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 vs 나훈아, 나훈아 vs 남진 라이벌전,
그 끝나지 않은 승부

Round 4.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라이벌전의 백미’ 1972년[3]

국내 최대의 라이벌 구도, ‘남진 대 나훈아, 나훈아 대 남진의 라이벌 대결’은 결과적으로 한국가요를 발전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이 라이벌전의 명승부가 여전히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우리 가요사에 영원히 남을 명승부, 제4라운드. 이들이 펼친 1972년도의 대결은 그중 백미였다. 시민회관 리사이틀 관객동원 기록 경쟁, 나훈아 지구 전속 스카우트, 방송국 10대가수상을 둘러싼 잡음, 매주 오르락내리락 치열했던 가요 톱10 인기차트 판도, 출연료를 둘러싼 신경전, 영화 겹치기 출연에 따른 스케줄 펑크 등은 물론 나훈아 시민회관 피습사건, 남진 노래 방송 불가 사건, 연예단장협회 나훈아 공연 보이콧, 나훈아 mbc 출연정지, 그리고 은퇴선언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이들 라이벌전의 백미, 1972년의 명승부, 그 역전 드라마.

글 l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부산MBC 남진, MBC 나훈아 노래 방송 불가 사건
지난 호에도 거론했듯 1972년 초 일간스포츠는 2월19일 자에서 ‘나훈아는 오아시스레코드사와 MBC가 그리고 남진은 지구레코드사와 TBC가 적극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1972년 그 해가 다 가기도 전에 MBC와 TBC는 서로 엇갈린 행보를 보였다. 정작 그해 TBC의 방송가요대상은 나훈아가, 그리고 MBC 가수왕 자리는 남진이 차지했던 것.
특히 MBC 10대가수청백전에서 예고 없이 불참한 나훈아를 대신해 사회자 변웅전이 ‘물레방아 도는데’를 대신 불러야하는 해프닝까지 연출해야 했다. 방송사고 아닌 방송사고를 내게 된 이 행사는 결국 남진이 가수왕을 받는 것으로 행사를 마쳤다. 그리고 이 무대를 끝으로 한국 대중가요 공연의 메카였던 시민회관은 화염에 휩싸이며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MBC는 이듬해인 1973년부터 10대가수청백전을 정동에 있던 문화체육관에서 개최한데 이어 74년부터는 명칭을 ‘10대가수가요제’로 바꿔 진행되어오다가 2006년에 폐지되었다.
남진은 71년부터 3년 연속 가수왕을 수상한 여세를 몰아 자전적 소설 ‘가수왕(정두수 著)’을 출판한 데 이어 1975년 ‘가수왕’이라는 타이틀로 영화(김기덕 감독, 이중헌 각본, 우성사 제작)까지 개봉, 주연을 맡아 열연했다.
상대적으로 나훈아는 MBC와 인연이 없었다. 더구나 12월 27일, 10대가수청백전에 불참한 나훈아가 월남공연을 마치고 귀국했을 땐 이미 MBC가 나훈아 노래 전체를 방송 금지조치 시킨 뒤였다.
얽히고설킨 메이저음반사와 메이저방송사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지며 보이지 않게 작용했던 힘, 이들은 흡사 서로가 서로의 아바타(Avatar)와도 같았다.
여기서 이들과 방송사 간의 또 하나 숨겨진 비화를 공개한다. 바로 MBC의 전신인 부산MBC가 이보다 먼저 남진의 노래를 일절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던 일화다.
지금까지 남진과 부산MBC 간의 공개되지 않은 이 비화의 주인공은 김양화 PD(69)다. ‘진실(정훈희)’,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현철)’, ‘소라의 노래(김하정)’의 작사가로 대중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만인의 라디오’ ‘자유로운 라디오’를 표방했던 부산MBC는 현 MBC 문화방송의 전신이다. 항도 부산에서 1959년 4월15일 개국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탄생된 이 순수 민간방송 부산MBC는 그로부터 2년 후인 61년, 서울MBC를 개국하면서 드디어 전국 방송망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랜드쇼’와 납량특집 공개방송 ‘바다에서 만납시다’로 대변되는 부산MBC는 국영방송 일원화 체제에 등장한 상업방송으로 다이얼 선택의 자유를 주었고 그러한 만큼 청취자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야 했다. 그 전략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과감하게 기획, 부문별 편성비율도 음악이 45%로 가장 많았다.
아울러 공연, 쇼 흥행의 승부처이기도 했던 부산 권역을 도맡은 부산문화방송은 이러한 배경을 업고 가요의 메카로, 또 전진기지로써 가요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부산에서 히트해야 서울에서 히트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산MBC의 위력이 실로 대단했던 시절이었다.
부산MBC는 단순히 전파를 통해서 가요를 방송하는 차원이 아니라 다양한 프로그램과 쇼무대를 만들어서 가수를 발굴하는 등 가요의 중심부에 위치했다. 그중에서도 최대 행사가 바로 ‘그랜드쇼’였다.
여기에 공개하는 이 일화의 주인공 김양화 PD는 부산MBC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 그랜드쇼의 기획, 섭외, 계약, 연출 뿐 아니라 무대장치, 음향까지 담당했던 인물이다.
72년 초. 김PD는 이 그랜드쇼에 출연할 연예인들을 섭외하기 위해 상경했지만 남진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호남지방의 한 도시에서 리사이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버스로 곧장 여덟 시간을 달려 극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남진은 야속하게도 출연을 거절했다.
김PD는 순간 지방PD의 비애감을 느껴야 했다. 그는 방송국을 돌아와 울분을 삭히지 못하고 레코드실에 있던 남진 음반을 모조리 뽑아 캐비닛에 처박아두었다.
그 때문에 남진의 노래는 이후 부산MBC를 통해 전혀 방송되지 못했다. 팬들은 아우성을 쳤다. 이 소문이 퍼지자 전국의 남진 팬클럽은 방송국에 투서하기 시작했고 음반사 입장에서도 부산, 경남지역에서 판매량이 급속히 하락하자 원성 또한 자자했다.
결국 김PD는 부산MBC 사장에게 불려갔다. 그리고 김종신 사장으로부터 격한 어조의 야단을 맞아야 했다.
“당신, PD로써 이럴 수 있어? 좋아하는 가수 노래는 틀어주고 싫은 가수음반은 아예 캐비닛에 처박아두고... 정말 PD로써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구먼.”
이미 사표 쓰기를 각오했던 김PD는 사표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지금까지의 과정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자초지종을 들은 사장이 당시 한 말은 단 한마디, “방송국에 협조하지 않는 가수 도와주면 뭘 해, 1년 더 금지 시켜.”
급기야 남진의 매니저였던 김영호 사장까지 가세해 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결국 남진과 부산MBC는 공개방송 ‘바다에서 만납시다’에 출연하는 것을 명분으로 합의를 이끌어내며 화해했다.

남진 나훈아, 방송 최초로 ‘바다에서 만납시다’ 공개방송 무대에 함께 서다
'바다에서 만납시다' 또한 부산MBC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다. 해수욕장에 비취스튜디오를 설치, 현장과 스튜디오를 직접 연결시켜 진행되었던 납량공개방송이었다. 매년 여름 ‘송도-광안리-해운대-주조정실’을 잇는 3원 혹은 4원 방송을 엮어 피서객과 애청자들의 인기를 모았다.
“방송날짜에 맞춰 남진씨가 하얀 무대의상에 백색구두를 신고 ‘바다에서 만납시다’ 무대에 섰어요. 하필 그때 광안리해수욕장에 장대비가 쏟아졌지요. 그러나 생방송이었던 만큼 고급 무대의상이 비에 흠뻑 젖는데도 아랑곳 않고 열창하는 남진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대단한 가수구나’, 감탄했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료 4천원(당시 남진의 리사이틀 출연료는 30만 원 정도)을 건네자 남진이 대뜸 ‘내가 가수된 이후 최고의 출연료를 받아갑니다’라고 조크를 던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지요.”
이러한 인연은 이후 MBC가 매달 발행하던 MBC가이드 창간호에 ‘인기가수 남진이 찾아가는 PD'라는 타이틀로 김양화 PD와 남진의 우정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 ‘바다에서 만납시다’는 남진, 나훈아가 대형 야외 공개방송무대에 함께 섰던 최초의 무대이기도 하다. 72년 8월15일, 한 달 간 진행되었던 납량공개방송 마지막 날, 남진과 나훈아는 함께 무대에 올랐다. 둘은 한 무대에서 인기 대결을 펼침과 동시에 동, 서 화합의 무대를 함께 연출해내 박수갈채를 받았다. 유난히 뜨거웠던 그 해 여름, 동아일보는 다음날 ‘해운대 해수욕장 100만 돌파, 해수욕객으로 인산인해’라는 기사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100만 인파라는 표현은 어느덧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되었지만 당시 100만이라는 숫자는 전국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어마어마한 수치였지요. 남진과 나훈아가 함께 섰던 이 공개방송무대가 이들이 함께 섰던 방송 사상 최초의 무대였어요. 지금도 그 열기가 눈에 선합니다. 남진이 노래를 마치면 젊은 가요팬들의 꽃다발부대가 우르르 무대 위에 뛰어올라가 볼 비비고 입 맞추고 악수를 하고, 나훈아가 노래를 마치면 아줌마부대가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올라가 얼싸 안는가 하면 그냥 꼬집기도 하고 넥타이까지 풀어 가져가는 등 정말이지, 당시 최고 인기 톱스타들임을 실감할 수 있던 무대였지요.”
당시를 회고하는 김양화 PD(69)의 목소리 톤이 조금씩 높아졌다.

'지구+남진' vs '오아시스+나훈아'의 빛과 그림자
지난 달 3월 13일, 오아시스 대표 손진석 사장이 83세의 일기로 타계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LP시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음반사 대표들이 모두 타계했다. 어느덧 우리 가요사에서 아날로그 시대가 이제 그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오아시스는 당시 레코드업계의 양대 산맥인 지구와 자존심 대결로까지 치달으며 남진, 나훈아 등 전속가수들을 앞세워 한 치 양보 없는 파워게임을 전개했던 메이저음반사였다.
숱한 노래와 가수, 실력 있는 작곡가를 배출해내며 60, 70년대 전성기를 이끌었던 오아시스의 손진석 사장의 최대 위기 중 하나가 바로 72년 3월, 나훈아가 손진석 사장을 떠나 지구로 스카우트되던 이 지점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지지난 호에 썼던 글의 일부를 옮겨본다.
‘나훈아가 전속을 지구로 옮기자 두 음반사 간의 신경전 또한 점입가경의 대립각을 세웠다. 얼마나 신경이 얼마나 날카로웠던지 당시 오아시스 측의 한 작곡가는 지망생들에게 지구에서 나훈아가 히트시키고 있는 ‘물레방아 도는데’만을 연습시키다가 오아시스 손사장으로 부터 신경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호통을 맞고 사무실에서 쫓겨났다.’고 했던 부분이다. 이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서술해볼까 한다.
굳이 밝히자면 이 일화 속 주인공은 작곡가 원희명씨다. ‘어쩌나(김상희)’로 등장한 신예 유망주였다. 이후 ‘각시와 신랑(남진)’을 비롯해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은하)’, ‘미스고(이태호)], ‘차표 한 장(송대관)’, ‘성은 김이요(문희옥)’, ‘몇 미터 앞에 두고(김상배)’ 등의 히트작곡가로 부상한 원희명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때 눈치 없이 ‘물레방아 도는데’만을 문하생들에게 계속 연습시켰지요. 그때는 그 노래가 대세였으니까. 하필 연습실이 3층의 왼쪽 첫 방이었고 건너편에 사장실이 있었어요. 늘 그 노래만 연습실에서 흘러나오니 얼마나 거슬렸겠어요. 어느 날 이현진 문예부장이 다급하게 들어오더니 사장이 당장 그만두라고 호통을 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쫓겨났죠. 달러박스였던 간판스타 나훈아가 경쟁사인 지구로 전속을 옮겼다는 것은 단순히 나훈아, 한 가수만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당시 음반시장의 구조를 보면  빅히트되는 음반이 있어야 도매상(지금의 총판)에서 다른 음반들도 받아주는, 일종의 끼워 팔기식 구조였죠.   때문에 지구가 주도권을 잡으면 말 그대로 오아시스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만큼 오아시스 입장에서는 사운이 걸린 문제였죠.”
때문에 손진석 사장은 사활을 걸고 맞불작전을 펼친다. 바로 나훈아의 취입곡 중 히트되지 않은 노래들만 모아 부랴부랴 편집음반을 만들어 재출시한 것. ‘고향역’, ‘해변의 여인’ 등이 이렇게 해서 히트송으로 재탄생했다.
오아시스와 지구라는 양대 메이저 음반사를 넘나든 나훈아의 행보에 따른 결과는 어떠했을까. 기록을 들춰 보자.
당시 모든 음반의 사전심의를 맡고 있던 예륜(藝倫,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의 자료에서 보면 1972년에 총 2천7백61곡의 가요를 심의, 음반은 총 2백20 여종이 발매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자료를 통해 ‘가수별 취입곡 베스트 10’을 보자면, 1위는 단연 나훈아였다. 무려 153곡을 취입했을만큼 압도적이었다. 이어 2위는 이미자(70곡), 3위 배성(68곡), 4위 남진(64곡), 하춘화(64곡), 6위 김부자(58곡), 7위 김상진(55곡), 8위 조영남(51곡), 9위 은방울 자매(43곡), 10위 조미미(40곡) 순이다.
몸은 지구로 옮겼지만 오아시스의 맞불작전으로 인해 결국 나훈아는 이 해,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낸 가수로도 기록되며 결과적으로 이 부분에서의 최대 수혜자가 된다.
주간한국 72년 12월24일 자, ‘72년 가요, 영화 흥행 베스트 10’에서 ‘72년은 나훈아 독주의 해였다’며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각 레코드가 정확한 판매량을 발표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의 어떤 노래가 얼마만큼 팔려나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청계천3가 도매상들의 증언과 주간한국 톱 텐(Top 10) 자료를 참조하면 ‘나훈아 독무대’는 쉽게 산출된다. 나훈아는 전 소속사였던 오아시스와 현 소속사인 지구의 판매 경쟁에 힘입어 자그마치 20여 종의 디스크를 내놓아 수위타자로 클로즈업되었다. ‘머나먼 고향’, ‘흰 구름 가는 길’, ‘물레방아 도는데’, ‘해변의 여인’, ‘감나무골’, ‘녹슬은 기차길’ 등 나훈아의 노래가 주간한국 톱 텐의 1위를 차지한 것이 자그마치 23주. 1년의 반을 거의 혼자 독주했다. 또한 판매량에 근거를 둔 1972년 베스트 10의 음반은 아래와 같다. 1위 ‘머나먼 고향’, 2위 ‘물레방아 도는데(나훈아)’, 3위 ‘흰 구름 가는 길(나훈아)’. 4위 ‘목화아가씨(남진)’, 5위 ‘연포아가씨(하춘화)’, 6위 ‘해변의 여인(나훈아)’, 7위 ‘여고시절(이수미)’, 8위 ‘아침이슬(양희은)’, 9위 ‘섬처녀(이미자)’, 10위 ‘임과 함께(남진)’.
이 기사에서 보듯 나훈아 독주는 물론 베스트 10위권에 중 남진, 나훈아의 노래가 무려 6곡을 차지한다. 그야말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한 달 뒤인 12월24일자 일간스포츠가 집계한 자료에는 ‘임과 함께’가 이 모든 노래를 뒤엎고 1위에 올라선다. 참고로 일간스포츠의 1972년 음반 판매 집계 베스트 10위에서는 1위가 ‘임과 함께(남진, 6만 장 판매)’다. 이어 2위는 ‘머나먼 고향(나훈아, 4만 장)’에 이어 ‘물레방아는 도는데(나훈아)’, ‘공항의 이별(문주란)’, ‘목화아가씨(남진)’, ‘흰 구름 가는 길(나훈아)’, ‘여고시절(이수미)’, ‘연포아가씨(하춘화)’, ‘고향이 좋아(김상진)’에 이어 ‘보리밭(문정선)’가 10위에 랭크되었다.

금지곡 ‘차창에 어린 모습’, ‘고향역’으로 화려한 부활
오아시스가 사운을 걸고 던진 승부수로 인해 ‘해변의 여인‘과 함께 ‘고향역’이라는 빅히트곡이 탄생한다. 이 행운의 주인공은 당시 무명 작곡가 임종수씨(69).
“나훈아씨가 갑자기 지구로 전속을 옮긴 것이 내게는 일종의 행운이자 터닝 포인트였지요.” 지난 3월, 11일 작곡가 박춘석기념사업회 발대식에서 만난 임종수씨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임종수 작사, 작곡의 노래 ‘고향역’은 처음 발표 당시 제목이 ‘차창에 어린 모습’이었다. 1971년 3월10일에 발표된 노래다. 그러나 이 노래는 방송 한번 타지 못한 채 묻히고 만다. 발표되자마자 금지곡으로 묶였기 때문이다. 금지사유는 ‘불건전’.
이 노래를 만든 임종수씨는 전북 순창 출신으로 이리 남성중, 고를 졸업한 뒤 가수가 되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다가 가수의 꿈을 접고 작곡가로 진로를 바꾼 인물. 이 노래 ‘차창에 어린 모습’은 서울에 올라와 고생하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만든 노래였다. 그러나 당시 정부의 국민의식 개혁 의지에 배치되는 비탄조라는 이유로 금지곡 리스트에 오른 이후 ‘고향역’으로 제목과 노랫말을 바꿔 재취입되었다.
재취입 제안은 나훈아가 직접 했다. 멜로디가 아까우니 가사를 바꾸고 또 리듬도 트로트에서 고고로 바꿔 다시 취입하자고 제의한 것. 때문에 작곡가 임종수는 중학교 때 기차로 통학하던 이리역(현 익산역)의 기찻길 옆에 피어있던 코스모스를 소재로 고향을 테마로 한 ‘고향역’으로 제목과 노랫말을 바꾼다. 이때가 72년 2월. 그러나 이마저도 묻히고 말았다.
“뜻밖에 행운이 찾아온 것은 나훈아가 경쟁사인 지구로 옮긴 직후였어요. 위기의식을 느낀 오아시스 측은 묘수를 구상했습니다. 바로 전국 방송국 PD들에게 긴급 설문을 돌렸는데 내용은 나훈아의 취입곡 중 잘 알려지지 않은 곡 중에서 히트 가능성 있는 노래 ‘베스트 10’을 골라달라는 것이었지요. 베스트 10 중 1위가 ‘고향역’이었습니다.”
오아시스 측은 곧바로 ‘고향역’을 타이틀로 한 나훈아 독집의 편집음반을 내놓았고 가을이 되자 전국은 ‘고향역’으로 뒤덮였다. 급격한 도시 산업화 물결에 따른 이농현상으로 인해 객지를 떠돌던 많은 이들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결국 이 노래는 MBC-TV의 ‘무궁화인기가요(연출 심상수)’ 1위에 까지 올랐다. 나훈아는 방송에 출연해 이 노래 ‘고향역’을 불러야만 했다. 그러나 나훈아는 이미 지구 전속이었다. 지구에 몸담고 있으면서 상대 음반사가 집중PR을 하고 있는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아이러니, 지구와 오아시스, TBC와 MBC. 이 모든 역학관계를 뛰어넘을 것인지 나훈아는 선택해야 했다. 주위에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을 대목이다.
방송 녹화날, 나훈아는 스튜디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보란 듯이 ‘고향역’을 열창했다. 아리따운 한 여성 팬이 코스모스를 한 아름 나훈아에게 안겨주었다. ‘고향역’이 전 국민가요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고향역’은 현재 이 노래의 배경이 된 익산역에서 매시간 정각과 30분에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울러 익산역이 재건축, 완공되는 2013년에 노래비 또한 역사에 세워질 예정이다. 당시 꽃다발을 안겨주었던 여성은 임현숙씨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무궁화인기가요’의 AD였던 김성일(61, 현 Garnet 대표)씨와 눈이 맞아 백년가약을 맺는다. 나훈아의 결단은 결과적으로 모두 ‘해피 앤딩’으로 마무리 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를 걸었던 당시 나훈아에게 정작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무렵 나훈아는 한 언론매체를 통해 은퇴의사를 밝힌다. 은퇴기념음반까지 이미 취입을 마쳤다고 이 주간매체는 전하고 있었다. 가요계는 물론 팬들까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