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진행된 지방선거결과 민주당이 대승을 거두고 한나라당이 참패했다. 민주당은 7곳의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승리하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선전하는 등 총 45곳에서 승리했다.
한나라당은 서울투표에서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와 중랑구에서만 승리했다. 또한 서울시장 오세훈 후보는 예상과는 달리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 이날 새벽까지 초접전을 벌인 끝에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초접전지역은 자정 넘어서야 승부 윤곽 드러나
서울과 경남, 인천, 강원, 충남, 충북, 제주 등 6·2 지방선거 승부처 지역은 대부분 6월 2일 자정을 넘어서야 승부의 윤곽이 드러날 만큼 접전을 벌였다. 특히 한나라당이 텃밭인 경남을 무소속 후보에게 내주면서 고질적인 지역구도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서울시장 선거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와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초박빙의 승부를 벌여 끝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당초 여론조사에서 10% 이상 앞서갔던 오 후보 측은 투표 직후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0.2%포인트의 초접전 지역으로 분류되자 놀라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개표 초반을 지나면서 한 후보에게 역전 당하자 오 후보 캠프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 후보측은 “오 후보의 압도적 지지가 반영된 여론조사와는 전혀 다른 민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승리를 자신했다. 경남에서는 근소한 득표율 차이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선두다툼이 6월 3일 새벽까지 계속됐다. 한나라당 이달곤 후보측은 박빙의 승부가 예상됐다면서도 개표결과 무소속 김두관 후보에게 3%포인트 이상 뒤지는 것으로 나오자 다소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한나라당의 부진은 1년 전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와 세 번째 도전하는 김 후보에 대한 동정여론, 이 후보의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 등이 선거결과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벌써부터 정치권 안팎에서는 유권자들이 지역구도보다는 인물을 보고 뽑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점을 입증한 사례라며 지역주의가 퇴색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전통적인 여당 강세지역인 강원지사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이광재 후보는 한나라당 이계진 후보와의 격차를 3%포인트에서 6%포인트까지 늘리면서 승리를 굳혔다. 여당 내부에서는 이계진 후보가 보수층의 결집에만 기대를 걸고 선거운동을 너무 신사적으로 점잖게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한 선거 초반과는 달리 막바지에 이광재 후보 아버지에 대한 한나라당 지지자의 폭행사건이 터지면서 동정표가 쏠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인천에서는 초반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개표가 진행될수록 민주당 송영길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는 개표 초반 송 후보에 앞섰지만 곧바로 역전을 허용한 뒤 7%포인트 넘게 벌어졌다. 정치권에서는 안 후보가 3선에 도전한 가운데 정권 심판론과 새로운 인물론을 내세운 민주당 송 후보의 유세전략이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울러 인천은 충청에 연고를 둔 유권자가 30%대 후반에 이를 정도로 충청세가 강하다는 점에서 세종시 문제 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충북도 접전을 펼쳤다. 한나라당 정우택 후보가 개표 초반 7%포인트 가량 앞서갔지만 밤11시30분이 지나면서 민주당 이시종 후보가 역전하며 5%포인트 넘게 앞서갔다. 이 같은 결과는 충북 지역 8명의 지역구 의원 중 6명을 차지하는 민주당 의원들이 막판에 조직표를 총동원하면서 재선에 도전하는 한나라당 정 후보와의 격차를 줄인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역시 세종시 수정안 추진과 관련해 야권의 '숨은 표'도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충남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 안희정 후보가 자유선진당 박상돈 후보를 1.5~4%포인트로 계속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양 후보 진영은 끝까지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제주도도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 후보였다가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현명관, 우근민 후보가 접전을 벌였다. 우 후보는 최근 강상주 전 서귀포시장과 단일화에 성공한 현 후보에게 개표 초반부터 1~3%포인트 가량 뒤졌지만 막판에 극적으로 승부를 뒤집는데 성공했다.
지방선거서 민주당 성공 이끈 486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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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권의 중심축이 DJ그룹에서 친노(親盧)그룹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안희정 충남도지사 |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486’(4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인 송영길·안희정·이광재 당선자가 전면에 나서 당에 승리를 안겼지만, 출마하지 않고 막후에서 선거의 판을 짠 것도 486그룹이다. 이들은 주류 수장인 정세균 대표와 이미경 사무총장의 측근으로서 공천작업을 주도하고 야권연대 이벤트 등을 만들어내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DJ·노무현 정부의 ‘젊은 피’였던 ‘386’이 당내 중심세력인 ‘486’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야권의 중심축이 DJ그룹에서 친노(親盧)그룹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민주당의 지방선거 기획이 색다르게 돌아간다는 조짐은 올 초 경선관리본부장인 최재성 의원이 당원 조직세를 배제하는 ‘시민공천배심원제’ 도입을 발표했을 때부터였다. 시민공천배심원제는 호남 의원 등의 반발로 축소 적용되긴 했지만, 서울 은평구청장 김우영·성남시장 이재명 당선자 같은 40대의 신인이 공천을 따내는 데 역할을 했다. 오영식 선거기획본부장은 공천심사위원회 간사로 전체적 공천을 조율하며 정 대표를 보좌했고, 역시 대표 측근인 강기정 의원은 선거 조직을 담당했다. 다음은 ‘야권후보 연대’였다. 전병헌 전략기획위원장은 지방공동정부 구성이라는 아이디어로 군소야당을 끌어들였고, 윤호중 수석사무부총장과 김민석 지방선거기획 공동본부장이 번갈아 협상테이블에 나섰으며 조정식 의원도 실무를 도왔다. 야권 연대는 진보신당 불참과 당내 반발로 협상이 결렬되기도 했지만 선거 막판 지역별 후보 단일화가 완성됐다. 선거 현장에서도 486이 핵심 역할을 했다.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임종석 전 의원이 대변인으로, 이인영·정청래 전 의원, 김현 부대변인이 현장을 책임졌고 서울의 전직 의원들이 동참했다. 김민석 본부장은 부산시장 경선에 “불쏘시개가 되겠다”며 뛰어들기도 했다. 홍보전은 우상호·김유정 대변인과 백원우 의원 등이 이끌었다. 민주당 내 486 핵심들은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을 이끌었으나 18대 총선에서 수도권에서 대거 패배, 현재 대부분 원외(院外)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당이 호남과 50~60대 관료 출신 중심으로 재편됐음에도 불구하고 친노·486은 여전히 ‘주류’로 불린다. 정 대표가 원외 486 등에게 주요 당직을 줘가며 당 운영을 맡기고, 국회의원들은 뒤로 밀려 ‘비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 불안한 당 구조는 계속 잡음을 낳았으나, 486은 지난해 두 차례 재보선 승리와 지방선거 승리라는 성과를 내면서 일단 주도권을 놓치지 않게 됐다. 486그룹은 8월 말께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고, 2012년 총선에서 국회로 재입성하는 스케줄을 가동하고 있다. 이들은 최고위원 선거에서 최재성 의원과 임종석·이인영 전 의원 등을 내세우고, 정 대표가 재선되도록 도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환골탈태식 개혁’ 불가피
6·2 지방선거 완패를 계기로 한나라당 내에서 ‘세대교체론’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친이(親李)계 및 중도 소장파 의원들이 중심이 된 세대교체론은 말 그대로 당의 ‘간판’으로 40~50대 초반의 참신한 젊은 인물을 내세워 ‘수구 정당’의 이미지를 벗고 국민에게 개혁과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번 선거 결과는 ‘보수의 근본적 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이며, 이 때문에 ‘땜질 처방’이 아닌 ‘환골탈태식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친이계 한 의원은 지난 6월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볼 때 ‘원래 정권 중반의 선거는 여당에 불리하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대처해서는 다음 총선·대선도 희망이 없다”며 “영국에서 캐머런 총리가 44세의 나이로 보수당을 이끌며 13년 만에 정권을 탈환한 것처럼 한나라당도 세대교체를 통해 근본적인 DNA 개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소장파들은 각종 모임을 통해 이 같은 논의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6월 6일에는 정태근 의원 주도로 초선 23명이 긴급회의를 가졌고, 6월 7일에는 개혁성향 초선 모임인 민본21이 회의를 소집했다. 또 6월 9일에는 전 지역 및 비례대표 초선의원들의 회동을 가졌다. 6월 6일 모임에서는 “새 정치적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하며, 초선이라도 전대를 통해 당 지도부에 참여해야 한다”(구상찬 의원), “그동안 한나라당은 새로운 리더십 등장에 무감해왔다. 인권·민주 등 보수적 가치를 지킬 정치적 리더십 변화가 필요하며, 초선의원들의 견해를 반영할 사람을 지도부에 넣어야 한다”(김성식 의원), “당뿐 아니라 청와대의 대대적 쇄신이 필요하다”(진성호 의원) 등의 말이 쏟아졌다. 세대교체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7월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에서 원내·외를 가리지 않고 유능하고 개혁적인 인물을 섭외해 출마시키자는 구상을 하고 있다. 당 대표뿐 아니라 최고위원 등 지도부에 최대한 많은 젊은 리더군이 자리 잡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이들의 고민거리는 확실한 ‘기수(旗手)’를 찾지 못하는 데 있다. 소장파의 한 의원은 “세대교체론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참신성·개혁성·리더십·비전 등을 골고루 갖춘 ‘간판’을 찾아야 하는데 정말 쉽지 않다”고 했다. 현재까지는 임태희 노동부 장관, 김태호 전 경남지사, 권영세, 나경원·남경필·원희룡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는 상태다.
국정 챙기기에 나선 정운찬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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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 총리의 거취 문제는 향후 정국 수습책의 방향에 따라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
정운찬 국무총리는 지난 6월 6일 6·2지방선거 패배 이후 야권의 사퇴 공세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국정 챙기기’에 본격 나설 의지를 밝혔다. 정 총리는 이날 현충일을 맞아 서울보훈병원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선거 결과와 관련, “그동안 국민 여러분의 생각과 바람을 우리들이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살펴드리지 못해 마음이 너무 무겁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가슴을 더 열고 (국민의) 작은 목소리도 크게 듣고 국민의 뜻을 최대한 받들도록 하겠다”면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이 같은 언급은 자신의 거취 문제가 인사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달려있는 만큼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내각의 ‘수장’으로서 역할과 임무에만 충실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실제로 이 대통령이 지방선거 다음날인 지난 6월 3일 정 총리를 불러 ‘내각은 흔들리지 말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해달라’고 당부한 것은 정 총리에 대한 재신임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정 총리가 지난 6월 4일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국정 운영에 만전을 다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교감한 내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 총리의 향후 행보는 국정 현안 챙기기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현충일인 이날 서울보훈병원을 찾아 애국지사 안춘생 선생을 비롯해 국가유공자들을 위문하고, 이 대통령 명의의 위문금·위문품을 전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6월 7일에는 경기 용인에서 농어촌 현장 애로해소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6월 9일에는 전남 고흥에서 나로호 위성 2차 발사를 참관했다. 또 걸프협력이사회 사무총장·세계경제포럼(WEF) 회장 접견과 세계·아태자유민주연맹 연차총회 만찬 등 각종 의전행사에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참석했다. 아울러 총리실에서 준비 중인 주요 정책과제 등을 챙기고 6월 임시국회에 대비하는 한편, 차기 국정어젠다로 선정한 공교육 개혁과 일자리 창출, 저출산 문제 등 5대 과제에 전력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정 총리의 한 측근은 “총리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면서 “앞으로 지방선거에서 투영된 민심을 수습하고 각 부처를 통솔해나가는 한편 각종 국정과제에 매진해 정책으로 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총리의 거취 문제는 향후 정국 수습책의 방향에 따라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취임 후 8개월여간 ‘세종시 총리’라고 불릴 정도로 세종시 문제에 전념해온 만큼 세종시 해법에 대한 고민도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시 향배가 정 총리 거취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정부 향후 경제 정책 추진에 난관 예상
6·2 지방선거가 여당의 패배로 끝나면서 정부의 향후 경제정책 추진에도 난관이 예상된다.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경기회복세를 탄탄히 하고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다’는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놓았던 상당수 경제현안들에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들이 많아 정책 추진과정에서 야당과 충돌하거나 정권 차원에서도 부담스러운 면이 적지 않다. 주요 경제정책 부문에서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혼돈이 이어지며 ‘레임덕’이 먼저 찾아올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 약사·변호사·회계사 등 전문자격사 시장 선진화, 공공요금 인상, 공공기관 표준연봉제 도입 등 그동안 추진이 중단됐던 현안들을 이번 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재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6월 3일 “이들 정책은 모두 우리 경제의 미래 성장동력을 높이기 위해 불가피한 것들이어서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추진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예상과 달리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면서 이들 정책의 재추진은 더욱 힘들어진 형국이다. 각 정책들에 야당이나 서민, 시민사회단체, 이익단체, 노동계 등의 반발이 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리병원 도입은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정부 내부에서도 반론이 크기 때문에 추진이 부담스럽다. 가스요금이나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도 원가 상승 등을 감안할 때 불가피하지만 서민들의 부담이 가중된다는 점에서 정부가 쉽게 밀고 나가기 어려워 보인다. 약사나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자격사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은 해당 이익집단의 반발이 문제다. 이 정책은 경제논리로만 보면 국민들에게 보다 저렴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는 방안들이지만 정권 차원에서는 정치적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정부 일각에서 제기돼 온 술·담배에 대한 세금 강화도 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물밑으로 수그러들 수밖에 없어 보인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도 지난 6월 1일 기자간담회에서 “술과 담배가 서민들의 기호품이라는 점에서 세율 인상은 굉장히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B노믹스의 핵심축 중 하나인 감세를 통한 경제활성화는 현정부 들어 순차적으로 이뤄져 왔다. 이제 마지막으로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의 추가 인하를 2012년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이는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철회를 공약한 것이어서 향후 정치권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이 정책이 ‘부자감세’라는 비판을 받으며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정부도 밀어붙이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양대 하준경 교수(경제학)는 “이번 선거가 지방선거라 해도 정치적 메시지가 분명하기 때문에 정부도 정책기조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무엇보다 서민들의 반발을 가져올 수 있는 ‘부자감세’ 정책은 강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복지보다 성장에 중점을 두어온 MB노믹스의 기본 방향도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 입장에서는 다음 선거를 위해서라도 서민들을 위한 복지정책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는 재정지출의 확대가 불가피한데 최근 재정건전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뾰족한 대책을 찾기 어렵다. 정부 관계자는 “재정을 일방적으로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복지 지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경제 부문 등의 예산을 옮겨와야 하는데, 그런 방향으로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재정 지출을 늘리지 않는 범위에서 복지전달 체계를 혁신해 효율성과 체감도를 높이는 방안은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야권, 4대강과 세종시 사업의 전면 재검토 본격화
민주당 등 야권이 정부의 4대강 공사와 세종시 사업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 작업을 본격화하고 나섰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핵심 국정과제를 수정 내지 폐기하기 위한 구체적인 수순에 착수한 것이어서 임기 반환점을 앞둔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민주당은 6월 7일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의원 워크숍을 갖고 4대강 사업 변경 및 세종시 원안 추진을 위한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4대강 공사에 대해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가 여론을 무시하고 사업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축키로 했다. 특히 광역지자체 차원에서는 인수위원회내 관련 특위와 범사회적 기구를 구성하는 한편 준설토 적치장 사업 등에 대한 예산집행 재검토와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정부에 수질개선 요구 등 단체장 권한을 활용한 저지방안을 추진토록 했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조만간 광역.기초단체장 워크숍과 4대강 유역 시도지사 회동을 갖고 공식 협의체 및 공동실태조사단 구성 등 대책을 적극 모색키로 했다. 중앙당 차원에서는 중앙당 사무처 산하의 지방자치위원회를 당 5역 기구로 격상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세종시 사업과 관련, 민주당은 원안 추진을 위해 국회에 계류 중인 행정중심복합도시법 수정안 철회를 여권에 요구하고 중앙부처 이전고시 촉구 및 부처이전에 대한 법제화를 강력히 추진키로 했다. 아울러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사업이 차질 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올해 관련 예산의 집행상황을 철저히 점검키로 했다. 이와 함께 일부 당선자들이 4대강 및 세종시 사업 재검토를 위해 이 대통령과 면담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서 주목된다. 무소속인 김두관 경남지사 당선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4대강 사업과 관련, “안희정(충남), 송영길(인천), 이시종(충북) 당선자의 입장이 저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일차적으로 국토해양부와 실무적으로 협의하고 대통령에 면담을 요청해 사업 재고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안희정 충남지사 당선자는 지난 6월 5일 세종시 사업과 관련, “조만간 염홍철(선진당) 대전시장, 이시종 지사 당선인과 공동으로 세종시 수정안 폐기를 정부에 공식 요구하겠다”면서 “이대통령이 투표를 통해 확인된 주권자(국민)의 의지에 순응하지 못하면 아주 불행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4대강, 선거 패배한 여권의 또 다른 ‘뇌관’
한나라당 내에서 4대강 사업 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6·2 지방선거 패배 후 민심이 심상치 않음을 체감한 의원들 사이에서 세종시 문제와 함께 논란의 중심에 있는 4대강 사업을 강행할 수 있겠느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4대강 사업에 정권의 명운을 건 청와대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어, 선거 패배 후폭풍에 휩싸인 여권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조짐이다. 4대강 사업 조절론은 일단 친박계 의원들 사이에서 적극 표출되는 양상이다. 이한구 의원은 6월 4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4대강 사업과 관련, “속도와 범위를 조절하고 법에서 정한 절차를 제대로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4대강 사업은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는 사안이 돼버렸다”면서 “목표와 취지는 좋지만 취지가 달성될 수 있도록 일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고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구상찬 의원도 지난 6월 3일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세종시 백지화, 4대강 사업과 같이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은 사업을 전면 중지 또는 백지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영남 지역의 한 친박계 의원은 “선거기간에 제일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야당과 종교단체가 그토록 반대하는데 4대강 사업을 무리해서 할 필요가 뭐가 있느냐, 묻지마식으로 나가는 건 잘못이라는 얘기”라며 “4대강 사업 중단을 선언하고 국토해양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교체하지 않으면 위기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백지화까지 요구하는 친박계와 온도 차이는 있지만 친이계에서도 4대강 사업 조절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진성호 의원은 6월 3일 평화방송 라디오에서 “아무리 중요한 정책이라도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국민을 설득하는 시간과 비용을 너무 안들이고 정책을 밀어붙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며 “신중하게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친이계 일각에서는 4대강 보 설치나 강 주변지 개발 계획 등에 있어 일부 수정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도 나온다. 그동안 4대강 사업 논란에 대해 되도록 언급을 자제해온 당내 분위기를 감안하면 선거 참패에 대한 의원들의 충격이 적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여전히 4대강 사업 강행을 고수하고 있다. “국회에서 법이 통과됐고 예산도 다 집행된 사업을 지방선거 하나로 멈출 수는 없지 않으냐”(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입장이다.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의 완패로 세종시 수정이 동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4대강 사업까지 접는다면 급속한 레임덕(권력누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부분적인 보완 요구는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고 지방예산 등을 고리로 야당 광역단체장 설득에 나서 사업을 관철시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선거 패배 책임론과 맞물려 4대강 사업이 여권 갈등의 뇌관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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