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차 발칸전쟁        1912년
‘유럽의 화약고’로 불리는 발칸반도의 여러 국가들은 14~15세기부터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하에 있다가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단계적으로 독립하는 과정을 거쳤다. 1832년 그리스의 독립을 신호탄으로, 19세기 말 오스만 제국이 러시아와의 전쟁(1877년~1878년)에서 패한 때를 틈타 루마니아·세르비아·몬테네그로가 독립하고 20세기 초 불가리아까지 독립하면서 발칸반도에 갖고 있던 오스만 제국의 영토는 남부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정도에 불과했다. 이로써 과거 대제국의 번영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연명하는데 급급한 신세가 되었다.
오스만의 몰락은 20세기가 개막하자 가속도가 붙었다. 국가재정이 파산상태가 되고 1908년 청년투르크당이 일으킨 혁명으로 정정(政情)도 불안했다. 오스만의 힘이 현저히 약해진 틈을 타 오스만의 식민국가였던 발칸제국은 유럽에 걸쳐있는 오스만 투르크의 나머지 땅까지 차지하려했다.
1912년 3월 세르비아와 불가리아가 비밀협정을 맺은데 이어 5월에는 불가리아와 그리스가 손을 잡았다. 가을에는 몬테네그로까지 동조, 4개국은 ‘발칸동맹’을 결성했다. 대(對) 투르크 전쟁을 승리로만 이끈다면 얻을 것이 많았다. 영토확장은 물론 정치·문화·사회 각 방면에 짙게 배어있는 ‘오스만화’의 잔재를 지워버릴 수 있었고 이슬람교도를 유럽에서 추방할 수도 있었다.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맞아 10월 8일 몬테네그로가 먼저 공격을 개시했다. 10월 18일 나머지 발칸 동맹국도 오스만을 향해 포문을 엶으로써 제1차 발칸전쟁이 시작되었다. 예상대로 오스만 투르크군은 종이 호랑이에 불과했다. 이민족·이교도의 혼성부대로 구성되었으니 사기가 있을리 없었고, 오스만군에 속한 알바니아계 군인들은 탈주하거나 투항했다. 군대도 동맹군의 3분의 1에 불과한데다 그나마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징병 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오스만 투르크의 요청으로 12월 3일 휴전협정이 체결되었을 때 유럽 내 오스만 투르크령은 거의가 발칸동맹 수중에 떨어진 상태였다. 유럽내 영토의 83%가, 유럽인구의 69%가 제국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 이듬해 5월 런던조약으로 전쟁은 종결되었고 오스만의 영토는 발칸동맹국에 의해 분할되었다.
그러나 영토 분배를 둘러싸고 동맹국끼리 분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1913년 6월 28일부터 전승국들간의 제2차 발칸전쟁이 일어났다. 1차 발칸전쟁으로 영토를 가장 많이 넓힌 불가리아는 그리스·세르비아가 새로 차지한 마케도니아의 영토 일부가 탐이 났고, 다른 발칸 동맹국들은 불가리아의 영토취득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 불만이었다.
불가리아와 나머지 동맹국간의 전투가 시작되었으나 불가리아는 금방 패퇴해 1차 발칸전쟁에서 확보한 영토마저 대부분을 동맹국에 빼앗겼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1차 발칸전쟁 전보다 영토가 20% 늘어났다. 다른 동맹국들의 영토도 거의 2배로 증가했다. 그사이 알바니아도 독립(7월)해 오스만으로부터 떨어져나갔다.
1913년 8월 10일에 체결된 부카레스트 조약으로 경계선이 다시 획정됨으로써 유럽 동남부의 지도는 발칸전쟁 전에 비해 완전히 새롭게 그려졌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의 입김이 작용해 체결된 조약은 발칸제국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해 불안한 휴전에 불과했다. 여전히 그리스는 불가리아와 터키 해안에 걸친 땅을 탐냈고 세르비아는 오스트리아와 적대관계에 있는 러시아 주도의 범슬라브주의 편입을 원했다.
전쟁에서 패한 불가리아는 오스트리아에 기울었다. 결국 발칸제국끼리 갈등하는 가운데 제국주의 열강이 이들 국가들을 조종하고 대립을 격화시킴으로서 발칸전쟁은 곧 전 유럽을 죽음으로 몰고갈 1차 대전의 불씨가 되고 말았다.

■ 노구교 사건과 중일전쟁        1937년
1937년 7월 7일 밤 10시 반쯤, 의화단사건(1900년) 후 북경의 노구교 부근에 주둔중인 일본군 1개 중대 부근에서 10여발의 총성이 울렸다. 노구교는 베이징 서남쪽 8km 지점에 위치한 영정강(江)에 놓인 다리로 일찍이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예찬했던 곳이다. 그날의 총격이 일본군의 자작극인지 중국의 항일세력에 의한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그날 밤 일본군이 그곳에서 야간 사격연습을 했다는 점이다.
총성에 놀란 일본군은 즉시 훈련을 중단하고 점호를 실시했다. 그런데 신병 1명의 행방이 묘연했다. 이를 중국 측의 소행으로 단정한 일본군 중대장은 대대장에 보고했고, 대대장으로부터 전화로 보고받은 연대장은 “단호히 대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보이지 않던 신병은 20분후 돌아와 용변을 보다가 늦었다고 사정을 설명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신병의 귀대 사실은 대대장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일본군은 8일 새벽 중국군과 첫 교전을 벌였다. 다행히 전면전으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화북 지역의 실권자인 중국의 군벌들은 일본의 후원으로 획득한 화북의 넓은 지역을 일본과의 충돌로 잃을까 두려워 무개입주의를 택했다. 현지의 양군은 사태확산을 피해 7월 11일 정전협정을 체결했다. 중국군이 노구교의 인도, 대표자의 사과, 책임자의 처벌, 항일단체의 단속 등 일본 측의 무리한 요구를 전부 받아들인 결과였다.
하지만 협정이 체결된 7월 11일 본토의 일본 정부는 이 사건을 ‘중국측의 계획적 무력항일’로 단정하고 일본군의 화북 파병안을 승인하는 한편 본토에서 2개 사단 파견 등을 결정했다. 이 결정이 있기 전 만주와 일본에 주둔 중인 일본군은 이미 병력을 대거 북경 쪽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결국 정전협정은 중국과의 전면전을 벌이기위한 시간벌기용 협상이었던 셈이다. 일본군은 7월 28일 북경과 천진에 대해 총공격을 시작해 8월 초 이들 지역을 점령했다. 8월 13일에는 상해를 공격하고 9월부터는 중국 남쪽을 향해 총공세를 감행했다.
일본 정부는 8월 15일 전면전을 선포했다. 일본군의 총공세에 중국 공산당이 국공합작을 통해 전면 항전할 것을 호소하고 노동자, 농민, 시민, 학생들도 합작할 것을 요구하자 장개석 정부는 9월말쯤  마지못해 항일민족통일전선에 가담했다. 공산군은 화북에서는 팔로군으로, 화중에서는 신사군으로 개편되어 전쟁에 참가했다. 그러나 조직이 엉성하고 사기가 떨어져있는 장개석 군대는 일본군의 전면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11월초 상해마저 함락되고 뒤이어 국민당 정부의 수도인 남경까지 위협받게되자 장개석은 정부와 당기관을 오지인 중경으로 옮겼다. 12월 13일 남경을 함락한 일본군은 약 2개월에 걸쳐 남경대학살을 자행했다. 1938년 1월 16일 일본 정부는 유명한 ‘국민정부를 상대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는 중국의 국민당 정부를 배제하고 일본에 협력하는 신 괴뢰정권을 수립하여 중국 전토를 제2의 만주국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국민당 정부의 요인이었던 왕조명을 중경에서 탈출시켜 1940년 남경에 ‘신괴뢰정부’를 수립했다.
1938년 10월경 일본군은 중국 영토의 3분의 2와 대부분의 주요산업시설 그리고 모든 항구를 차지했다. 공산군은 밀리기만 하는 국민당 군대와 달리 북부지역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다. 항일전이 계속될수록 그들의 입지는 넓어졌다. 청년들이 공산당의 중심지 연안으로 속속 몰려들면서 연안에는 항일군정대학과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처음 3만명 정도였던 팔로군은 1940년 40만명으로 증강되었고, 신사군은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공산군의 세력이 커지고 1939년 들어 일본군의 공세가 주춤해져 전쟁이 교착상태에 접어들면서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장개석이 공산당의 팔로군과 신사군이 화북과 화중에서 근거지를 확대해가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1940년 8월 팔로군이 화북의 5개성에서 일본군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해 2만 5000명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480km에 이르는 철도선을 파괴하며 승전가를 올리자 장개석은 불안한 마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본군을 향하던 총부리를 공산당 쪽으로 겨눴다. 그리고 1941년 10월 이른바 ‘환남 사변’을 일으켜 7일동안 9000여명의 신사군을 사살했다. 항일전쟁 중 일어난 최대규모의 국공 무력충돌이었다.
‘환남 사변’은 항전 중인 공산당에 큰 충격을 주었다. 국민당군과 공산군 모두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동시에 치러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 발발 후 미국은 국민당 정부에 대포와 트럭, 탱크, 군용기, 소총 등을 제공하면서 일본군과 싸우도록 독려했다. 그러나 장개석은 미국이 제공한 무기들을 항일전에 쓰기보다 종전후 예상되는 공산군과의 싸움에 대비해 비축했다.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45년 종전까지 양국의 사망자수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그 기간동안 일본군은 45만명 정도가 죽은 것으로 알려졌고 중국의 민·군 사상자수는 3500만명이라는 것이 중국 정부의 공식 견해다.

■ 진주만 기습과 태평양전쟁 발발          1941년
1941년 12월 7일 오전 7시49분(워싱턴 시간 오후 1시19분, 일본 시간 8일 오전 3시49분), 구름 속에 숨어있던 183기의 일본 항공기가 급강하하며 하와이제도 오아후섬의 일요일 아침을 깨웠다.
4분 후 폭격에 가담한 일본의 후치다 중령은 오아후섬 북쪽 320km 지점의 항공모함 ‘아카기’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일본 특별기동함대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 중장에게 작전성공을 알리는 암호를 타전했다. “도라! 도라! 도라!”. 3년반동안 태평양 일대를 파국으로 몰고간 태평양전쟁의 개전을 알리는 죽음의 소리였다. 오전 8시54분, 일본군의 2차 폭격 시작과 함께 미 태평양함대의 모항이었던 진주만은 2시간만에 초토화되었다.
414기의 항공기를 탑재한 항공모함(6척), 전함(2척), 중순양함(2척), 구축함(9척), 잠수함(3척) 등으로 편성된 일본 기동함대가 쿠릴열도 에토로후섬을 출발해 하와이섬으로 향한 것은 11월 26일이었다. 기동함대 지휘관은 나구모 중장이었다.
기동함대가 조용히 북태평양 항로를 통과해 12월 6일 오전 6시 하와이 근해에 닻을 내리기 전, 일본 정부는 12월 1일 어전회의에서 개전을 결의한 상태였고 총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미군의 시선을 따돌리기 위해 태연히 인도지나 해역에서 기동훈련을 펼치고 있었다.
미국은 이미 일본군의 암호를 해독해 공격 징후는 알고 있었으나 공격지점까지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진주만, 파나마, 샌프란시스코, 필리핀 등지로 "일본의 중대조치가 있으니 경계태세를 강화하라"고 타전만 했을 뿐 결과적으로 기습공격을 막지 못했다. 일본의 군사능력을 과소평가한 것도 미국의 실책이었다.
일본군의 공격이 있을 당시, 하와이에는 5만 9000명의 미 지상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전함 8척, 구축함 54척, 잠수함 22척 등 수십척의 해군 선박이 기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전 9시45분까지 계속된 일본군의 폭격으로 전함 아리조나호, 캘리포니아호 등 4척, 중순양함 1척, 유조선 2척 등이 침몰되었고 메릴랜드호, 테네시호 등 전함 4척과 중순양함 1척, 경순양함 6척, 구축함 3척, 유조선 3척 등이 대파되었다. 300~400기의 비행기도 파괴되고 사상자는 2388명의 전사자를 포함해 3500명이나 되었다. 미군 역사상 가장 큰 피해였다. 반면 일본은 29기가 귀환하지 못하고 5척의 소형 잠수함과 64명의 전사자만 냈을 뿐 피해가 미미했다.
일본은 미 태평양함대의 주력함 대부분을 격침시키거나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미군이 입은 피해는 일본의 생각보다 경미했다. 우선 항공모함이 진주만에 1척도 없었고, 또 대파한 군함도 일부를 제외하곤 다시 수리되어 나중에 사이판, 유황도, 오키나와 등 해전에서 훌륭하게 전투를 수행했다.
특히 일본의 2년치 생산량에 해당하는 450만 배럴의 석유가 비축되어 있는 중유저장탱크, 선박수리시설, 잠수함 기지 등을 거의 파괴하지 못한 것은 일본군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미 해군이 비교적 신속하게 전열을 재정비할수 있었던 것도 이 연료탱크나 선박수리시설 등이 온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은 선전포고없이 먼저 기습적으로 공격한 뒤 한 시간이 지나서야 노무라 주미 대사가 미 국무성에 대미각서를 제출한 것에 특히 분노했다. 애초에 일본은 선전포고용의 대미각서를 진주만 기습 예상시간 20분 전인 12월 7일 오후 1시경(워싱턴 시간) 전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암호문으로 전송한 각서를 일본 대사관 직원이 늦게 정식문서로 만드는 바람에, 실제공격이 있은 후 한 시간 가량이 지난 오후 2시20분경에서야 미국 측에 전달되었다. 그때 하와이 시간은 8시50분으로 진주만은 이미 불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더구나 대미각서는 전쟁에 대한 의사표시가 없어 선전포고라고 보기도 힘들었다.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미국인들은 하나가 되었다. “기억하라!” 캐치프레이즈는 1836년 멕시코와의 전쟁 때 “앨러모를 기억하라!”,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때 “메인호를 기억하라!”에서 보듯 이미 미국인을 하나로 단결시킨 전례가 있었다.
12월 8일 미국이 단 한 명을 제외한 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선전포고를 가결함으로써 바야흐로 태평양전쟁의 막이 올랐다.

■ 스탈린그라드 전투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세계 전사에 가장 참혹한 전투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히틀러에 최초의 대패를 안겨준 이 전투야 말로 2차대전의 전환점이자 승패를 가른 분수령이었다. 서방 국가들은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년 6월)을 2차대전의 최대 승부처로 삼고 있으나 사실 노르망디 전투는 2차대전의 승리에 쐐기를 박았을 뿐 이미 대세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판가름이 난 상태였다.
2차대전 개전 후 전격전으로 서유럽을 장악한 히틀러는 독·소 불가침조약(1939.8.23)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1941.6.22)했으나 소련군의 결사항전에 모스크바 점령이 실패로 돌아가자 소련 석유 공급량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코카서스를 겨냥했다. 스탈린그라드(현재는 볼고그라드)는 그 길목에 있었다.
히틀러는 이 도시의 가치를 과대평가했고 그래서 스탈린의 이름을 딴 상징적인 도시를 발아래 두겠다는 정치적 욕심에 빠졌다. 스탈린 역시 자신의 권위를 상징하는 이 도시를 그냥 내줄수 없어 철저항전을 지시했다. 어느덧 스탈린그라드는 히틀러와 스탈린 두 독재자간의 자존심과 인내력의 대결장이 되었다. 독재자들에게 후퇴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독일군은 1942년 6월 28일 대규모 공세를 시작해 8월 23일부터 1주일간의 융단폭격으로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소련군은 볼가강을 등지고 몰려오는 독일 지상군을 상대했다. 9월 13일 독일군은 시 중심부에 진입했으나 전혀 예상치 않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다.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격렬한 시가전에 휘말린 것이다. 위 아래층에서 전투가 벌어졌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소련 저격병들이 창문, 고가철도, 돌더미 속 개인호에서 독일군에 총탄을 퍼부었다.
밤마다 저격병들이 도시 하수도와 지하터널을 따라 소리없이 새로운 위치로 이동, 독일군을 괴롭히면서 독일군은 이 전투를 ‘쥐의 전쟁’이라고 불렀다. 반면 우세한 독일군의 화력에 밀리면서도 붉은군대의 사기는 높았다. “조국을 위하여! 스탈린을 위하여!”를 외치며 전선으로 나가는 그들에게 스탈린은 반드시 지켜야 할 조국과도 같은 존재였다. 두 독재자의 자존심 걸린 대리전으로 쌓여가는 것은 병사들의 시체뿐이었다.
그무렵 시외에서는 ‘2차대전의 영웅’ 주코프 대장이 지휘하는 100만의 붉은 군대가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11월 19일 주코프의 군대가 반격을 시작하고 11월 22일 독일군이 역포위당하면서 전세는 역전되었다.
독일군의 파울루스 대장은 포위망을 벗어나도록 히틀러의 허락을 구했으나 히틀러는 괴링의 말만 믿고 “공수(空輸)로 지원하겠다”며 철수불가를 내렸다. 그러나 공수작전은 처음부터 차질을 빚었다. 매일 500t이 필요했으나 일평균 100t만 공수하는데 그쳤고 그나마 어느 날은 4t의 박하와 후추, 어느 날은 오른쪽 구두만 수천개 떨어졌다.
결국 1943년 1월 31일 파울루스가 항복하고 이틀뒤인 2월 2일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나머지 독일군도 전투를 포기함으로써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히틀러는 파울루스가 항복하기 하루 전 “독일 육군에서 이제껏 단 한 사람의 원수도 포로가 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파울루스를 원수로 승진시켰으나 파울루스는 백기를 선택했다.
생포된 9만 1000여명의 독일군은 영하 30도의 동토 시베리아로 끌려갔고 이 가운데 전쟁이 끝나 고향땅을 밟을 수 있었던 군인은 6000명에 불과했다.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병으로 죽어나간 것이다. 160일간 독일군 22개 사단과 소련군 20개 사단이 치열한 시가전을 벌인 끝에 스탈린그라드 시민들도 50만명 가운데 10만명이나 죽었고 소련군도 10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워털루 전투를 승리로 이끈 웰링턴 장군이 “패배를 제외하고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이 승전”이라고 말했듯 스탈린그라드 전투야말로 승자·패자 모두에게 참혹함으로 기록된 전투였다.
다른 의미에서 이 전투야말로 전후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싸움터였다. 자력으로 승리한 소련은 전후 세계 재편과정에서 동유럽과 발틱 3국, 크리미아 반도, 한반도의 절반을 전리품으로 챙겼다. 한반도 분단의 씨앗이 이 스탈린그라드전투에서 뿌려진 것이다. 

■ 제1차 중동전쟁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포한 1948년 5월 14일 밤. 아랍제국이 신생국 이스라엘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제1차 중동전의 막이 오른 것이다. 작전계획은 그럴듯했지만 단순했다. 남쪽에서 이집트 육군 1만명이, 동쪽에서 트랜스요르단(요르단강 동쪽 팔레스타인 지역)의 아랍군단 1만명이 이스라엘로 진격한다는 계획이었다. 북쪽에서도 레바논·시리아·이라크 군대가 진격을 준비했다.
보급품이 풍부하고 정예 병사들도 2만 1500명이나 되어 느긋한 입장이었던 아랍과 달리 이스라엘은 빈약한 장비로 애를 먹었다. 모두 1만정의 소총과 소총1정당 50발의 탄환, 낡은 대포 4문, 그리고 3600정의 기관단총이 전부였다. 단지 믿을거라곤 남녀 혼성군과 야전군 등 6만명의 병력 뿐이었다.
이스라엘의 전략은 죽음을 무릅쓴 결사방어였다. 달리 방도가 없었고, 승전의 희망도 희박해 보였다. 단 한치의 땅이라도 사수하겠다는 결사항전의 자세, 그것만이 이스라엘의 힘이었고 각오였다.
14일 밤, 어둠을 틈타 이집트 침공군이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으로 진격했다. 그러나 쉽게 승리하리라 장담과 달리 이스라엘 정착촌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혼란에 빠졌고 전투는 곧 교착상태에 빠졌다. 다행히 동부전선에서는 인상적인 전과를 올렸다. 트랜스요르단의 아랍군은 신속하게 예루살렘으로 진격해 들어가 10만명의 유대인이 살고 있는 신도시를 포위하고 구도시를 점령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스라엘의 완강한 저항이 빛을 발했다. 6월 11일 이스라엘은 포위망을 뚫고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양측은 곧 1개월간의 휴전안에 동의했다. 휴전은 이스라엘에게는 천금같은 시간이었고 아랍에게는 전쟁 실패의 책임을 두고 내분에 휩싸인 시간이었다. 아랍군의 사기는 점점 떨어진 반면 이스라엘은 휴전기간을 최대한 이용했다.
독립 선포 전에 들여오지 못한 최신 무기들이 지급되었고 새로운 단위부대들이 편성되었다. 7월 8일 전투가 재개되었을 때 사기가 떨어진 아랍군은 엄청나게 강화된 이스라엘군과 대결해야 했다. 이스라엘군이 10일간의 공세로 아랍군을 소탕하고 이집트로 진격할 태세를 갖추었을 때 유엔의 휴전조치로 다시 전투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이미 성패가 갈린 뒤였고 이스라엘에게는 또 한번 힘을 비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1948년 가을·겨울에 치러진 전투로 이스라엘의 영토는 오히려 3분의 1이나 늘었다. 이 생존투쟁에서 이스라엘은 전 인구의 1%에 해당하는 6000명의 목숨을 잃었으나 오랜 유랑생활 끝에 마침내 가나안 땅에 안식처를 찾았다는 가슴 벅찬 감격을 맛볼 수 있었다.

■ 베트남전 케산 전투와 구정 공세             1968년
케산전투와 구정공세는 베트남전의 흐름을 바꾼 분수령이었다. 케산전투는 1968년 1월 21일 새벽, ‘호치민 루트’를 따라 내려온 2만명 규모의 북베트남 정규군이 미 해병대 3500명과 남베트남 특수부대 2100명이 지키고 있는 케산을 향해 장거리포를 쏘아대면서 시작되었다. 케산은 비무장지대에 가까운 전방의 주둔지로, 1962년 미 공수부대 1개 중대가 북베트남 병력과 물자보급을 차단하기 위해 이곳을 기지로 삼은 이래 6년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곳이었다.
이곳을 포위한 북베트남군의 첫날 포격으로 미 해병대 18명이 전사하고 40명이 부상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북베트남군의 화력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포위된 병사를 구하기 위해 미군은 3개월동안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5배나 되는 위력의 폭탄을 케산 주변에 떨어뜨려 북베트남군의 접근을 막았다.
매일 평균 400여대의 미군 폭격기가 출격, 마구 폭탄을 퍼붓는 통에 미군은 900명 전사에 1600여명만이 부상했으나 북베트남군은 1만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미국의 관심이 온통 케산으로 집중되고 있던 1월 31일 새벽 2시30분, 19명의 베트남민족해방전선(베트콩) 전사들이 사이공 주재 미 대사관의 담을 폭파시키고 영내로 들어가 미군 5명을 사살하면서 이른바 '구정(舊正)공세'가 시작되었다.
헬리콥터를 타고 현장에 투입된 미 공수부대원들이 게릴라 전부를 살해하면서 대사관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신호탄으로 전국 100여개 도시와 마을들이 8만여명의 해방전선 전사들로부터 동시공격을 받았다.
민간복장을 한 4000여명의 게릴라들은 대사관 공격에 이어 사이공의 탄손누트 공항과 남베트남 정규군 사령부, 대통령궁 등 주요시설을 차례로 공격했다.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이 테트 구안 단(음력설)을 맞아 36시간의 휴전 제안을 해놓고 안심하고 있는 사이에 구정공세를 단행했다.
구정을 맞아 사이공에서는 남베트남 정규군의 절반이 휴가중이었다. 미군도 1967년의 대규모 폭격으로 전황이 불리해진 북베트남이 이렇게 대규모로 공격해오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구정공세로 무엇보다 비무장지대 부근의 옛 베트남 왕조의 아름다운 도시 후에의 피해가 컸다. 1만2000명의 게릴라들이 후에를 점령했으나 오히려 미군에 포위되어 26일동안 가해진 미군의 탱크와 비행기 공격으로 5000여명의 베트콩들이 죽었을 만큼 처절한 시가전이었다. 미군 147명이 전사한 후에 전투는 미 해병대의 완전한 승리로 끝났다. 후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구정공세는 10일쯤 지나서 진정되었다.
2월 하순경 미국의 웨스트멀랜드 베트남원조군 사령관은 베트콩의 전사자가 3만 7000여명이고 5800명을 생포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8만명 게릴라의 절반을 차지하는 숫자였다. 이처럼 구정공세는 미군의 완벽한 승리였음에도 언론은 미군 전사자 534명과 부상자 2547명만을 대서특필했다. 평소 승리를 확신해온 미국인들은 갑작스러운 사태에 경악했고 이어 냉소와 반전으로 반응했다.
미국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뉴스캐스터 월터 크롱카이트도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저는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이란·이라크전 발발        1980년
이란과 이라크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강대국이다. 양국은 민족적·종교적으로 달라 언제든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이라크가 1차대전 전까지 500여년간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고, 2차대전이 끝난 한참 후까지도 영국의 지배를 받아와 양국이 충돌할 기회는 없었다.
종교적으로 이슬람의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은, 수니파를 믿는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이슬람 국가를 이단시했다. 이라크도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긴 했으나 수니파가 정권을 독점해 종교적으로 이란과 갈등을 빚었다.
양국을 가르는 긴 경계선도 분쟁의 주요 원인이었다. 양측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곳은 국경을 흐르는 샤트 알 아랍 수로였다. 수로의 경계는 늘 힘이 센 쪽에 결정권이 있었다. 1937년, 양측의 합의로 수로의 경계가 동쪽(이란쪽)으로 정해졌다는 것은 그 시기의 강자가 이라크라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이라크는 1931년에 영국 지배로부터 벗어난 독립국가였으나 여전히 영국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 이란으로서는 감히 어쩌지 못하고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영국군이 이라크로부터 완전히 철수하자 이란은 기다렸다는 듯 수로 안쪽으로 선박을 출입시켰다. 이라크는 잦은 정권교체로 정정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으로는 쿠르드족의 반란을 진압해야 해야 하고 밖으로는 시리아·요르단과 함께 대 이스라엘 공동전선을 펼쳐야 하는 다급한 상황에 처해있어 이란의 도발을 제어할 여유가 없었다.
이란의 우세는 1975년 3월의 ‘알제 협정’에서 확인되었다. 알제리의 수도 알제에서 가진 석유수출국기구 정상회담에서 이라크가 경계선을 수로 중앙으로 양보하는데 합의한 것이다. 대신 이라크는 이란으로부터 이라크 내 쿠르드인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는 하나 협정 결과는 이란에 주도권이 있음을 분명히했다.
이후 이라크는 쿠르드족의 반란을 진압하고 국내정치를 안정시키는데 급급하다가 정세가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자 군비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 와중에 1979년 1월 이란혁명으로 팔레비 왕정이 무너지고 호메이니의 이슬람 정권이 수립되면서 이란 내정이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게다가 이란의 혁명정권이 군부를 대거 숙청하고 미국과의 단교로 주요 무기와 장비를 구입하지 못하게 되면서 군사력도 약화되었다. 그런데도 호메이니는 이라크의 수니파 지배체제를 무너뜨리도록 이라크의 시아파 교도들을 부추기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 무렵 이라크의 실권자는 사담 후세인이었다. 1979년 7월에 이라크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세인은 이라크가 이란 혁명에 감염되는 것을 막고, 나아가 이란의 혼란기를 이용해 지역의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야망을 불태웠다. 1975년의 ‘알제 협정’ 체결시 협상을 맡았던 후세인은 그때 이라크가 당했던 치욕을 잊지 않고 있었다.
후세인은 선제공격으로 수로의 영유권과 페르시아만의 패권을 되찾을 생각을 했다. 그의 독재에 반감을 품은 내부 세력의 불만을 누르고 국민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도 전쟁은 필요했다. 인구, 국토면적, 국민총생산에서는 이란이 유리했으나 군사력에서만은 이라크가 우세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이라크의 우세승이 점쳐지는 가운데 후세인은 수로의 영유권을 넘길 것, 주변 아랍국 국내문제에 간섭하지 말 것 등 이란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걸어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다.
1980년 9월 17일, 먼저 ‘알제 협정’ 폐기를 선언한 후세인은 9월 22일 이란 내 주요 공군기지와 시설들에 대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8년에 걸친 이란·이라크 전쟁의 막이 오른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란은 군대가 와해되거나 전투의지를 상실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서 전쟁의 양상은 발발 2주일만에 기동전에서 진지전으로 바뀌어 장기 소모전으로 변했다. 11월 들어서는 거의 모든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세계 강대국들은 전쟁 초기 가급적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며 무기판매에만 열을 올렸으나 1984년 3월, 전쟁이 페르시아만 통과 유조선을 공격하는 ‘유조선 전쟁’으로 비화하고서야 개입을 시작했다. 1987년 4월, 이란이 수년동안 이라크를 지원해온 쿠웨이트 유조선에 공격을 가하고 미 해군이 이란을 향해 군사력 시위를 벌이는 등 전쟁의 양상이 국제전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유엔이 나섰다. 미국과 소련도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정전협상을 위해 공동노력을 펼쳤다.
1987년 7월 20일 유엔 안보리가 종전권고 결의안을 채택했으나 수락의사를 밝힌 이라크와 달리 이란은 후세인을 전범자로 처벌할 것을 주장하며 거부했다. 이라크는 이란을 정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란을 향해 맹공격을 가했다.
호메이니는 결국 전황의 불리, 높은 인플레이션, 국민과 군인들의 사기저하, 미소의 압력 등을 견디지 못하고 1988년 7월 18일 유엔의 정전안을 수락했다. 총성은 8월 20일 오전 7시를 기해 1126km에 걸친 모든 전선에서 일제히 멎었다. 어느 쪽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엄청난 피해와 실패만을 남긴 채 막을 내린 것이다. 양국의 독재자들이 국가와 국민을 죽음으로 몰고간 참으로 무모하고도 명분없는 전쟁이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