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만 작가의 작품은 단지 현실의 이야기를 회화로 재현한 것이 아니다. 실제 미국에서 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과 유럽 강국이 만들어 낸 국제사회의 다양한 쟁점들을 현대미술로 풀어 낸 ‘현대 서사화’ 내지는 ‘현대 역사화’이다. 자본과 패권으로 얼룩진 세계의 아픔과 어둠, 그 이면에서 무명처럼 살아가는 존재들은 단순히 세계에 대한 감정 표출이나 존재의 나약함을 나타낸 것이 아닌, “인간의 본질로 향하는 가치 회귀”이자, “세계의 아픔을 치유해 나가는 정신성 회복”에의 열망이다.

신선영 기자 ssy@

자본 그리기

▲ 추상표현주의 작가군인 잭슨폴록, 바넷뉴먼, 마크 로스코가 수학한 뉴욕 미술학생연맹(Art Student League of New York)과 홍익대학원을 졸업한 고성만 작가. 미국에서 아트 디렉터와 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한국과 중국, 러시아, 미국 등 국내외 그룹전과 개인전을 가지며 존재와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12년, 고성만 작가의 개인전「100 US$ Fantasia(백 달러 환상곡)」이 열렸다. 국내에서 열린 첫 개인전인 만큼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을 작품에 담아냈다. 전시는 주로 오리지널 힙합과 그라피티와 같이 저항문화를 내세운 작품들로 구성됐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미국 달러에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당 다스베이더,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고가인 다이아몬드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차용해서 자본주의의 신화를 작가만의 관점으로 풀어냈다.

작가는 “영국, 프랑스처럼 근대제국이 되어봤거나 미국처럼 세계 경제를 주도해본 국가들은 사람들을 세련되게 통치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며 “국기를 문화 콘텐츠로 활용해서 우월함과 패권주의를 드러내거나, 할리우드 영화, 맥도날드, 코카콜라와 같이 단순하고 달콤한 상품들을 내세워 시장을 장악하고, 투자와 금융으로 경제력을 지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프랑스, 영국 국기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화이트, 레드, 블루에 대해서도 “가장 자극적이고 파워풀한 색”이라며 “결국은 강대국의 상징을 와인이나 초콜릿 등 세련된 효과로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음식까지 아우르며 제국으로 변모한 국가들에 대한 은유적 표현이다.

그래서 작품 <100 US$ Fantasia>에는 자본의 핵심부가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미지들은 우리나라도 글로벌 사회에서 분리될 수 없음을 일깨우는 동시에, 글로벌 사회의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당연한 권력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나타내고 있다.

자본 판타지-현대의 서사
작가는 “‘달러’는 미국 기준금리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줄 세우는 도구이자, 언제든지 그들의 오작동으로 터질 수 있는 예측불가의 미필적 복병이자 지뢰”라며 “‘아메리칸 드림’과 수백 년간 이어지고 있는 ‘서구 제국의 세계 식민화’처럼 인종주의와 선교 등을 목적으로 내세운 정책들도 서구화를 뒤쫓게 하는 피지배국민의 ‘정신성의 혼돈’을 담보로 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뉴욕 현장에서 9.11 테러를 직접 목격한 작가는 “중심이 부재된 정신성의 혼돈은 모호함으로 이어진다”며 “9.11 테러 이후 소방차의 요란한 소음과 함께 경찰의 폴리스 라인이 길거리 어디서나 흔해졌다. FOX TV와 같은 매스미디어도 애국 포플리즘의 상징인 성조기와 전투기를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선전하거나, 달러에 대한 은유와 환상이 가득한 드라마와 영화를 연일 방영했다”고 말했다.

▲ 작품 <100 US$ Fantasia>. 부와 권력의 상징인 미국 달러에 조지 부시, 버락 오바마, 스타워즈에 나오는 악당 다스베이더,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고가인 다이아몬드 해골 ‘신의 사랑을 위하여’를 차용해서 자본주의의 신화를 작가만의 관점으로 풀어냈다.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의 작전명도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g)’였다. 하지만 이라크의 원유 확보, 친미 블록 구축, 미국의 경기 회복을 위한 돌파구 등을 목적으로 한 침략 전쟁이라는 게 국제사회의 공통된 의견이다. 위험 상황이 아닌, 위험이 없거나 위험이 증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인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탈레반부터 IS까지, 이름만 바뀐 중동과 팔레스타인의 인지적 모호함도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처럼 현상이 사물을 통제하는 현상”이라며 “이라크 전쟁을 시발점으로 IS가 격화됐지만 그 내막은 근대 식민통치과정에서 이슬람권을 차별하고 간섭해온 서구와 인종주의, 종교와 오일 헤게모니에서 비롯된 패권주의다. 결국 최악의 난민사태까지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 작품 <100 US$ Fantasia No1117>. 서구 자본의 상징인 맥도날드, 코브라 같은 형태의 아랍어와 히브리어, 얽히고설킨 전쟁의 역사 속에서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간의 형상을 에어브러시와 그라피티 기법을 차용해서 나타냈다. 회화적 현시 상황이다. 여기에 무함마드가 최초 계시를 받을 때 떠있던 초승달과 유대의 별을 그려서 종교와 인간의 통합과 공존공영의 가치를 더했다.

유다의 별과 초승달
이슬람권과 서구의 역사는 거의 1,400년을 거슬러 가야 한다. 1,000년간 유럽을 지배했던 이슬람이지만,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벌에서 역전되면서 200여 년간 서구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지금의 개별 국가로 나뉘었다.

이렇게 이슬람은 서구를 지배했던 역사, 서구의 지배를 받으면서 원료 수탈과 노동력 착취를 당했던 역사, 서구에 의해 개별 국가로 나뉜 뒤에도 협력 관계를 유지해야 했던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지금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팔레스타인·시리아 내전을 둘러싼 테러와 전쟁의 역사로 쓰이며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 작품 〈HOMING INSTINCT No1232〉 작가는 “매스미디어에서 종교와 테러를 부각할수록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서로 무력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대결구도를 협력구도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휴전 분단국인 조국의 현실을 먼 타지에서 바라봐야 했던 재외국민의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말이다. 작가는 자유, 평화, 박애의 전쟁 없는 민주적인 지구촌 건설을 꿈이 아닌, 예술적 목표로 삼고 이 시대의 아픔을 읽어내고 있다.

작가는 작품 <100 US$ Fantasia No1117>를 통해 서구 자본의 상징인 맥도날드, 코브라 같은 형태의 아랍어와 히브리어, 얽히고설킨 전쟁의 역사 속에서 제대로 서있지 못하고 부유하는 인간의 형상을 에어브러시와 그라피티 기법을 차용해서 나타냈다. 회화적 현시 상황이다. 여기에 무함마드가 최초 계시를 받을 때 떠있던 초승달과 유대의 별을 그려서 종교와 인간의 통합과 공존공영의 가치를 더했다.

작가는 “매스미디어에서 종교와 테러를 부각할수록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서로 무력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대결구도를 협력구도로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휴전 분단국인 조국의 현실을 먼 타지에서 바라봐야 했던 재외국민의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말이다. 작가는 자유, 평화, 박애의 전쟁 없는 민주적인 지구촌 건설을 꿈이 아닌, 예술적 목표로 삼고 이 시대의 아픔을 읽어내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