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은 자연에 있는 풀과 꽃, 나무, 뿌리와 껍질, 냇물과 지하수, 조개껍질과 잿물 등을 이용하여 자연스러운 신비한 빛깔을 만들어 내었다. 그렇게 만들어내는 천연염료는 방충성, 항균성, 방습성을 가지면서도 염색 공정과정에서 수질오염 등의 환경문제를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 지금도 밤새도록 염색하는 꿈만 꾼다는 박순분 대표

천연염색은 자연에서 얻어지는 색상이므로 자연스럽고 기품 있는 색상이 마치 자연을 바라보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색감이므로 눈을 피곤하게 하지도 않고 사람의 정서를 안정시켜 준다. 최근 웰빙과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천연염색이 각광을 받고 있다. 물푸레 염색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물푸레공방의 박순분 대표를 만났다.

순수한, 거짓 없는 염색을 하다
“오십대 중반이 넘도록 이룬 것은 없으나 물푸레와 친구를 하면서 십년이 넘게 어떻게 지나간 지도 모르게 세월을 보낸 것 같아요. 그 세월동안 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도움을 주기보다는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인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어요.” 박순분 대표는 삼십년 전 어느 월간지에서 전라도에 사는 한 할아버지가 황토를 재현한 색을 보고 우연히 매력을 느껴 황토여행을 시작하면서 염색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공직에서 물러나 황토를 친구하며 물푸레나무를 접하게 된 박 대표는 물푸레가 숯 염색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이 재현된다는 것을 느끼며 물푸레의 숯 염색에 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지인들로부터 염색을 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서 취미삼아 하게 된 것이 사업으로 이어져 순수한 거짓 없는 염색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물푸레공방의 문을 열었다. “세월은 자연히 지나가지만 자연에서 나오는 색은 거짓이 없고 진솔하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도 배우기도 합니다. 자연은 학문이 아니라 따뜻한 손길이며 솔직한 거짓 없는 순수한 마음이예요.” 이후 박 대표는 대구의 자연염색 박물관장인 김지희 씨를 만나 종합예술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작가로서의 이름을 올리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국제자연염색 심포지움, 인도 국제 자연염색 심포지움, 홍콩 패션위크 참가, 대구 패션페어 참가 등 크고 작은 전시회를 통해 예술에 눈뜨게 된 그는 “이제야 예술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고 자연 염색가가 가져야 될 기본 조건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어요”라고 한다. 물푸레 염색을 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영원한 동반자’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고 ‘자연을 아끼고 다듬고 사랑하는 마음과 인간을 사랑해야지’ 하는 새로운 마음을 다지기도 한다. 염색은 엄청나게 힘든 분야다. ‘박순분’이라는 이름 석 자보다도 ‘물푸레’라는 이름 석 자를 더 중요시하고 물푸레가 자신의 얼굴이라는 생각으로 염색을 하다 보면 조금의 실수라도 용납이 될 수 없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거나 꾀를 피우면 색이 엉뚱하게 나오면서 몇 날을 두고두고 무거운 마음으로 기분이 우울해지죠. 하지만 염색을 할 때 그 색에 몰두하며 아름다운 색이 나올 때마다 혼자서 ‘아’ 하고 감탄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꼬박 날 세우며 일을 할 때면 그날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한 색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맛에 염색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은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 박 대표는 대구의 자연염색 박물관장인 김지희 씨를 만나 종합예술로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자연염색관과 체험관 세우는 것이 소망
박순분 대표에게는 올해로 서른 살인 아들 강재혁 씨가 있다. 올해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후원 국제 자연염색 심포지움에서 강재혁 씨는 대금 연주로, 박 대표는 자연염색으로 함께 참석할 계획이다.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은 많았지만 자연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배우며 남을 위해서 베풀며 살아가고 싶어요. 제가 조금 더 경제적으로 넉넉해진다면 무료로 기술을 전수해주고 경제적인 도움도 주고 싶어요. 부자에겐 물 한 모금이 감사하지 않지만 가난한 자에겐 물 한 모금이 천 냥보다 더 큰 고마움을 느끼게 만들며 오래 기억에 남게 되죠. 지금의 우리 사회는 있는 사람에게 기회를 더 주고 더 큰 혜택도 주어지며 영세한 사람에게는 관심조차 없어요. 세상은 나보다 낮은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도움을 주어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평생의 지론입니다.” 박 대표의 취미 중 하나인 골동품과 민속품 모으기는 그에게 있어 커다란 즐거움이다. 여행을 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헐값에 사기도 하고 마음 좋은 이를 만나면 하나씩 얻기도 한 것이 이제는 광으로 한 가득이다. 박 대표는 작은 폐교를 하나 얻어서 자연 염색관과 체험관을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민속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어 무료 개방하여 눈을 즐겁게 하고 모래 한 수레를 부어서 작은 무대를 만들어 한 번씩 아들인 강재혁 씨가 내려와 연주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귀를 즐겁게 하는 장소를 만드는 것이 소박한 꿈이라고. “오방색과 오간 색을 넘나들며 무명과 인견, 그리고 실크, 면 등의 천에 황토와 숯 염, 그리고 먹 염과 감물이 햇빛에 발색하는 자연의 섭리를 볼 때 자연의 위대함 속에 작은 나의 인간의 왜소함에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 올해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유네스코 후원 국제 자연염색 심포지움에서 강재혁 씨는 대금 연주로, 박 대표는 자연염색으로 함께 참석할 계획이다

 매서운 겨울 한가운데서도 따사로운 봄 햇살 속에서도 내리쬐는 여름 한가운데의 폭염 속에서 서늘한 가을의 만추 속에서의 갖가지 색의 어우름에 한낱 인간은 사계의 변화에 감사를 느끼며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맘을 가지기를 기원합니다.” 지금도 밤새도록 염색하는 꿈만 꾼다는 박순분 대표. 그의 마음을 닮은 아름다운 물푸레 염색 작품이 전 세계를 물들게 할 그날이 기대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