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침체된 가곡을 되살리기 위한 음악인들의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다. 음악인들이 부흥운동에 나서게 된 것은 가곡 시장이 발전하지 못하고 뒷걸음질을 계속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 박범철 교수

새로운 가곡은 유통 채널이 거의 없어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가곡 시리즈 음반의 경우는 1990년대를 마지막으로 끊긴 상황이다. 실제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진 가곡의 대부분은 홍난파의 ‘봉선화’(봉숭아), ‘옛동산에 올라’, ‘사랑’, ‘성불사의 밤’과 박태준의 ‘동무생각’, 현제명의 ‘고향생각’, ‘그집앞’, 이흥렬의 ‘바우고개’, ‘어머니 마음’, 김성태의 ‘즐거운 우리집’, 조두남의 ‘선구자’, 최영섭의 ‘그리운 금강산’, 장일남의 ‘비목’, 김동진의 ‘가고파’, 김연준의 ‘청산에 살리라’ 등 일제시대에서 1970년대 사이에 작곡된 작품들이다. 최근 한국 가곡의 부흥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가곡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박범철 가곡아카데미의 박범철 교수를 만났다.

가곡의 대중화 위해 교육자의 길 선택
“목소리가 아닌 가슴으로 부르고 마음의 소리를 찾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 바로 가곡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곡이 딱딱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반 가요와는 달리 가슴 깊이 울리는 뭔가가 있다. 주로 시(詩)에 작곡가들이 곡을 붙이다 보니 가사의 내용이 주옥같다. 달콤하면서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가곡은 들으면 들을수록 소름이 쫙 끼칠 만큼 심금을 울린다. 박범철 교수에게 있어 가곡이란 그러한 것이다. 하지만 국내 가곡계의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바탕으로 오랜 세월 한국인의 아름다운 정서와 감정을 전달해주었던 우리 가곡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던 그는 결국 1998년 박범철 가곡아카데미를 개설, 이후 가곡의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 왔다. 박범철 교수는 국내외에서 13회의 독창회를 비롯, ‘사랑의 묘약’, ‘토스카’, ‘나비부인’ 등 40여회의 오페라 주역, 오라토리오 ‘메시아’ 등 미사곡 테너 솔리스트로서 50여회에 출연했으며 러시아 및 일본을 포함한 국내외 가곡과 아리아의 밤 순회공연 등 500여 회의 음악회에 출연을 했던 전도유망한 테너였다. 특히 지난 1991년 당시에는 한러수교로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던 시기로 공산주의 아래의 음악이 궁금했던 그는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고, 러시아 유학시절에도 그 실력을 인정받아 페페르부르크오페라단이 공연하는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주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1993년 세계적인 성악가들만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레닌 필 대강당에서 한국인 최초로 초청독창회를 가질 만큼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던 그가 가곡 교육자의 길을 선택하자 주위에선 다들 의아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와 음악이 만난 가장 아름다운 결합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가곡은 그 이름만으로도 옛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가곡이 어렵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점차 대중에게 외면받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교과서에서도 그 비중이 줄어드는 실정이죠”라면서 “성악가로서의 길과 교육의 길에서 고민했지만 가곡의 대중화를 위해 결국 교육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가곡의 대중화를 목표로 아카데미를 열었을 때는 사람들의 인식도 부족하고 남들보다 선두에서 하는 일이라 외롭기도 했어요”라고 처음 아카데미를 설립했을 당시를 회고했다.

▲ 박범철 가곡아카데미 회원들은 매년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가곡전도사’라는 새로운 도전 시작
“무대에서 듣는 관객들의 박수는 마약과 같습니다. 순수하게 가곡을 사랑하고 열정을 간직한 이들에게 이런 기쁨과 감동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박범철 교수는 라뻬츠코프스키 국제콩쿨 1위, 전국성악경연대회 우수상 입상, 러시아 국립 생페테르부르크 교향악단협연 등 수많은 경력을 뒤로한 채 ‘우리 가곡을 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로 만들겠다’는 신념 하나로 가곡아카데미의 문을 열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당시만 해도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곡을 배우고 무대에 설 수 있는 장은 마련되어 있지 않았어요. 성악가로서 무대에 오르려면 아카데미를 찾는 이들과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웠고 성악가의 생명인 목도 계속되는 수업으로 많은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지요. 더군다나 자기관리와 연습이 중요한 성악가가 교육을 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아카데미 설립 후 성악가와 교육자의 길을 두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던 박 교수는 결국 ‘가곡전도사’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가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데에는 아카데미의 회원들의 영향이 컸다. 아카데미에는 주부에서 직장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있다. 그들은 노래 한 곡을 배우기 위해 생업을 마다하고 수업을 듣기 위해 찾아온다. 노래가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래를 배우기 위해 아카데미를 찾는 이들의 모습에서 확신을 얻은 그는 과감하게 성악가의 길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문적이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가곡을 대중들이 즐겨 부를 수 있는 ‘대중 가곡화’를 위해 박 교수가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 박범철 가곡아카데미는 현재에도 2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주부에서 직장인, 교사, 의사 등 다양한 직장을 가진 회원들이 함께하고 있으며 지난 13년간 박범철 가곡아카데미를 거쳐 간 회원만도 천여명이 넘는다. 박 교수는 “12년 전 가곡을 가르치겠다고 결심하고 이 길을 들어섰을 때는 포장되지 않은 가시밭길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라면서 “그 가시밭길에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고 정성들여 가꾸는 시간이 지나 작은 꽃밭을 이루고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2년을 지내는 동안 순수한 가곡의 열정과 한결같은 애정으로 배움의 뜻을 다해온 회원들이 묵묵히 곁에서 지켜주며 함께 걸어왔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전국 한국 가곡 전도사의 롤모델

▲ 박범철 교수는 영남이공대 평생교육원 초빙교수, 대구 북구합창단 지휘자, 나토얀오페라단 단장, 대구성악아카데미 회장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요를 익히고 늘 흥얼거리듯 가곡 또한 일상에서 언제나 흥얼거리는, 즐길 수 있는 가곡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르쳤습니다.” 박범철 교수가 대구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박범철 가곡교실을 열고 고전 명가곡들을 중심으로 가르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렵게만 느껴지던 가곡을 재미있고 즐겁게 부를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면서 가곡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갔다. 사람들의 폭발적 호응에 힘입어 1998년 30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가톨릭대학 평생교육원의 가곡교실은 모집정원을 늘리고 반을 늘렸으며 이후 경주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대구 북구, 영남대학교, 영남이공대학, 경산시지가곡교실, 대구가톨릭대학병원, 대구 나토얀 뮤직아카데미로 점차 확대되어 갔다. 현재 박범철 가곡아카데미 회원들은 매년 정기연주회를 개최하며 가곡을 통해 연주자와 청중이 모두 즐거워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박 교수의 지도를 받은 몇몇 회원들이 독창회 등을 갖기도 한다. 특히 지난 2008년에는 가곡아카데미 10주년을 기념하는 ‘가곡의 밤’ 특별공연을 열어 성황리에 마치기도 했다. 이날 복도와 계단까지 1000여명의 관객들로 가득 찬 음악회장은 아름다운 선율과 회원들의 열기가 하나 되어 낭만이 어우러진 감격의 무대를 만들어냈다. ‘가곡의 밤’ 특별공연은 박 교수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는 “여느 음악가들 못지않은 가곡에 대한 열정과 순수한 애정으로 배움 속의 기쁨과 행복을 찾아가는 회원들의 모습에 더욱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라면서 “그때의 공연은 저에게 있어 앞으로 또다시 도전하고 창조해나가는 재도약의 발판이 되어 주었습니다”라고 했다. 오늘날 많은 후배 성악가들의 모범이 되어 그의 뒤를 잇고 있는 전도사들이 국내 곳곳에 생겨날 정도로 우리 가곡 전도의 모범이 되고 있는 박범철 교수는 현재 박범철 가곡아카데미 외에도 영남이공대 평생교육원 초빙교수, 대구 북구합창단 지휘자, 나토얀오페라단 단장, 대구성악아카데미 회장을 비롯해 아르스노바 중창단 단장과 대구 두레교회 지휘자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가곡아카데미 10주년을 기념하는 ‘가곡의 밤’

가곡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활짝 문 열어
“예술은 ‘자기만족’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잘하겠다는 욕심이 앞서기보다는 노래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 나간다면 분명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박범철 교수에게 있어 가곡을 배우는 데에는 등수가 없다. 가곡은 성악가들의 전유물 또한 아니다. 박 교수는 “가요와 노래와 멜로디만 다를 뿐, 열린 마음으로 끊임없이 가곡을 접한다면 우리 생활에 친숙히 보급될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이 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가곡에 대한 사랑은 스승과 제자가 다르지 않다. 박범철 가곡아카데미에는 대다수의 회원들이 매주 1곡씩 새로운 곡을 배우고 부르는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하루 한 시간을 비워 배우러 온다. 그러한 연습의 결과물로 매년 대구 컨트리클럽의 골프장에서 가곡제를 개최하는데 이 또한 인기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이하는 이 가곡제에는 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무료로 열리기 때문에 가곡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한편 박범철 가곡아카데미는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입단, 입회의 자격도 없다. 20대에서 70대에 이르기까지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환영하는 박범철 아카데미. 박 교수는 “저 역시 노래를 잘하기만 하는 사람보다는 가곡을 좋아하고 꾸준하게 노력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좋으니까요. 가곡아카데미는 시와 노래가 좋아서 이를 아우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간 가곡 전도사로서 활동해온 박 교수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전국 곳곳에 가곡 교실들이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서울 등지에서 가곡 아카데미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가곡교실이 늘어나는 것은 배우는 이들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가곡의 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라면서 “가곡교실이라는 것이 가곡의 대중화를 꿈꾸고 함께 호흡하는 것이기에 가곡 전도사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이 길을 걷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이라는 것은 우선 배려하는 마음과 인내를 가지고 배우는 이들과 하나 되길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의 끊임없는 연구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죠.”라고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가곡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최초의 가곡 아카데미를 개설, 오늘날 국내 가곡의 중추적 기둥이 되고 있는 박범철 교수. 그는 “앞으로도 가곡을 전파하고 배움의 터를 마련해 전문성이 가미된 무대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면서 “가곡을 사랑하는 이들과 노래를 통해 함께 느끼고, 나누고, 배우면서 그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고 포부를 밝혔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