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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라사랑을 위한 진정한 해군
국민들의 안보의식 함양한다
2010년 11월 01일 (월) 17:39:34 윤일우 전문기자 illwoo@newsmaker.or.kr

올해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에게 애국이 무엇인지 알려주었고, 자주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던 그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후세대 사람들에게 단순한 독립운동가가 아닌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애국심을 일깨워 준 영웅으로 가슴 한곳에 자리매김 하고 있다.

   
▲ 민 이사장은 “요즘 젊은이들의 안보 불감증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우리 국민들은 호국의식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중근의사는 직함이 다양하다. 그 중 하나가 대한의병 참모중장이다. 그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서 1905년 조선이 을사늑약에 의해 일본의 속국이 되자 그에 저항하고자 독립운동에 일생을 매진했다. 그가 행동한 독립운동가로서 마지막 임무는 바로 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이었고 안 의사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했다. 그렇게 그는 민족의 자주성과 애국심을 한국인들의 마음속에 평생 지니고 살게 할 마음가짐으로 남겨 주었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해군에 기증
최근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서예 작품이 해군에 기증되어 주목을 받았다. 해군에 기증된 유묵은 안 의사가 서거하기 전 마지막으로 쓴 ‘청초당(靑草塘)’이라는 글씨로 가로 66.3cm, 세로 33.2cm다. 안 의사가 서거 이틀 전인 3월 24일 여순 옥중에서 쓴 최후의 서예작품으로, 그 예술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2년 보물 제569-15호로 지정됐다. 안 의사의 유묵을 기증한 분는 당포함 추모사업회 민병기 이사장이다. 그는 ‘청초당’은 “풀이 푸르게 돋은 언덕이라는 뜻”이라면서 “봄에 풀이 푸르게 돋아나듯 우리나라에 독립이 곧 다가올 것이라는 안 의사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유묵은 민 이사장의 부친인 고(故) 민 장식 전 국회의원이 1945년 8월 광복 직후 흥남 비료공장에서 근무할 당시 일본인으로 부터 구입한 것이며 해군사관생도와 장병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호국의식 함양을 위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기증하게 되었다. 민 이사장은 “지난해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의 ‘안중근 의사의 의거 100주년 기념 유묵전’에 청초당을 대여하고, 그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면서 “유묵전을 둘러보면서 작품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했다. 많은 시민들이 안 의사의 유묵 앞에서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이 작품은 내가 소장하고 있지만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소유’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기증한 동기를 밝혔다. 안 의사는 우리가 100년 동안 독립영웅이나 참 군인으로 알고 있는 것 외에도 학교를 세우고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해 민중을 무지에서 일깨운 교육계몽 운동가다. 한편으로는 순국 직전까지 피아 구별 없이 합심 협력해서 기필코 동양평화를 이루고자 염원했던 평화주의자이기도 했다. 민 이사장은 “안 의사는 우리 국민 뿐 아니라 중국인들의 존경도 한 몸에 받았다. 중국의 국부(國父)였던 손문(孫文)도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직후 중국을 대신해 원수를 갚아준, 살신성인의 영웅이라 극찬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안 의사의 유묵은 대부분 여순 형무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난 후 일본인 검찰관이나 판사, 간수, 변호사, 통역 등의 부탁으로 쓴 것”으로 “안 의사의 글씨는 서체의 외형적 의미보다 글씨 속에 투입된 정신의 모습, 서체의 내면적 세계가 훨씬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 민병기 당포함 추모사업회 이사장이 경건하게 39명의 순직한 고인들을 추모하고 있다

당포함 추모사업회 발족
해군에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기증한 민병기 이사장은 진정한 해군이다. 3년 남짓 해군사관학교 교수부 교관과 해군 기상장교 생활을 했던 그는 어느 누구보다 해군을 사랑한다. 그런 그가 현재는 당포함 추모사업회 이사장으로서 당포함 추모사업회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민 이사장은 “선량한 우리의 어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1967년 1월19일 동해에서 북한군의 포격으로  해군장병 39명이 숨졌던 당포함 침몰 사건은 오늘날 우리가 꼭 기억하고 음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포격으로 침몰한 당포함은 함정에 탄 병사들의 절반이 산화했으며, 사건이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발생해 시신마저 찾기 어려워 전 국민들이 울분을 토했다. 해군 간부후보생 시절 당포함에서 교육을 받았고 , 당직 근무를 하던 날 사건이 일어나  당포함에 대해 더 각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민병기 이사장은 젊은 청춘을 조국의 어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작전중 순직한 39위의 병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2009년1월19일 당포함 추모사업회를 발족했다. 그는 “미국이 진주만 사건을 기억하듯이 당포함 사건을 통해 우리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높이고 싶다”면서 제8대 해군참모총장직을 역임한 예비역 해군대장 김영관(해사1기)씨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당시 당포함 부함장 생존자 황중식소령(해사11기)와 갑판사관 홍대일소위(해사20기)와 힘을 합쳐 추모사업을 펼쳐 젊은이들에게는 조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르게 심어주어 일찍이 산화한 장병들의 고귀한 뜻을 되살리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에 지금까지는 당포함 침몰 뒤 생존한 35명의 장병과 그 유가족들 함께 매년 1월 19일 국립서울현충원 21묘역에 모여서 전우들의 묘비를 닦으며 무덤 앞에서 추모식을 열어 왔다.
민 이사장은 “요즘 젊은이들의 안보 불감증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40여 년 전 잊혀진 ‘당포함 사건’처럼 ‘천안함 피격사건’이나 ‘제1·2 연평해전’은 5000만 우리 국민 모두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땅에서 다시는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 국민들의 호국의식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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