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발발               1950년

▲ 1950년 6·25-서울시내에 진입한 북한군 T-34전차

6·25 전쟁은 세계대전이었다. 유엔의 깃발아래 총 16개국이 군대를 파견하고 한국 북한 중국 소련까지 합하면 참전국이 20개국이나 된다는 점에서 분명 세계대전이었다.
사망자수를 기준하면 서기 1500년 무렵 근대 국제체제가 형성된 이래 발발했던 모든 전쟁 중에서 일곱 번째로 규모가 큰 전쟁이었고, 연평균 사상자수로만 보아도 제1·2차대전에 이어 세 번째로 잔인한 전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한반도에서 치러진 전쟁이다보니 자유 우방국가들은 주로 ‘한국전쟁’이라고 부른다. 반면 북한과 중국은 각각 ‘조국해방전쟁’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르며 자국의 관점만을 부각시킨다.
부슬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던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단잠에 빠져있는 한국군 부대 막사 위로 한순간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더니 소련제 T-34 탱크를 앞세운 북한군 주력부대가 38선을 넘었다. 이에 앞서 새벽 3시30분쯤에는 바다로부터 북한군 3000여명이 동해안의 옥계 삼척 임원 등 3곳에 상륙했다. 민족상잔의 비극 6?25가 발발한 것이다.
오전 8시30분, 김일성이 “남한의 도발을 반격하는 차원에서 전쟁을 시작한다”며 남한에 선전포고를 했다. 남침을 가장하기 위한 기만책이었다. 국민들은 38선에서 늘상 있어온 충돌 가운데 하나려니 생각하고 처음에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곧 북한 전투기가 서울 용산 상공에 출현, 총격을 가하고 김포비행장을 폭격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포성에 서울은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결국 제대로 된 저항 한번 못하고 28일 서울을 내놓아야 했다.
정부는 서울 사수를 약속해놓고도 하루 전 수도를 대전으로 옮긴 뒤였다. 게다가 28일 새벽 2시 40분쯤에 한강철교마저 폭파함으로써 한강 이북의 국민들을 사지로 내몰았고, 4만4000여명의 국군도 낙오병으로 만들었다.
북한군은 여세를 몰아 남쪽으로 쳐내려갔다. 미국의 발빠른 대응으로 7월 1일 미 제24사단의 선발부대가 부산에 도착하고 7월 5일 미 2사단 병력이 전선에 투입되었으나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북한군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7월말에는 경상도와 제주도를 제외한 국토 전역을 북한군에 내주어야 했다.
낙동강에 방어선을 친 국군과 유엔군은 한편으로는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반격작전을 준비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고 뒤이어 서울까지 탈환함으로써 북한군의 주병참선은 차단되고 병력은 남북으로 양분되었다.
전세가 역전되자 38선에서 진격을 멈출 것인가 계속 진격할 것인가의 문제로 유엔군이 고민에 빠졌다. 이승만 정부의 입장은 당연히 북진이었다. 미국 역시 논란 끝에 38선을 돌파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10월 1일 국군이 먼저 38선을 넘고 10월 7일 유엔군이 뒤를 이었다. 국군은 원산(10.10), 평양(10.19) 점령에 이어 10월26일에는 압록강 초산에까지 이르러 곧 북한 전역을 장악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수십만명의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오면서 유엔군은 다시 수세에 몰렸다. 중국의 참전은 맥아더 표현대로 ‘완전히 새로운 전쟁’이었다.
1?4후퇴가 시작되었고 국군과 유엔군은 평택·삼척선까지 망연자실 후퇴해야 했다. 확전이냐 한국포기냐의 갈림길에서 미군은 전쟁을 명예롭게 종식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맥아더 사령관이 주장하는 ‘승리’ 대신 ‘휴전’을 선택했다. 중국과 김일성 역시 피해를 감수하면서 전선을 남하시키기 보다는 전쟁 전의 상태에서 휴전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1951년 5월 미 정부가 38선을 따라 휴전할 것을 공식 정책으로 확정했음에도 이승만은 북진무력통일만을 주장하며 휴전에 맹렬히 반대했다. 모든 전쟁 당사국들이 휴전에 동의하는 상황에서 이승만의 결사적인 휴전반대는 메아리없는 고독한 외침이었다.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시작되었고 11월 27일에는 유엔군과 공산군측이 “현재 쌍방간의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삼는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양측의 합의로 전선은 교착되었을지 몰라도 전쟁은 기동전 대신 고지쟁탈전, 수색정찰전, 진지전 양상으로 바뀌어 적지않은 희생자를 냈다. 그러면서도 양측은 군사분계선 설정, 휴전 감시기구 구성 등에 대해서는 1952년 5월경까지 합의를 도출했다. 다만 전쟁포로 문제만은 합의하지 못해 1952년 10월 8일 무기휴회에 들어갔다. 그러나 1953년 2월 한국전쟁의 조기해결을 공약으로 내건 아이젠하워가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3월 5일 전쟁도발의 주요 당사자 스탈린까지 죽으면서 양측에는 조기 종전을 바라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이런 가운데 4월 11일에 체결된 부상포로 교환협정에 따라 먼저 병상포로들이 교환되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휴전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휴전반대와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대규모 군중시위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국회도 4월 21일 이승만의 북진통일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전국적으로 이승만의 북진정책에 호응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휴전협정의 체결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승만이 이처럼 단호한 반응을 보인 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조속한 체결을 얻어내기 위한 ‘계산된 전략’이었다.
이승만은 휴전조약 성사 전, 부산 대구 광주 마산 영천 논산 부평 등에 있었던 수용소에서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시킴으로써 얼마든지 휴전을 거부하고 그것을 파기시킬 의사와 능력이 있음을 미국에 확실히 보여주었다. 휴전협정의 체결을 무산시킬수도 있는 반공포로 석방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대한 미국의 결단을 촉구하기 위한 이승만의 승부수이기도 했다.
미국이 부랴부랴 로버트슨 국무성 극동담당 차관보를 한국에 보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약속하고 이승만이 휴전조약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화답함으로써 휴전조약은 7월27일에 비로소 체결될수 있었다.
정확히 3년 1개월 2일을 끌어온 전쟁으로 한민족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문제를 봉합하는 것으로 끝나 한반도를 20세기의 가장 첨예한 냉전지역으로 남겨두었다. 그래서 우리는 전국민의 10% 이상이 피해를 입은 이 비극적인 전쟁을 도발한 김일성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크릭·왓슨, DNA구조 발견           1953년

▲ 1953년 왓슨(좌)과 크릭

“우리는 디옥시리보핵산(DNA)의 구조를 제창하고자 한다. 이 구조는 상당한 생물학적 흥미를 일으킬 만한 진기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1953년 4월 25일 미 과학잡지 네이처지에 실린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의 논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불과 1쪽으로 구성된 논문의 요지는 “인체 세포 속 유전정보를 담은 DNA는 2개의 가닥으로 이뤄져 있으며, DNA 속 염기들은 서로 짝을 지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900단어로 된 짧은 논문이었지만 이후 이 논문은 다윈의 진화론, 멘델의 유전법칙에 필적할만한 20세기 최대의 생물학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크릭의 아내가 그린 최초의 DNA 2중 나선 그림은 생명과학과 현대문명을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이 짧은 논문으로 마침내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유전공학 생명공학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 위대한 발견은 오늘날 인간 염색체의 모든 염기서열을 밝히는 게놈프로젝트로 이어져 생물학의 위대한 이정표가 되었다.
2중 나선구조의 발견에 의해 완성된 이 탐구의 길은 1902년 미국의 생물학자 윌터 서튼이 염색체와 유전의 관련을 이론으로 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15년 과학자들은 “염색체가 유전자라는 더 작은 단위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유전학이라는 새로운 과학을 태동시켰다. 염색체가 포함된 세포핵에 관한 초기의 화학적 연구들에 의해 염색체가 단백질과 2종의 핵산 즉 RNA(리보핵산)와 DNA(디옥시리보핵산)로 구성되어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1952년에 이르러 카네기연구소가 DNA가 유전의 비밀을 풀수 있는 열쇠라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과학자들은 DNA야말로 오랫동안 찾아왔던 유전물질이라고 결론지었다. 문제는 DNA가 어떤 분자구조를 갖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DNA 구조 연구는 당시과학계의 핫이슈였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라이너스 폴링을 비롯, 영국 킹스칼리지의 모리스 윌킨스와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선두그룹이었다. 윌킨스는 X선 결정해석이라는 기법으로 DNA의 분자구조를 알아내려고 시도했고, 폴링은 나름대로 DNA 분자모형을 구성하는데까지 성공했다. 폴링은 중요한 단백질 구조의 하나인 알파 헬릭스모형을 발표하고 1952년 초에는 DNA 분자 모형을 완성하기까지 했으나 3개의 나선으로 구성하는 바람에 잘못된 모형으로 판정받았다. 폴링은 결국DNA 분자구조의 위대한 발견을 크릭과 왓슨에게 넘겨주어야 했으나 대신 다른 연구로 195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고 1962년에는 평화상을 수상하는 천재성을 보인다.
윌킨스는 1951년 5월 왓슨을 만나 DNA 결정을 비교적 분명하게 보여주는 X선 사진을 보여주면서 크릭과 왓슨의 연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이 공로로 윌킨스는 1962년 크릭·왓슨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15세에 시카고대에 입학할 정도로 수재소리를 들었던 왓슨은 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51년 가을 영국 케임브리지 캐번디시 연구소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인생의 운명을 바꿔놓을 공동연구자 크릭을 만난다. 크릭은 애초 물리학을 전공했으나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에어빈 슈뢰딩거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생각을 바꿨다.
크릭은 왓슨보다 12살이나 많았으나 두 사람은 곧 의기투합해 DNA의 구조를 밝혀나가기 시작했다. 이 분야에 햇병아리였던 두 사람은 처음에는 고전했다. 둘은 윌킨스로부터 얻은 X선 사진들을 검토하고 다른 화학적 자료들도 수집하면서 신비로운 DNA 분자의 모형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또 킹스칼리지의 로절런드 프랭클린이 공개한 DNA X선 회절사진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DNA가 2중 나선구조로 이뤄져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또 DNA 염기 중 아데닌과 티민의 분자수가 같고 구아닌과 시토신 분자수가 같다는 한 이론에서 아데닌과 티민, 구아닌과 시토신이 짝을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이끌어냈다.
18개월 동안 왓슨과 크릭은 DNA 구조와 그 복제양식을 밝혀내려는 시도를 계속하면서 수많은 모형을 구성했다가 부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1년 반만에 DNA는 두 가닥의 핵산이 서로 꼬인 나선형의 사다리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생명의 위대한 신비 가운데 하나인 유전의 비밀을 풀수 있는 열쇠를 찾은 것이다.

■■베트남 디엔비엔푸 함락             1954년

▲ 1954년 디엔비엔푸 함락-낙하산으로 투입되는 외인부대원

베트남 전쟁은 2차대전 때 일본에 베트남을 빼앗긴 프랑스가 종전 후 옛 식민지를 되찾기 위해 무리한 욕심을 내면서 시작되었다. 프랑스는 해외에 망명 중인 바오다이 황제를 주석으로 앉혀 독립을 원하는 베트민(베트남 독립동맹)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했으나 베트민군의 선전(善戰)에 밀려 1953년까지 7만 4000여명의 전사자와 19만명의 부상자를 냈다.
프랑스군 총사령관 앙리 나바르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프랑스는 패할수 밖에 없다”며 전황타개를 위해 승부수를 띠웠다. “프랑스군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정글전투를 피해 어느 한정된 장소에서 전투를 하면 베트민이 경험이 많더라도 섬멸할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근거한 전술이었다. 나바르는 라오스로 통하는 베트민의 주보급로를 차단하면 베트민의 대응이 있을 것이고 이때 베트민을 섬멸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로서는 합리적인 생각이었고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나바르가 선택한 곳은 멀리 최서북방 계곡에 위치한, 베트남인들이 디엔비엔푸라고 부르는 보잘것없는 마을이었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분지로 되어 있어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프랑스는 1953년 11월 20일에 이곳을 점령한 뒤 단계적으로 1만 6000여명을 배치했다. 말이 프랑군이지 절반은 알제리인, 남베트남인 등으로 구성된 외인용병부대였다.
나바르는 베트민군의 반격이 곧 있을 것이고 그 전투에서 승리하면 베트민군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곧 있을 전투를 위해 중앙 활주로를 중심으로 주변 언덕에 4개 요새와 49개 초소로 방어선을 구축했다. 단 하나 문제라면 모든 것을 공중 수송에 의존해야 한다는 데 있었다.
베트민군의 보 구엔 지압 장군은 디엔비엔푸를 완전히 장악한 프랑스군에 맞서 부대를 크게 2개로 나누었다. 하나는 군수품과 무기를 수송할 여자와 청년들로 구성된 2만명의 농민군이었고, 다른 하나는 산악지역을 하루에 20마일씩 행군하는 베트민 정규군이었다. 지압은 먼저 프랑스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군대를 신속하게 움직였다. 농민군은 1인당 5kg의 쌀을 지고 정글을 헤쳐 나갔고, 정규군은 200문이 넘는 대포를 몸에 연결해 정글을 뚫고 옮겼다. 한번에 1인치씩 하루에 반마일씩 3개월이 걸린 고행길이었으나 이 고생 덕에 병력이나 화력에서 프랑스군에 우위를 차지할수 있었다. 프랑스군은 병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이미 퇴로가 차단된 상태라 철수할 수도 없었다.
지압은 서둘렀다. 인도차이나를 포함한 전후 냉전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미·소·영·불 등 4대 강국이 4월말쯤 제네바에서 만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호들을 은밀히 깊게 파 언덕 위까지 연결함으로써 프랑스군의 모든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도 프랑스는 베트민군이 주변에 포진한 험한 산 위까지 중화기를 갖고 올라올 수 없을 것이라며 사태를 낙관했다. 그러나 4만명의 베트민군은 터널을 뚫고 언덕 위 요새 벽까지 접근했다. 대포는 분해해 등에 진 채 인해전술로 산을 넘었다.
다급해진 프랑스군이 믿을 것이라곤 미군의 대대적인 폭격이었으나 이마저도 미 의회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1954년 3월 12일 오후 5시, 마침내 베트민군의 대포 200여문이 포문을 열었고 이 포격으로 프랑스군이 1시간만에 500명이나 전사했다. 해질 무렵 한 요새는 700명 중 200명만이 살아남는 무덤으로 변했다. 계속된 전투로 활주로가 파괴되는 바람에 프랑스는 낙하산에서 떨어지는 보급품을 제외하면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되었다. 세계각지에서는 전투에 대한 분노, 비웃음, 허탈감을 담은 기사들이 신문 지면을 덮었다.
전투가 장기화될 것 같자 지압은 지하공격을 모색했다. 계곡 중앙으로 연결되는 총 길이 100마일의 참호를 파는데 모든 병력을 투입한 것이다. 참호는 프랑스군 지휘소에서 수백m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마지막 전투는 5월 5일 밤부터 시작되어 이틀 뒤 아침에서야 끝이 났다. 1954년 5월 7일, 결국 디엔비엔푸가 함락되어 56일간의 사투가 막을 내렸다.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라고 쓰여진 베트민군의 군기가 포연 가득한 디엔비엔푸 계곡에 펄럭였다.
이 전투로 프랑스군은 3000명 사망자를 포함 6000명이 죽거나 다쳤고 1만명이 포로가 되었다. 베트민군도 전사 8000명에 부상자가 1만여명이나 되었다. 1만여명의 포로들은 500마일 떨어진 포로수용소까지 60일간 죽음의 행진을 하다가, 또 3개월간의 수용소 생활을 견디지 못해 절반이 사망했다. 7월 21일, 3개월에 걸친 회담 끝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휴전협정이 조인되었고 호치민은 하노이에 입성했다. 100년간에 걸친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가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우리말 ‘큰사전’ 완간          1957년

▲ 1957년‘우리말 큰사전’ 최종 수정본 원고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2년부터 투옥 중이던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이 풀려난 것은 1945년 해방 후였다. 그들은 조선어학회의 재건문제를 논의했으나 그보다는 사전원고(辭典原稿)의 행방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사전원고란 조선어연구회와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우리말 사전을 펴내기 위해 1929년부터 작업해 온 2만6500여매 분량의 원고로, 발간을 앞두고 터진 1942년의 조선어학회 사건 때 일본 경찰에 압수된 원고를 말한다. 따라서 원고를 찾지 못하면 13년동안 기울여온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정말 다행히 1945년 9월 8일 서울역의 조선통운 창고에서 사전원고가 발견됨으로써 다시 사전편찬을 위한 작업에 시동을 걸수 있었다. 그러나 원고를 찾았다고 바로 출판할 수는 없었다. 3년 전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원고였지만 그동안 세상이 바뀐만큼 맞춤법도 개정하고 수록 어휘와 뜻풀이도 전면적으로 손질을 해야 했다. 사실상 새 사전을 만드는 것과 같았다.
사전편찬의 종합 책임은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를 결성할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이극로에게 맡겨졌고, 편찬 실무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2년의 실형을 살고나온 정태진과 역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사한 이윤재의 사위 김병제가 맡았다.
첫 난관은 종이부족이었다. 종이 배급제를 실시할 때였기 때문에 상업성이 거의 없는 조선어사전을 출판하겠다는 출판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매사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해 별명이 ‘물불’이었던 이극로가 답답한 심사를 달래기 위해 찾아간 사람은 을유문화사 정진숙 사장이었다. 이극로는 원고뭉치로 정 사장의 책상을 두드리며 “일본놈들한테 찾아가서 사정해야 옳단 말이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정 사장은 1권만이라도 낼 요량으로 출판에 응했다.
‘조선어학회 지은 조선말 큰사전’ 제1권(ㄱ~깊)이 나온 것은 1947년 10월 9일이었다. 그러나 당장 급한 것은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위한 소사전이었다. 김병제는 장인 이윤재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사전원고를 재정리해 1948년 4월 ‘표준 조선말 사전’을 발간했다. 이 사전은 ‘큰사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실질적인 규범 사전의 역할을 했다.
1957년 10월 전 6권의 큰사전이 완간될 때까지 우리나라의 표준적인 언어생활이 어느정도 가능했던 것도 순전히 이 사전 덕분이었다. 그럭저럭 1권을 출판하기는 했지만 2권, 3권을 출판하기에는 여전히 종이가 달렸다. 다행히 1948년 12월, 6권의 사전을 2만권씩 출판할 수 있는 4만 5000달러 상당의 종이와 잉크를 배편으로 보낸 록펠러 재단 덕에 2권(1949.5.5)과 3권(1950.6.1)을 출판할수 있었다.
조선어학회가 1949년 9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었기 때문에 3권부터는 ‘조선어학회 지은 조선말큰사전’에서 ‘한글학회 지은 큰사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6?25 후, 중단되었던 4권 발간을 서둘렀으나 이번에는 정부의 방해가 출판을 가로막았다.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의 철자법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철자법 개정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이는 1933년에 제정하고 ‘큰사전’에 적용된 형태중심의 ‘한글맞춤범 통일안’을 버리고 소리 나는대로 표기하는 표음주의 표기법을 채택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큰사전 1권~3권의 맞춤법 원칙과 배치될 뿐만 아니라 1930년대 조선어학회가 치열한 논쟁 끝에 확정한 한글 맞춤법의 전면적 손질을 의미했다.
한글단체는 물론 교육계와 문화계까지 나서 거세게 저항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3월  “3개월 이내에 현행 한글 맞춤법을 버리고 구한말 성경 맞춤법으로 돌아가라”는 특별담화를 발표하고 7월엔 ‘한글 간소화 방안’을 발표, 강행할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발음 위주가 아닌 형태 중심의 한글맞춤법으로는 한글을 정확하게 쓰기가 불편하고 어렵다는 점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지는 않았으나 전체적으로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한글학회를 비롯 문화 교육계 전반이 ‘한글 간소화’ 발표에 조직적으로 저항하자 결국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던 대통령이더라도 1955년 9월 자신의 뜻을 굽혀야 했다. 록펠러 재단의 도움을 받아 사전 출간은 계속되었고 1957년 4권,5권에 이어 10월 9일 마지막 6권을 출판함으로써 광복 12년만에 진정한 ‘문화의 광복’을 이뤄낼수 있었다.

■■모택동 ‘대약진운동’의 비극           1958년

▲ 1958년 대약진운동 모습

1949년 10월의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100만∼300만명을 처형해가며 사상개조를 끝낸 모택동은 1차 5개년 계획(1953년~1957년)에 이어 농·공업 분야의 낙후를 일소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기한다는 명목 하에 1958년부터 제2차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많이 빨리 훌륭하고 쓸모있는” 비약적인 생산증가를 목표로 한다고 해서 ‘대약진운동’으로 불렀다.
그러나 대약진운동은 모택동의 만성적인 조급성, 정신이 물질보다 우위라는 허황된 믿음, 의지만 있다면 기적의 시대는 계속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이 어우러진 모택동식 이벤트였다.
대약진운동을 전담할 ‘인민공사’는 1958년 8월 29일, 하북성 북대하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설립이 결정되었다. 인민공사는 농업을 기본으로 공장 상점 병원 등을 경영하고 교육기관과 자체 민병대까지 갖춘 공산사회의 작은 모델로 구상되었다. 토지와 농기구, 가축은 인민공사 소유로 하고 생산은 집단화 방식을 취했다. 평균 5000호의 농가로 구성된 인민공사 아래에는 생산대대가 있고 그 밑에는 다시 수십 가구의 농민들로 구성된 생산대가 있어 농민들의 참여를 강제했다.
사상개조를 마친 터라 농민들의 초반 호응은 열광적이었다. 3개월만에 2만 6000여개의 인민공사가 생겨나고 전 농가의 99%가 인민공사로 조직될 만큼 인민공사화는 전국적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1958년 한 해동안 전 인구의 90%나 되는 약 7억의 인민들이 그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과는 전혀 다른 인민공사에 편입되어 낯선 삶의 방식을 강요당했다. 농민들은 낡은 농구로 토지를 개간하고 수리관개시설을 대대적으로 건설하는데 투입되었다. 공업부문에서는 철강 생산량 증가가 특히 강조되었다.
그러나 모택동의 일방적인 지시와 충분한 검토없이 진행한 것이 화를 불렀다. 과도하게 할당된 목표량을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농민이 생산량만 중시하다보니 제품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졌고 각종 통계와 결과보고는 과장되고 조작되었다. “15년 안에 영국의 철강 생산량을 따라잡겠다”는 목표 달성을 위해 전체 인구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9000만명을 철강생산에 투입하고 가정의 쇠냄비와 농기구까지 용광로에 집어넣었으나 강철은커녕 쓸모없는 고철만 양산되었다.
농업 생산량이 실제 이상 부풀려 보고된 탓에 농촌의 식량난이 가중되었다. 게다가 1959년부터 3년간 대흉작까지 몰아닥쳐 굶어죽는 사람이 2000만~3000만명이나 되었다. 일부 농민들이 가축을 도살하는 등 반발했으나 투옥과 죽음이 그들을 맞았다. 전국 최초로 인민공사가 조직된 곳에서만 1959년 11월부터 1960년 7월까지 반대운동을 하다 1774명이 체포되고 36명이 옥사했다. 모택동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대약진운동을 비판하는 자에 대해서는 ‘우경(右傾) 기회주의’라며 거칠게 비판했다. 당시 상황에서 ‘우경’은 곧 반혁명이었고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또한 대약진운동의 실패는 수습책, 책임소재. 이념문제를 둘러싸고 중국 권력층 내부에 심각한 대립과 분열을 초래했다. 모택동은 대약진운동을 정면에서 비판한 팽덕회 국방장관을 실각시켜 비판을 모면하려 했으나 날로 악화되는 경제실패에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레닌도 마르크스도 과오는 있었다. 따라서 우리도…”라며 물타기를 시도했으나 결국 “경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며 자신의 과오를 시인해야 했다.
모택동은 유소기에게 국가 주석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당 주석 자리만 유지한 채 외형상 권력 핵심에서 비껴나 사태를 관망했다. 유소기는 시장경제의 도입, 전문관료와 기술자의 경영참여, 정확한 통계보고, 생산목표 초과에 대한 초과수당 지급 등을 포함한 각종 정책을 실시했다. 노동자·농민의 근로의욕을 높여주고 기업경영에 사상적·정치적 간섭을 배제시켰다. 이런 노력에 1962년의 풍년까지 더해져 중국의 경제는 소련의 경제·기술원조가 중단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크게 회복·성장할수 있었다.
경제정책 성공으로 정치적 위상이 높아진 유소기는 요직에 등소평 등을 중용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실용파가 부상하고 이들 실용파에 의해 자신의 업적과 정책이 모독당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겼다. 그 때 팽덩회 후임으로 국방장관에 임명된 임표가 접근, 모택동의 열렬한 지지자로 행세했다. 모택동·임표는 유소기·등소평 중심의 실용파와 대립각을 세웠고, 결과는 광란의 문화대혁명을 통한 유소기의 죽음과 등소평의 유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