l 기사쓰기 l 자유게시판 l 기사제보 l 구독신청 l 광고안내 l 회사소개
> 뉴스 > 국제·통일
     
9.11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 사망
알-카에다 주도의 테러 추동력 잃을까
2011년 05월 31일 (화) 15:49:01 안상호 기자 press83@newsmaker.or.kr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으로 10년 가까이 진행돼 온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큰 전기를 맞게 됐다.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인 빈 라덴은 그동안 전 세계에서 반미·반서방 테러를 주도해 왔고, 미국을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 등 2개의 전쟁으로 사실상 몰아넣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지난 2001년 9.11테러의 배후 인물로 지목돼 지난 9년간 수배돼 왔으며 미 정부의 추적을 받아왔다. 빈 라덴이 지난 10여년간 미군의 집중적인 추적을 받으면서 공개적 활동을 줄였고, 중동과 아프리카내에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는 급진 테러조직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빈 라덴의 죽음으로 알-카에다 주도의 테러가 어느 정도의 추동력을 잃을지는 불투명하다.

빈 라덴의 9.11테러 이후 행적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이자 9.11테러의 배후 인물인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 수도 인근 도시 아보타바드에서 사살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그간 그의 행적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9.11테러 후 빈 라덴은 미국 당국의 추적을 피해 소수 측근 보안요원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의 험준한 산악지대를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은신해 온 것으로 알려졌을 뿐 정확한 행적은 계속 안갯속이었다. 빈 라덴의 소재지가 마지막으로 파악됐던 것은 2001년 9.11 테러 사건 발생 3개월 후였던 그해 연말이었다.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산악지대인 토라 보라 동굴에 은신해 있다는 정보를 확신하고 미군은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지만 빈 라덴은 도망쳤고, 그 후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이 때문에 그가 토라 보라 전투 당시 미국의 공습으로 이미 숨졌다거나 심각한 신장 질환으로 죽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또 파키스탄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 보안당국 요원들이 빈 라덴을 숨겨주고 있다는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빈 라덴은 10년간 은신처를 옮겨 다니면서 아프간 탈레반의 보호를 받으며 남아시아의 무장단체와도 연대를 구축하고 파키스탄 탈레반의 유혈 반란도 후원해 온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는 은신 기간 종종 영상 및 음성 메시지를 통해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추가 테러를 경고하기도 했다. 2001년 10월 미국의 아프간 침공 직후에는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 TV에 보낸 비디오 성명에서 전세계 무슬림이 힘을 합쳐 미국의 공격에 맞설 것을 촉구했다. 그해 12월 토라 보라에서 미국의 공습으로 궁지에 몰린 이후에도 알-자지라 방송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 건재함을 과시했다. 2002년 11월에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독일, 호주 등이 미국을 지원하고 있다며 추가 테러를 경고했고, 이후에는 무슬림이 미국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의 지도자에 맞서 봉기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유럽에 무슬림을 공격하지 말라며 ‘휴전’을 제의하고 미국이 무슬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을 중단한다면 또 다른 9.11테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새로운 전략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3월에도 알 자지라 방송을 통해 공개된 육성 성명을 통해 9.11 테러 주동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에 대한 사형이 집행될 경우 미국인들을 살해하겠다고 경고했다. 10년 간의 추적 끝에 결국 빈 라덴이 발견된 곳은 아프간 국경의 험준한 산악지대가 아니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100㎞ 가량 떨어진 도시 아보타바드의 경비가 삼엄한 3층 건물이었다. 아보타바드는 파키스탄 육군 연대 3곳이 위치해 있으며 수천 명의 군부대원이 주둔하고 있는 도시다. 이 같은 군사도시에서 그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어떻게 당국의 추적을 피해 다녔는지, 또 파키스탄 군대와 정보당국이 그의 소재를 알고 있었으며 그를 보호해줬는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는 것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9.11 테러 후 10년 가까이 빈 라덴 추격
   
▲ 9.11테러 후 빈 라덴은 미국 당국의 추적을 피해 소수 측근 보안요원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의 험준한 산악지대를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은신해 온 것으로 알려졌을 뿐 정확한 행적은 계속 안갯속이었다
미 정보 당국이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해 사살하기까지는 8개월가량 이어진 정보 분석과 평가 작업이 있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5월 2일 미 행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을 종합해, 빈 라덴의 소재를 알아냈을 시점부터 5월 1일 공격이 이뤄졌을 때까지의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9.11 테러 이후 10년 가까이 진행된 빈 라덴 추격전에 돌파구가 마련된 것은 빈 라덴이 가장 신뢰하는 밀사(courier)의 이름과 위치를 알아냈을 때부터였다. 미 정보 당국은 수년 전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들을 심문한 결과, 빈 라덴의 외부 접촉 포인트가 되는 인물의 가명을 확보했다. 관타나모 수감자들은 9.11 테러의 기획자인 칼리드 샤이크 모하메드가 빈 라덴의 밀사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후 정보 당국자들이 그 밀사의 실제 이름을 알아낸 것은 4년 전이었고, 그가 작전하는 지역을 파악할 수 있었던 건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난 뒤였다. 하지만 그가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로부터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도시 아보타바드의 주택가에 산다는 것을 정확히 알아낸 것은 지난해 8월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 정보 분석가들은 그 후 수주일 동안 위성사진과 정보를 면밀히 분석한 뒤 아보타바드 외곽의 대저택에 빈 라덴이 은신해 있을 “강력한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건물은 약 3.6m의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담 위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2005년 지어진 이 저택은 약 100만 달러(10억 원)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전화나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저택 주변의 주민들은 쓰레기도 밖에 내다 버리지 않고 불태워 없애는 등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에 미 당국자들은 이 저택이 빈 라덴을 숨기기 위한 특별한 목적에 의해 지어진 곳이라고 생각했다. 울창한 산들에 둘러싸인 아보타바드는 날씨가 쾌적해 파키스탄의 관광 명소로 꼽힌다. 주민들의 소득과 교육 기관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곳으로,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는 퇴역 군인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아보타바드는 파키스탄 정부군의 거점과 반군의 아지트라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곳에는 파키스탄 육군 3개 연대가 자리 잡고 있어 군사시설과 군인 거주시설이 많다. 빈 라덴이 은신하던 집은 파키스탄 군사학교에서 불과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는 빈 라덴이 파키스탄 정부 안팎의 알카에다 지원 세력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는 의혹에 힘을 실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반면 카슈미르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반군들은 이 지역에 훈련 캠프를 차리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 당국의 보고를 받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3월 14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총 5차례의 비밀회의를 가졌다. 야당인 공화당과 예산 문제가 합의되지 않아 연방정부 폐쇄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오바마는 핵심 참모들만 불러 모아 관련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4월 29일 아침 백악관에서 토마스 도닐런 안보보좌관, 존 브레넌 대테러 담당 보좌관 등 소수의 참모들만 참석하는 회의를 주재해 작전 명령을 내렸다. 남동부 토네이도 피해지역을 둘러보기 위해 백악관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작전은 5월 1일 새벽 1시30분부터 2시 사이 이뤄졌다.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씰(Navy SEAL) 요원 20~25명이 헬기를 통해 현장에 투입돼 지상에서 약 40분간에 임무를 수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5월 1일 밤 빈 라덴 사살 소식을 발표하면서 “파키스탄과의 대(對) 테러 공조가 빈 라덴이 숨어 있는 곳을 파악하는 것을 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작전 내용을 파키스탄 정부에 알리지 말라고 참모들에게 지시했다. 파키스탄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뉴욕타임스>는 파키스탄 당국자들은 빈 라덴이 자국 내에 없다고 주장했지만 미국은 결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전했다.
   
▲ 미국은 빈 라덴의 행적을 10여년 간 추적 후 소재파악에 성공, 미 해군 특수부대인 네이비 씰(Navy SEAL) 요원 20~25명이 헬기를 통해 현장에 투입돼 지상에서 약 40분간에 임무를 수행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각국 반응
오사마 빈 라덴이 숨진 후 아직까지 중동 지역은 조용하다. 미국 정부가 빈 라덴을 사살한 뒤 수장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반미시위는 물론이고 각종 테러로 세계가 불안에 휩싸일 것이라는 추측이 무색하게 중동 지역에서는 이렇다 할 특별한 움직임이 없다. 빈 라덴이 오랫동안 생활하며 영향을 미쳤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일부 산발적인 시위가 있었을 뿐이다. 이를 두고 이미 알 카에다의 극단적이고 투쟁적인 방식이 대중에게 외면을 당했고 특히 이 같은 현상은 정치개혁과 자유를 추구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방식의 정치개혁과 자유를 추구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알-카에다의 극단주의적인 방식이 설 땅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에미리트대학의 압둘카레크 압둘라 교수는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서 사망하기 전에 이미 그는 이집트에서 사망했다”면서 “평화적으로 현 상황에 맞선 젊은이들은 이미 빈 라덴식의 폭력적인 방식의 변화를 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집트의 이슬람 운동 전문가인 디아 라스완은 “빈 라덴의 죽음은 아랍인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지 못한다”면서 “그의 사망은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겨냥한 폭력의 시대가 페이지를 넘어가고 있다는 자연스런 발전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빈 라덴이 사망한 이후 며칠 동안 중동에서는 그를 추모하는 열기도 특별히 나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 브루킹스연구소 도하센터의 살람 샤이크 소장은 “아랍 세계는 오래전부터 알 카에다로부터 탈피했고 아랍인들은 자신들이 테러리스트로 규정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면서 “그 대신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는 민중의 혁명 쪽으로 관심을 옮겨갔다”고 말했다. 샤이크 소장은 ‘아랍의 봄’을 주도하는 젊은이들은 극단적인 테러 대신 자유와 민주주의, 높은 삶의 수준 등을 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알 카에다의 근거지인 예멘과 알-카에다와 연계된 무장세력이 활개를 치는 소말리아 등에서는 일반적인 중동지역과 다른 분위기도 감지된다. 알-카에다의 예멘 지부는 지난 5월 4일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된 데 대해 보복 공격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예멘 남부 아비안주에서 활동하는 알-카에다 지도자는 이날 AFP통신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조만간 성전을 감행할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이 알 카에다와 연계된 소말리아 반군들의 기세를 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對) 아프간 전략 둘러싼 논쟁
   
▲ 오사마 빈 라덴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위치한 맨션 외부에서 사살되었다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을 계기로 미국의 대(對) 아프간 전략을 둘러싼 논쟁이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의 주범으로 알-카에다를 지목하고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개시했다. 10년에 걸친 끈질긴 추적 끝에 마침내 빈 라덴을 사살함으로써 아프간 개전의 최대 목표가 성취된 상황에서 앞으로 아프간전 전략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느냐는 문제가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미국의 역사를 9.11 테러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듯이, 미국의 테러리즘과의 전쟁도 빈 라덴 죽음 전후로 나누어질 수 있다. 빈 라덴의 죽음이 ‘게임 체인저(game-changer.국면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아프간전 전략 논쟁의 공개적인 포문은 의회로부터 나왔다. 상원 외교위를 이끄는 양대축인 민주당의 존 케리 외교위원장과 공화당 간사인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은 상원 외교위 청문회에서 아프간 전략을 재고해야 할 시점이 됐다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케리 위원장은 “미국은 필요한 최소한의 병력을 아프간에 주둔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한다”며 “아프간 군·경이 치안과 안보를 책임질 수 있도록 그 역량을 배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방대한 군사작전을 위해 한 달에 무려 100억 달러를 쏟아 붓는 것은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방안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갑작스러운 철군에 반대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케리 위원장의 주장은 하루빨리 10만 명에 달하는 아프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고, 아프간 정부에 권한과 책임을 이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루거 의원도 “한 달에 100억 달러씩의 전비를 투입하는 아프간 전략이 미국의 지정학적, 전략적 이해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제기는 당장 올해 7월부터 개시될 것으로 예고된 첫번째 아프간 철군 미군의 규모와 속도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2009년 아프간 주둔 미군병력 3만명을 증파하면서 오는 7월부터 병력을 단계적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첫 철군의 규모는 여태껏 밝히지 않은 상태이다. 빈 라덴 사살 전 미군 지휘부가 내부적으로 만든 계획으로는 오는 7월 5천명의 미군을 첫 철수시킬 것이라는 보도가 흘러나왔지만, 이 계획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빈 라덴이 없어진 상황에서 계획은 수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의회 쪽에서 아프간전 전략 수정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백악관과 행정부 쪽에 큰 변화의 움직임은 당장은 없다. 빈 라덴의 죽음으로 아프간 내 탈레반 세력이 알-카에다와의 절연을 서두르게 될지 여부나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간의 평화협상으로 이이질 것인지 등이 아직은 불확실하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아프간 주둔 미군사령관은 지난 5월 8일 AP 인터뷰에서 빈 라덴의 죽음으로 탈레반에 대한 알-카에다의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밝히면서도 “아프간은 여전히 국제 테러단체의 잠재적 은신처이며 알-카에다는 그중 하나일 뿐”이라면서 빈 라덴 사살작전이 알-카에다 및 빈 라덴 제거를 목적으로 시작된 아프간에서의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행정부나 군 내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빈 라덴의 죽음이 오는 7월 시작해 2014년 완료를 목표로 하는 아프간 주둔 철군의 속도와 폭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없지 않다. 향후 아프간전 전략 논쟁은 지난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새로운 아프간 전략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일었던 국가안보팀 내부 논쟁의 ‘2라운드’가 될 수도 있다. 당시 조 바이든 부통령을 비롯한 일부 백악관 참모들은 대규모 병력 증파를 반대하며 무인비행기와 특수부대 공격을 통한 파키스탄내 알-카에다 정밀타격전략(counter-terrorism)을 주장했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군 지휘부는 지상군 추가 파병을 통해 아프간 내 반군까지 소탕하며 아프간 정부의 입지를 넓혀가는 대(對) 반군전략(counter-insurgency)을 지지하며 격렬한 논쟁을 전개했었다.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지상군 증파를 통한 대(對) 반군전략을 택했고, 바이든 부통령 그룹과 민주당내 반전론자들을 달래기 위해 단계적 철군 플랜을 함께 내놓았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과거 논쟁 때 행정부 내 정밀 타격전략론자들은 이번 빈 라덴의 사살을 목표가 광범위하고 많은 지상군을 필요로 하는 대(對) 반군전략보다 알카에다 지도자를 겨냥한 대(對)테러 전략이 보다 유용한 전술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아프간전 전략 수정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빈 라덴의 죽음은 의회, 행정부, 군부 내에 아프간전 전략, 테러와의 전쟁의 목표, 비용, 전략 등을 재평가하는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빈 라덴의 사망, 경제적 영향은 미미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아시아 증시가 오르고 유가가 내리는 등 긍정적 반응이 따랐지만 실질적으로 경제나 시장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전망이다. 오히려 알-카에다 세력의 보복 테러 가능성이 불거지는 등 불확실성이 도리어 증폭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빈 라덴의 사살 소식에 일제히 환호했던 시장은 그의 죽음이 알-카에다 세력이나 ‘테러의 끝’을 의미하진 않는 것으로 분석되면서 이내 진정을 되찾았다. 뉴욕 증시는 5월 2일(현지시간) 약보합세로 마감했다. 실제로 과거 지정학적인 사건이 시장에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마켓워치 등은 과거 진주만 공격이나 한국전은 물론, 존 F. 케네디 대통령 암살 등 ‘빅 이벤트’가 주가에 영향을 준 경우는 적다고 보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빈 라덴의 죽음이 본인이 소속된 지역팀이 수퍼볼이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것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상징적이긴 하지만 시장엔 그리 중요하지 않고, 소비자 확신을 높여줄 수 있지만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닥터둠’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빈 라덴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지정학적인 상황에 영향을 주진 못한다”며 “중요한 변화를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고 주식 전문가인 배리 리솔츠도 “시장의 도취적 반응은 단명할 것으로 보이며 그의 죽음이 기업 실적이나 실업률, 경제 확장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빈 라덴의 죽음으로 알-카에다가 보복테러에 나설 것이라는 경고가 설득력을 얻으면서 경계감이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빈 라덴의 사망 소식과 동시에 여행자들에게 주의를 당부했고 미국인들도 그들의 환호하는 모습이 오히려 이슬람 세력의 반발을 부를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 보복 테러가 현실화된다면 이는 시장 심리를 급랭시킬 수 있는 부분이다. 루비니 교수도 “잠재적인 보복 가능성이 글로벌 경제 리스크를 더할 수 있다”며 “테러 세력들이 분명 미국이나 다른 서방국을 공격해 그들의 힘을 보여주려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빈 라덴의 사망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에는 일단 상당한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와 별도로 불확실한 미국 경제 상황은 여전히 오바마 정부의 최대 과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 게다가 미국 의회는 올해 예산안을 가까스로 통과시킨데 이어 이번 주부터 정부 채무한도 상향이라는 더 거대한 산과 마주하게 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오바마 대통령의 야당의 칭찬까지 이끌어내긴 했지만 이 같은 정치 영향력은 차츰 퇴색할 수 있다며, 이미 9.11 테러 당시 보여준 미국인들의 결집도 느슨해졌다고 분석했다.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도 한 마디 거들었다. 버핏은 “빈 라덴의 죽음이 미국 경제나 테러와 관련된 특정 산업을 향상시키진 않을 것”이라며 “또한 완만한 회복세에 있는 미국 경제를 해치지도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후계자는 누구?
   
▲ 알 카에다의 최고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의 기습 공격에 사살되자 빈 라덴의 뒤를 이을 지도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알 카에다의 2인자로서 활동해 온 아이만 알 자와히리(사진)가 뒤를 이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알 카에다의 창설자이자 최고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이 사망하면서 누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게 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2인자 노릇을 해왔던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그 자리를 계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상황을 유동적이게 만드는 변수들도 많다. 무엇보다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쓸고 있는 민주화 열풍과 알 카에다 내의 조직 역학은 의외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우선 알 카에다가 빈 라덴의 계승자를 지명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20년 전에 알 카에다를 직접 만들었고 9.11테러를 지휘한 알 카에다 내부의 독보적 인물인 빈 라덴의 후임을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는 알 카에다가 조직의 목표와 빈 라덴 사후의 우선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지난 몇 달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시위는 서구식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드러낸 것으로 이슬람 통치를 꿈꾸는 알 카에다의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알 카에다는 이런 상황 속에서 존재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그 와중에 분권화와 내부 이견의 성향도 증가하고 있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대테러센터 소장 레이드 소이어 중령은 이 문제와 관련해 “과연 그(빈 라덴)의 자리를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람 테러조직의 온라인 활동을 감시하는 사이트 인텔리전스 그룹의 리타 카츠와 조시 디번이 작성한 보고서는 알 카에다가 “공식적인 지도자를 지명할 필요가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 단체가 메시지를 계속 내보낼 수 있는 한 전세계 이슬람 성전에서 지시등 역할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이어와 많은 전문가는 알 카에다가 빈 라덴의 후임자를 선택한다면 알자와히리(59)가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오랫동안 빈 라덴 밑에서 2인자로 일해왔고 다른 경쟁자들보다 경험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에 맞서 대놓고 후계 경쟁을 벌이려 하는 사람조차 없는 것으로 본다. 런던경제대학의 알 카에다 전문가 파와즈 저지는 만약 “그를 제치고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면 알 카에다가 쪼개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까지 말했다. 알자와히리는 그러나 한 인물로서 빈 라덴과 같은 매력을 갖고 있지 못하며 알카에다의 일부 조직원들은 그를 관리자 정도로 간주하고 있다고 미국의 한 정보관리는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이 관리는 “그가 알 카에다 일각에서 인기가 없다는 강력한 증거들이 있다”면서 “이 때문에 나는 누가 후계자가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NM


안상호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메이커(http://www.newsmaker.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1)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kdimm00002
(209.XXX.XXX.112)
2017-01-07 05:54:13
rksek007
라이브겜 ★ 실시간 생방 라이브카ㅈl노 ★ 안전한 놀­터­인­생­역­전 터지는 슬­롯­머­신 팡팡 !!★ 주소 ―▶▶▶▶ ET386.COM ◀◀◀―
전체기사의견(1)
뉴스메이커About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999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오피시아빌딩 14층 뉴스메이커 | 전화 : 02-733-0006 | 팩스 : 02-733-0009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상호
뉴스메이커는 (주)뉴스메이커에서 발행하는 시사종합월간지로서 특정언론과는 전혀 무관한 완전한 자유 독립 언론입니다.
뉴스메이커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뉴스메이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mak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