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섭 작가에게 ‘소’는 현대인의 페르소나이다. 생존 경쟁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네 아버지이자 소유의 욕망을 가진 현대인의 표상이다. 때로는 풍자적이고 정치적인 상황을 예리하고도 유머러스하게 담아 그 치열한 삶의 현장을 드러내고 있다.

신선영 기자 ssy@

아버지의 초상
박민섭 작가의 주요 소재는 ‘소’이다. 소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회화인 동굴벽화에 그려질 만큼 생존과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농경 사회였던 우리에게 터전을 일구어 준 노동력의 핵심이자, 죽을 때까지 먹을 것을 제공해준 가축이다.

작가는 “주인에게 한 평생을 헌신하는 소의 모습에서 우리네 가장의 모습을 봤다. 가족 부양을 위해 사회 경쟁에서 끝까지 버티고, 생존을 위해 투쟁도 불사는 모습이 그렇다”고 작품 배경을 설명했다.

▲ <공空> 작가는 가장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내기 보다는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동세의 섬세한 포착과 적절한 과장으로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작가는 가장의 애환을 그대로 드러내기 보다는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동세의 섬세한 포착과 적절한 과장으로 해학적이고 풍자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말춤을 출 때 뒤로 어정쩡하게 빠진 엉덩이(피에로),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표정(옥상), 기타를 연주하며 노동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모습(연가) 등 독특한 연출과 자연스러운 몸체 표현으로 웃음 짓게 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비수와 같다. 웃음에 내포된 시대의 아픔과 고독, 그리고 삶의 애환이 더 도드라진다. 그래서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나와 나의 아버지, 친구, 동료, 이웃 등 그들의 인생이 투사된 작품”이라며 “인생 문제로 고민하고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을 다독이고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그의 작품을 결코 타자의 시선으로 볼 수 없는 이유이다.

▲ <맞짱>은 재료에서부터 의미와 내용이 시작된다. 작가는 “금속에 맞설 수 있는 건 백년 이상 된 대들보밖에 없다. 헐은 한옥에서 나온 대들보를 거의 가공하지 않고 원래의 형태와 홈, 꺾쇠까지 최대한 살려서 얼개를 맞췄다”고 설명했다. 금속 표현의 매끈하고 차가운 질감과 대치되는 목재의 거칠고 투박한 질감, 그 강인함이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맞짱
박민섭 작품의 백미를 꼽으라면 단연 <맞짱>이다. 전작에 비해 소의 형태를 매우 상징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나타낸 작품으로써 미학적으로 느끼기도 전에 메타포가 강하게 들어오는 수작이다.

<맞짱>은 재료에서부터 의미와 내용이 시작된다. 작가는 “금속에 맞설 수 있는 건 백년 이상 된 대들보밖에 없다. 헐은 한옥에서 나온 대들보를 거의 가공하지 않고 원래의 형태와 홈, 꺾쇠까지 최대한 살려서 얼개를 맞췄다”고 설명했다. 금속 표현의 매끈하고 차가운 질감과 대치되는 목재의 거칠고 투박한 질감, 그 강인함이 집약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팽팽한 긴장감은 정치적 상황의 은유라고 봐도 무방하다. 작가는 “<맞짱>은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여러 가지 갈등과 충돌을 대치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충돌을 통해 사회가 발전됐고 변혁을 이뤄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로 사회를 변혁할 수는 없지만 변화를 꿈꾸고 도모할 수 있다. 팽팽하게 맞선 두 소처럼 침묵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시대의 정신을 깨우고 변혁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 <소똥을 굴리는 방법 하나, 둘, 셋> 작가는 “쇠똥구리가 굴리고 있는 분비물은 인간의 욕망”이라며 “권력과 소유욕, 물욕 등을 망라하는 욕망기제들이다. 필요 이상으로 끊임없이 굴리면서 사는 모습을 작품에 대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거대한 분비물에 짓눌려 있기도 하고, 그것에 의지해서 서 있기도 하다.

쇠똥구리
지난 10월 서울인사아트센터에서 여덟 번째 개인전 <쇠똥구리>가 열렸다. 우선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소가 소똥을 굴리거나(소똥을 굴리는 방법 하나, 둘, 셋), 소똥을 들고 위태롭게 서있는 모습(공空)이다.

작가는 “쇠똥구리가 굴리고 있는 분비물은 인간의 욕망”이라며 “권력과 소유욕, 물욕 등을 망라하는 욕망기제들이다. 필요 이상으로 끊임없이 굴리면서 사는 모습을 작품에 대입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거대한 분비물에 짓눌려 있기도 하고, 그것에 의지해서 서 있기도 하다.

▲ 박민섭 작가는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작품으로 우리를 웃음 짓게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하면서 시대적 위로와 시대적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대중 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Roman Krznaric)의 말을 빌리자면 뛰어난 ‘공감적 상상력’을 지닌 작가이다.

작가는 인간의 잠재된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 아픔을 겉으로 돌출했다. 채찍과 같은 상흔을 입히거나 장기를 드러냈다. 웃음과 해학으로 표현하던 것에 비해 굉장히 직설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작가가 작업 성향을 바꿨다기보다는 작품을 보는 이들을 예리하게 자각시키기 위함이다. 이야기에 따라서 논조만 달리 했을 뿐이다.

작가는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작품으로 우리를 웃음 짓게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고 가슴을 먹먹하게 하면서 시대적 위로와 시대적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대중 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Roman Krznaric)의 말을 빌리자면 뛰어난 ‘공감적 상상력’을 지닌 작가이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역설적으로, 때로는 풍자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서 앞으로도 시대적 공감을 이루기를 기대해 본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