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이 민간인을 불법사찰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포폰(명의를 도용한 휴대전화)’을 지급했고, 지원관실 직원이 이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검찰은 지원관실 수사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고도 발표하지 않아 은폐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11월 1일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남모씨 관련 내사건 보고’라는 제목의 A4 2장짜리 문건을 공개했다

청와대가 지원관실의 조사·사찰 활동에, 그것도 명백한 불법인 대포폰까지 동원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지원관실 원모 사무관의 ‘BH(청와대)지시사항’ 수첩에 이어 청와대의 개입 정황이 확연해졌으며, 이와 별개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청와대의 불법행위가 새로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도마 위에 오른 청와대 불법행위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11월 1일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남모씨 관련 내사건 보고’라는 제목의 A4 2장짜리 문건을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작성자가 ‘공직1팀’으로 명시돼 있는 이 문건에는 모 의원 부인이 연루된 고소사건 내용에 대해 개인적인 사항까지 세세하게 실려 있다. 이 의원은 “동료의원에게 누가 될까봐 보고서의 여러 군데를 종이로 가려놓을 정도로 (지원관실이) 근거 없는 내용들을 악의적으로 보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청와대가 사찰에 적극 개입했다는 확실한 물증이자, (내용물이 손상됐다고 검찰이 주장했던) 하드디스크가 완전하게 복원됐거나 USB메모리에 내사보고서들이 충분히 들어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특히, 청와대가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남의 명의를 도용한 ‘대포폰’까지 제공해가며 비밀리에 직보하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믿을만한 증언자에 의하면 (지원관실의) 장모 주무관이 하드디스크의 영구 삭제를 위해 수원의 컴퓨터 전문업체를 찾아가 속칭 ‘대포폰’을 이용해 업체와 통화한 사실이 검찰에 의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5개의 대포폰이 발견됐는데 이는 청와대 행정관이 공기업 임원 명의를 도용해 만들어 비밀 통화를 위해 지급한 것”이라며 주장했다. 이 의원은 이와 함께 “보고서 2페이지 말미에 국정원이 (이번 건에 대해) 사찰했음이 드러나고 있다”며 국정원도 별도로 정치인 사찰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보고서는 “국정원이 내사하고 있던 사실을 남모씨가 알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의원 측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사찰한 부분에 대해 국정원이 이미 내사(사찰)를 벌였다”며 중복 사찰이 있었음을 분명히 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도 답변을 통해 “(대포폰 등에 대한) 수사를 마치고 하드디스크 파괴를 주도한 김모씨는 구속기소했다”며 대포폰의 존재를 인정했다. 대포폰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로 등록해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말한다. 주로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범죄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대포(大砲)’가 허풍이나 거짓말을 일컫는 데서 유래됐다.

대포폰 사용해 민간인 불법사찰

▲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1월2일 김윤옥 여사의 몸통론과 청와대의 대포폰 직보라는 사안을 놓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청와대 대포폰’이 민간인 불법사찰 기록을 인멸하기 직전 개설돼 증거인멸 과정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 장모 주무관은 증거를 인멸한 당일 오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최모 행정관에게서 대포폰을 건네받아 사용한 뒤 그날 되돌려줬고, 최 행정관은 증거인멸 범행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시점을 전후해 대포폰을 해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공모했다면 그에 앞서 벌어진 불법사찰도 최 행정관 등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을 개연성이 높다. 신경식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11월 5일 “최 행정관이 대포폰을 개설한 시점은 지난 7월7일 즈음인 것으로 안다”며 “장 주무관은 (증거인멸이 이뤄진) 지난 7월7일 아침 (불법사찰 기록이 담긴 점검1팀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손하기 위해) 업체로 가기 전에 최 행정관에게 전화해서 빌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신 차장은 “최 행정관이 대포폰을 개설하고 장 주무관이 거의 바로 받은 것 같다”면서 “장 주무관은 대포폰을 (증거인멸) 당일 사용한 뒤 그날 최 행정관에게 돌려줬고, 최 행정관은 검찰이 (대포폰에 대해) 의문을 갖고 조사하기 전인 8월쯤 대포폰을 해지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대포폰 개설과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증거인멸 시점이 거의 일치한다는 것은 대포폰이 증거인멸 용도로 개설됐음을 의미한다. 최 행정관이 증거인멸 용도로 대포폰을 개설한 뒤 장 주무관에게 건넸거나 장 주무관의 부탁을 받고 최 행정관이 대포폰을 개설해 건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장 주무관의 부탁으로 대포폰이 개설됐다고 하더라도 불법사찰에 대한 검찰 수사가 사흘째인 시점이었고, 장 주무관이 불법사찰 실무를 담당한 점검1팀 소속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대포폰이 ‘수상한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는 점을 최 행정관이 몰랐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지난 8월 초 증거인멸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뒤 최 행정관이 문제의 대포폰을 해지한 것도 미심쩍은 대목이다. 검찰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서둘러 대포폰을 없앴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 행정관이 증거인멸을 공모했다면 총리실의 불법사찰에도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 ‘최 행정관→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으로 이어지는 ‘윗선’의 고리를 밝히는 중대한 단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은 “평소 알고 지내던 장 주무관의 부탁을 받고 어디에 사용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대포폰을 빌려줬다”는 최 행정관의 말만 믿고 그를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이날 “(대포폰 문제에 대해) 재수사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 은폐 의혹 확산

▲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부실수사였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민간인 불법사찰이 드러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속한 국무총리실이 컴퓨터 하드디스크 삭제기기인 디가우저(Degausser)를 보유했고 검찰이 이를 확인까지 했던 사실이 11월 5일 드러나 ‘은폐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이 내용은 재판기록에도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불법사찰 내용을 삭제하는 데 해당 기기를 쓴 흔적이 없어 관련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8월 11일 중간수사결과 발표 이후에야 총리실 관련 수사에 나섰다는 점 등에서 의혹이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 같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9월8일 추가 수사결과를 설명하면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수원에 있는 업체의 디가우저 장비를 이용, 김종익씨 사찰 내용 등이 담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컴퓨터 하드디스크 4개를 완전히 삭제했다고 밝혔다. 하드디스크 삭제기기인 디가우저(Degausser)는 문서보안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면서 수요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총리실이 보유한 디가우저는 국내 이네트렉스사가 1600만원에 납품한 미국 가너(Garner)사의 모델(HDTD-8300)이다. 무게가 40㎏에 달해 어른 두 명이 겨우 들 정도인데, 철제 케이스에 담겨 잠긴 상태로 보관되고 있다. 이네트렉스의 김형태 대표는 11월 5일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로 디가우저가 언급된 지난 8월 주변에서 전화를 받긴 했으나 검찰이 따로 연락해 온 적은 없다”면서 “당시에 총리실이 디가우저를 보유 중이라는 사실이 왜 보도되지 않는지 이상하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실 외에 국방부 등 50여개 기관에 디가우저를 공급했고, 지금도 계속 공급하고 있다”면서도 “각 기관이 구매 사실을 공개하길 꺼린다”고 덧붙였다. 디가우저는 하드디스크나 자기 테이프 등 저장 매체에 강력한 자기장을 쏘여 저장된 데이터를 완전히 삭제한다. 주로 폐기처분할 PC나 서버 등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쓰인다. 하드디스크를 삭제한 숫자가 카운터미터에 기록되는데, 이 숫자를 조작할 수는 없다. 총리실 등 정부 부처의 디가우저 보유는 2006년 국가정보원이 만든 ‘불용PC 처리 지침’에 근거하고 있다. 이 지침은 개인정보 등 민감한 자료나 대외비 등 비밀자료의 경우 소각·파쇄 등 완전 파괴하거나 자기장을 이용한 장비를 이용해 저장된 자료를 삭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총리실 등 각 기관은 여러 과정을 거치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디가우저를 통한 삭제방식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시 “확인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했다. 검찰은 은폐의혹과 관련, “‘진경락 과장 지시로 혼자 삭제했다’는 총리실 기획총괄과 장모 주무관의 진술만 나왔다”면서도 ‘총리실에도 디가우저 장비와 사용내역이 있다’는 사실을 발표하지 않았다. ‘BH 파일’과 ‘대포폰’(차명폰)에 이어 새롭게 미공개 내용이 확인되면서 검찰 수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검찰이 총리실 디가우저를 넘겨받아 은폐의혹 조사에 나선 지 1주일 만에 수원 업체가 등장한 점도 석연찮다. 검찰은 애초 수원의 업체에 대해 “2∼3곳 정도”라고만 언급했을 뿐 똑 부러지게 특정하지 못했다. 검찰이 수원 업체의 이름과 언제 누가 컴퓨터를 운반했는지 등도 확인하지 못한 채 총리실 ‘내부 삭제’ 가능성을 배제해 버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신경식 1차장검사는 “당시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했고 수원 업체가 유력하다고 판단해 총리실 쪽 수사가 진행이 안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이 “수원 업체에서 지웠다”는 장 주무관의 진술만 믿고 조사를 마무리지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총리실 측에 제공해 문제가 된 ‘대포폰’에 대한 검찰 해명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은 이날 “(총리실)장 주무관이 불법사찰 증거를 지우려고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훼손한 지난 7월7일 경기도 수원의 한 컴퓨터 전문업체를 찾아가기에 앞서 최모 행정관에게 전화를 걸어 차명폰을 빌려달라고 한 뒤 청와대 근처에서 전화기를 넘겨받아 그날 바로 돌려줬다”고 밝혔다. 장 주무관이 하드디스크를 훼손한 날에만 쓸 차명폰을 받으려고 청와대 근처에 갔다는 걸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신 차장은 “수원 업체도 수사 초기엔 특정하지 못했지만 결국 찾아낸 것처럼 검찰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며 “수사결과에 의문이 생길 순 있지만 검찰이 결과를 은폐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한편 총리실 관계자는 “2006년 국정원이 ‘불용PC 처리 지침’을 하달한 뒤 청와대는 물론 교육부, 행안부 등 대부분의 부처가 디가우저를 구입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지원관실 직원들이 굳이 수원 업체까지 찾아가 하드디스크를 지웠다는 설명에 의구심이 제기된다. 신 차장은 “총리실 외에 다른 부처도 디가우저를 갖고 있다는 건 우리가 몰랐던 내용”이라고 말했다. 여러 부처가 보유한 디가우저가 동원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부실수사 논란마저 제기된다.

파장 확산 우려한 부실수사 의혹 제기돼

▲ 민주당 우제창 의원은 긴급현안질의에서 “기록이 빠진 때는 2009년인데 총리실에서 이레이저를 구입한 것은 2010년이다”며 “임채민 실장이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부실수사였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검찰이 밝혀내지 못했다고 했던 ‘청와대 개입’ 의혹을 방증하는 유력한 근거들이 공개되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검찰이 파장 확산을 우려해 덮은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대포폰 문제’와 관련해 이귀남 법무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 과정에서 “재판 중인 법원에서 얘기된 걸로 안다”고 했지만 정작 법원은 “무슨 얘기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이 이 사건을 기소한 이후 정치권의 폭로 등을 통해 검찰이 입수한 증거자료들 가운데 ‘B·H(청와대) 하명’이라는 메모나 ‘청와대에서 준 대포폰’ 등이 있었던 것으로 연거푸 드러났다. 검찰은 이처럼 ‘청와대 개입’을 시사하는 증거자료들을 여태껏 공개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 11월 1일 “법원에 제출한 기록에 들어가 있다. 증거자료는 공개할 수 없게 돼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사건 재판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법은 다음날인 11월 2일 “대포폰 등 얘기는 오늘 신문보고 알았다”며 “(취재하는) 기자들도 다 보지 않았느냐”고 했다. 이귀남 장관은 “재판 중에 얘기됐다”고 했지만 실제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된 진경락 지원관실 총괄지원과장 등의 재판과정에서는 ‘대포폰’ 얘기가 나온 적이 없다. 앞서 기소된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의 재판에서도 마찬가지다. 피고인들의 ‘증거인멸’과 관련해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을 보여주는 근거인데도 검찰이 주(主)신문 과정 등에서 묻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 스스로 이 부분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검찰이 11월 2일 사태가 커지고 나서야 “대포폰은 1개뿐이며, ‘차명(借名)폰’으로 불러야 한다. 밝혀진 부분만 기소했고, 차명폰은 범죄혐의와도 직접 연관이 없다”며 뒤늦게 ‘대응’에 나선 것도 청와대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이번 수사에 대해서는 초기부터 ‘정말 수사할 의지가 있는 것이냐’는 비판이 검찰 내부에서도 나왔다. 일부 검사들은 특히 당사자들이 부인할 것이 뻔한 이 같은 사건 수사의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압수수색을 수사팀이 구성된 7월 5일로부터 4일이나 지난 7월 9일에야 실시한 것을 문제로 거론했다. 지원관실 직원들이 핵심 증거를 대부분 인멸한 후에야 압수수색이 실시되면서 “결과적으로 증거인멸을 방치했다”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 수사는 외부에서 보안 속에서 진행됐고, 검찰은 1개월여 만인 지난 8월 11일 이인규 공직윤리 지원관 등 3명을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기소하면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검찰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박영준 국무차장 등이 연루됐다는 이른바 ‘비선(秘線)보고 의혹’을 계속 수사하겠다고 했으나 한 달쯤 뒤인 9월 초 진경락 지원관실 과장 등 실무자 3명만 추가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종결했다. 이영호 비서관 소환조사는 단 한 차례에 그쳤고 박영준 차장은 조사도 받지 않았다. 결국 이번 수사는 청와대라는 벽 앞에서 검찰 스스로 움츠러든 결과라는 말이 법조계에서 나오고 있다.

민간인 불법 사찰 재수사 여부 논란 이어져
민간인 사찰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 여러 의혹이 추가로 제기되면서 진실공방과 함께 재수사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11월 4일에는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이 당 최고위원회에서 검찰의 재수사를 촉구했는가 하면, ‘대포폰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민주당 이석현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8대 의문점’을 제시하면서 해명을 요구하는 등 공세의 고삐를 조였다. 그러나 검찰은 “필요한 건 전반적으로 다 봤지만 기소할 수 있을 정도로 확인되거나 입증된 게 없다. 의혹과 (혐의) 입증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면서 재수사 불가 입장을 유지했다. 수사 실무를 지휘한 신경식 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근 ‘차명폰’이나 여러 가지 문건들이 갑자기 새로 나온 것처럼 얘기가 나오는데, 모두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찾아내고 확인한 것이며 새로운 사실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것들이 처음부터 알려진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증거수집 과정을 통해 확인한 것”이라며 “필요한 사항은 전부 조사해서 혐의가 인정되는 부분은 기소했고 법원에 증거자료로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신 차장은 ‘서울중앙지검장이 청와대 행정관 조사에 반대했다’는 이 의원의 주장에는 “중앙지검장이 (상부에) 사건 보고도 제대로 안하고 수사팀 의견을 묵살한 것처럼 얘기가 나오는데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장모 주무관에게 휴대전화를 건넨 청와대 최모 행정관에 대한 조사와 관련해선 “혐의 입증이 안 돼서 위로 못 올라간 것”이라며 “사찰 관련 부분도 염두에 두고 수사했지만 혐의로 인정되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신 차장은 또 최 행정관이 ‘차명폰’을 준 시점이 “증거인멸 기간 언저리(전후)”라고 밝히고, 지급 이유에 관해서는 “업무적 관계에 의한 것인지를 봤지만 이른바 ‘윗선’이나 증거인멸 과정과는 직접 연관이 없다고 봤다”고 했다. 차명폰 지급 경위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에는 “검찰이 얘기할 수 있는 건 형사절차상, 형사소송법상 기소할 증거가 있느냐는 것이며 이를 토대로 판단했다”면서 더 이상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앞서 검찰은 진경락 전 기획총괄과장 등을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하면서 지원관실이 7월 5일과 7일에 사찰 관련 자료가 담긴 컴퓨터 하드디스크 7개를 무단 반출해 외부 전문업체에 맡겨 파기한 혐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원관실에 휴대전화를 지급한 최 행정관의 직속상관이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이라는 점에서 이 전 비서관 등 이른바 ‘윗선’ 의혹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신 차장은 “차명폰 부분은 이 전 비서관을 소환조사한 이후에 증거인멸 부분을 수사할 때 당사자의 진술을 통해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이 전 비서관을 8월6일 참고인으로 한차례 조사했으며, 증거인멸 혐의는 같은 달 11일에 이인규 전 지원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한 뒤인 8월 중순∼9월 초에 추가로 수사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날도 청와대 행정관이 언제 어떤 목적으로 지원관실에 휴대전화를 건넸는지, 지원관실은 이를 무슨 용도로 썼으며 ‘윗선’ 보고는 없었는지 등에 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아 일부 의문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또 8∼9월에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누락·은폐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길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받는다.

각 지검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에도 영향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이 청와대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대포폰을 건넨 사실 등 핵심 수사내용 등을 공개하지 않아 정치권에서 재수사와 특별검사 실시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수사결과를 은폐했다는 의혹으로까지 번진 이번 파문으로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역 각 지검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에도 영향을 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세계적 행사인 서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이후 C&그룹 임병석 회장 등에게서 금품로비를 받은 의혹이 있는 정치인 등을 줄줄이 소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폰서 파문으로 곤욕을 치른 검찰은 1년4개월 만에 대검 중수부를 재가동하고 서울 각 지검 수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제기된 불법사찰 수사결과 은폐 의혹이 검찰에 미친 충격은 스폰서 파문 못지않다는 지적이다. 한 검찰 간부는 “스폰서 의혹은 ‘미꾸라지 몇 마리가 조직을 흐렸다’고 볼 여지도 있었지만 이번 불법사찰 관련 의혹은 공정한 기준으로 범죄를 단죄해야 할 검찰 위상을 추락시킬 수 있다”고 토로했다. 수사결과 발표에선 빠지고 공판 과정 등에서 민정수석실용 폴더나 ‘BH 하명’ 문구 등 새롭게 확인된 내용이 많아 ‘청와대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검사들도 많다. “수사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아 발표하지 않았지만 재판부에는 제출했다”는 게 검찰 입장이지만 ‘정치 검찰’이란 해묵은 지적이 다시 등장한 것만으로도 검찰에는 부담이 되고 있다. 파장이 현재 진행 중인 수사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G20 이후 비리 의혹 정치인들을 줄줄이 소환할 것으로 알려진 검찰은 이번 불법사찰 수사 은폐 의혹을 최대의 ‘악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대검 중수부와 재경 지검들이 수사 중인 의혹 상당수가 정치인 등에 금품로비를 해 기업운영 등에 혜택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에 불리한 내용만 빼고 수사결과를 발표한 검찰이 과연 정치인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당장 G20 이후에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정치인 로비 의혹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 지역의 한 검사는 “수사결과를 축소해 발표했다며 검찰이 정치권의 표적이 된 마당에 정치인 수사가 잘 진행되겠냐”고 말했다. 가뜩이나 국회의원 소환에 부정적인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 향후 정치인의 금품 수수 의혹이 구체화되더라도 체포동의안 등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