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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한 한국경제
경제 한파에 밀려나는 서민들
2008년 12월 13일 (토) 15:06:39 권순영 기자 ksy@

급등하는 환율의 상승은 유혈낭자의 퍼레이드를 연상케 한다. 원화가치가 폭락하고 증시는 세 자릿수로 추락하는 등 곧 반등할 것이다란 실낱같은 기대는 곧 절규로 바뀌고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의 여파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최근 한국 경제를 보면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권순영 기자 ksy@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GDP(국내총생산) 규모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며, 외환보유고는 세계 6위,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이라 할 수 있는 펀더멘털(국가 경제에서 기본적인 내재 가치를 나타내는 기초 경제 여건)은 튼튼하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여타 국가도 마찬가지지만 유독 대한민국의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 하락률은 급수직 낙하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75%P나 내렸는데도 정부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탓인지 증시는 요지부동이다. 시장금리는 오르고, 시중에 풀린 돈은 많다. 하지만 은행과 기업들은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 시중 통화량은 많은데 “돈 없다” 아우성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행은 추가 물가 상승을 우려해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흡수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국내 은행은 “유동성이 부족하다”며 한은에 손을 벌리고 있다. 기업도 자금 사정이 안 좋은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 기준 M2(광의현금)는 작년 같은 달보다 14.8% 늘었다고 발표했으며, 이는 전달 15.1%보다는 둔화된 수치이지만 여전히 높은 증가율이다.
M2(광의통화)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통화지표 중의 하나이며 통화지표는 시중에서 유통되는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기준으로, 대표적인 통화지표에는 협의통화(M1), 광의통화(M2), M3 등이 있다.
협의통화(M1)는 지급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을 중시한 통화지표로, 민간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과 예금취급기관의 결제성예금의 합계이다.
즉, M1= 민간보유현금 + 은행 요구불예금 + 은행 저축예금 + 수시입출식예금(MMDA) + 투신사 MMF
광의통화(M2)는 협의통화(M1)에 예금취급기관의 정기예금, 정기적금 등 기간물 정기예·적금 및 부금, 거주자 외화예금 그리고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표지어음 등 시장형 금융상품, 금전신탁, 수익증권 등 실적배당형 금융상품, 금융채, 발행어음, 신탁형 증권저축 등을 포함한다. 다만, 유동성이 낮은 만기 2년 이상의 장기 금융상품은 제외한다.
M2= M1 + 정기 예.적금 및 부금 + 거주자외화예금 + 시장형 금융상품 + 실적배당형 금융상품 + 금융채 + 발행어음 + 신탁형 증권저축

이러한 현상은 돈이 돌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예금은행의 회전율을 살펴보면 7월 4.7에서 8월 4.0으로 떨어졌고, 요구불예금 회전율도 4.7에서 4.0으로 낮아졌다.
회전율: 예금 지급액을 예금 평균잔액으로 나눈 값이다. 이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자금 수요가 늘어 예금 인출이 빈번했음을 뜻하며, 낮아졌다는 것은 그 반대를 의미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기관끼리 서로 믿지 못해 돈을 빌려주지 않는 데다 채권 발행이 어려워진 데 따라 통화유통속도 역시 최근 들어 크게 떨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면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줄여 영세 업체를 중심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
하지만 통화지표상으로는 시장에 돈이 많이 풀렸다. 그러나 정작 국민은 “돈이 없다”고 아우성친다. 이른바 ‘풍요 속의 빈곤’이다. 이 미스터리는 한 나라 내에 돈이 안 돈다는 의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오히려 당분간 실물경기는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 외환보유액 든든한데 유독 원화만 약세
작년 말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34.2%나 하락했다. 주요국의 달러화 대비 통화 절상률과 비교했을 때 한국에서 빠져나가는 외화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대만(-2.6%), 싱가포르(-4.0%), 태국(-13%), 유로(-11.5%), 영국(-18.3%), 뉴질랜드(-22.4%), 호주(-23.5%) 등을 보이고 있다. 
최근 4개월간 국내 증시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주식투자 자금은 150억 달러로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많다. 대만 증시는 113억8천만 달러, 인도 증시는 53억1천만 달러가 빠져나갔다. 지난달까지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점도 달러 부족의 한 이유다. 같은 기간 수출기업의 선물환 순매도 규모가 661억 달러, 나중에 받을 외화를 미리 당겨 판 것까지 감안한다면 실제 달러 부족의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 치솟는 환율
10월 들어 24일까지 현물환 거래량은 745억 달러에 불과하다. 외환보유고 6위로서 한국은행이 마음먹고 대규모 달러화 매도 개입에 나선다면 환율을 급락시킬 수도 있다.
한은이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몇 차례 개입 실패를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몰아닥친 금융위기로 시장의 불안감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는 환율을 강제로 끌어내리더라도 이내 반등할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또 한 번 당국의 방어선이 뚫렸다는 인식이 형성되면 시장은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져 지금보다 더 한 환율 폭등을 경험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한은은 섣불리 개입을 못하는 것이다.

● 대한민국의 신용도, 태국의 신용도
10월 26일 금융권이 발표한 정부의 대외신인도를 나타내는 CDS(크레디트 디폴트 스와프) 프리미엄을 보면 한국의 신용은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보다 낮다. 실제로 우리나라 5년물 지급보증채권(CDS) 프리미엄은 27일 기준 6.75%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고,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도 7.70%, 7.46%를 나타냈다. 이달 초 1.82%였던 우리나라 CDS 프리미엄은 지난 8일 3.11%로 뛰었고 이후 안정을 되찾는 듯하다가 23일 5.57%로 지난주부터 다시 급등했다. 반면 말레이시아의 CDS프리미엄은 23일 기준 4.22%이며 타이는 4.14%이다.
CDS란 신용파생상품의 하나로 신용자산의 가치를 감소시키는 신용사건, 즉 부도가 났을 때 그 손실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보전해 주는 계약을 말한다. 대개 보장 매입자가 리보에 고정 스프레드 형태의 수수료를 보장 제공자에게 지급토록 돼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최근 신용파생상품의 거래가 부쩍 늘고 있는데 이 가운데 35%가량이 이 상품 거래라고 보면 될 정도로 큰 인기다. 예를 들어 어떤 은행의 마케팅 부서에서 A기업의 신규 우량기업을 발굴해 대출을 하고자 할 때 위험관리부서가 A산업에 대한 신용집중도가 너무 높다며 반대할 경우 CDS를 사용해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우선 마케팅 부서는 파생금융상품 담당부서와 협조해 신용파생상품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투자은행을 찾고 CDS 계약을 체결한다. 이를 통해 신용위험을 헤징(가격변동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행하는 거래)할 수 있으며, CDS의 보장 매도자 신규 우량기업에 신용사건이 동시에 발생하지 않는 한 신용손실은 실현되지 않는다. 대출을 중심으로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은행은 향후 경기하강시 자산 건전성 악화에 대비하기 위해 CDS를 비롯한 신용파생상품을 이용, 신용 위험을 적극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즉 CDS프리미엄이 높을수록 그만큼 부도 위험이 크다는 뜻이다. 한국의 신용 위험이 커진 것은 대외 의존도가 높고 경제 규모가 다른 신흥국보다 크기 때문이다.
특히 전 세계를 직격한 금융위기에 한 번이라도 구제금융을 받았던 적이 있는 아시아 국가들을 불안하게 보는 시각이 늘어서이다. 한국의 올해 8월까지 경상수지 적자는 125억9천만 달러에 달하고 순채무국 전락에 대한 우려도 반영됐다.

● 청개구리 CD금리 왜?
원래 기준금리와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같이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기준금리를 내렸음에도 CD금리는 상승하는 스프링 같은 장이 연속되고 있다.
CD금리와 은행채 금리가 치솟는 이유는 매수세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은행에 대한 신용위험이 커진 데다 증권사 등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사정이 악화되면서 매수는커녕 보유하고 있는 은행채마저 내다 팔고 있는 상황이다. 사려는 세력이 없으니 채권 값은 내려가고 금리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은행채 금리가 오르면 같은 신용도와 만기를 가진 CD 금리는 덩달아 상승한다. 즉 은행채 금리의 상승은 CD금리의 상승과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져, 결국 가계의 이자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정부가 CD금리를 낮추려고 한은에 은행채를 사들이라고 압박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한국증시 폭락은 왜?
코스피 지수가 1000선을 하회하고 있다. 전 세계 불어닥친 금융위기의 폭풍을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한국증시의 연일된 하락장은 바로 외국인들의 이탈에 있다.
외국인은 올 들어 약 36조7천억원가량 주식을 순매도했고, 10월 들어서는 14일 하루를 제외하고는 연속된 매도 양상을 나타냈다.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도 있지만 한국에 대한 투자 위험이 크다고 느낀 것이다.
키코(KIKO) 등 파생상품 투자로 은행과 중소수출기업이 흑자 도산 위기에 몰린 점도 원화의 매각을 부추기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태산엘시디와의 파생거래 관련 평가손실이 2천861억원이며, 이 중 피봇 관련 평가손실은 1천388억원이라고 공시했다. 하나금융의 2분기 순이익이 3천96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큰 규모다.
복잡한 파생금융상품의 속성상 부실 규모가 얼마일지 알 수 없는 점이 시장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 현실화되는 자산 디플레
문제는 경제성장의 모멘텀을 찾는 것보다 실물 추락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분야로 본격 영향을 미치면서 내년 상반기 전 세계 경기 침체가 절정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최근 급락세를 거듭하고 있는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빠른 기간 내 회복되지 않을 경우, 자산 디플레 문제도 우려되고 있다. 자산가치 하락은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실질소득과 성장률 둔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 서민들은 벌써 IMF 체제
주가 폭락과 환율 급등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혼란은 이내 10년 전 외환위기의 악몽을 일깨우고 있다. 다시 한국 사회에 드리울지도 모를 먹구름을 미리 걱정하는 것이다. 이에 서민들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서둘러 씀씀이를 줄이는 등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종합주가지수 1000선이 무너진 24일, 각 인터넷 포털 ‘절약카페’에는 엄청난 수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웬만한 카페들은 이날 하루에만 약 1만여 명씩 방문했고, 100여 명 정도씩 회원으로 가입했다. 경기불황의 여파는 로또 판매량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나눔로또 301회부터 305회까지 판매액은 회차당 평균 441억4천여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25억4225만원 보다 3.8%(16억원)나 증가했다. 끝을 알 수 없는 경제혼란 속에 로또 당첨의 희망이라도 갖겠다며 몰려든 것이다.

● 경제불황의 그늘…다시 몰려드는 노숙인
노숙에 진입하는 길만 열려 있고 나오는 문은 닫혀 있다
경제 불황이 계속되면서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는 노숙인들이 최근 다시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숙인 수의 증가는 경제 불황의 암운을 말해주는 확실한 지표이기도 하다. 서울시의 노숙인은 지난해 7월 3014명에서 올 초 2800명까지 줄었었다. 그러나 지난 9월부터 급증한 노숙인은 현재 2900여 명에 달하며, 곧 3000명을 넘어설 태세다.
특히 이들은 ‘실패한 인생’이라는 자괴심으로 인해 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키울 수 있다. 문제는 이런 분노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분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무료급식단체인 ‘소중한 사람들’ 관계자는 “서울역에서 아침에만 무료급식을 하는데 작년보다 100여 명이 늘어 요즘엔 1천명쯤 밥을 먹으러 온다”며 “노숙자 증가보다 취약계층 인구의 무료급식 이용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 대한민국은 지금 ‘땡처리시즌’
경제불황의 여파로 곳곳마다 땡처리(폐업정리) 전단이 나부끼고 있다. 온 나라를 슬픔의 구렁으로 몰아넣었던 10년 전 IMF 위기. 그때를 연상케 하는 속칭 ‘땡처리’ 좌판이 대한민국 곳곳에 펼쳐지고 있다. 실물경기 침체로 직격탄을 맞은 의류업계 관계자는 “10년 전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게 하나도 없다”고 애써 외면했다.
서울 모 백화점에서는 남성정장, 점퍼 등을 70~80% 할인가격에 팔고 있었다. 잠깐 시간 동안 하는 반짝세일이었지만 땡처리였다. 명품도 예외일 수 없다. 명품은 불황을 안 탄다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아예 한국시장 철수를 검토 중인 브랜드도 있다. 대부분의 명품이 3만~14만원. 다소 비싼 듯하지만 이 정도 가격이면 명품에선 땡처리 수준. 하지만 고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 실물경제 급랭… 체감경기 ‘혹한기’
외환위기 당시 실물경제가 붕괴하며 대량 해고사태를 겪은 40∼50대 가장들은 더욱 마음이 편치 않은 모습이다. 이미 펀드와 주식으로 3500만원가량 손해를 본 김모(41)씨는 “주식시장이 살아나기는커녕 얼마나 더 떨어질지 모르는데 장기적인 경기불황까지 고민해야 하니 막막한 심정”이라며 “회사까지 흔들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룰 정도”라며 말끝을 흐렸다.
실물경기 침체의 가시화. 경제성장률은 3년 전 수준으로 주저앉았고 체감 경기는 외환위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악화됐다. 그동안 버팀목이 돼준 수출마저 심각한 후퇴 양상을 보이고 있는 데다 소비와 투자 모두 꽁꽁 얼어붙어 있어 하루라도 빨리 그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속도로 종합주가가 연일 추락하면서, 투자자들은 공포와 후회 등이 뒤섞인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황의 연속으로 밑바닥 경제는 깊은 불황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진짜 불황은 시작 되지 않았다고 한다.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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