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시내트라 탄생 100주년
프랭크 시내트라(1915~1998)는 20세기 중반 로큰롤이 등장하기 전까지 ‘스탠더드 팝’이라는 발라드로 일세를 풍미한 20세기 최고 스타 중 한 명이었다. 시내트라는 지금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5년 12월 12일 미국 뉴저지주 호보컨의 이탈리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5세에 라디오 프로그램 노래 경연대회에서 1등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지방순회 밴드의 아마추어 계약 가수로 연예계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대부분은 운전사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고된 신인 시절을 보냈다.

▲ 프랭크 시내트라

시내트라가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해리 제임스 밴드의 싱어로 발탁된 1939년 6월이었다. 그해 7월 ‘프롬 더 바텀 오브 마이 하트(From the Bottom of My Heart)’ 등 10곡을 발표하고 8월에는 마이너 싱글 앨범 ‘올 오어 낫싱 앳 올(All or Nothing at All)’을 발표했으나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그는 1940년 1월 당대 최고의 인기 밴드 가운데 하나인 토미 도로시 밴드에 스카우트되어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창법으로 인기 폭을 넓혀나갔다.
1941년 5월에는 ‘빌보드’와 ‘다운 비트’지의 인기투표에서 자신의 오랜 우상이자 줄곧 이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빙 크로스비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남성 가수 인기 부문의 톱에 랭크될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했다. 1942년 9월 솔로로 독립하고 1943년 컬럼비아와 계약을 맺어 스타덤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렵 음악가 노조가 파업을 일으켜 시내트라와 컬럼비아는 새로운 노래를 녹음하지 못했다. 대신 그들이 선택한 것은 1939년 발표했으나 별로 호평을 받지 못한 스탠더드 팝 스타일의 ‘All or Nothing at All’의 재발매였다. 노래는 대히트를 쳤다. 무려 18주 동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고 1943년 6월에는 판매량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시내트라는 달콤하고 낭만적인 목소리, 전형적인 백인 스타 외모, 개인적 농담을 서슴지 않는 즉흥적 무대 매너로 10대 소녀 팬들을 매혹시켰다. 1944년 10월의 ‘콜럼버스 데이’ 공연 때는 뉴욕 패러마운트 극장으로 몰려든 2만 5,000여 명의 소녀 팬들이 고함을 지르고 흥분하다 졸도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환호하고 아우성치다 졸도하는 이른바 ‘팝 히스테리’ 현상이 세계 공연 사상 처음 일어난 것이다.

‘팝 히스테리’ 현상 세계 공연 사상 처음 일어나

이처럼 1940년대 중후반은 시내트라의 시대였다. 그러나 1950년대 초에 등장한 로큰롤은 그의 인기를 시들하게 만들었다. 10대들은 스윙과 스탠더드 팝을 버리고 젊은 피가 수혈된 로큰롤로 몰려들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그에게서 미국 대중문화 최고의 스타 자리를 빼앗아갔다. 시내트라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1949년 마피아와 공산당 문제로 비미행위조사위에서 조사를 받아 집중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 후 소속 에이전시로부터 해고 통지가 날아들고 출연이 예정되어 있던 라디오쇼는 취소되었다. MGM사와도 영화 계약이 파기되었다.
고통의 세월을 보내던 그에게 구원의 동아줄이 던져진 것은 1953년이었다.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출연해 1954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아 화려하게 재기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후에도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1955), ‘상류사회’(1956) 등 다수 영화에 출연, 다시 최고 연예인으로 복귀했다. 그가 출연한 영화는 60여 편에 달했다.
가수로도 1960년대 말까지 활동하며 50대의 나이에도 식지 않는 인기를 이어갔다. 특히 1969년 발표한 ‘마이 웨이’는 원곡이 프랑스 샹송이었으나 1968년 가수 겸 작곡가 폴 앵카가 편곡을 하고 시내트라의 자전적 내용이 가사로 만들어져 시내트라를 세계적인 가수로 만들어 주었다.
1975년에는 자전적 영화 ‘마이 웨이’에 출연,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1980년 싱글 차트 32위까지 오른 ‘뉴욕 뉴욕’을 발표했다. 1993년에는 78세 나이로 라이자 미넬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홀리오 이글레시아스 등 후배 음악인들과 함께 '듀엣'이라는 제목의 앨범을 내 노익장을 과시했다. ‘듀엣’은 1993년 11월 빌보드200 앨범 차트 2위에 진입하고 더블 플래티넘을 획득했으며 그래미상에 뽑혔다.
하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어 1994년 공연 중 폐렴과 심장 질환으로 쓰러져 1998년 5월 14일 사망했다. 시내트라는 생전에 FBI의 감시를 받았다. 시내트라가 범죄 조직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고 믿은 FBI는 집과 호텔방 등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밝혀진, 시내트라가 마피아와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는 내용들은 FBI 파일로 기록되어 시내트라 사후 1998년 12월 공개되었다.

■심산 김창숙
2004년 언론인 리영희를 끝으로 10여년 간 시상이 중단됐던 ‘심산상’이 11월 13일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에게 수여됐다. 심산김창숙연구회는 “김중배 선생은 1980년대 동아일보 ‘김중배 칼럼’을 통해 독재 정권에 맞서 부당성을 용감하게 비판하는 등 언론인으로서 소명을 다했다”며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심산상은 독립유공자이자 성균관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고 심산 김창숙 선생을 기리는 상이다. 김창숙 선생은 한용운, 신채호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삼절’로 꼽히는 민족운동가다. <미디어오늘 2015년 11월 13일>

김창숙(1879~1962)은 흔히 “칼을 든 선비”, “조선의 기개를 지킨 마지막 선비”로 불린다. 시 쓰는 것을 좋아해 평생 270여 수의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는 격렬하게 항일 독립 투쟁을 벌이고 해방 후에는 치열하게 반독재 민족 통일운동을 벌인 행동하는 유학자였다.
그는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하던 중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5년 대궐 앞에서 을사5적의 목을 벨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고 1907년 국채보상운동 때는 담배끊기 운동 등을 벌이며 국채보상기금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구국 운동의 지름길은 청년운동에 있다는 신념에 따라 1909년 성주에 성명학교를 설립, 청년들에게 신교육을 가르쳤으며 1909년 일진회 등이 한일합방론을 주장할 때는 이를 반대하는 성토문을 중추원에 제출하고 신문지상에 발표했다.
1919년의 3?1 운동은 김창숙 생애의 일대 전환점이 되었다. 3?1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 민족대표 33인에 천도교, 기독교, 불교 대표만 있고 유림 대표가 없는 것을 치욕으로 여겨 영남 유림의 영수인 곽종석, 호서 유림의 지도자 김복한 등과 함께 전국의 유림 137명의 연명으로 독립을 청원하는 ‘파리장서’ 작성을 주도했다. 2,674자의 한문체로 된 이 독립청원서는 “조선은 오랜 역사를 지닌 문명의 나라로 스스로 정치할 능력이 있으므로 일본의 간섭은 배제되어야 한다. 일본의 포악무도한 통치를 참을 수 없어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의 처지를 만국에 알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창숙은 ‘파리장서’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는 대표로 선출되어 파리장서를 짚신으로 엮어 1919년 3월 27일 상해에 도착했으나 이미 김규식이 대표로 파리에 파견된 것을 알고 영문으로 번역?인쇄해 그중 일부는 파리의 김규식에게 우편으로 송부하고 나머지는 중국 내 각국 외교관, 중국의 정계 요인, 국내 각 학교에 배포했다.
얼마 후 파리장서의 존재가 알려지자 일제는 관련 유학자들을 구금하거나 투옥했다. 파리장서 작성에 관여한 곽종석은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병보석으로 풀려났다가 1919년 10월 눈을 감았고 김복한은 100여 일 동안 구금되었다. 다른 관련자들도 끌려가 각종 고문을 당했다. 이 사건을 한국 독립운동사에서는 ‘제1차 유림단 사건’이라 부른다. 김창숙의 활약과 유림의 수난이 있었기에 한국의 유림은 역사 앞에 고개를 들 수 있게 되었다.

조선의 기개를 지킨 마지막 선비

▲ 심산 김창숙

김창숙은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도 참여해 경상북도 의원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데 공헌했다. 임시정부 활동이 침체기에 접어든 1924년 이회영 등을 만나 만주 동삼성 일대에 재만 한인 동포들의 집단 거주지를 조성해 산업을 육성하고 청장년을 훈련시켜 독립군으로 양성한 뒤 국내로 진공하는 독립전쟁 방략을 구상했다.
김창숙은 먼저 중국의 군벌 풍옥상이 관할하고 있던 만·몽 접경지의 황무지 3만 정보의 사용 허가를 얻었다. 뒤이어 한인들을 이주시키고 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데 사용할 개간자금 마련을 위해 1925년 8월 6년 만에 국내로 잠입했다. 이후 8개월 동안 전국의 유림들로부터 비밀리에 군자금을 모금했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해 1926년 3월 상해로 돌아갔다. 일경은 그의 잠입 사실을 뒤늦게 알고 40~50명을 검거하는 ‘2차 유림단 사건’을 일으켰다.
김창숙은 침체된 국내외 독립운동을 진작하기 위해 김구, 이동녕 등을 만나 “청년 결사들에게 무기를 주어 국내에서 왜정 기관을 파괴하고 친일 부호를 박멸해 국민의 의기를 고취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때 김구가 추천한 인물이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후 자결한 나석주 의사다. 김창숙은 1926년 5월 중국 천진에서 나석주를 만나 폭탄과 권총을 전해 주면서 거사를 제안했다.
1926년 임시의정원 부의장에 선임되었으나 악화된 치질을 치료하기 위해 1926년 12월 상해 내 영국인 병원에서 세 차례 수술과 치료를 받던 중 이 사실을 탐지한 일경에게 1927년 6월 14일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된 그에게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다. “나는 대한 사람으로 일본 법률을 부인한다”며 변호사의 변론을 거부하고 본적을 묻는 질문에는 “없다”고 대답하는 등 재판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시종일관 강개한 자세를 흩뜨리지 않았다.
1928년 12월 징역 14년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를 거부해 대전형무소에서 옥중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일경의 고문과 장기간의 수형 생활로 다리를 못 쓰게 되고 병이 위중해 7년 만인 1934년 9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앉은뱅이 노인’이란 뜻의 자칭 별호 ‘벽옹(?翁)’은 이때 생겨난 말이다.
김창숙의 고난은 아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장남 환기는 병이 깊어 국내에 잠입했다가 체포되어 1926년 12월 모진 고문 끝에 18세의 젊은 나이로 숨졌다. 차남 찬기는 항일 시위로 7년간 옥살이를 하다가 결핵으로 풀려난 후 1943년 겨울 아버지의 지시를 받고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중경으로 갔다가 해방 직후 그곳에서 병사했다.

유학의 근대적 발전과 후진 양성에 이바지해

1945년 8월 7일 건국동맹 사건에 연루되어 갇혀 있던 왜관경찰서에서 맞은 해방은 그에게는 또 다른 수난과 투쟁의 시작이었다. 해방 공간에서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좌익 지도자들에게는 “나라를 팔아먹는다”고 꾸짖었고 남한 단독선거 추진에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하며 김구?김규식 등의 남북협상을 지지했다. 정치적으로 바쁜 와중에도 1946년 전국 유림을 결속한 유도회 총본부를 조직해 위원장으로 선임되고 1946년 9월 25일 재건한 성균관대의 초대 학장으로 부임했다. 1953년 2월 성균관대가 종합대로 승격되었을 때도 초대 총장으로 추대되어 유학의 근대적 발전과 후진 양성에 이바지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에 거듭 경고문을 발표했다. 1951년 피란수도 부산에서 ‘이 대통령 하야 경고문’을 발표했다가 수감되고 1952년 부산 정치파동 때는 초대 부통령 이시영 등과 함께 ‘반독재 호헌 구국선언’을 하려다가 괴청년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고 또다시 투옥되었다. 1956년 신익희의 급서로 이승만이 당선되었을 때도 재선거를 요구하는 선언문을 발표하는 등 반이승만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런 김창숙에게 정치 보복이 없을 리 없었다. 김창숙 총장이 있는 한 신입생 모집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교육부의 압력에 밀려 1956년 2월 총장직에서 물러나고 이듬해에는 성균관장, 유도회 총본부장 등 일체의 공직에서도 추방되었다.
1960년 4?19 혁명 후 민의원?참의원 양원 합동회의에서 윤보선이 208표로 대통령에 당선될 때, 그는 출마의 뜻을 밝히지 않았는데도 차점인 29표를 얻었다. 4?19 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대표로 추대되어 통일운동에 나섰으나 1961년 5?16 쿠데타를 계기로 좌절을 맛보고 1962년 5월 10일 집 한 칸 없이 83세로 숨졌다.

■극동국제군사재판
일본 언론에 따르면 집권 자민당은 올해 창당 60주년을 맞아 이달에 청일전쟁, 러일전쟁 이후의 역사 검증을 담당할 조직을 신설한다. 검증 조직은 가칭 ‘전쟁 및 역사 인식 검증위원회’이다. 당 총재인 아베 신조 총리 직속기관으로 설치한다고 자민당 간부가 밝혔다. 검증 조직이 정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그동안 금기시돼 왔던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의 타당성이다. 이 재판에서 미국이 이끄는 연합국은 도조 히데키 전 일본 총리 등 7명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로 만주국 고관을 지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도 전범으로 기소됐다 풀려났다. 일본은 도쿄재판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국제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 2015년 11월 13일>

46만 명의 미군을 이끌고 일본에 진주한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에게 부여된 임무는 크게 2가지였다. 최단시간 내에 봉건적 천황제를 미국식 정치체제로 바꾸고 태평양전쟁의 전범들을 신속하게 재판대에 올리는 것이었다.
맥아더가 전범 용의자를 체포하도록 명령한 것은 1945년 9월 11일이었다. 이후 2~3개월 사이에 100여 명의 전범 용의자가 체포되었다. 가장 먼저 체포된 인물은 1941년 진주만 공격을 명령한 도조 히데키 전 총리였다. 총리를 3번이나 지낸 고노에 후미마로는 자신이 전범 혐의로 조사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그해 12월 자살했다. 그러나 100여 명의 전범 용의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 석방되고 28명만 기소되었다.
전범을 처단하기 위한 전범 재판소의 설치 근거는 ‘연합국 포로를 학대한 자를 포함하는 모든 전쟁범죄자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내린다’는 포츠담 선언 제10조였다. 재판을 담당할 판?검사는 미국, 영국, 중국, 소련, 프랑스, 네덜란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필리핀 등 11개국에서 파견된 11명으로 각각 구성되었다. 호주의 고등법원장을 지낸 윌리엄 웹이 재판장을 맡고 미국의 조지프 키넌이 수석 검사로 활동했다.
일명 ‘도쿄 재판’으로 불린 ‘극동국제군사재판’이 도쿄의 전 대본영 대강당에서 개정된 것은 1946년 5월 3일이었다. 전범들은 크게 ‘반평화 범죄’, ‘통상의 전쟁범죄’, ‘반인도 범죄’ 등 3가지로 분류되었다. 전범 기간은 1928년부터 태평양전쟁이 끝난 1945년까지로 제한했다.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재판 진행

문제는 대표적 전범인 히로히토 천황을 기소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종전 후 일본을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아시아의 방패’로 활용하기 위해 히로히토에게 전쟁 책임을 묻지 않으려는 미 정부의 계산 때문이었다. 미 정부의 이런 생각과 달리 당시 미국의 여론은 70% 이상의 국민이 어떤 형태로든 천황의 처벌을 찬성했다. 1945년 6월 실시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처형 33%, 재판에서 결정 17%, 종신형 11%, 추방 9% 등으로 나타날 만큼 천황에 대해 거부감이 컸다. 재판에 참여한 일부 국가도 천황의 퇴위와 기소를 요구했다.
그러나 재판은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맥아더는 히로히토의 처벌을 막는 수호신 역을 자처했고, 키넌 검사는 재판 도중 히로히토의 관련성이 부각될 때마다 질문을 생략하거나 히로히토의 면책을 위해 전범들의 증언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미 정부의 뜻에 따랐다.
도쿄 재판에 대표단을 보낸 나머지 10개 나라는 미국의 이런 태도에 반발했다. 10개국에서 파견된 검사들은 독일 전범을 심판하는 뉘른베르크 재판에 미국·소련·영국·프랑스가 동등한 권리로 참여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모든 재판은 맥아더의 완강한 태도에 가로막혀 끝까지 미국 주도로 진행되었다.
도조 히데키가 1947년 12월 무심코 “일본의 신민이 폐하의 의사에 반하여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하물며 일본의 고관이라면 더욱 그렇다”라며 군부가 천황의 뜻에 따라 침략전쟁에 나선 것을 인정했을 때도 키넌은 다른 전범자들을 시켜 도조가 증언을 철회하도록 설득했다. 결국 도조는 이듬해 1월 “천황이 군부의 진언에 마지못해 동의함으로써 개전에 이르렀다”고 증언을 번복했다.

▲ 극동국제군사재판

히로히토 천황 기소하지 않아 ‘실패한 재판’

재판은 2년 6개월간 818차례 열렸다. 연 2만 명의 방청객이 지켜보았고 이등병에서부터 과거 만주국의 황제 부의까지 모두 4,000여 명의 증인이 법정에 섰다. 히로히토는 단 한 번도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은 1948년 11월 12일 웹 재판장의 선고 후 종결되었다.
웹 재판장은 28명 중 7명의 전범에게 교수형 판결을 내리고 16명에게는 종신형, 2명에게는 각각 20년과 7년의 유기징역을 선고했다. 2명이 재판 도중 사망하고, 1명이 정신착란을 일으켜 실제 실형 선고를 받은 전범은 25명이었다. 28명의 전범 말고도 또 다른 전범들은 일본의 요코하마나 실제 전쟁터였던 해당 국가에서 재판을 받아 984명이 사형, 475명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오늘날 도쿄 재판은 ‘실패한 재판’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최고 통수권자로 전쟁을 이끈 히로히토를 법정에 세우지 않아 오히려 히로히토에게 면죄부만 쥐어준 꼴이 되었다는 게 첫째 이유였다. 일본이 아시아 각국 국민에게 가한 잔혹한 학살 행위에 대한 형사적 책임조차 묻지 않은 것도,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은 731부대의 책임자 이시이 시로가 미국의 국익을 위해 재판 개시 직전 석방된 것도 비판을 받았다. 이는 뉘른베르크 재판이 나치당과 게슈타포 등을 범죄집단으로 낙인찍고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전범들을 처벌한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죄악상이 추궁되지 않은 채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고 말아

7명의 전범은 1948년 12월 23일 새벽 도쿄 스가모 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도조 히데키를 비롯해 히로타 고키(총리), 도이하라 겐지(봉천 특무기관장), 이타가키 세이시로(관동군 참모), 기무라 헤이타로(육군 참모차장), 마쓰이 이와네(상해파견군 사령관), 무토 아키라(제14방면군 참모장) 등이 단죄된 7명의 이름이다.
억울한 죽음이라며 30만 명이 탄원한 히로타 고키를 제외하고 6명의 육군 출신 전원은 천황에 대한 마지막 존경의 뜻으로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죽었다. 자살이 실패로 끝나 결국 교수대에 오른 도조 히데키는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유언시를 남겼다.
전쟁과 식민과 점령의 가혹한 정책에 관여했던 수많은 책임자들은 재판을 통해 대부분 면죄부를 받고 전후 일본 건설의 주역으로 다시 등장했다. 결국 그들의 죄악상이 추궁되지 않은 채 역사의 장으로 넘어가고 만 것이다. 히로히토는 냉전시대의 전략적 가치를 우선한 미국의 배려로 ‘신’에서 ‘인간’으로 격하되어 패전 뒤에도 44년 동안 천수를 누렸다.
뉘른베르크 재판과 도쿄 재판의 가장 큰 차이는 재판 이후 두 국가의 역사 청산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독일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낱낱이 드러난 나치의 반인도 범죄는 그 자체로 독일 국민에 대한 교육적 역할을 했다. 특히 독일은 뉘른베르크 재판 정신을 잇기 위한 후속 조치로 특별법을 제정하고, 반인도 범죄 처단을 국내 형법 규정으로 계승했다. 독일이 지금도 국내에서 전범 처벌 재판을 계속할 수 있는 근거다.
하지만 도쿄 재판에서는 일본의 침략 행위가 주된 단죄 대상이 되다 보니 이후 개인의 잔혹 행위보다는 인간을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가는 전쟁의 광기를 탓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도쿄 재판 후 후속 법제정 등의 노력을 소홀히 한 것도, 사면된 전범들이 복귀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