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성찰하는 일은 예술가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화가 이종례는 산과 여인을 주로 그렸다. 이는 곧 자연의 대상이며, 그의 마음속에 잠재된 고향과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이다. 이종례는 그림을 통해 고향에 대한 추억과 향수를 일깨워주고, 도시화와 더불어 점차 사라져가는 고향이라는 의미를 재확인시켜준다.

▲ 서양화가 이종례는 한성미술제 심사위원,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심사위원. 중앙교육진흥연구소 미술부 자문교수, 사단법인 한불문화교류협회 미술담당이사를 맡고 있으며, .10여년간 전주대학교 영상예술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서양화가 이종례
이종례는 전북 부안 출신으로 전주대 미술과와 경희대 교육대학원, 소피아국립미술대학을 졸업했으며, 그동안  서울. 전주. 광주.Losangelis. Toronto. Sofia. Constanza 등에서 10여회의 개인전과 한국미술협회전, 한미국제작가전(Newyork).아시아현대미술전(Tokyo) 등 국내외 전시회에 100여회의 출품 활동을 벌여왔다. 지난 79년 전북의 별 수상, 제2회 한국문화예술서양화대상 수상, 제27회 아시아 현대미술전 예술신문사장상(동경) 등 국내외 권위 있는 여러 상을 휩쓸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한성미술제 심사위원,대한민국현대미술대전심사위원. 중앙교육진흥연구소 미술부 자문교수, 사단법인 한불문화교류협회 미술담당이사를 맡고 있으며, .10여년간 전주대학교 영상예술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종례는 예술 하는 사람의 순수한 마음을 강조하며 일관된 주제와 화풍을 유지했다. 더욱이 소박하고 진실한 인성을 가진 작가였으며, 그림 또한 그것에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토방산’은 고향을 기억한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여우가 죽을 때 자기 굴을 향한다던 ‘수구초심’이란 말이 웅변하는 향수의 정이 이종례 화가의 작품 하나하나를 관통하면서 어머니와 고향, 향수병 등으로 의미를 확장한다. 어머니는 생명의 모태로 모든 것을 포근하게 감싸는 이미지를 동반하고, 고향은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하게 각인된 유년의 기억과 맞물린다. 향수병은 생의 궤적에서 고향을 떠난 후 그리워하는 인지상정의 연장이다. 이종례의 대표작 ‘토방산’을 보게 되면 고향에 대한 작가의 강한 애정과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하늘을 가릴 듯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그의 산은 일부를 떼어다 놓은 것 같은 위압감을 준다. 또한, 완만하게 이어지는 산의 능선, 싱싱한 청록과 은은한 보라색의 조화가 편안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주기 때문에 절대 두려움을 느낄 수는 없다. 볏짚 같은 푸석푸석한 표면 위에 때로는 강렬하게, 때로는 차분한 분위기로 계절 감각을 잘 드러냈으며, 철따라 오묘하게 변해가는 산의 중후한 아름다움을 굵직한 붓질과 텁텁한 질감으로 표출시켰다. 이종례의 산은 어떠한 기교나 과장도 없이 인간사의 한줄기 애환처럼 무겁거나 혹은 쓸쓸하게 그려져 있다. 그래서 최대로 단순화된 풍경에 색채 역시 절제돼 있다. 그는 “고향에는 항상 산이 있다. 산에서 고향에 대한 짙은 향수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이종례는 소박하고 진실한 인성을 가진 작가였으며, 그림 또한 그것에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그리는 ‘산(山’)은 따뜻한 세상
인자요산(仁者樂山).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서양화가 이종례의 작품을 대하다보면 그가 얼마나 산을 즐기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소재를 따뜻하게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이종례만의 향기가 주입된다. 이종례는 “현란함보다는 가볍지 않은 담백함과 소박한 겸손, 그리고 따뜻함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말로 대신한다. 자연에 대한 따뜻함과 향수, 또는 작가의 인생과 자연에 대한 신념을 느낄 수 있는 대부분의 작품이 ‘산’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종례의 작품을 좋아하는 한 지인의 말을 빌리자면 “산은 그가 그리워하는 따뜻한 세상이다. 소문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실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받지 않으며, 겉은 부드럽고 겸손하지만 내면은 깊고 아름다운 만월로서의 세계이다”고 해석했다. 이어 “이종례는 그가 닿고 싶은 그리운 세계의 총체를 ‘산’이라는 이름으로 그려내는 것이다. 그가 그리는 산은 결핍이 없는 세계이며, 분열과 상처도 없는 어머니의 태반과도 같은 따뜻함이 담겨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이종례의 그림은 어머니가 그리울 때,  푸르렀던 젊음이 그리울 때, 상실한 꿈 때문에 상처받을 때, 헤어진 애인의 불행한 소식을 들을 때, 아내와 싸우고 집을 나서려 할 때, 무한해지고 싶을 때 등 자연스레 그의 그림을 떠올리게 만든다.

산과 여인, 그리고 자연으로 응집된 작품세계
이종례는 자연을 그렸다. 그의 자연관은 다음의 문구에서 명쾌하게 드러난다. “화가는 자연을 겸허하게 맞아야 한다. 오만한 자는 자연의 미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이종례의 작품 소재는 산과 여인으로 대변할 수 있으며, 그가 표현한 이들의 소재는 자연이 대상이지만 ‘감정이입 충동’을 통한 재현적 형상이 아니다. 이들은 그의 마음속에 잠재된  고향과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이 발현된 심상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종례의 작품세계는 추상성을 지닌 ‘구상회화’라 할 수 있으며, 그의 작품이 이러한 세계를 띄게 된 것은 유년시절과 무관하지 않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종례는 청소년기에 부친이 별세하여 가장의 역할을 어릴 때부터 맡게 되면서 화가로서의 길을 외롭게 스스로 개척해야 했다. 그의 이 같은 성장환경은 자연을 그리워하되 사실적으로 동화될 수 없는 심미안을 형성하게 했다. 그리고 이종례의 작품은 ‘회화적 양식’의 경향을 띄고 있다. 그의 작품이 산과 여인의 형태로 조형되나 형태와 구도의 엄격성은 유보되고, 색채와 질감의 표현성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화면은 열려지고 역동적이며, 음악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실제로 이종례는 바로크시대의 첼로나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으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산은 한(寒)색조를, 여인은 난(暖)색조를 주조색으로 표현했지만, 두 계열 작품의 공통점은 거의 단색조로 이루어진 점이다. 이로 인해 그의 작품이 색채적이고 표현적이며 음악적이다. 하지만 다중적이면서 금속적인 서양음악과는 달리,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한국의 민속음악을 연상시킨다. 또한, 그가 그린 산이 한(寒)색조이지만 차가워 보이지 않고, 여인상이 난(暖)색조이지만 들떠 보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그림에서 질박함과 평온함을 느끼다
이종례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질박함이다. 한 작가의 작품이 그의 풍모나 성품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공통성을 갖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이란 작가의 심성이 미적조형성을 빌려 구체화된 유기물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종례의 작품은 이와 같은 현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앞서 언급한 음악적 특성과 더불어 질박함의 특성은 그가 지닌 탁월한 음악적 재능과 함께 소탈하고 꾸밈없는 성품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분청사기의 유약처리에서 느낄 수 있는 투박하고 조졸한 멋을 연상시키는 산 그림의 화면 처리나 화장하지 않은 시골 아낙내의 거친 피부로 처리된 여인의 누드에서 그의 순수하고 꾸밈없는 질박한 성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종례 작품은 색채적이고 음악적이지만 구성적인 느낌은 평온함이다. 그가 그린 풍경 중 어느 것은 수직으로 뻗은 나무가 있고, 누드의 포즈 중에는 대각선이나 수직적인 배치가 있다. 이는 그의 화면은 거의 수평형식의 가로캔버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화면 선택의 선호 경향은 키가 큰 그의 외면적 풍모와는 동떨어지며, 이는 아마도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좋아하는 내면적 심성의 결과라 하겠다. 대부분의 경우, 수직적 화면은 권위나 위엄의 분위기를, 수평적 화면은 안정과 평온의 분위기를 나타낸다. 마지막으로 이종례의 작품에서 종합적으로 느껴지는 여운은 ‘프레피구라치온(Prafiguration)의 미’이다. 요섭 간트너에 불려진 ‘프레티구라치온’은 선형상 예술 작품이 완성되기 이전의 예비적 단계까지 예술가의 모든 창조활동의 영역까지 포함한다. 이에 완성 작품만을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고, 미완성, 데생, 스케치, 밀그림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즉, 이종례의 작품은 예형의 미로서 끝마무리가 덜 된 듯한 ‘미완성의 미(美)’를 보여준다. 이 같은 특징은 그의 작품 가운데 어설픈 듯한 여인의 자태나, 무한히 펼쳐지는 산의 형상, 중간톤이 생략된 듯한 색채 처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여유와 너그러움을 느끼게 된다. 한국미의 특징의 하나로 ‘무기교의 기교’와 ‘미완결의 미’를 들 수 있는데, 이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너그러움을 좋아하는 이종례 작가의 취향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림 속에 음악적 선율을 담아낸 예술가
서양화가 이종례는 왜 산과 여인을 그리면서 음악적인 조형세계를 추구했을까? 이종례는 우리 것을 지키면서도 예술의 범세계적 특성을 함께 탐구하는 것은 물론, 보다 폭 넓고 확고한 예술세계가 확립되길 원했던 것. 그의 작품세계를 요약한다면 오토매틱 현대적 조형방법을 구사하되, 한국적인 이미지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지난해 개막한 팝페라 뮤지컬 ‘미스 피가로’에서 그의 작품 ‘고향, 가을’은 뮤지컬에서 원화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종례는 체질적으로 순발력보다는 성실함으로 살아간 진실한 작가이다. 작품세계에 있어서도 허세와 과장이 없으며 파고드는 성실성과 정신적인 내면성을 표출하려는 진지한 추구력이 엿보인다. 점점 고향의 의미를 잃어가는 21세기 한국의 현실에서 그림 너머 고향의 그리움을 추구한 이종례. 그는 산과 여인의 외형 속에 고향과 모성애를 담았고, 평온한 서정 속에 음악적 선율을 담아낸 예술가이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