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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벨상 수상자 발표
이론 중심에서 벗어나 현실과 접목한 연구성과에 주목
2015년 11월 09일 (월) 05:13:00 장정미 기자 haiyap@newsmaker.or.kr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알프레드 베르나르드 노벨(1833~96, Alfred Bernhard Nobel)이 기부한 유산 3100만 크로나를 기금으로 하여 노벨재단(the Nobel Foundation)이 설립된 후 1901년부터 매년 인류의 복지에 공헌한 사람이나 단체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장정미 기자 haiyap@

노벨상의 수상 부문은 물리학·화학·생리학 및 의학·문학·평화의 다섯 부문에 걸쳐 수여됐으며, 1969년부터 경제학상이 새로 추가되었다. 물리·화학·경제는 스웨덴 학술원, 의학은 스웨덴 카롤린의학연구소, 문학은 스웨덴 예술원에서 선정하나, 평화상은 노르웨이 국회가 선출한 5인 위원회가 맡는다.

여성 수상자 비율 높아지고 국적 다양해져
세계 최고의 지성을 상징하는 노벨상 수상자 선정 기준이 시대 흐름 등을 반영하며 달라지고 있다. 최근엔 이론 중심에서 벗어나 현실과 접목한 연구성과에 노벨위원회가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성 수상자 비율이 높아지고, 수상자들의 국적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근래 수상자를 살펴보면 노벨 경제학상의 관심은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 전 세계가 직면한 경제적 난관을 풀어나가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금융 규제와 기업 간 역학관계 연구로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장 티롤 프랑스 툴루즈1대학 교수와 게임이론을 시장설계에 접목해 2012년 수상자로 선정된 앨빈 로스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2003년 이후 10년 만인 2013년 수상자를 배출한 계량경제학 분야에서도 주식 및 채권, 주택시장 가격 예측모델을 연구한 유진 파마, 라스피터 핸슨 시카고대 교수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상을 받았다. 2010년에는 경제정책이 실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연구한 노동경제학의 대가 피터 다이아몬드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 등 3명에게 돌아갔다. 반면 개발경제학 분야는 1979년 이후 수상자를 내놓지 못하고 있고, 경제성장론과 경제사 분야도 노벨상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효율적 자원배분과 일반균형이론 등의 거시모델 역시 2000년 이후 노벨상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1970~1990년대 노벨 경제학상 단골수상 분야였던 거시경제학도 2000년 이후 노벨상과 인연을 맺지 못하다가 에드먼드 펠프스 컬럼비아대 석좌교수가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상충관계를 실증적으로 연구한 공로로 2006년 수상하면서 명맥을 이어갔다. 과학 분야 노벨상은 연구 성과가 나온 뒤 수상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추세다. 전 세계에서 수많은 연구 결과가 쏟아지고 있는 데다 이론을 증명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199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폴 디랙은 26세에 발표한 양자역학 연구로 31세에 상을 받았다. 반면 피터 힉스는 1964년에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측했지만 증명이 어려워 2013년에야 물리학상을 받을 수 있었다. 중성미자가 질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 일본 도쿄대 교수는 스승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명예교수(200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의 연구를 이어받아 결실을 맺었다. 노벨 경제학상뿐 아니라 6개 부문을 통틀어 수상자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갈수록 ‘미국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2005년 이후 지난해까지 노벨상 수상자 112명을 출생 국가별로 분석한 결과 미국이 45명으로 40.1%를 차지했다. 1901년 이후 지난해까지 노벨상을 받은 871명 전체를 놓고 보면 미국인 비중은 29.5%(257명)로 10명 중 3명꼴이었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유럽국가 출신 수상자 비중은 작아지고 있다. 노벨상 전체 수상자 가운데 유럽국가 출신 비중은 319명으로 전체 817명 중 36.6%를 차지했지만 최근 10년간은 25.0%(28명), 최근 5년간은 22.4%(13명)로 뚝 떨어졌다. 다만 최근 들어 국가별 다양성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파키스탄(노벨 평화상)은 지난해, 페루(노벨 문학상)는 2010년 77개 노벨상 수상국가 대열에 합류했다. 여성 노벨상 수상자는 전체 46명으로 5%에 그치고 있지만 비율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노벨상 화학상 3인 공동 수상
2015년 노벨상 화학상 수상자로 스웨덴의 토마스 린달(77)과 미국의 폴 모드리치(69), 아지즈 산자르(69)가 선정됐다고 스웨덴 왕립과학원이 10월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린달과 모드리치, 산자르는 유전자(DNA) 복구 메커니즘 연구에 대한 업적을 인정받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수상자들이 “세포가 손상된 DNA를 복구하고 유전적 정보를 어떻게 보호하는지 분자 수준에서 설명(map)했다”고 평가했다. 또 “그들의 연구는 살아있는 세포의 기능과 새로운 암 치료제 개발에 살아있는 세포가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렸다”고 덧붙였다. 왕립과학원은 아울러 “살아있는 세포가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유전적 질병의 분자적 원인 및 암 발병·노화의 메커니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DNA는 하루에도 수천회에 걸쳐 즉흥적으로 변형되며 방사선이나 유리기(free radical), 발암성 물질에 의해서도 손상을 입는다. 유전물질이 해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분자 체계가 DNA를 복구한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3명의 학자들은 이 과정을 그려내고 새로운 암치료제 개발 연구에 길을 열어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웨덴 출신인 린달 박사는 영국 프랜시스크릭 연구소 소속이며 모드리치는 미국 하워드휴즈연구소와 노스캐롤라이나주 듀크대에 재직 중이다. 터키 태생인 산자르는 DNA 복구와 세포주기 체크포인트(cell cycle checkpoint), 생체 시계(Circadian clock) 분야의 권위자로 이스탄불대에서 석사학위를, 텍사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캠퍼스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화학상을 수상한 3명은 상금 800만크로나(약 11억2100만원)를 나눠 갖게 된다.

일본, 2년 연속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배출
일본이 2년 연속 노벨 물리학상을 거머쥐며 ‘기초과학 강국’의 기염을 토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배출에 이어 물리학상까지 받는 겹경사에 일본 열도는 흥분에 휩싸였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10월6일 가지타 다카아키(56) 일본 도쿄대 교수와 아서 맥도널드(72) 캐나다 퀸스대 명예교수를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노벨위원회는 “두 사람은 ‘중성미자(뉴트리노) 진동’을 발견해 ‘중성미자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우주 탄생의 비밀을 푸는 데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작은 입자(소립자)인 중성미자는 핵융합과 핵분열, 초신성 폭발 등의 과정에서 발생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두 과학자의 연구가 있기 전까지는 질량이 없다고 알려져 왔다. 그런데 질량이 없다면 우주를 설명하는 데 오류가 생긴다. ‘중성미자 미스터리’로 불리던 이 문제를 두 사람은 각각의 방식으로 풀었다. 중성미자가 진동하고 이를 통해 질량을 가지며 형태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 가지타 교수는 태양(핵융합 반응)에서 발생한 ‘우주선(宇宙線)’이 지구 대기와 충돌해 만들어지는 중성미자를 일본 기후현 폐광에 있는 실험장치 ‘가미오칸데’와 ‘슈퍼가미오칸데’에서 관측하고, 중성미자의 진동을 발견했다. 맥도널드 교수는 원자로에서 나온 중수를 이용한 연구로 중성미자가 변하는 것을 관측했다. 가지타 교수는 ‘사제(師弟) 수상자’란 기록도 남겼다. 그의 스승은 2002년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89) 도쿄대 특별 영예교수다. 고시바 교수는 사상 처음 자연 발생한 중성미자를 관측해낸 인물이다. 일본은 지난해 아마노 히로시 나고야대 교수 등 3명이 ‘청색 LED’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또 오무라 사토시 일본 기타사토대 명예교수가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데 이어 이틀 연속 수상자를 냈다. 일본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는 24명(미국 국적 취득자 2명 포함)으로 늘었다.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3명, 문학상 2명, 평화상 1명이다. 과학 분야가 21명으로 단연 많다. 일본은 초등학교부터 실험과 흥미 위주의 과학 교육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130년에 걸친 기초과학 투자와 연구 전통, 과학문화 확립이 밑거름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국민 4자 대화기구’ 노벨평화상 수상
올해 노벨평화상은 튀니지의 민주화단체 ‘국민 4자 대화기구(National Dialogue Quartet)’가 수상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력 후보로 물망에 올랐지만 예상 밖의 수상자가 나왔다. 지난 10월9일(현지시간)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튀니지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이끄는 데 공헌했다는 평가와 함께 이 기구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국민 4자 대화기구’는 2011년 재스민 혁명 발발 이후 튀니지의 민주주의 정착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튀니지의 ‘국민 4자 대화기구’는 하나의 통합된 ‘조직’이라기보다는, 튀니지의 평화와 민주화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 4개 시민사회를 가리킨다. ‘4자’에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튀니지총노조(UGTT), 산업계를 대표하는 튀니지산업·무역·수공업연맹(UTICA), 시민운동을 대표하는 튀니지인권연맹(LTDH), 법조계를 대표하는 튀니지변호사회(ONAT)가 포함돼있다. ‘4자 대화기구’는 2013년 설립 이후 수년 간 성별, 정치적 성향, 종교 등과 관계없이 평등하게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하는 튀니지 헌법 체계를 세우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권, 노동자 계층 등을 각각 대변하는 4개의 조직으로 이뤄진 ‘4자 기구’는 기본적으로 도덕적인 정부와 평화적 민주주의를 신장시킨다는 목적으로, 자국 내 정치·사회적 갈등 국면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각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이 조직들은 2010년부터 시작된 ‘아랍의 봄’ 또는 ‘재스민 혁명’으로 이듬해 독재자 벤 알리가 물러난 후 튀니지가 극도의 혼돈 속에 빠져들자, 2013년부터 각자의 이해관계를 떠나 국가의 안정과 평화발전을 공동 모색하기 위해 이른바 ‘국민4자대화’에 나섰다. 이런 노력 덕분에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 민주화의 불길을 지폈던 ‘아랍의 봄’의 고국 튀니지는 군부 쿠데타를 겪은 이집트, 1700개의 무장조직들이 난입하면서 혼란을 겪고 있는 리비아와 달리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성공했다. 튀니지는 재스민 혁명을 통해 벤 알리 전 대통령을 축출함으로써 장기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등 아랍에 민주화 운동 바람을 최초로 불러일으킨 나라다. 이 때문의 ‘아랍의 봄’ 이후 튀니지는 중동권의 민주화 운동의 표본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올해 노벨평화상이 ‘4자 기구’에 주어진 배경도 노벨위원회가 탄압 속에서도 민주화를 추구한 튀니지의 공로를 인정함으로써 중동권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올해 노벨문학상의 영예는 벨라루스의 기자 출신 여성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67)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은 10월8일 알렉시예비치를 수상자로 발표하며 “다성 음악과도 같은 그의 저술들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기록한 기념비들”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사라 다니우스 한림원 신임 사무총장은 “알렉시예비치는 저널리즘의 형식을 초월해 새로운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며 “그것이 진정한 성취”라고 평했다. 알렉시예비치는 노벨문학상 14번째 여성 수상자다. 2013년 수상자인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에 이어 2년 만이다. 러시아어로 작품 활동을 한 작가 중에는 6번째 수상자다. 알렉시예비치는 1948년 5월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이바노-프란코프스크에서 군인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벨라루스인,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인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파견 근무 중이던 아버지의 군 복무 기간이 끝난 뒤 벨라루스로 돌아갔다. 벨라루스국립대 언론학과 졸업 후 지방과 중앙 신문사, 잡지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창작 활동은 신문사 기자로 근무하던 1975년부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소련-아프간 전쟁, 체르노빌 사고 등 극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글로 옮겼다. 소련 시절부터 반(反)체제 성향의 작품을 썼다.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조국 벨라루스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독재 통치를 비판하다 탄압을 받아 2000년대 초반부터 10여년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에서 망명 생활을 했다. 2012년 다시 벨라루스로 귀국해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알렉시예비치는 소설가도, 시인도 아니다. 언론인 출신으로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해 모은 이야기를 논픽션 형식으로 쓰는 ‘다큐멘터리 산문’ 작가다. 정통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기만의 독특한 문학 장르를 개척했다. 일명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이다.

작가는 ‘소설-코러스’라고 부른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리얼리티는 언제나 자석처럼 나를 매료시켰고, 나를 고문했고 내게 최면을 걸었다. 그래서 실제 인간의 목소리와 고백, 증언 증거와 문서를 사용하는 장르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알렉시예비치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문학 지평이 더욱 넓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작가가 순수하게 자신의 세계를 자신의 글로 만들어낸 것뿐 아니라 타인의 육성을 토대로 한 것일지라도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고 유익한 길로 이끈다면 그 또한 문학의 범주에 포함됨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의 처녀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의 번역가 박은정은 “알렉시예비치는 자신의 소설을 쓴 게 아니다. 구성이나 생각의 흐름은 오롯이 작가 개인의 것이지만 여러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녹취한 내용을 정리해서 썼다”고 전했다. 알렉시예비치는 벨라루스의 유명 작가 아다모비치가 롤 모델이었다. 그의 책 ‘나는 불 같은 마을에서 왔다’와 ‘포위의 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들 저서는 벨라루스 문학과 러시아 문학, 둘 모두에 없었던 새로운 장르의 책이었다. 알렉시예비치는 발표 직후 스웨덴 SVT 방송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복잡한 기분이다. (노벨문학상 수상한 러시아 작가인) 부닌, 파스테르나크 등 위대한 이름들이 떠오른다. 환상적인 기분인 동시에 살짝 불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200만부 이상 팔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의 후유증을 기록한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국내에도 번역 소개돼 있다. 이 밖에 ‘마지막 증인들’, ‘아연 소년들’, ‘세컨드 핸드타임’ ‘죽음에 매료되다’ 등이 있다.

일본,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 순위 5위
아인슈타인은 노벨물리학상 수상소식을 일본행 배에서 전달받았다. ▲양자역학이 성립에 기여한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1922, 물리학상) ▲‘불확정성의 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베르그(1932, 물리학상) ▲양자역학의 이론체계를 세운 폴 디렉(1933, 물리학상)도 강연 및 학회 참석을 위해 일본을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이처럼 일찍이 서양과 교류가 잦았던 일본은 자연스럽게 장기적이면서 자유로운 유럽의 연구지원 문화를 배웠다. 지난 2010년 말, 일본과학기술종합회의는 제4기 과학기술기본계획(2011~2015년)에서 “과학기술계 품위를 손상시킨다”며 ‘노벨상 목표’를 삭제했다. 수상에 목매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한 과학기술 경쟁력을 갖췄다는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지난 10월6일, 중성미자 진동실험을 통해 ‘중성미자 질량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 수상하면서 일본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21명(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생리의학상 3명)으로 늘어났다. 메달 수 집계로 보면 종합순위 5위다. 일본은 또 전날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무라 사토시 기타사토대 특별영예교수에 이어 노벨상 ‘2관왕’을 달성했다. 물리학상 부문에선 지난해 ‘청색 LED’ 개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데 이은 ‘2연패’ 달성이다. 과학 강국의 면모가 정점을 찍은 모습이다. 일본은 2001년, ‘제2기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 향후 2050까지 3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목표를 제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목과 논란을 불렀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선 노벨상 수상자 목표 초과달성도 유력한 상황이다. 일본의 과학기술 저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일본이 노벨상에서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역사·제도적 배경, 문화적인 차이 등을 꼽을 수 있다. 일본은 1854년 미국과 조약을 체결하며 일찌감치 문호를 열었다. 서양 문물을 들여놓기 위해 일본은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을 계기로 수많은 인재들을 해외로 유학 보냈다. 이를 통해 해외 유명 과학자와의 네트워크가 구축됐다.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 등 1900년대 초반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들의 연구실에 특히 일본인 제자가 많았다. 예컨대 일본 ‘현대물리학 아버지’인 나시나요시오는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닐스 보어와 코펜하겐대학에서 공동연구를 수행했으며, 그 제자들의 대부분이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신진 과학자들은 일본 기초과학의 재목으로 성장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무라 교수가 재직 중인 기타사토대는 세균학자 기타사토 시바사부로의 이름을 붙였다. 기타사토는 ‘세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 하인리히 코흐의 제자였다. 메이지시대부터 시작된 고등교육과 지속적인 기초과학분야의 국가적 지원은 일본 노벨상의 탄탄한 기반이 됐다. 1886년, 일본은 도쿄대를 포함한 7개 제국대학(교토(1897), 도호쿠(1907), 큐슈(1911), 홋카이도(1918), 오사카(1931), 나고야(1939))를 설립했다. 7개 제국대학 중 5개 대학에서 13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이중 9명이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과학자였다. 일본 대학의 기초과학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기간 일본은 이화학연구소(RIKEN, 1917)를 설립했다. 이화학연구소는 일본에서 ‘노벨상의 산실’로 불릴 만큼 가장 권위 있는 정부 기초과학연구소로 성장했다. 일본은 1980년대 이후 기초연구를 본격적으로 활성화했다. 이어 1987년, G7 정상회담을 전환점으로 일본은 과거 모방을 통한 ‘추격형 발전’에서 미개척 첨단과학기술 분야를 선점하는 선도형 R&D 체제로 과학기술정책을 전환한다. 일본은 세계 과학계와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에 일본학술진흥회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스웨덴과의 과학기술협력, 일본 연구자의 연구성과 소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2년에는 일본에서 ‘노벨상 100주년 기념 포럼’을 개최했다. 일본은 이 행사에서 포럼에 참가한 세계 석학들의 경비를 전액 부담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일본의 이 같은 전략적인 인적 네트워크 구축 노력은 최근의 잇단 노벨상 수상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따른다.

한국, 넛크래커 현상 가속화 될 듯
우리나라는 GDP(국내총생산)의 4.15%에 해당하는 542억 달러를 R&D(연구·개발)에 투자한다. 투자 규모로는 미국과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이고, GDP 대비 비중과 투자 증가율로는 세계 1위이다. 정부 예산이 직접 투입되는 국가 R&D사업 규모도 18조 90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재까지 노벨과학상 스코어는 ‘노메달’이다. 돈을 퍼붓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일본과의 격차만 벌어질 뿐이다. 인터넷에선 스포츠 경기 점수를 빗대 한국과 일본의 과학분야 노벨상 경쟁을 ‘0대 21’로 표현하며 자조하고 있다. 노벨 과학상 수상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분야 ‘넛크래커(nut-cracker)’ 현상이 가속화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는 짧은 기초연구 역사와 성과 위주의 과학기술 투자 정책 등을 문제로 들 수 있다. 한국 기초과학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되면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차두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은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연구를 해야 한다는 필요의식을 가진 건 2000년 이후”라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정부가 과학기술 정책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투자에 나선 것은 1990년대로 100년 넘게 기초과학 연구를 해온 일본과 격차가 날 수밖에 없다”며 “국가가 중장기적 관점을 갖고 연구자가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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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빈
(1.XXX.XXX.49)
2015-11-14 22:48:55
축하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노벨상을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일본 사람이라도 상을 받은 것은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과학이 더 발전해서 노벨상을 얻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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