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리기엔 늦은 것 같다  
               
정확히 1년 전, 역시 처서 즈음 이 자리에 쓴 칼럼의 첫 문장은 ‘유난히 무덥고 거친 여름이었다’로 되어 있다. 올여름을 지내고 나서 보니 유난히 무덥다는 말은 고쳐 쓸 필요가 없다. 한반도에서도 체감온도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여름의 ‘뜨거운 맛’을 유감없이 체험해야 했다. 한낮의 거리에서는 사람들을 마주치기가 어려울 정도였고, 휴가 시즌 관광지에서도 걷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올해는 아마도 ‘더 무더운’ 여름이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체감하기에 그다지 ‘거친 여름’은 아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예년과 같은 태풍 소식이 유난히 적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억하기에 올 여름 태풍 소식은 입추가 지난 최근에서야 잠깐씩 들려올 뿐이다. 초여름 장마철부터 어김없이 태풍 소식을 듣던 기억에 비하면 작년과 올해는 태풍이 아예 사라진 것 같은 느낌마저 받는다. 급작스럽게 형성된 돌풍이 종종 불었을 뿐 그것은 태평양에서부터 열대성 저기압의 영향으로 발생해 열흘너머의 시간을 두고 북상해오던 기존의 태풍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기상학자들의 발표를 보면 태풍이 사라진 것은 지구 환경의 이상고온과 관련되어 있다. 직접적으로는 대기 중 CO2 농도와 무관치 않다. 

그러나 여전히 이산화탄소 문제의 심각성에 둔감한 사람들이 산업화시대의 사고방식을 고수하며 석유개발과 활용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것은 ‘사고방식의 세대차’ 문제로 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전기차 지원을 줄이고 석유를 더 많이 개발해서 기름 값을 내리고 물가를 잡겠다’는 식의 공약을 내걸고 있는데, 과연 자신이 하는 말의 과학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는 하고 하는 말일까. 과학적으로 구시대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과학과 경제 정책을 이끄는 것은 한 나라의 미래를 넘어 인류의 미래에 실재적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시민들은 각성할 필요가 있다. 나라마다 집단지성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면, 이러한 ‘정신적 구세대’는 필연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동차나 공장의 매연만이 이산화탄소를 증가시키는 것은 아니다. 한꺼번에 수백개의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리는 것과 맞먹는 미사일과 고폭탄 등을 무수히 쏟아붓는 전쟁이야말로 단기간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에너지를 탕진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에너지 범죄다. 다이너마이트 1kg이면 단 1초에 7.5메가와트의 에너지를 허공에 날려버린다. 그러니 전쟁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사고 또한 구시대적이며, 이러한 사고를 가진 지도자들은 잠재적 위험인물들이다. 불행하게도 러시아와 중동에서 전쟁은 이미 현실이고, 한반도 또한 구시대적 충돌의 유혹 앞에 놓여 있다. 전쟁이란 방식을 상상하는 자체가 구태다. 

사실 이번 여름이 ‘거칠었다’고 느낄 수 있는 다른 부분은 지진이다. 1년 전만 해도 이렇게 진지한 위협은 아니었다. 지금은 너무나 진지하다. 정월 초하루부터 일본의 북동부 노토반도를 덮친 리히터규모 7.6의 대지진은 해안의 지반을 4미터나 들어 올려 지형을 바꾸었고, 2-3달 동안 크고 작은 여진이 1백회 이상 지속되었다. 3월에는 그 반대편 도쿄 인근의 지바현에서 중급 규모(4~5)의 지진이 다시 20회 넘게 반복해 일어났다. 8월에는 한국인들도 온천여행지로 자주 드나드는 큐슈 섬 남쪽해상에서 7.1의 지진이 일어 40여 차례의 여진을 동반하며 이어졌고, 열흘 뒤에는 북쪽 홋가이도 섬에서 6.8 지진이, 며칠 뒤에는 여기서 북쪽으로 이어진 러시아령의 쿠릴- 캄차카반도 등에서 최대 7.0의 지진이 연달아 일어났다. 이 때문에 일본은 남해안에서 150년 주기의 ‘거대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는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비상구조계획을 세우는 등 대비에 들어갔다. 일본열도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타이완 섬에서도 진도 6~7의 지진이 올해 들어서만 몇 차례나 반복해 일어나고 있다. 타이완 섬은 섬 전체가 바다위에 뜬 함정처럼 불안해졌다.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 필리핀판 북미판 사이에서 격렬한 운동이 벌어지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더 놀라운 건 일본이 최대 지진지역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형지진이 그보다 더 자주 일어나고 있는 곳은 필리핀으로부터 인도네시아 자바해,  필리핀, 파푸아뉴기니 솔로몬제도 등 동남아-해양지역인데, 진도 4-5 정도의 지진에는 이제 놀라지도 않을 정도로 일상화되어 있다. 인도지역과 중앙아시아의 경계인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네팔 타지키스탄 투르크 지역으로도 지진 벨트가 활발히 움직인다. 북미 서부해안(캘리포니아 해안)과 남미 서부해안(칠레 해안), 그리고 중미라고 부르는 캐리비안해 지역도 지진활동이 매우 활발해졌다. 

거칠어진 여름, 전에 없이 들끓는 태평양 중심 ‘불의 고리’ 지진대를 살펴보면, 지구가 지금까지의 평온을 더 이상 무사히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 한계성마저 느끼게 된다. 지구 자체의 지각운동 리듬이 있으니 여기서 인간의 책임을 따지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전쟁과 파괴, 오로지 개발 지향의 문명건설(?)과 이익다툼에 눈이 멀어 지구의 중환(重患)상태를 돌아보지 않는 인류를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온다. 지금이 그렇게 한가한 때인가. 이제는 정신을 차린다 해도 방도가 없을 것만 같다. 심각하다. NM

▲ 이은주 한의사

[이은주 대화당한의원, 한국밝은성연구소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