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70주년

70년 전인 1945년 8월 15일 아침 우리말 신문으로는 단 하나밖에 없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가 조간인데도 사무실과 가정에 배달되지 않았다. 오전 8시 40분쯤 경성방송국에 일본 헌병대로부터 “모든 것을 불태우라”는 전화가 걸려 오고 곧 총칼로 무장한 헌병들이 방송국에 들이닥쳤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일 정오 중대 방송, 1억 국민 필청’이라는 벽보가 서울 시내에 나붙었다.
낮 12시, 좀처럼 알아 듣기 어려운 40대 중년 남성의 떨리는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일본 NHK 방송에서 발사한 전파를 받아 경성방송국에서 중계한 히로히토 일본 천황의 육성 방송이었다. 그러나 라디오가 워낙 귀한 시대여서 방송을 청취한 조선인은 많지 않았다. 들었다 한들 히로히토의 코맹맹이 소리와 심한 잡음 때문에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NHK ‘50년 방송사’는 “방송에 잡음이 많고 내용 청취가 쉽지 않았던 것은 중계선의 감쇄에 의한 것”이었다고 기술적 이유를 대고 있지만 비슷한 시기에 방송된 전황 뉴스 등은 별 잡음 없이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약하다. 그래서 당시 천황의 항복 방송을 수치스럽게 생각한 방송국 관계자가 의도적으로 잡음을 넣었다는 설이 훗날 강하게 제기되었다. 잡음도 잡음이지만 천황의 육성이 황실용 문어체여서 일반인으로서는 해득이 쉽지 않았다. 일본인과 조선인 아나운서의 요약 해설이 있긴 했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천황의 방송 내용 중 패전을 암시한 대목은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국에 대하여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하게 하였노라”라는 단 한 줄뿐이었다. 방송 어디에도 패전이나 항복을 나타낸 부분은 없었다. 공동선언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한 포츠담 선언이었다는 사실을 뚜렷이 인식한 조선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천황의 발표 내용이 무엇이든 그것은 분명 해방이었다. 36년 질곡에서 벗어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거리로 뛰쳐나와 부둥켜안고 감격의 만세를 부른 군중은 없었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 퍼지고 태극기가 물결쳤으며 환호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는 훗날의 증언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그날 서울의 큰 거리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방의 그날 감격의 만세 소리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들려

▲ 해방된 날 오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석방된 미결수들이 거리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고 있다. (1945.8.15)

매일신보는 오후에 배달되었다. 당시는 전시였기 때문에 신문은 2면뿐이었다. 그런데도 1면에만 기사가 실리고 2면은 백지상태였다. ‘평화재건(平和再建)에 대조환발(大詔渙發)’, 제목만으로는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경거를 엄계하야 냉정·침착하라’는 아베 총독의 발표문이 더 눈에 들어왔다. 천황의 육성은 오후 2시 또다시 방송으로 흘러나왔다.
해방이 되었다는 사실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그날 저녁 무렵이었다. 하지만 36년 동안 서슬 퍼런 일제의 강압에 억눌려온 조선인들은 선뜻 거리로 나설 용기가 없었다. 거리에는 여전히 총칼로 무장한 일본군이 거리를 활보했다. 그래도 그날 저녁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나온 미결수 60여 명이 독립문 쪽으로 내려오면서 외친 만세 소리가 서울 저녁 하늘에 메아리쳤다. 하지만 그들도 곧 헤어졌고 그 이상의 소요는 없었다. 그날 밤 경기 개성에서는 군중이 시내에서 기물을 파괴하고 불을 질렀다.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조선인들의 집이 공격 대상이었다. 일부 지방에서는 조선인에게 겁을 주기위해 밤하늘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댄 일본군도 있었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날 오전부터 한 인물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운형이었다. 그는 오전 8시 정무총감 엔도 류사쿠로부터 치안권을 이양받았다. 12시에 있을 천황의 방송 사실도 전해 들었다. 여운형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정치범과 사상범들을 오후 4시까지 석방해주겠다는 엔도 총감의 언질을 믿고 서대문형무소로 달려갔다. 그러나 형무소장은 “법적 절차가 끝나지 않아 기결수는 8월 16일 오전 10시에 석방할 예정”이라며 유치장에 억류되어 있는 미결수들만 풀어주었다. 미결수들은 석방 후 독립문 거리에서 만세 삼창을 외치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여운형은 그날 저녁 6시 조선건국준비위원회(건준)를 발족시켰다. 8월 16일 오전 10시 예정대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정치범, 사상범, 경제범이 석방되었다. 이날 전국에서 풀려난 출감자들은 모두 1만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미군 자료는 전하고 있다.
서울에서는 서대문형무소를 나온 출감자들이 독립문, 광화문, 종로, 남대문 등으로 행진하며 소리 높여 만세를 불렀다. 일반 시민도 용기백배하여 만세 대열에 동참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사람들이 전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그들은 급조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36년 동안의 일제 통치가 막을 내린 것을 비로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연합국의 승리에 따른 ‘주어진 해방’일 뿐

그러나 그날의 해방은 진정한 일제 통치의 종식이 아니었다. 일부 지역에서 파출소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위협감을 느낀 총독부가 일본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치안권을 다시 강화하는 반동적 행동을 취했기 때문이다.
8월 17일 일본군 사령부는 “민심을 교란하고 치안을 해치는 일이 발생한다면 군은 단호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경고문을 발표하고 탱크와 장갑차 등으로 도심에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여운형에게도 “접수는 연합국의 몫이니 건준 활동은 치안 유지 협력에 국한하도록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조선인이 해방의 자유를 누린 것은 수감자들이 석방된 8월 16일 단 하루뿐이었다. 거리는 다시 해방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만세 소리와 태극기도 사라졌다.
조선인이 다시 집회와 시위를 할 수 있게된 것은 미군이 진주한 9월 9일부터였다. 오늘날 8?15 해방 자료로 많이 이용되는 대부분의 사진들은 해방의 그날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8월 16일 혹은 미군 진주 후 촬영된 것들이다. 아베 총독은 9월 9일 오후 4시 8분 총독부 회의실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오후 4시 35분, 총독부 청사 마당에 걸려 있던 일장기가 내려가고 성조기가 게양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맞이한 해방은 연합국의 승리에 따른 ‘주어진 해방’일 뿐이었다.
자력으로 쟁취하지 못한 해방은 우리에게 아무런 결정권이 없음을 일깨워주었다. 치안은 일본군에서 미군으로 넘어갔고 태극기는 게양되지 못했다. 해방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 말고는 우리를 지배하는 세력이 일본에서 미국과 소련으로 넘어간 것에 불과했다. 남한으로서는 소련이 아닌 미군이 주둔했다는 것에 그나마 안도할 뿐이었다.

■항일무장투쟁 영웅 김경천
1920년대 시베리아 항일무장투쟁 영웅으로, 학계에 ‘진짜 김일성 설(說)’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김경천(본명 김광서·1888∼1942·사진) 장군의 손녀 등 러시아 국적의 후손 7명이 한국귀화 신청을 한 것으로 7월 21일 확인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날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광복 70주년 8·15행사와 관련, 김 장군 후손 7명과 헤이그만국평화회의 밀사 이위종(1888∼미상) 선생 후손 3명 등 러시아 국적의 독립유공자 후손 10명이 귀화신청을 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은 두 독립유공자의 업적을 기려 후손들의 한국 국적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문화일보 2015년 7월 21일>

김경천(1888∼1942)은 만주·러시아 경계를 오가며 일본군과 중국 마적의 간담을 서늘케 한 ‘김일성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는 증조부, 부친, 숙부가 병조판서를 지낸 무인 집안의 후손답게 장군을 꿈꾸며 군인의 길을 선택했으나 운명은 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데 온 삶을 바치도록 했다. 1910년 나라가 망했을 때 군인의 길을 포기하고 무장 독립운동에 투신한 것도 운명이 안내한 길이었다.
김경천의 출생지와 출생년도는 두 기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고향은 함경북도 북청과 서울, 출생년도는 1887년과 1888년으로 엇갈린다. 일본 육사 출신의 한국인 앨범에는 ‘1887년, 함북 북청 출생’으로, 서울 종로구청 호적계에는 ‘1888년, 서울 사직동 출생’으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김경천은 이름도 여럿이다. 본명은 김현충이나 일본 육사를 다닐 때 김광서로 바꾸고 1919년 만주로 망명할 때 다시 김경천으로 바꿨다. 만주·러시아 경계를 무대로 활동할 때는 김일성으로도 불렸다.
김경천은 관비 유학생으로 뽑혀 1909년 12월 일본 육사 23기로 입학했다. 육사에 재학 중이던 1910년 8월 일제의 강제 합병으로 대한제국이 문을 닫으면서 김경천도 고뇌에 빠졌다. 당시 일본에는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가 무관학교가 1909년 8월 강제로 문을 닫자 일본으로 건너가 중앙유년학교에 다니던 한국인 후배들이 40여 명이나 있었다. 이들은 2~3년 뒤 일본 육사 진학이 예정되어 있었다.
어느날, 김경천은 한국인 후배들과 함께 요코하마의 한 술집에 모여 나라가 없어진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며 진로를 논의했다. 일본 육사 26기로 입학할 예정인 지청천(이청천), 홍사익, 이응준 등도 참석한 모임에서는 “당장 때려치우고 귀국하자”는 비분강개의 목소리와 “힘이 있어야 독립도 하는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가 갑론을박했으나 결국에는 “군대 경험을 쌓은 뒤 때가 되면 독립전쟁에 뛰어들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몇몇 학생은 망국의 수모를 참지 못하겠다며 보따리를 싸고 귀국했다.
김경천은 1911년 5월 육사 기병과를 졸업한 뒤 도쿄 제1사단 기병 제1연대에 근무했다. 몇 년 후 중위로 진급한 그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은 1919년 도쿄의 2·8독립선언을 접하고서였다. 김경천은 병가를 내고 1919년 2월 귀국한 뒤 기회를 엿보았다. 그의 뒤를 이어 육사 3년 후배 지청천도 병을 칭해 귀국했다. 두 사람은 1919년 6월 6일 밤 서울을 벗어나 신의주에서 국경을 건넜다. 일제는 뒤늦게 김경천과 지청천의 망명 사실을 알고 현상금 5만 엔을 내걸었으나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는 분풀이에 불과했다.

일본군과 중국 마적의 간담 서늘케 한 ‘김일성 신화’의 주인공

김경천과 지청천이 찾아간 곳은 만주 유하현 고산자에 있는 신흥무관학교였다. 그들이 교관으로 활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 만주와 조선에서 600여 명의 청년이 신흥무관학교로 몰려들었다. 당시 신흥무관학교에는 구대한제국군 정위(대위) 출신의 신팔균도 교관으로 있었다. 세 사람은 합심단결해 조국광복을 쟁취하자는 뜻에서 ‘하늘 천(天)’자를 돌림 별호를 쓰기로 했다. 그래서 정한 이름이 신동천, 김경천(김광서), 이청천(지청천)이다. 그들은 곧 ‘남만삼천(南蠻三天)’으로 불렸다.
세 사람은 첫 삼일절에 해당하는 1920년 3월 1일 한·중 국경 남쪽의 한 곳을 점령, 그곳을 기반으로 삼아 제2차 3·1운동을 일으키자며 역할을 분담했다. 신동천은 남만주 한인 사회의 지원을 얻고, 지청천은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하는 임무를 맡았다. 김경천은 무기 구입 루트를 개척하기 위해 1919년 초겨울 러시아 연해주로 떠났다. 이 때문에 김경천은 지청천과 신동천이 참가한 1920년 10월의 청산리전투에 참가하지 못했다.

▲ 김경천

무기 구입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김경천이 달려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볼셰비키 혁명의 파급을 막기 위해 일본군이 대거 출병해 있었다. 이로 인해 이른바 ‘이항 사건’도 일어났다. 1920년 3월 조선 독립군 부대 700여 명과 볼셰비키 적군 2,000여 명이 연합, 니콜라예프스크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 군대에 총공격을 가해 일본군 700여 명을 사살한 것이다. 볼셰비키 적군도 많이 죽은 ‘이항 사건’에서 조선 독립군 부대는 전사자가 6~7명에 불과했다.
그러자 일제는 1920년 4월 초 볼셰비키 적군과 한국인 거주지를 무차별로 공격,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의 한국인 300여 명을 학살했다. 희생자 가운데는 상해 임시정부의 재무총장으로 추대되었던 최재형과 극동공화국 외무인민위원을 지낸 조선인 여성 혁명가 김알렉산드라도 포함되었다.
일본군이 한인 독립운동 근거지까지 공격해 들어오자 김경천과 한국인 부대는 인근의 산림지대인 수청 지역으로 피신했다. 김경천은 그곳에서 창해청년단 총사령관, 수청고려의병대의 총책임자로 활동하면서 한인들을 괴롭히는 마적 소탕에 전력을 기울였다. 1921년 10월부터 1923년 초까지는 러시아 적군과 연합해 반대 세력인 백군과 수시로 전투를 벌였다. 당시 김경천이 이끄는 부대 규모는 1,000여 명에 달했다. 1922년 3월 전투에서는 백군을 추격하다가 일본군의 경계를 뚫고 추풍 지역으로 돌격하기도 했다.
이런 활약에 힘입어 1922년 7월 연해주의 혁명군사위원회에 의해 뽀시에트 군사구역 조선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가 김일성이라는 별호를 쓰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당시 그가 백마를 타고 홀연히 나타나 일본군을 응징하고 귀신같이 사라지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김일성 신화가 국내에까지 널리 퍼졌다. 당시 일본의 군경이 조사한 김일성에 대한 유언비어에 따르면, 만주 벌판에 신출귀몰하면서 100리 간격으로 있는 3명의 일본 장수들 목을 동시에 베고, 휘파람을 불면 100리 안에 있는 말들이 순식간에 몰려들고, 일본군이 쏜 대포를 손바닥으로 잡아 다시 대포를 쏜 곳으로 되돌린다는 식이다.
1922년 10월 일본군이 시베리아에 철수한다는 소식을 듣고 독립운동단체들은 고려혁명군을 조직했다. 이중집이 고려혁명군 총재, 김규식이 총사령이었는데 각각 동서남북부 사령관을 두었다. 김경천은 동부 지역 사령관으로 선임되었다. 그런데 일본군이 철수하자 러시아 적군이 갑자기 돌변하더니 1922년 12월 독립군을 무장해제시켰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신생 소비에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우리 독립군으로서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일본군이 철수한 후 러시아 적군의 후원을 얻어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려 했던 김경천 역시 실의에 빠졌다.

신동천, 이청천과 함께 ‘남만삼천(南蠻三天)’으로 불려

그 무렵 중국 상해에서 독립운동단체들이 모두 모여 재기를 도모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김경천도 1923년 2월 상해로 가서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했다. 국민대표회의에는 국내외와 좌우익을 망라해 전 세계의 135개 지역 및 단체에서 125명의 대표들이 참가했다. 하지만 상해 임시정부를 인정하고 정부를 개조하자는 개조파와 상해임시정부를 완전 부정하고 새로운 임시정부를 창조하자는 창조파의 싸움에 실망하고 1923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왔다.
1923년 7월 29일자 동아일보에 김경천에 관한 장문의 기사가 실렸다. ‘빙설에 쌓인 서백리아(서시베리아)에서 홍백 전쟁한 실지 경험담’이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김경천은 지난했던 자신의 역정을 소상하게 밝혔다. 해외 독립운동 투사가 자신의 전투내용을 신문기자에게 떳떳히 알린 경우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에서 그의 기고는 파격적이었다.
1925년 4월 28일자 매일신보에 ‘김광서가 독립노선 문제 때문에 공산주의자들과 결별했다’는 보도가 실리고 2개월 뒤 6월 21일자 동아일보에 ‘원(元) 중위 김광서 활약’ 기사를 마지막으로 김경천에 대한 소식은 국내에서 두절되었다. 1925년은 그해 1월 일본과 소련이 수교조약을 맺어 러시아령에서 한인의 독립운동을 금지시킨 해이고 만주에서도 1925년 5월 만주의 장작림 군벌과 일제가 삼시협정을 체결해 한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막은 해라는 점에서 김경천의 활동도 제동이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1925년 그가 사라지자 그를 전설적 영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국경지대에서 전개되는 국내 진공작전도 대부분 김일성(김경천)에 의해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경천은 1926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규식 등과 함께 민족당주비회를 조직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실의의 나날을 보내면서 한동안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고려사범대학에서 군사학과 일본어를 가르쳤다. 그러다가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지배가 확실해지면서 김경천의 역할도 사실상 끝이 나고 말았다.
김경천은 1937년에 있을 스탈린에 의한 한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를 앞두고 간첩죄로 체포되어 1936년 9월 원동지방 국경수비대 군법회의에서 3년형을 받았다. 2년 반의 형을 복역하고 1939년 2월 석방된 후에는 가족이 있는 카자흐스탄으로 갔다. 하지만 1939년 4월 인민의 적이라는 혐의로 다시 체포되어 동년 12월 간첩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8년형을 선고받고 강제노동수용소에서 복역했다.
1941년 독소전쟁 발발 후에는 시베리아로 이감되었다가 1942년 1월 2일 소련의 북동쪽 끝 아르항겔스코에주(州)에서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스탈린이 사망한 후인 1959년 2월 복권되고 199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식에서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창립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이 7월 21일 국제축구연맹(FIFA) 차기 회장 출마를 공식화했다.… 내년 2월 26일 열릴 차기 회장 선거는 정 명예회장과 플라티니 UEFA 회장, 알리 빈 알 후세인 요르단 왕자 등이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 브라질 축구스타 지코와 무사 빌리티 라이베리아 축구협회장, 아르헨티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도 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 2015년 7월 22일>

올림픽과 함께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대 축제를 꼽으라면 단연 월드컵 축구대회다. 이 월드컵을 주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프랑스 파리에서 창립된 것은 1904년 5월 21일이다. 창립 회원국은 프랑스를 비롯해 벨기에, 스위스,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스페인 등 유럽의 7개국이었다.
FIFA는 창립 이틀 후 파리에서 첫 총회를 열고 FIFA 창립의 산파역인 로베르 게랭 프랑스축구협회 대표를 초대 회장으로 선출함으로써 역사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게랭 회장은 각국이 참가하는 국제축구대회를 창설하려고 했으나 유럽 각국의 축구 규칙이 통일되지 않고 교통수단 역시 미흡해 호응하는 나라가 없었다. 결국 대회는 유야무야되었고 게랭은 자진 사퇴했다.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는 자국이 쥐고 있던 주도권을 FIFA에 빼앗길 것을 우려해 FIFA 창립에 동참하지 않다가 1905년 영 연방의 일원인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와 함께 가입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헝가리도 같은 해 가입했다.
물러난 게랭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1906년 2대 회장에 선출된 사람은 영국의 대니얼 울폴이었다. 그는 12년 동안 회장으로 재임하면서 축구 규칙의 통일과 재정비에 특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축구가 1908년 런던 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게 하고 올림픽 축구대회가 FIFA의 주관하에 치러지도록 합의를 끌어낸 것도 울폴이었다. 가입국을 늘리는 데도 동분서주한 결과 남아공(1910), 아르헨티나?칠레(1912), 미국(1913) 등 비유럽 국가들이 차례로 가입함으로써 FIFA는 명실상부하게 세계를 대표하는 유일 축구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울폴도 전임자에 이어 지구촌 축구대회를 추진했으나 1차대전(1914~1918)에 가로막혀 보류되다가 1918년 10월 건강 악화로 숨을 거둬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국제축구대회가 개최되지 못한 것은 전쟁 당사국인 연합국(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패전국(독일, 오스트리아 등) 간의 적대감 때문이었다. 특히 영국의 반발이 거셌다. 네덜란드의 칼 안톤 히르슈만이 회장 대리를 맡고 있던 FIFA가 영국인의 정서를 무시하고 국제대회를 준비하자 잉글랜드 등 영 연방의 4개 축구협회는 1920년 일제히 FIFA를 탈퇴하는 초강수를 뒀다.

쥘 리메, 월드컵 성사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
이런 위기 속에서 ‘월드컵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쥘 리메가 1921년 제3대 FIFA 회장에 취임했다. 쥘 리메 역시 국제축구대회를 추진했으나 이번에는 유럽과 남미 대륙 간의 수준 차가 너무 크다는 게 문제였다. 당시 유럽 국가들은 남미 국가들의 축구 실력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그러나 1924년 남미의 우루과이가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의 강호들을 제치고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인식에 큰 변화가 생겼다. 1928년 올림픽에서도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남미 국가끼리 결승전을 벌이게 되자 유럽은 더 이상 남미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1928년 9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FIFA 총회가 열렸다. 총회는 1930년에 월드컵을 개최하고 4년마다 대회를 치른다는 안을 찬성 25, 반대 5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국가들이 1930년 제1회 대회 개최를 신청했다. 그러나 총회가 손을 들어준 것은 우루과이였다. 1924년과 1928년의 올림픽에서 두 번 다 우승한 축구 강국인 데다 1930년이 독립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 쥘리메 FIFA 회장(왼쪽) 제1회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한 우루과이 축구협회장에게 월드컵 우승컵을 전달하고 있다.

그러자 자존심이 상한 유럽 국가들은 거리가 너무 멀고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자국의 프로 경기가 2개월 가까이 중단된다는 이유를 들어 대회 참가에 난색을 표명했다. 역사적인 첫 대회가 축구 후진국 남미에서 열리는 것도 불만의 큰 요소였다. 영국이 먼저 참가를 거부하고 FIFA를 탈퇴했다. 그러자 개최국 선정 과정에서 고배를 마신 네덜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들도 영국과 뜻을 같이해 대회는 반쪽자리가 될 위기에 놓였다. 우루과이는 참가국들의 체재비와 여비까지 부담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으며 유럽 국가들의 참가를 유인했으나 1929년 말 세계 대공황이 엄습하면서 성사 여부가 더욱 불투명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쥘 리메가 월드컵의 성사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 결과 쥘 리메의 조국 프랑스가 참가를 결정하고 벨기에,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가 참가 의사를 밝혔다.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끝내 참가하지 않았다. 이처럼 유럽의 노골적인 불참은 감정 다툼으로 번져 이후 대회에 영향을 미쳤다. 유럽에서 열리는 1934년(이탈리아)과 1938년(프랑스) 대회에 우루과이가 연속 불참하고, 아르헨티나는 1934년 2진을 보내고 1938년 대회에 불참했다.
제1회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유럽의 4개국 대표들이 프랑스에서 여객선을 타고 유럽을 출발한 것은 1930년 6월 21일이었다. 여객선은 6월 29일 브라질에서 브라질 대표단을 태운 뒤 7월 3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도착했다. 유럽 4개국, 파라과이?페루·브라질·칠레·볼리비아 등 남미 7개국, 미국?멕시코의 북중미 2개국 등 모두 13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치러진 경기는 4개조로 나뉘어 리그전을 벌이고 각 조의 승자가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 패권을 다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