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평범한  보통사람 그러나 아무나 할수 없는 일을 17년째 하고 있는 사람> 을 소개한다. 1945년 해방둥이로 태여나 70여년의 긴 여행을 하고 이제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해 현재는 대전 서구 관저문예회관에서 재능기부로 일본어와 중국어를 가르치며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정재홍 씨가 ‘아름다운 실버의 전형’ 바로 그 주인공이다.

황태일 기자 hti@
 
정재홍 씨는 20여 년간의 직장생활로 전반기 삶을 마감하고 1999년 말, 후반기 삶을 살기 위해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왔다.

이루지 못한 젊은 날의 꿈을 찾아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되지 못한 게 가장 큰 후회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선생님이 되어 보자고 시작한 것이 주변 분들께 일본어를 가르치는 일 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대전시청 총무과장님을 찾아가 직원님들께 일본어를 가르칠 기회를 얻었고 이렇게 시작한 일이 어느덧 17년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정재홍 씨의 눈가엔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 정재홍

정재홍 씨는 일본어 교육을 매개로 하여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요즈음은 ‘재능기부’라는 용어가 생겨 정재홍 씨를 향해 ‘아름다운 재능기부’라고 옆에서 칭찬을 해주신다고 한다. 사실 정씨가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에는 ‘재능기부’라는 용어도 보편화되지 않았고 정씨 자신도 ‘기부’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그가 젊은 시절부터 꿈꾸어온 선생님 소리를 꼭 들어 보고 싶었다고 했다. “교단에만 서면 행복합니다. 교단에만 서면 가슴이 설렙니다.  누군가 내 강의를 들어 준다는 사실에 신이 나고 고맙기까지 합니다”  정씨의 음성에는 뜨거운 열정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일본어과를 졸업하지도 않았고 일본에 주소를 두고 살아본 적도 없다. 그는 말을 이어간다.
 “지금도 기억합니다. 서기 2000년 어느 날 대전시청 총무과장님을 만나 면담을 하면서 ‘일본어를 전공했느냐’ ‘일본에서 살아본 적이 있느냐’ 는 질문에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그러면 어떻게 일본어를 가르치려고 하느냐’ 라는 세 번 째 질문에 나는 ‘독학으로 공부한 것을 가르치겠습니다’고 대답했을 때 총무과장님의 매우 당황해 했던 표정을.”
그러나 어쨌든 그는 가르칠 기회를 얻었고 그 때부터 그는 지금까지 일본어를 ‘쉽고 재미있게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많은 분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죽는날까지 이 걸음으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내 삶을 마무리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건강이 허락하는 한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의 수업시간은 단순히 일본어만 가르치는 자리는 아니다. 새로운 만남 속에서 배우는 사람 서로 간에 좋은 인간관계를 맺게 하고 상호 소통을 통하여 삶의 보람을 찾게도 한다. 삶의 지혜를 공유하게 하고 아름다운 인연을 짓게도 도와준다. 정재홍 선생의 수업시간은 언제나 화기애애함 속에 인간미 넘치는 훈훈한 교실이 된다.

“저와 인연을 맺고 일본어 눈을 달게 되신 분은 지금까지 대략 이천 몇백 명쯤은 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웬만한 자리에 가면 한두 명쯤 저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일본어공부를 통하여 저와 인연을 맺은 분들입니다. 작년부터는 중국어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중국어를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공부해 가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와 학생들의 진도가 같습니다. 전날 공부해간 것을 다음 날 가르칩니다. 일본어처럼 중국어도 독학으로 익혀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설명해서 이해시키는 ‘티칭스킬=가르치는 기술’ 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르친 중국어로 중국여행이 즐거웠었다는, 그래서 함께 간 친구들로부터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았다는 사랑스런 어른제자도 있었습니다.”  정재홍 씨의 음성에는 잔잔한 카리스마가 흐르고 있었다.

“저는 대학에서, 대학원에서 식품학을 공부했습니다. 삼립에 취직해서 제빵 기술도 습득했고 해태음료회사 연구실에서는 써니텐도 개발했습니다. 해태유업 생산이사, 기술연구소장도 해 보았습니다. 자주 일본에 출장 가서 기술연수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그때 공부한 일본어를 지금 다른 분들께  즐겁게 전수하고 있습니다. 제2인생을 살기 위해 대전에 와서는 외국어학원도 경영해보았고 금융업에도 근무해서 2014년 말까지는 7년동안 대전 구봉신협이사장직도 수행했습니다. 2014년에는 <정재홍은 늘 선생님>이라는 자서전도 출판했습니다. 화려한 삶은 아니었지만 작은 흔적이나마 남기고 싶었습니다. 작년에는 시사투데이신문이 주관한 ‘2015 올해의 신한국인 대상’에 선정되는 영광도 있었어요.” 정재홍 씨는 이렇게 지나온 세월을  풀어주었다.

이제 정재홍 씨는 완전한 은퇴자가 되어 대전변두리 흑석동에서 야트막한 산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갑천이 바라보이는 작은 집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을 마친 다섯 살 아래인 부인 김순진 여사와 그 동안 못다한 사랑을 해가며 오순도순 소박하게 살고 있었다. 지금도 1주일에 8시간 관저문예회관에서 무료로 일본어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정 선생님의 손 배웅을 뒤로하고 떠나오는 기자의  가슴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뭉클하게 솟아올랐다. 정 선생님 건강하셔야 됩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