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 사건’ 희생자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7월 27일 서울중앙지법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다 탈레반에 납치돼 사망한 故 심상민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3억 5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소장에서 “정부가 여권 사용을 제한해 아프가니스탄 방문을 막았어야 한다”면서 “선교단이 납치된 지 3일 만에 정부협상단이 현지에 파견됐으나 별다른 성과 없이 심상민씨가 사망했다.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의무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또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전쟁, 내란 등으로 위험지역이었다. 정부는 ‘왜 그곳에 갔느냐’고 묻기 전에 여권 사용을 제한해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는 것을 막았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이어 “당시 정부는 종합대책반을 편성해 협상을 진행했으나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고, 사망 경위 등도 거의 밝혀지지 않아 (정부의) 협상력에 의구심이 든다”며 “더 노력했더라면 살해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 ‘아프간 피랍 사건’ 희생자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되고 있다.

2007년 아프간 피랍 사건
지난 2007년 아프간 피랍 사건이 발생하기 전, 정부는 아프간을 ‘위험국가’로 지정, 입국을 금지하고 아프간 봉사활동단체선교단체의 아프간 방문에게 대해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특히 정부는 샘물교회 선교단에 출국 직전 몇 차례나 위험을 경고했으나 선교단은 ‘죽음을 각오했다’는 유서를 작성한 뒤 떠났다. 이후 분당 샘물교회 선교단 23명은 현지시각으로 지난 2007년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칸다하르를 향해 버스로 이동하던 도중 가즈니 주 카라바그 지역에서 현지 무장세력인 탈레반에 납치됐다. 피랍된 23명 중 배형규 목사(당시 42세)와 심성민(당시 29세)씨는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해 피살됐으며, 인질 석방 협상 과정 중 탈레반 측은 여성 인질들의 육성을 공개하는 등 치밀한 심리전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샘물교회 선교단 23명을 납치한 탈레반은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으면 인질들을 살해하겠다는 위협을 가했다. 수차례에 걸쳐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자 우리 정부는 탈레반과의 직접 협상에 나섰다. 피랍 26일째인 2007년 8월 13일 탈레반은 남은 21명의 인질 중 2명의 여성을 석방시켰으며 피랍 41일째인 8월 28일 남은 인질 19명의 전원 석방에 합의해, 2007년 9월 2일 피랍자 19명은 한국으로 생환했다. 당시 뉴스위크 인터넷 판은 아프칸에서 피랍된 한국인 인질들의 석방을 위해 우리 정부가 탈레반 측에 400만달러의 몸값을 지불했다고 보도했다. 뉴스위크는 탈레반 고위 지도자인 우스타드 야시르가 파슈툰어 잡지 아파크와의 인터뷰를 통해 몸값을 받고 한국인 인질들을 석방했음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야시르는 인터뷰에서 “만약 아무런 보상없이 그들(인질)을 풀어줬다면 (인질 납치는) 무의미한 일이었다”며 “그들을 석방시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몸값을 지불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신변 안전을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또다른 탈레반 지도자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인질 1인당 최소 400만달러의 몸값을 지불했다고 주장했다. 이 탈레반 지도자는 이어 몸값이 파키스탄의 국경도시 케타에서 탈레반측에 현금으로 전달됐다고 구체적으로 전했다. 그는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보부가 인질 억류 당시 가즈니주의 국제적신월사에서 진행된 석방 협상 과정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값 지불은 케타에서 비밀리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가즈니주 탈레반 관계자는 “인질 몸값 중 35%는 지역 탈레반 활동자금으로 쓰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탈레반 최고 지도자 물라 무하마드 오마르가 이끄는 탈레반 집행위원회에 전달됐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아프간 피랍 사태 종결 이후 샘물교회를 상대로 실제 부담원칙에 따라 정부가 납부한 항공료와 시신 운구비용·후송비용·호텔사용료 등 총 5천 700만원을 청구한 바 있다. 하지만 아프간에 파견된 공무원들의 출장비용, 협상금 등 사태 해결 과정에서 소요된 일체의 경비에 대해서는 위법 행위나 채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와 무관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청구비용에서 제외했다. 
한편 지난 7월 국민일보는 2007년 7월 19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됐던 분당 샘물교회 봉사단원 23명을 구해내기 위해 피랍자 가족들이 몸값을 지불했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관계자들은 “엄청난 금액을 가족들이 마련했고, 막후 협상 때 국정원이 그 돈을 전달했다”고 이 신문에 말했다. 한 관계자는 “보상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1인당 10억원의 몸값이 지급됐다는 말이 나왔다”며 “하지만 실제 금액은 이보다 적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족들이 은행 대출 등을 받아 비용을 마련했지만 부족한 금액은 교회에서 도와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가족과 교회 측은 확인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앞서 아프간에서 사망한 고 심성민씨의 부친 심진표씨는 2008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국내 한 은행으로부터 200억원가량을 빌려 탈레반과 협상을 진행했고, 피랍자 가족 대표와 교회가 돈을 갚겠다는 각서를 썼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은조 샘물교회 목사는 “우리는 국정원에 갚아야 할 돈이 없으며 정부와 우리 사이에 주고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 지난 2007년 아프간 피랍 사건이 발생하기 전, 정부는 아프간을 ‘위험국가’로 지정, 입국을 금지하고 아프간 봉사활동단체선교단체의 아프간 방문에게 대해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누리꾼들 “국가가 오히려 유족에 구상권 청구해야”
최근 아프간 피랍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출국 만류에도 불구하고 선교 활동차 아프간을 방문했다가 발생한 일인 만큼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블로그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소송을 제기한 유족들을 비판하는 글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누리꾼 중 일부는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출국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정부의 ‘아프간 여행 자제 안내문’ 앞에서 찍은 사진을 지적하며 “정부가 출국을 만류했는데도 출국을 강행한 건 신도들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면서 이번 유족들의 소송 철회와 더불어 정부가 2007년 아프간 피랍 당시 피랍자들의 석방을 위해 소모했던 탈레반 측과의 협상비용을 샘물교회와 피랍자 가족들이 반환할 것을 요구하는 서명운동도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 ‘하늘바다’는 “국가에서 (샘물교회와 피랍자 가족에) 구상권을 청구해야 할 판에 자신들이 국가에 배상을 청구하다니,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구상권이란 ‘타인을 대신해 채무를 변제한 사람이 그 타인에 대하여 가지는 상환청구권’을 의미한다. 또 다른 누리꾼 ‘이경희’는 “경고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즉 법 위에서 잠자는 이들까지 국민의 세액을 축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누리꾼 ‘하나요리’는 “아프간 피랍 사태 해결과정에서 원칙을 깨고 정부가 도와줘서 해외여행 시 납치에 대한 위험성이 더 커졌다. 선교랍시고 아이들에게 과자나부랭이 돌리며 강요하던 신앙 장면 사진들도 어이가 없었지만 어렵게 살려줬더니 국민에게 사과나 감사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쏙 숨어버린 파렴치함에 더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누리꾼들은 소송을 제기한 유족에 대한 비판이 ‘기독교 전체’로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누리꾼 ‘흠’은 “이번 소송은 유가족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한 것인데 기독교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고 했으며, 누리꾼 ‘tlagPdus’는 “이번 소송은 A씨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것이다. A씨의 유족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알고 있다. 물론 샘물교회가 그 곳에 간 사실에 대해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생각하지만 이번 소송 건으로는 욕을 먹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가의 재외국민 보호 의무 논란에 불 지펴
현재 미국 등 세계 각국은 테러단체와 협상을 하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더 큰 희생을 불러일으킨다는 판단에 따라 협상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2007년 아프간 피랍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당시 우리 정부는 ‘테러단체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불문율을 포기해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납치발생 지역에서 납치단체와 정부가 직접 협상을 벌인 것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정부가 이처럼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긴다는 점을 인지했으면서도 직접 협상을 강행한데는 국제사회 원칙보다 국민 생명보호가 우선이라는 입장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는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가 살해된 뒤부터 탈레반과의 대면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교섭전략을 바꿨다. 이번 아프간 피랍 희생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국가의 재외국민 보호 의무에 대한 논란이 확대될 전망이다. 2007년 아프간 피랍사태 발생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슬람권과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는 우리외교의 불모지대나 마찬가지였다. 아프간 피랍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에도 아프간에는 외교관 3명만이 나가있는 상태였다. 특히 당시 한국인들을 납치, 억류했던 곳으로 알려진 가즈니 지역은 탈레반에겐 남부지역에서 수도인 카불로 가는 관문이며 봉사단이 가려했던 칸다하르와 더불어 현지인 사이에서도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이에 정부는 2007년 2월 탈레반이 수감 중인 동료들의 석방을 위해 한국인을 납치하려고 한다는 첩보를 입수해 ‘아프간 여행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한민족복지재단 등 아프간 봉사활동단체에 보낸 바 있다. 샘물교회 측은 정부의 여행자제 공문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봉사대원을 모집했고, 비자발급이 어렵자, 한민족복지재단 봉사대원 자격으로 비자를 발급받았다. 이에 대해 교회 측은 “허가 없이 출국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피랍자들은 출국 전날까지도 만약 외통부나 현지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떠나지 않을 계획이었다. 사전에 협의를 거쳐 결정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이 출국할 당시에는 위험국가에 대한 방문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여권법 개정안 시행령’이 발효되기 이전이어서 정부로서도 이들의 출국을 법적으로 금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2007년 아프간 피랍 사건 발생 이후 같은 해 8월 정부는 여권사용에 대한 제한 규정을 고시했지만 전문가들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헌법 제2조 2항에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으나, 현재는 ‘여권법’을 통해 천재지변·전쟁·테러 등이 벌어진 나라에 대해 여권 사용을 제한하도록 하고 있을 뿐 별도의 법은 없는 상태다. 이에 정부는 ‘재외국민보호법(가칭)’의 연내 제정을 목표로 법안 성안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04년 故 김선일씨 피랍 살해사건을 계기로 본격 논의가 시작된 재외국민보호법에 관한 입법 논의는 매번 해외체류 국민의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그동안 정부는 “검토해보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일부 국회의원은 재외국민보호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재외국민의 범위나 정부 역할 범위에 대한 논란으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현재 정부가 마련 중인 법안에는 재외국민보호위원회의 설치 및 재외국민보호계획의 수립과 정부 대응체계의 구축 등 기반 조직·보호 활동 원칙에 관한 사항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논란이 되고 있는 이번 ‘아프간 피랍 사건’ 유족의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향후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