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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변천사 한눈에국민과 함께 하는 광복70년 기념사업
2015년 08월 09일 (일) 21:22:57 신세영 기자 ssy@newsmaker.or.kr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고국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던 안중근 의사. 그의 간절한 바람대로 대한민국은 광복을 이뤘고, 어느새 7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신세영 기자 syshin@

   
▲ 5월 1일 오전 서울 노원구 화랑로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광복 70년 기념 ‘안중근 장군 동상 제막식’에서 안중근 장군 동상이 공개되고 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은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50년 6·25전쟁과 1960년 4·19 혁명, 1970년 새마을운동,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3년 KAL기 피격사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개최,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남북 정상회담,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 2005년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2010년 천안함 피격, 2014년 세월호 침몰 등 감격과 시련의 순간들을 겪었다. 올해는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의 기쁨을 맞이한 지 꼭 70년이 되는 해이다. 그간 우리는 분단의 아픔과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극복하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하며 세계인의 찬사를 받는 기적을 창조했다. 그러나 영광의 이면에는 70년간 계속된 분단 현실과 그로 파생된 사회 분열과 갈등이 존재하는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이에 정부는 광복 70년을 맞아 민·관이 함께하는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위원회)를 구성해 우리 국민들이 이룩한 역사적 성취를 기리는 동시에 미완의 과제 해결을 위한 범국민적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지난 4월 광복 70년 주제어(슬로건)로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을 확정했다. ‘위대한 여정’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 전쟁의 폐허 위에서 국민의 노력으로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함께 달성해 무역 1조 달러를 이룬 세계 8대 무역강국, 동·하계 올림픽 유치와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 전 세계에 한류를 수출하는 문화강국이자 세계 7번째의 30-50 클럽(3만불-5천만 국민) 가입을 눈앞에 둔 광복 70년의 대한민국의 역사를 표현했다. 위원회는 “이러한 성취를 이뤄낸 민족적 역량과 자부심을 바탕으로 국민이 하나 되어 선진문화국가와 광복이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 통일국가의 디딤돌을 만들자는 뜻으로 ‘새로운 도약’을 대구로 사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광복 70년, 국민 참여로 열기 후끈
   
▲ 광복 70년 기념 ‘통일박람회 2015’ 개막식이 열린 5월 29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내빈들과 통일부 어린이기자단이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비둘기 모양의 풍선을 날리고 있다.
광복 70년을 기념하는 50개 사업이 최종 확정됐다. 5월 28일 ‘광복 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제3차 위원회 회의를 열고 ‘광복 70년 기념사업 추진 계획(안)’을 의결했다. 위원회는 그동안 국민을 비롯해 중앙부처, 위원,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받은 제안 560여 건에 대한 전문가 의견 수렴과 분과위원회별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4월 9일 기본계획을 마련했으며, 이를 토대로 부처별 사업 구체화와 추진에 필요한 예비비 약 112억 원도 확보했다.

위원회는 기념사업의 성격에 따라 7대 분야에 역점을 두고 추진할 방침이다. 민족정기 고양과 역사의식 확립을 위한 기념·선양 사업을 기획·추진하고, 국권 회복을 위한 선열들의 노력을 체계적으로 조명한다. 이를 위해 서울 서대문 역사공원에 ‘독립 명예의 전당’을 건립해 국민이 쉽게 찾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현재 서대문 역사공원에는 약 2800분의 독립유공자 위패를 모시는 독립관이 있지만 장소가 협소해 더 이상 모실 공간이 부족하다. 이에 독립운동가 2만여 명의 위패를 봉안하는 시설로 확대한다. 항일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던 임시정부 청사들의 재개관도 올해 안에 추진할 계획이다.

   
▲ 입구에서 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는 ‘9·3 중국 항일전쟁 승리 기념일’에 맞춰 재개관 행사를 연다. 이 행사에는 8월 3일~9월 3일 충칭에서 상하이까지 임시정부 이동 경로를 따라 약 1700km를 달려온 한·중 자전거 대행진 행사팀이 도착해 합류할 예정이며, 충칭 임시정부 청사도 ‘11·17 순국선열의 날’에 맞춰 다시 문을 연다. 독립운동가 1만6000여 명의 활동을 심층적으로 정리하는 <독립운동가 인명사전> 편찬은 5개년 계획으로 추진한다. 인명사전이 완성되면 광복 60년 기념사업으로 추진된 <독립운동사 대계> 편찬에 이어 독립운동 관련 기록에 대한 종합적, 체계적 정리가 마무리된다. 위안부 피해 역사도 집대성할 계획이다. 위안부 피해자의 구술 증언과 정부 백서를 발간하고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추진한다. 광복 70년 역사를 조명하고 국민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한국경제발전관’이 건립된다. 서울 동대문구 홍릉연구단지에 있는 옛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건물을 리모델링해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된 과학기술, 교육, 경제정책의 역사를 정리해 전시하고 국민교육의 장소, 국제 교류의 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광복절 행사, 국민 화합과 축제의 장으로 승화
광복절 행사는 국민 화합의 축제로 진행된다. 윤호진 총감독 기획으로 전야제에서 대한민국의 역동적 에너지를 결집하고, 중앙경축식을 통해 광복 70년 대한민국의 역량과 미래 비전을 대내외에 알린다. 전야제는 빛을 소재로 대한민국의 위대한 여정과 새로운 도약을 담아내는 메인 축제로 연출한다. 광화문과 독도, 비무장지대(DMZ), 해외 주요 거점 등을 연결하고 미래 주역인 젊은 세대가 다양하게 참여하는 행사로 기획된다. 중앙경축식은 광복 70년과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 국내외 독립운동가, 다문화가족, 북한이탈주민, 인터넷을 통해 선발된 대표성을 지닌 국민들이 참석하는 국민 통합의 장이 될 전망이다. 세계 18개국과도 연결해 해외 경축 행사를 지원함으로써 한민족이 하나 되는 계기를 만든다. 중앙경축식이 끝난 광복절 오후엔 ‘국민 화합 대축제’로 광화문 광장을 차 없는 거리로 만들어 국민들 스스로 광복의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참여 행사를 마련한다. 9월에는 국민 화합을 위해 아리랑 대축제, 독립기념관 음악회 등도 개최할 예정이다.
   
▲ 안중근 의사

한편, 광복70년 홍보 서포터즈 ‘광복드림팀’이 지난 7월 7일 서울 ‘안중근의사 기념관’에서 공식 출범식을 갖고 본격적인 홍보활동을 시작했다. 올해 말까지 개인 블로그와 SNS 등을 통해 광복 70년 기념행사를 홍보하는 역할을 맡은 ‘광복드림팀’에는 10대부터 80대까지, 학생·직장인·주부 등 각계각층의 국민 70명이 참여했다. ‘광복드림팀’은 출범식을 마친 뒤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해 ‘광복70년을 계기로 국민이 하나 되어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이루자’는 내용의 카드섹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정종욱 위원장은 “광복70년 기념사업은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된다”며 “앞으로도 국민들이 쉽게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와 캠페인을 마련해 광복70년이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축제의 장이 되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공병우 타자기에서 포니, 나로호까지… 과학기술 70선
광복 이후 국민생활을 변화시킨 우리나라의 대표 과학기술은 어떤 것이 있을까. 미래창조과학부는 광복 70년을 맞이해 광복 이후 국가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과학기술의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광복 70년 대표성과 70선’을 발표했다. 대표성과 70선은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기념사업으로 선정된 7월 28일부터 8월2일까지 고양시 킨텐스에서 개최되는 ‘과학창조한국대전’에 전시될 예정이다. 70선은 지난 70년 간의 성과 중 국가 경제발전 기여도가 큰 과학기술 성과를 중점으로 선정됐으며, 개인적으로 우수한 업적을 이룬 과학자들의 연구성과(70선 중 5개)도 포함됐다. 리-아이링이론(화학, 이태규), 산림녹화 임목육종(현신규), 리군이론(수학, 이임학), 게이지이론의 재규격화(물리학, 이휘소), 한탄바이러스백신(이호왕) 등이 그것이다.
   
▲ 밀가루 배급을 타가는 광부 가족(1964년)
광복 후 40~50년대는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을 통한 성과보다는 기관이나 개인 차원의 연구 성과가 나타나는 시기로, 황폐한 민둥산을 푸르게 만드는데 기여한 현신규 박사의 ‘산림녹화 임목육종’, 한글 기계화의 효시‘기계식 한글타자기(공병우 타자기)’등 5개의 성과가 인정됐다.

60년대는 과학기술전담부처와 과학기술연구기관이 설립되고, 정부 주도로 농업과 초기 공업화 진흥정책이 추진된 시기로, 채소 종자의 자급기반을 마련한 ‘우장춘 박사의 일대잡종 배추 품종’, 화학장치산업 발전의 모태가 된 ‘화학비료 생산기술’, 섬유업계의 혁신을 부른 ‘나일론 생산기술’ 등 8개의 성과가 차지했다. 70년대는 조국근대화 경제개발 정책과 함께 자동차·조선, 토목건설 등 중화학공업 육성이 본격화된 시기로,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국산차(포니)’, ‘초대형 유조선’, ‘경부고속도로’, 주곡자립 달성으로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한 ‘통일벼’ 기술 등 9개 성과가 뽑혔다. 80년대는 정부의 기술드라이브 정책과 함께 연구개발 지원 규모가 대폭 확대되고 민간의 개발 활동도 활발해지는 시기로, ‘디램(DRAM) 메모리 반도체’, ‘국산전전자교환기(TDX) 상용화’, 감염병 예방의 효시 ‘한탄바이러스백신’ 등 17개의 성과가 선정됐다.

90년대는 탈추격형 기술혁신 논의가 활발해지고 신산업 창출을 위한 통신, 생명공학 기술과 우주·원자력 등 거대과학기술 개발 노력이 본격화된 시기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기술 상용화’, ‘라이신/핵산 발효기술’, ‘우리별 인공위성’, ‘한국형 표준원전(KSNP)’ 등 10개다. 이어 2000~2010년대는 글로벌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정보통신기술(ICT)·바이오기술(BT)·나노기술(NT) 등의 신기술과 다양한 형태의 융·복합 기술 개발이 가속화된 시기로, ‘인간형 휴머노이드(휴보)’, ‘초음속 고등훈련기(T-50)’, ‘글로벌신약(팩티브)’, ‘나로호’, ‘대한민국표준시(KRISS-1) 제정’ 등 21개 성과가 이름을 올렸다.

애국정신, 태극기에 실려 펄럭이다
   
▲ 한국 광복군 서명문 태극기(45년 등록문화재 제389호)
태극기는 1883년 공식적인 국기로 제정돼 일제강점기 탄압을 받는 순간에도 민족과 국가를 위해 가슴에 품고 손에 들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지금의 형태로 되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겪으며 국민의 소망을 소중히 품어온 태극기. 우리나라는 구한말 서구 열강과 외교 관계를 맺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라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국기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1883년 3월 6일 고종이 김홍집(1842-1896) 총리대신의 제안을 바탕으로 조선의 국기를 제정하기까지 태극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에 대한 설은 분분하나, 1882년 9월 박영효가 수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갈 때 처음으로 태극 문양과 4괘가 있는 국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항일독립운동가이자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였던 서재필(1864-1951) 박사가 1896년 4월 7일에 창간한 ‘독립신문’의 제호에는 항상 태극기가 함께 인쇄됐다. 어려웠던 시절 독자들에게 단결과 통합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당시 태극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발행될 때마다 그 모양이 달랐다. 독립신문뿐만 아니라 민족 독립 정신을 앞세워 발행된 ‘황성신문’에서도 태극기를 확인할 수 있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 외교권을 박탈당하면서 조선과 대한제국의 상징이었던 태극기는 일제에 의해 내려지게 되었다. 일제의 침략이 거세질수록 태극기가 지닌 민족 독립의 의미는 더욱 커져갔고 그만큼 탄압도 심해졌다. 한일강제병합이 이루어진 1910년에공식적으로 태극기 사용과 소지가 금지됐지만, 1919년 3·1 운동 당시에는 태극기를 대량으로 찍기 위한 ‘태극기 목판’이 제작돼 지역의 거리마다 태극기가 일시에 뿌려지기도 했다. 독립운동의 열기는 머나먼 이국땅에서도 끓어올랐다.

중국의 광복군 제3지대 2지구대에서 활동했던 문웅명은 1945년 2월경 광복군 동료에게 태극기를 선물 받았다. 여기에는 동료 대원들이 적은 글귀들로 빼곡했다.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동료와 헤어지는 아쉬움과 독립을 염원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태극기를 제작했는데, 오늘날 미국에서 진행된 독립운동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김구 선생은 1941년에 중국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려던 벨기에 출신 미우스 오그 신부를 통해 미국의 한인 교포들에게 망국의 설움을 면하고,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는 내용이 적힌 태극기를 보내기도 했다.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애국을 상징했던 태극기의 정신은 광복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10월 15일, 조선의 국기·대한제국의 국기·상해임시정부의 태극기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정식 국기가 제정되었다.

힘겹게 찾아온 광복, 영원히 잊지 못할 그날
   
▲ 두 동생과 빌렘 신부에게 유언을 남기는 안중근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 통치 36년 동안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러한 노력으로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기나긴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 광복을 되찾으며 감격적인 날을 맞이했다. 당시 세계의 여러 신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알리는 일본의 항복 소식을 머리기사로 다루었다. 미국 육군신문 「The Stars and Stripes」1945년 8월 15일자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내부적 시선에서 공식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1면에 크게 적힌 ‘WAR ENDS’가 눈에 띈다. 표제 아래에는 ‘트루먼 대통령이 (일본의) 완전 항복을 선언하다(Truman Announces Total Surrender)’라는 문구를 통해 전쟁의 종식을 알렸다. 우리나라에서는 8월 15일 정오, 일본 왕의 항복 방송이 울려 퍼졌다.

당일 이 항복 선언이 한국의 광복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었지만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은 그날 오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8월 16일 아침 사람들은 급하게 만든 태극기와 ‘조선 독립 만세’, ‘축 해방’ 등의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광복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은 ‘조선국 독립기념 메달’을 제작했다. 조선의 궁궐이 양각된 메달의 앞면 테두리에 ‘조선국(朝鮮國) 독립기념(獨立記念)’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어 광복 1주년이었던 1946년 8월 15일에 미군정청 체신부는 2종의 기념엽서를 발행했다. 이는 광복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엽서로 25전과 5전 두 가지로 구성됐다. 이 중 25전짜리 엽서의 앞면에는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며 행진하는 군중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기념적인 날인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나라는 그날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겼다.

   
▲ 종전 소식을 전하는 미국 육군신문(Newspaper of U.S Armed Forces), 조선국 독립기념 메달
광복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했던 기념우표와 엽서, 포스터, 서적 등에서 당시 느꼈던 광복의 기쁨을 엿볼 수 있다. 1946년 8월 15일에는 한반도 지도와 비둘기가 그려진 50전짜리 기념우표를 발행했다. 나라를 되찾은 기쁨을 기념하는 뜻으로 전국에 나무를 심을 것을 권장하는 ‘광복 기념 식목 포스터’를 발행하며 나무심기를 독려하기도 했다. 일제가 전쟁을 치르면서 모자란 화목(火木)이나 시설재목으로 쓰기 위해 일제강점기 동안 나무를 벌채해 가면서 만신창이가 된 우리나라의 숲을 복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광복을 회고하는 서적도 발간됐다. 1946년 당시 광주부윤(시장)이었던 서민호는 해방 1주년을 맞아 국제 정세와 혼란스러운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 「해방전후 회고」를 집필했다. 광복 전후의 주요 사건을 정리한 1부와 주요 사건 및 단체에 관한 자료를 정리한 2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을 통해 광복 1년 동안의 주요 정치적 사건과 정치 단체의 노선을 살펴볼 수 있다.

광복 70년은 ‘대한민국의 발전 70년’이자 ‘분단 70년’이라는 복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70년간 한국은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했다. 분단과 전쟁의 페허에서 현재 ‘세계 8대 무역국가’로 발돋움했으며, ‘국민소득 3만 달러’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취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70년간 남북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외적인 압축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불균형으로 이념, 지역, 세대 간 분열과 갈등이 여전하다. 6·25 한국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웠듯이 이제는 또 다른 100년을 준비해야 한다. 소통과 화합, 공존과 상생을 통해 국민대통합을 이루고, 나아가 남북통일의 인프라를 마련해야할 것이다. NM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인터뷰]

   
▲ 윤주경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민족긍지분과위원이 민족긍지 분야 역점 사업과 추진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매헌 윤봉길 의사(1908~1932) “아직은 우리가 힘이 약하여 외세의 지배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세계 대세에 의하여 나라의 독립은 머지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어마지않으며, 대한 남아로서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이 떠나가오.”(1932년 12월 19일 유언)
- 다음은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  윤주경 민족긍지 분과위원과의 일문일답

Q. 윤봉길 의사 장손녀로서 광복 70년의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들을 답사하며 늘 묻곤 했다. ‘왜 이역만리의 물설고 낯설은 이곳까지 오셔서 목숨을 내어놓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셨을까?’라고. 그것은 내 헌신이 헛되지 않게 또 다른 누군가가 뒤를 이어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이며 마침내 독립을 쟁취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반드시 독립을 쟁취해서 먼저 간 동지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손들은 독립된 나라의 국민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맘껏 꿈을 펼치며 살기를 간절히 소망하셨기 때문일 거다. 수많은 선열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광복을 맞은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의 현장에서 흘린 땀과 눈물을 통해 세계가 놀라는 대한민국을 이룩했고 선열들의 헌신에 보답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Q. 광복70년을 앞두고 독립기념관장으로서도 바쁘실 것 같은데?
   
▲ 해방조선 기념엽서

- 독립기념관장으로서 광복70년과 을사늑약 110년을 맞이해 다시 한 번 독립운동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되새겨보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학술연구, 전시, 교육 등 다양한 독립운동 선양사업을 계획·준비해 추진해 나가고 있다. 중국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의 관계자들과의 연석회의를 통해 독립운동사적지의 관리와 앞으로의 발전방향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연석회의에서 한국과 중국이 일본제국주의에 함께 투쟁한 것은 세계평화를 위한 연대였음을 확인하였고 한중 우호를 다지는 시간이었다.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광복70년 기념사업의 주제어가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이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의 긴 여정 그리고 광복 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지난 70년은 그야말로 위대한 여정이었다.

Q. 독립운동 선양사업 중 독립운동가 인명사전 편찬은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민족긍지 분야 민족정기 확립 사업이기도 한데,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인가?
- ‘독립운동인명사전’은 독립기념관이 1996년에 펴낸 ‘한국독립운동사사전 -총론편’ 2권과 2004년에 발간한 운동·단체편(5권)을 잇는 독립운동사전 편찬 사업의 완결편인 민족적 대사업이다. 이 사업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시작해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 간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에 편찬하는 독립운동 인명사전에는 한 독립운동가의 성장과 교육과정, 사상과 이념, 그가 벌인 운동의 성격과 가치, 그리고 의미 등을 상세하게 수록할 것이다. 총 30권 정도를 발간할 계획인데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포상 받은 1만 6000여 명을 수록할 예정입니다. 책으로 발간하기에 앞서 웹서비스도 고려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이번 독립운동 인명사전 편찬을 통해 독립 운동가들의 역사적 자취를 복원하고 독립운동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지난 4월 29일 윤봉길 의사 의거 기념식 계기 상해 매헌기념관 재개관 행사도 직접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재개관에 이르게 된 과정과 느낀 소회는?
- 상해 매헌기념관은 1994년에 전시를 시작해 전시물이 노후해 있었다. 2009년 전시교체가 있었고 2014년에는 국외항일유적 보존관리 사업계획 승인통보를 통해 매헌기념관의 전시교체계획을 보훈처로부터 승인 받았다. 2015년 국외항일유적지(매헌 윤봉길 기념관) 보존관리 사업승인을 받아 전시교체 사업을 진행하고 광복70주년인 올해 의거 기념일인 4월 29일 전시교체를 완료하고 재개관했다. 매헌기념관의 규모가 작은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윤봉길의사의 생애를 알리는 전시물을 밖으로 빼내어 자연 속에서 윤봉길의사를 알리려는 시도를 했다. 2층은 영상만을 보는 공간이 되어 편안하게 쉬면서 윤봉길의사의 생애와 의거의 의미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번 재개관은 광복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14년 계획이 수립돼 진행된 사업이다. 의거 기념식 때 할아버지께서 의거 전에 두 아들에게 남긴 시 중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라는 구절을 되뇌었다. 태극의 깃발이 높이 드날리는 오늘날 다행히 할아버지의 무덤은 빈 무덤이 아니라 광복 후 가나자와에서 효창공원의 삼의사 묘역에 모셔져있고, 의거가 있었던 노신공원에는 매헌이라는 기념관이 세워져 윤봉길의사를 기억하고 기리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함께 윤봉길의사를 기리는 것은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제국주의 침략에 항거한 평화운동이었음을 공감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함께 세계평화를 위해 앞장서 나가는 동반자가 되자는 다짐이라 생각했다.
   
▲ 이산가족 등록 현황

Q. 광복 70년을 맞아 미래 세대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 오늘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민주발전은 반세기에 걸친 독립운동에서 보여준 열렬한 자주 독립의 정신과 ‘무에서 유’를 창조하던 독립운동의 역동성으로 가능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시는 후손들이 나라 잃은 민족으로 살지 않기를 바라던 독립운동 선열의 염원과 자신의 아들딸들이 배고픈 삶을 살지 않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에서 당당하게 살기를 바란 우리 부모와 선배 세대들의 피와 땀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못다 이룬 게 있다. 바로 민족분단을 극복하는 것이다. 애국선열들은 반쪽짜리 나라를 만들려고 독립운동을 전개한 것은 아니었다. 김구 선생도 항상 말씀하셨듯이 ‘자주 독립의 통일 민주국가’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오늘까지도 민족분단과 남북 분단체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는 인간이 꿈과 이상을 갖고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아직 이루지 못한 민족통일의 꿈과 이상을, 이제 우리세대에 그리고 우리세대가 이루지 못한다면 다음 세대가 독립운동의 정신을 되살려 꼭 이루어내길 바란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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