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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 7년 5개월만에 막 내린 이라크 전쟁
전쟁 종료 선언 후에도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2010년 10월 06일 (수) 09:00:40 뉴스메이커 webmaster@newsmaker.or.kr

지난 8월 31일로 이라크에서 미군의 전투 병력이 모두 철수하고, 2003년 3월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7년5개월 만에 공식 종료됐다. 버락 오바마(Obama) 미 대통령은 8월 31일 제1기갑사단 본부가 있는 텍사스주의 ‘포트 블리스’를 방문하고, 대국민연설을 통해 이라크 전쟁활동 종료를 선언했다.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8월 28일 주례(週例) 라디오 연설을 통해 이를 확인한 후, “내년 말까지 현재 이라크에 남아 있는 비전투 미군 5만명도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또 이라크전 참전 용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부상자들에 대한 치료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 이라크 전쟁 활동 종료 선언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전투 종료 임무 선언에 따라 개전 7년 5개월 만에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라크전은 잠재적 군사위협을 이유로 선제 억지 개념을 적용한 최초의 전쟁으로 개전 이전부터 많은 논란을 낳았다. 1991년 걸프전, 1999년 코소보전, 2002년 아프가니스탄전 등 미국이 개입한 대규모 전쟁 선례는 도발을 단행한 세력에 대한 사후응징의 형식이었지만 이라크전은 대량파괴무기와 테러의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한 사전응징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주도의 연합군은 국제적인 반전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엔의 승인도 없이 2003년 3월 20일 이라크에 대규모 공습을 퍼부으며 전쟁을 시작해 ‘침략전쟁’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개전 후 ‘충격과 공포’ 작전을 통해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정밀유도폭탄 등 첨단 무기를 동원한 연합군의 ‘족집게 폭격’ 앞에 이라크군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바그다드를 함락한 미군은 4월 9일 바그다드 알 피르다우스 광장에 있던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동상의 얼굴에 성조기를 덮어씌운 뒤 밧줄로 동상을 끌어내렸다. 이는 중동의 맹주를 꿈꾸던 후세인의 24년 철권 통치에 종말을 고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전쟁 개시 한 달 여 만인 5월 1일, 걸프해역에서 미국으로 귀환 중인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호에 전투기를 타고 내린 뒤 주요 전투의 종료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같은 해 12월 13일에는 후세인이 자신의 고향인 북부 티크리트 인근 지역의 참호 속에서 숨어 지내다 미군에 체포됐고 결국 2006년 12월 30일 교수형에 처해져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후세인 정권의 몰락은 이라크 시아파와 수니파 간 종파 분쟁의 판도라 상자를 연 셈이 됐다. 1932년 이라크 건국 이후 늘 집권세력이었던 수니파는 후세인 정권 붕괴로 시아파에 권력을 내준 뒤 권력 요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이는 수니파와 시아파 간 갈등이 격화되는 단초를 제공했다. 급기야 2006년 2월 23일, 시아파 성지인 아스카리야 사원의 황금돔이 폭탄공격에 파괴되면서 시아-수니파 간 종파 분쟁은 내전 상황으로 치달았다. 공격 배후에 수니파가 있다고 의심한 시아파의 비밀 무장요원들은 보복에 나섰고 이로 인한 동족 간 피의 살육은 이듬해까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천명의 이라크인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막대한 군사, 재정 투입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상황이 내전국면으로 치닫자 반전 여론이 다시 거세게 불어 닥쳤지만 부시 행정부는 2007년 2월 병력을 증파하며 이라크 안정화 작전에 돌입했다. 미군의 병력 증파는 결과적으로 내전 상태의 바그다드를 안정화하고 안바르 등 수니파 거점 지역에서 무장 투쟁을 무력화 하는 데에도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라크의 민주주의도 힘겹게 싹을 틔워 갔다. 2005년 1월 30일, 50년 만에 자유선거 방식으로 제헌의회 총선이 치러졌고 이듬해 5월에는 이라크 건국 이후 최초로 시아파 정권인 누리 알-말리키 정부가 출범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 일정이 구체적으로 윤곽이 잡힌 것은 2008년 12월 미-이라크 안보협정이 승인되면서부터다. 2011년 12월까지 당시 15만명에 이르렀던 병력 전체를 완전 철수한다는 내용의 이 협정은 이라크전 종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았다. 결국 지난 8월 19일 이라크 주둔 마지막 전투여단이 철수를 마쳤고 오바마 대통령은 8월31일 대국민 연설을 통해 전투활동 종료를 선언했다. 사실상 전쟁 종료 선언이지만 떠나는 미국이나 남겨진 이라크 모두 후유증은 심각하다. 미국은 대량파괴무기(WMD) 제거, 알-카에다 등 테러 세력 색출, 이라크 민주주의 정착 등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던 것 중 어느 것 하나도 달성치 못한 채 전쟁을 마무리하는 셈이 됐다. 이라크의 석유 등 자원은 미국 등 서방 동맹측 거대기업들이 대부분 장악하게 됐다. 이라크에 대량파괴무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고 알-카에다 세력은 최근에도 연일 폭탄공격에 나서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 후세인의 철권통치를 무너뜨리긴 했지만 이라크의 민주주의도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라크 또한 매달 수백명이 폭탄공격에 목숨을 잃는 참상과 새 정부 출범을 둘러싼 정국 혼란이 지속되고 있어 전후 재건의 길은 요원해 보이기만 한 실정이다. 이미 10만명에 가까운 이라크인의 목숨을 앗아간 7년 간의 전쟁은 이런 이유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미국의 전쟁종료 선언 후 예상 시나리오
미군 전투병력은 지난 8월 말 이라크를 떠났다. 이라크 내 미군 주요 기지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착착 정리돼왔다. 시리아 접경지대를 비롯한 ‘요주의 지역’을 남기고 바그다드 시내의 캠프들은 진작 폐쇄됐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철군을 강행하고 있지만,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지난 8월 23일 미군 전역병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다소 혼란스러운 평가를 내비쳤다. ‘전후 이라크’의 미래와 중동 정세의 향방에 대해 미국조차 혼란스러워하고 있음을 보여준 단면이다. 미국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힘의 공백’이다. 이라크를 20여년간 철권통치한 사담 후세인은 전반 10년은 미국과 결탁하고, 후반 10년은 미국과 싸우며 아랍권의 맹주 노릇을 했다. 이란과 대적하고 시리아·요르단·터키와 거래했으며, 팔레스타인을 지원했다. 어찌 보면 미군이 이라크를 떠나면서 가장 우려해야 할 대목은 아이러니하게도 ‘후세인의 빈자리’다. 미국은 후세인을 몰아냄으로써 이란에 맞설 아랍의 방벽을 걷어버렸다.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가 철군을 앞두고 “이라크의 이웃나라들이 영향력 경쟁을 시작했다”고 보도한 연유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동쪽의 이란이다. 이미 지난 몇년 새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친미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의 영향력은 줄었고 이란의 입김이 강해진 것이다. 미국이 가장 우려했던 결과다. 시아파가 주류인 이라크 정부는 이란에 연고를 둔 자국 내 시아파 정치세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이에 따라 이란은 향후 중동정세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이라크 남쪽의 사우디는 이란의 팽창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북쪽의 터키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의 움직임에 극도로 민감하다. 서쪽의 시리아는 여전히 남아 있는 반미세력이자 중근동 정세의 지렛대다. 카네기중동센터의 정치분석가 폴 살렘은 DPA통신에 “이라크는 20년 동안 이란과 아랍 사이의 완충역을 해왔는데 이제는 사우디, 시리아, 이란, 터키 사이의 긴장을 부추기는 진원지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호시야르 제바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이웃나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영향력 싸움을 벌인다면 제로섬 게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지난 7월 초 바그다드 방문 때 이라크 정부에 “미국을 포함, 외부세력이 이라크의 운명을 결정하게 놔두지 말라”고 경고했다. 바이든이 나서서 ‘이라크의 자결권’을 촉구했다는 사실은 이라크를 둘러싼 역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폭발력도 무시할 수 없다. 권력기반이 약한 이라크 정부가 이슬람 세력에 기대는 순간, 종파분쟁과 극단주의 테러가 다시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으로 종교를 억누르고 있던 후세인의 세속정권을 축출해버렸다. 후세인의 오른팔이던 타리크 아지즈 전 부총리가 “지금 미군이 나가는 건 이라크를 늑대들에게 넘기는 꼴”이라 맹비난한 것은 또 하나의 역설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미군의 이라크 철수에 대한 견해
   

미군의 이라크 철수 일정에 대해서는 이라크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여전히 부정적 견해가 존재한다. 지금이 미군 철수에 적절한 시기라는 결론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라크의 정치적·안보적 상황이 안정되지 않은 가운데 미군이 이라크를 떠나게 됨으로써 힘의 공백이 생기고, 그 틈새로 이라크가 다시 혼란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라크 철군은 단순한 ‘도피’가 아닌 새로운 게임의 시작을 의미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4월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동의 분쟁과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미국 국가안보의 핵심적 이해와 직결돼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정책이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어떻게 다른가를 한마디로 보여주는 말이다. 부시 행정부 시절 중동정책의 핵심은 ‘중동 민주화’와 ‘자유의 확산’이었다. 9·11 테러를 자행한 이슬람 테러단체들은 중동의 전근대적 정치토양에서 만들어졌다는 인식이다. 부시 행정부가 중동 민주화를 위해 동원한 방법은 힘에 의한 민주주의 체제 이식이었다. 이라크 전쟁은 이 같은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은 사담 후세인의 철권통치를 종식시켰고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힘을 과시함으로써 리비아의 항복을 받아냈다. 하지만 힘을 통한 정복으로 중동을 완전히 개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중동정책은 전임 정부와 달리 중동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존스홉킨스대학의 파우드 아자미 교수는 “오바마는 이슬람의 세계와 중동의 기존 질서를 받아들임으로써 중동과 화해하려는 정책을 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주의를 확산시켜 테러를 근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질서를 인정하고 적이 되지 않음으로써 테러를 피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공개된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는 이 같은 입장이 잘 나타나 있다. 보고서는 미국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줄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다극화되어가는 세계질서를 사실상 인정했다. 오바마의 중동구상은 부시 행정부가 시작한 2개의 전쟁이 너무 깊게 펼쳐진 탓에 시행시기가 늦춰져왔다. 당장 이라크에서 철수하겠다던 공약은 대통령이 된 뒤 ‘단계적 철수’로 변했다. 이후 보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철수전략을 수정했고, 결국 가장 나은 시점을 골라 ‘전투임무를 종료’하는 것으로 이라크전쟁을 사실상 마감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도덕성과 권위를 떨어뜨린 전쟁을 끝냄으로써 집권 후반기 중동정책을 자신의 구상대로 가져가기 위한 시동을 건 셈이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여전히 중동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라크 철군도 아프가니스탄에 더 많은 병력을 보내기 위한 ‘재배치’에 가깝다. 아프간 전쟁에 발목이 잡혀 있는 한 오바마의 중동정책은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라크 탈출’로 시작된 오바마의 새로운 시도는 여러 가지 난관을 안고 있다. 아프간전이 계획대로 마무리 수순을 밟아야 하고, 이라크는 미군의 재개입이 필요없는 상황이 지속돼야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건 물론, 이란 핵문제가 평화적 해법의 궤도 위에 올라야 한다. 이 같은 시도가 실패하고 미국의 안보가 심각하게 위협을 받는 상황이 된다면 미국은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은 ‘발톱’을 감추었을 뿐 여전히 미국의 압도적 군사력 유지를 지지하고 있다. 선제공격 전략 역시 완전히 포기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치안 안정화 등 수많은 과제 해결해야
미국의 전투 임무 종료에 따라 사실상 전후 시대를 맞이한 이라크는 치안 안정화와 종파 간 갈등 해소, 전후 재건 등 수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과제보다 더욱 시급한 당면 과제가 바로 새 정부 출범이라는 점에는 이라크는 물론 미국에서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8월 31일(현지시간) 전투임무 종료를 알리는 공식 연설에서 이라크 지도자들에게 새 정부 출범 작업을 조속히 마무리해줄 것을 촉구했다. 새 정부 출범을 위한 이라크 정치권의 협상은 지난 3월 7일 총선 이후 6개월 가까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누리 알-말리키 총리의 임기 만료일인 지난 5월 20일 이전에 신임 총리와 대통령 선출, 내각 구성 과정을 거쳐 새 정부 출범이 마무리됐어야 하지만 정파 간 권력 다툼으로 인해 새 정부 출범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정쟁의 핵심은 이라크의 실권자인 총리를 누구로 지명할 것이냐에 집중돼 있다. 집권당인 ‘법치국가연합’은 말리키 총리가 연임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시아-수니 정당연맹체 ‘이라키야’는 자기 정당의 수장인 이야드 알라위 전 총리를 총리로 지명해야 한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총선에서 325석 중 91석을 확보하며 1위를 기록한 이라키야는 총선 다수당이 총리 지명권을 갖게 되는 헌법 조항을 근거로 알라위 전 총리가 신임 총리가 되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니파 밀집지역에서 높은 득표율을 보였던 이라키야는 알라위가 총리에 오르지 못할 경우 수니파 국민의 반발로 종파 분쟁이 재발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며 상대 진영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총선에서 불과 2석 차이로 2위를 차지한 법치국가연합은 “총리 지명권은 최대 정치블록이 보유한다”는 대법원 유권해석을 근거로 말리키의 연임을 추진하고 있다. 법치국가연합은 총선 3위 정당인 이라크국민연맹(70석)과 시아파 최대 정치블록 결성에 합의했기 때문에 총리 지명권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한 치 양보 없는 양대 정당의 집권 경쟁은 결국 권력을 어떻게 적절히 배분하느냐에 따라 판가름 날 전망이다. 2006년 당시에도 총선 이후 5개월간 새 정부 출범이 지연됐지만 종파 간, 종족별 권력 안배에 따라 새 정부가 출범할 수 있었다. 당시 총리직은 총선 다수당인 통합이라크연맹(UIA) 출신 말리키(시아파)에게 돌아갔지만 대통령에 쿠르드족 지도자인 잘랄 탈라바니를, 부통령에 시아파와 수니파 인사를 각각 1명씩 임명하는 방식으로 권력 배분이 이뤄졌다. 내각 역시 시아파와 수니파 장관들이 적절히 참여하는 거국 내각 형식으로 구성돼 의회 승인을 통과할 수 있었다. 새 정부 출범 협상은 이슬람권 금식월인 라마단이 끝나는 10월 중순 이후 다시 본격화될 전망이다.
   

미군의 철수 이후 이라크 정부와 국민 반응 엇갈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전투병력 철수 이후 치안 상황에 대한 전망이 이라크 정부와 국민 사이에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미군 전투병력 없이 자국 군과 경찰만으로도 충분히 치안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반면, 국민들은 미군의 공백으로 무장세력의 폭탄공격이 더욱 기승을 부리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는 8월 31일 “(미군 전투임무가 종료되는) 오늘 부로 우리의 군과 경찰은 우리 나라의 안보와 국방을 책임지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말리키 총리는 “나는 이라크 치안당국이 치안 유지에 완벽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확신한다”며 이라크 군·경의 치안 유지 능력에 신뢰를 보냈다. 이라크를 방문 중인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도 “언론 매체들이 폭력사태가 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은 매우 다르다”며 “(이라크 치안) 상황은 훨씬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다수 이라크 국민들은 미국과 이라크 정부 관리들의 낙관적 전망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바그다드에 사는 모하메드 후세인 압바스는 AP통신을 통해 “지금 미군 전투병력이 철수하기에는 치안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며 “이라크 새 정부가 구성되고 그 후에 철수해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사인 조하이나 모하메드도 “지금은 (미군 철수 시기로) 적절한 때가 아니다”라며 “이라크 새 정부 출범은 지연되고 있고 치안은 악화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라크 치안은 시아파와 수니파 간 종파 분쟁이 내전 상황으로 치달았던 2006∼2007년과 비교하면 크게 개선됐지만 무장세력의 폭탄공격은 여전히 계속돼 올해 들어서도 매달 이라크인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특히 알-카에다 연계조직인 ‘이라크 이슬람국가(ISI)’는 최근 1주일 사이 56명을 숨지게 한 전국적 공격이 자신들의 주도 하에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미군 전투병력 철수 이후 공세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8월 31일 전투병력 철군 작업을 종료했으며 비전투병력 5만명은 이라크 군·경에 대한 교육 및 훈련 임무를 수행하고 내년 말까지 완전 철수할 방침이다.

전쟁 종료 후에도 미군의 개입은 여전
오바마 대통령의 전쟁 종료 선언 후 미군은 이라크 내 전투 임무에서 손을 뗀 지 5일만에 다시 바그다드에서 벌어진 교전에 개입했다. 외신들은 9월 5일(현지시간) 바그다드에 있는 군 기지를 공격한 반군들과 이라크군이 싸우는 과정에서 12명이 사망했고 20명 이상이 부상당했으며, 미군의 개입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BBC>와 <AP> 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이날 적어도 5명의 인원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소재 이라크군 11사단 사령부를 공격했다. 이들 중 1명이 사령부로 통하는 검문소에서 폭발물을 터트려 자신이 몰았던 미니밴과 함께 폭파됐으며, 자살 폭탄 조끼를 착용한 4명은 기지를 향해 돌진했다. 이들 중 2명은 두 번째 검문소를 통과하기 전에 총에 맞아 사망했으며, 나머지 2명은 기지 진입에 성공해 이라크 보안 수비대를 공격했다고 <BBC>는 전했다. 이들은 실탄이 바닥날 때까지 총을 난사하고 나중에는 폭탄 조끼를 스스로 터트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군은 미군에 헬리콥터와 무인정찰기, 폭발물 전문가 등의 지원을 요청했다. 또한 이라크군 훈련을 위해 기지에 주둔하던 미군과 습격한 반군들이 서로를 향해 발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라크군 훈련이나 무기 사용에 관한 지도 등 전투 외 임무만을 수행한다던 미군이 다시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은 앞서 지난 8월 31일 7년 5개월간 끌어 왔던 이라크 전쟁의 종료를 공식 선언했으며 5만 명 규모의 지원 병력만을 남겨두고 자국군을 철수시켰다. 전쟁 종료를 선언하던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제 이라크 국민이 자기 나라의 안보에 대한 책임을 주도해야 한다”며 이라크 정부가 반군의 공격에 대한 방어 능력을 갖췄다는 전제를 깔았다. 이에 따라 남아 있는 미군은 이라크의 치안 유지에 보조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한정되지만, 이번 반군 공습 사건에서 드러났듯 여전히 미군의 주도적인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외에도 지난 3월 총선을 치렀음에도 여태까지 새 내각이 구성되지 못하고 있는 정치적 상황, 시아파와 수니파 간 뿌리 깊은 종파 갈등 등 이라크의 혼란이 미국의 발목을 묶어 두는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미국이 전쟁 종료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하더라도 당분간 이라크에서 손을 떼긴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어바인(UCI)의 마크 레빈 교수(중동사)는 지난 9월 1일 범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 인터넷판에 기고한 글에서 “이라크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모두 돌려받기까지 미국과 미군은 상당한 힘을 떨치며 이라크에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 미국의 전쟁 종료가 갖는 모순을 지적한 바 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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