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2.3 금 15:25 전체기사 l 기사쓰기 l 자유게시판 l 기사제보 l 구독신청 l 광고안내 l 회사소개
> 뉴스 > 국제·통일
     
유영옥국제칼럼-연평도 불법도발과 금문도 지뢰밭에 꽃핀 평화
유영옥(경기대학교 국제대학장, 북한학)
2011년 01월 02일 (일) 23:49:06 뉴스메이커 webmaster@newsmaker.or.kr

 북한의 연평도 폭격 사건 발생 직후인 지난 11월 29일부터 12월 3일까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안보 국제위원회 위원인 전문가 4명이 우리나라와 여러모로 비슷한 상황을 지니고 있는 대만의 대북시와 금문도를 방문할 기회를 갖았다.

   
유영옥 경기대학장
본인을 위원장으로 한 한국 국방 연구원 전경만 박사, 예비역 육군소장인 마포 안보 포럼 박승부 위원장,  전 국제정치학회 회장이자 중국전문가인 충북대학교 장공자 교수 일행은 연평도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미 한국의 연평도와 대만의 금문도의 지리적, 역사적 유사성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비교 연구를 위해 대만 방문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우리의 방문이 이루어지기 바로 6일 전에 북한은 연평도를 향해 2백여 발의 포탄을 쏘아댔고, 우리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우리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안보 국제위원회 일행은 더욱 막중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이번 대만 방문 일정에 임하게 되었다.
 첫날 우리는 주대북 한국대표부 구양근 대표를 만나 대만 상황에 대해 논의하였고, 이어 대만 정치대학교 유덕회 교수를 비롯해 대만의 한반도 전문가 6명과 “양안관계 및 남북관계 비교”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개최했다. 다음날, 대만 정부 외교부 아동태평양사 사장 이세명 대사를 비롯해 한국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행정원 대륙위원회 전문위원장, 대선전자 유한공사 총경리 임병옥 등 대만의 외교 분야 고위직과 전문가를 만나 대중국관련 정책과 활동에 관한 심도 있는 대담을 갖았다. 특히 셋째 날엔 양안관계에 있어서 아주 특별한 지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금문도를 둘러보고, 우리나라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금문현 이옥사 현장과 금문도의 평화 정착 과정과 의미 및 전망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얼마  전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던 북한의 연평도 도발의 여파였는지 우리 일행이 가는 곳마다 수많은 기자들이 따라다니며 인터뷰를 요청하는 등 대만의 남북문제에 대한 관심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밖에 불광 대학교 조태순 교수, 대만 문화 대학교 임추산 교수 등 대만의 대중국 및 한반도 관련 전문가들과의 대화는 현재 한국의 상황과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대만의 금문도와 우리의 연평도가 지니는 유사성과 현재의 대비되는 상황은 최근 북한의 연평도 도발과 관련해 우리에게 대북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형성해야할 필요성을 제시해준다. 대만의 금문도는 중국에서 170 km, 한국의 연평도는 북한에서 120 km 떨어진 군사적 대치지역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오히려 과거 대만의 금문도는 우리나라의 연평도보다 더욱 긴장감이 감돌던 지역이었다. 1958년 6-7월에 있었던 중국 인민해방군의 대규모 육해공군 합동 훈련 실시에 대항하여 대만이 전군에 전쟁상태를 선포하였고, 8월 중순 본격적이 전투가 시작되어 8월 23일 금문도에 2시간 동안 무려 42,000발의 포탄이 떨어져 36,000명이 사망한 불행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금문도를 손에 넣지 못해 지속적인 대치국면을 이어갔고, 대만 편에 있던 미국은 핵폭탄 투하를 심각하게 고려하였다는 극비문서가 존재할 정도로 극도의 긴장상태에 놓여 있었다. 금문도의 이러한 불안정 상황은 1979년까지 지속되다가 현재에 이르러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현재 금문도는 아직도 심각한 군사 갈등 지역으로 남아 있는 한국의 연평도와는 달리 중국과의 민간교류의 활성화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지역이 되었고, 이를 통해 평화가 완전하게 정착되어 있는 상태이다. 과거 중국의 공격에 대비해 준비했던 금문도의 지하 땅굴은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관광객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중국인이라고 한다. 하루에만 5000여명에 해당하는 중국인 관광객들은 과거 총부리를 겨누던 적군에서 현재 대만의 관광 산업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고객이 된 것이다. 또한 수많은 생명이 피를 흘리고 죽어가야 했던 격전지들은 과거에 묻어 놓았던 지뢰들이 하나씩 제거되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 새들이 깃들고, 자연과 사람이 함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생태공원이 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양안관계를 이렇게 급진전하도록 만들었을까? 연평도의 긴장상태와는 너무나 비교되는 금문도의 평화는 과연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우리는 그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남북관계와 양안관계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한반도가 하나의 나라라는 관념을 가지고 통일을 지향하는 두 개의 분단국가로 이루어져 있는 것에 비해, 중국은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성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중국과 대만 사이의 군사적 충돌은 내란의 성격을 지니는 것이 된다. 대만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독립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을 해왔고, 중국은 대만 문제에 관해 분리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일관된 자세를 취해왔다. 그러나 1979년 이후 중국은 방법을 바꾸어서 평화적 해법으로 양안문제를 풀어가고자 하는 전환을 시도했으며, 이러한 중국의 개방정책으로 1987년에 이르러 대만의 계엄법이 해체되었다. 한 때 대만은 2000년 이후 사상 처음으로 국민당 소속이 아닌 총통 천수이벤의 등장과 함께 대만 독립에 대한 주장의 확대로 중국과의 관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어오다가 2008년 다시 국민당 소속의 마잉주 총통이 권좌에 오르면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2008년 5월 대만은 이른바 ‘통우, 통항, 통상’을 기본으로 하는 ‘3통 정책’과 ‘불무, 불통, 불독’이라는 ‘3불 정책’을 시행하면서 양안관계가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이윽고 2010년 6월에 이르러 중국과 대만은 경제교류에 관한 기본합의서(ECFA)를 체결하는 단계까지 접근하였다. 
 현재 양안관계는 경제적, 문화적 교류의 확대로 점차 통일과 다를 바 없는 상태로 변화해가고 있다. 이미 엄청나게 벌어진 국력의 차이로 인해 대만이 중심이 된 흡수통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황 속에서 대부분의 대만인들은 ‘3불 정책‘을 지지한다. 즉 무력행사는 반대하고, 통일도 독립도 하지 않는 현재 상태 유지를 바란다는 것이다. 반면 홍콩처럼 대만이 중국으로 흡수되길 원하는 대만인도 적지 않다. 사실 대만의 경제는 이미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이 개혁과 개방을 바탕으로 한 실용적, 경제적 사회주의 노선을 변함없이 이어가는 한 앞으로 이러한 양안관계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더욱이 최근 중국이 보여주는 성장세와 주변 국가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근거로 가까운 시일 안에 대만을 자연스럽게 홍콩처럼 흡수할 것이라는 예측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얼마 전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긴장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남북관계에는 과연 무엇이 요구되는지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남한이 중심이 되어서 북한을 흡수 통일해야 한다는 기존의 일반화된 통일 관념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흡수통일에 대한 의지는 필연적으로 무력도발을 야기하거나,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처럼 무절제한 퍼주기식 북한 지원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흡수 통일을 전제하지 않고 현재  상태유지를 추구하면서 이루어지는 남북관계라면 상황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우선 필요이상의 군사적 대치 국면이 완화될 뿐만 아니라, 양국 간의 보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관계정립에도 도움을 줄 것이며, 결과적으로 평화적 관계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대만의 ‘3불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그 바탕 위에 이루어진 경제적, 문화적 교류와 같은 실용적 관계 정립이 금문도의 평화 정착을 포함한 양안관계에 미친 영향은 우리에게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또한 북한의 포격 이후 삶의 터전을 잃고 어려움에 처에 있는 연평도 주민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지원과 대책을 기대한다. 예를 들어, 과거 금문도의 경우처럼 유사시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지하 벙커와 같은 안전시설을 완벽하게 구축해서 마을 곳곳에 출입통로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연평도를 적극적으로 지킨다는 의미에서 거주민에 대한 예우의 한 표현으로 외형과 실용성 면에서 수준 높은 주택을 무료로 건설해주고 지속적인 거주를 장려하는 것도 생각해볼만하다. 그밖에 연평도를 관광특화해서 연평도 어민이 어획물을 판매하기 위해 육지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의 많은 사람들이 연평도를 찾도록 홍보해 거주민의 경제적 안정에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NM

 

 

뉴스메이커의 다른기사 보기  
ⓒ 뉴스메이커(http://www.newsmaker.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1)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kdimm00002
(209.XXX.XXX.112)
2017-01-07 06:02:39
rksek007
라이브겜 ★ 실시간 생방 라이브카ㅈl노 ★ 안전한 놀­터­인­생­역­전 터지는 슬­롯­머­신 팡팡 !!★ 주소 ―▶▶▶▶ ET386.COM ◀◀◀―
전체기사의견(1)
뉴스메이커About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999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오피시아빌딩 14층 뉴스메이커 | 전화 : 02-733-0006 | 팩스 : 02-733-0009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상호
뉴스메이커는 (주)뉴스메이커에서 발행하는 시사종합월간지로서 특정언론과는 전혀 무관한 완전한 자유 독립 언론입니다.
뉴스메이커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뉴스메이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mak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