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이웃들의 따뜻한 손길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연말이 되면 작은 정성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며, 시민들의 가슴 한편에는 ‘사랑의 열매’ 배지가 꽂혀 있다. 하지만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인 ‘사랑의 열매’가 국민들의 성금으로 비리를 저질러온 것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연말연시 작은 열매 하나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우리이웃 모두에게 사랑의 싹을 띄운다. 시민들의 가슴 한쪽에 달려 나눔을 전하는 새빨간 ‘사랑의 열매’가 바로 그것. 나, 가족, 이웃을 뜻하는 세 개의 빨간 열매가 하나의 가지로 묶여 작은 나무를 연상케 하는 ‘사랑의 열매’는 사랑의 마음을 빨간색으로 담고 더불어 함께하는 사회를 이루자는 약속을 초록색 가지로 표현했다. 이러한 나눔을 전하기 위해 마음을 합쳐 움직이는 이들이 모인 곳이 발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다. 그러나 올해 말에는 불우한 이웃을 돕는 정성의 손길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 11월 21일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최근 4년 동안 모금 횡령은 물론 채용비리, 예산 과다집행, 배분사업과 성금액 부실관리 등 갖가지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국내 유일 법정 모금기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총체적 비리가 보건복지부 감사로 드러나면서 연말 성금 모금에 나서야 하는 단체들은 불똥이 튈까 우려하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1990년대 초 수많은 중앙부처와 지자체가 연중행사처럼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걷었다. 그러다 1994년 2월 감사원 감사 결과가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 내무부·경기도 등 17개 기관이 1990~1993년 사이 민원인과 기업들로부터 거둔 성금 중 9억5000여만원을 기관장 경조사비·판공비 등으로 돌려쓴 사실이 드러난 것. 국민이 분노하자 정부는 민간이 주도하는 단체를 만들어 각종 성금 모금과 집행을 맡기기로 결정했고, 이에 따라 1998년 11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정부 간섭을 배제하고 독립성을 보장 받은 국내 유일의 ‘법정 모금 단체’로 출범했다. 하지만 모금회를 견제 감시할 기관이 없어 부정 비리가 양산됐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금을 내면 다른 단체에 기부금을 낼 때(법인은 이익의 5%, 개인은 20%까지 세금 공제 혜택)보다 최대 10배 세금 공제 혜택(법인은 이익의 50%, 개인은 100%까지)을 줬다. 이 같은 혜택에 힘입어 이 단체의 연간 모금액은 10년 사이 15배 이상이나 상승했다(1999년 213억원→2009년 3318억원). 그러나 2005년 모금회가 자체 예산 220억 원에 민간기업이 낸 이웃돕기 성금 40억 원을 보태 서울 광화문 인근에 260억 원 상당의 사옥을 마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비리로 썩은 ‘사랑의 열매’ 성금유용 백태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보건복지부 자체 감사 결과 비리 열매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6년부터 올해 9월까지 124차례나 단란주점, 노래방 등에서 업무용 법인카드로 2천만 원 어치를 긁었고, 182차례에 걸친 내부 워크숍 비용으로 3억5천만 원을 쓰면서 스키장, 래피팅, 바다낚시 등 비용으로 2천900만원을 집행했다. 화환이나 선물 구입에도 150만여 원을 유용했다. 지난 3년간 중앙회 감사팀이 피감사 기관인 지회 직원 등과 노래방, 맥주집 등에서 1천100여만 원을 쓴 사실도 이번 종합감사에서 확인됐다. 공동모금회는 전년도 모금총액의 10% 범위 내에서 인건비나 운영비로 써왔는데, 작년에는 모두 3천318억 원을 모금했으며 이중 194억 원을 운영비로 사용했다.
공동모금회의 핵심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성금 배분 사업 역시 부실 투성이었다. 배분대상자의 사업수행 계획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아 2006년 이후 92건의 배분사업이 중도 포기하거나 반납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덩구이 기부금을 전해받은 사업기관에 대해서도 아무런 사후평가 없이 제재조치를 감해주거나 조건부 제재를 했으며 배분금을 횡령한 기관에 대해서도 횡령한 돈만 회수한채 고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공동모금회는 사업기관에 나눠주는 승합차량 751대를 구입하면서 특정 자동차 회사와 수의계약한 뒤 제대로 할인을 받지 못해 8400만 원을 더 썼다.
인사 관리도 형편없었다. 공동모금회가 자체 감사에서 경기·인천지회 직원의 부정을 적발하고 징계를 요구했으나 해당 지회는 대상자가 사표를 내자 아무런 징계 없이 면직 처리했다. 사랑의 온도탑을 재활용하면서도 매년 예산을 집행하거나 허위 문서를 만들어 공금을 빼돌린 직원도 있다. 또한, 서울지회는 공채에서 탈락한 8명을 정당한 절차 없이 계약직으로 특별채용하고 이 중 4명은 정규직으로 다시 뽑았다. 중앙회는 회계분야 계약직을 채용하면서 다른 분야처럼 공채하지 않고 특채했다. 광주지회에서는 필기시험만 합격한 사람을 마치 실기시험에도 합격한 것처럼 가점을 부여해 채용했다. 더욱이 공동모금회는 지난 3년간 연봉이 9100만 원인 사무총장 인건비를 7.9%, 직원은 9%를 인상했다. 공공기관의 최근 3년간 인건비 인상률이 3%인 점을 감안하면 세 배나 되는 셈이다.
직원뿐 아니라 회장이나 지회장들의 도덕적 해이도 컸다. 2006년부터 5년간 장급 이·취임식이 25차례 있었는데 여기에 4572만원을 사용했다. 서울지회는 전문 MC를 부르거나 영상편지, 축하공연 등을 준비하는 데 공금을 썼다. 이에 도덕적 해이가 드러난 직원 48명에 대해서는 파면, 해임, 정직, 감봉 등 징계를, 예산을 부당하게 집행한 관련자 113명에 대해 경고, 주의 조치를 요구키로 했다. 전체 직원 292명 가운데 절반 가량이 징계를 받게 되는 셈이다.

‘성금 유용’ 공동모금회 이사진 전원 사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진이 전원 사퇴키로 했다. 윤병철 공동모금회장과 이사회는 11월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사태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눔의 손길이 줄어들어 고통과 어려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해 책임을 통감하고 전원 사퇴한다”고 발표했다. 윤병철 회장은 “모든 것을 바꾸고 새롭게 하는 혁신이 필요하다”며 “내부는 물론 외부의 감시망을 강화, 다시는 부정과 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개혁해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현재 공동모금회 이사회는 회장, 사무총장을 포함해 18명의 이사와 2명의 감사로 구성돼 있다. 모금회는 지난 10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으며, 비상대책위원회는 조만간 회의를 열고 공동모금회 쇄신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공동모금회는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 여러분의 신뢰를 저버린 몰지각한 일을 사전에 방지하지 못해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대국민 사과성명서’를 띄웠다. 하지만 게시판에는 비리를 꾸짖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홈페이지는 접속자가 몰려 한때 접속이 중단되기도 했다.

▲ 연말연시 보육원 김장나눔활동

공동모금회 복수화… 사용내역 투명하게 공개
전체 직원의 절반 가까이가 징계를 요구받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가 사상 초유의 사태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땅에 떨어진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지, 무너진 조직은 어떻게 추스를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일단 일원화돼 있던 모금과 성금집행 창구를 다변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단체가 함께 성금을 모으고 배분해 모금액도 늘리고 기금도 투명하게 관리하자는 것이다. 우선 공동모금회 내부 차원에서 감사 인력 확충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복수(複數)의 공동모금회를 만들어 운영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이는 비대화를 막아 관리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현재 공동모금회 성금 모금 시스템으론 기부자가 사용 용도를 따로 지정하지 않고 그저 “좋은 일에 써 달라”고 기부할 경우엔 돈의 행방을 알 수 있는 길이 막혀 있다. 이에 미국·영국처럼 모금 단체의 각종 내역을 인터넷 등에서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일한 법정 전문모금기관으로 소득공제를 받는 기부금 한도(법인은 이익의 50%, 개인은 소득의 100%)가 아름다운재단 등 다른 모금재단(법인 5%ㆍ개인 20%)보다 월등히 높다. 이와 관련해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월 18일 공동모금회로 사실상 모금 창구가 단일화한 현실에 변화를 줄 계획임을 시사했다. 진 장관은 “모금단체가 복수화하면 오히려 포지티브섬 게임으로 모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며 복수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계획임을 내비쳤다.

전문가들, 감시 시스템 마련 절실
복지부는 앞으로 전문가들과 협의를 거쳐 모금기관 투명성을 강화하고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공동모금회 내부의 감사 인력 확충과 복수의 기부단체 신설 등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문조 고려대 교수는 “출범 초기 모금 규모가 200억여 원이던 공동모금회가 현재 3000억원이 넘을 정도로 모금회의 덩치가 커진 만큼 모금뿐만 아니라 돈을 어떻게 쓰는지도 중요해졌으므로 성금 집행을 감시하는 감사 인력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공동모금회 내부 감사 인력은 불과 5명에 불과하다. 성금 모금부터 집행까지 일련의 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공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상균 서울대 교수는 “IT기술 등을 이용해 들어오고 나가는 돈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체크할 수 있는 일종의 ‘기부금 이력 추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동모금회의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기 위해 민간 주도의 감시체계 등 보다 개방적인 접근법을 주문하기도 했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는 “시민 참여 감시기구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바꿔 성금의 모금ㆍ집행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기업이 이사회나 주주총회 등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는 것처럼 공동모금회에도 다양한 시민 참여 장치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공동모금회는 이번 사태가 불거진 이후 성금 감소와 철회라는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올 들어 지난 9월까지는 작년보다 11.6%(160억원) 많은 성금이 모였지만, 10월 한 달(81억9700만원)간은 전년(86억원)보다 5%가량 줄었다. 또, 10월 이후 철회된 개인기부 건수가 1100여건(20억원)을 넘는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탄생한 ‘사랑의 열매’. 초심을 생각하며 어렵게 일구어낸 우리 사회의 모금문화를 뿌리째 흔드는 일은 앞으로 절대 없어야 할 것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