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민 케인’ 대호평               1941년
오손 웰스(1915~1985)는 19세에 연극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고 20대 초반에 라디오 드라마  ‘화성인의 습격’을 연출해 미국인들을 패닉상태로 빠뜨렸던 연출의 신동이자 귀재였다. 명성이 자자해지자 1939년 RKO 영화사가 24세의 그를 찾아와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화연출을 제안한다. 그때까지 오손 웰스는 한편의 영화도 만든 적이 없었다.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영화 2편을 제작하는데 22만 5000달러를 주고 영화제작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제작비 50만달러 범위 내에서는 어떤 영화라도 제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영화사가 내건 조건이었다. 영화에 관한한 무명의 영화감독에게 할리우드가 지불한 액수로는 역대 최고치였다.
웰스가 할리우드로 무대를 옮겨 영화 ‘시민 케인’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한 촬영감독으로부터 만나자는 전갈이 왔다. MGM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던 36세의 그렉 톨랜드였다. 이미 연극과 드라마를 통해 웰스의 천재성을 알아본 톨랜드는 ‘시민 케인’의 촬영을 자청했고 웰스는 요청을 받아들였다. 톨랜드는 자신이 사용하던 장비와 스텝들을 모두 데려왔다. 웰스 역시 자신이 결성한 ‘머큐리 방송 극단’의 배우들을 영화에 동원했으니 사실상 외인부대의 집합소나 다름없었다.
웰스가 각본·연출·출연까지 한 영화 ‘시민 케인’은 1940년 6월에 촬영을 시작해 1941년 5월 1일에 개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자신을 소재로 삼았다는 사실을 알게된 신문왕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영화 상영을 막았다. 허스트 소유의 신문들에는 ‘시민 케인’에 대한 기사가 실리는 것이 금지되었고, 할리우드의 거대 극장 체인들은 “영화를 배급할 경우 보복 조치하겠다”는 허스트의 위협을 받았다. 결국 극장 체인들은 허스트의 위협에 굴복했고, 영화는 독립극장에서만 상영되었다.
영화 속 신문왕 찰스 포스터 케인이 대저택에서 ‘장미꽃 봉오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눈을 감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주인공의 야망, 사랑, 부침을 교묘하게 배합시켜 미스테리를 추적해가는 한 기자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이 대목이 웰스의 자신감이 넘쳐나는 점인데  웰스는 이야기의 시간적 배열을 깨뜨려 주인공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한 기자가 이를 탐문하도록 해 다섯 번이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도록 했다. 촬영감독 톨랜드가 선보인 화면의 전경, 중경, 후경에 모두 포커스를 맞추는 ‘딥 포커스’ 기술은 훗날 영화 교과서에 빈번하게 인용되었다.
1941년 당시 일반적이었던 것들은 영화에서 모조리 무시되었다. 이야기 진행의 기준이 되던 적당한 시간적 흐름도 없었고 등장인물에 대한 분명한 선악구분도 없었으며 편집도 관객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는 ‘할리우드가 만들어낸 가장 센세이셔널한 작품’이라고 하고, 뉴스위크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최고의 영화’라고 하는 등 영화는 비평가들과 언론으로부터 격찬을 받았다. 하지만 허스트의 회유와 협박 때문인지는 몰라도 영화는 15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며 흥행에 참패했다. 그래도 오늘날 영화인들은 ‘시민 케인’을 20세기 최고영화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1998년 미국의 영화전문가 1500명이 ‘시민 케인’을 미 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선정함으로써 오손 웰스의 천재성을 인정해주었다.

■앨런 튜링 ‘에니그마’ 해독과 ‘콜로서스’ 개발           1943년
2차대전 발발을 전후해, 영국의 뛰어난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갑자기 학교와 연구실을 떠나 런던 근교 블레츨리 파크에 있는 한 농촌 저택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울트라’ 임무를 부여받았다. ‘울트라’는 ‘에니그마’를 해독하기 위한 영국 정보부의 작전명이고, ‘에니그마’는 독일 발명가 슈르비우스가 고안하고 1932년에 완성된 독일의 암호작성기다. 독일은 에니그마에 대한 보안을 철저히 하긴 했지만 설사 상대국이 에니그마를 입수했다고 하더라도 암호체계를 해독할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발발하기 전 에니그마는 이미 폴란드에 의해 부분적으로 해독되고 있었다. 당시 폴란드는 강대국인 소련과 독일 사이에 끼어 있어 어떻게든 소련과 독일의 통신문을 해독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다행히 에니그마에 대한 중요 정보를 빼돌려 폴란드에 건네준 독일인의 등장으로 폴란드는 가까스로 에니그마의 복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여기에 ‘폴란드의 암호 영웅’ 마리안 레예프스키가 암호해독기 ‘봄브’를 개발함으로써 부분적으로 에니그마를 해독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폴란드의 역량으로는 점점 기능이 좋아지는 에니그마의 개량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38년 12월 독일이 5번째 회전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에니그마의 보안을 강화하고부터는 더 이상 암호를 해독하지 못해 1939년 9월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독일의 침공을 맞았다. 결국 폴란드는 에니그마 복제기와 ‘봄브’ 개발에 축적된 모든 노하우를 영국에 넘겨주었고, 영국은 소규모로 운영해오던 에니그마 해독 연구조직을 더욱 확대시켰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블레츨리 파크로 소집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울트라 팀원 중 가장 탁월했던 사람은 당대 제일의 수학자 앨런 튜링(1912~1954)이었다. 튜링은 천재 수학자였다. 그는 에니그마의 암호체계를 해독하는 부서의 책임자가 되어 폴란드의 ‘봄브’를 샅샅이 분석했다. 튜링이 에니그마의 비밀을 하나둘 풀 때마다 영국군은 전술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지점에 항공기를 출동시켜 그때마다 반응하는 독일측의 암호전문을 도청하는 형태로 암호체계를 해독해 나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뉴 봄브’ 덕에 영국은 독일의 U보트 공격에 대비할 수 있었으며 1940년 5월 프랑스 북부지방에 포위된 수십만명의 영국군을 덩케르크에서 무사히 철수시켜 전력을 고스란히 보전할 수 있었다.
튜링은 한 걸음 더 나아가 1943년 12월 세계최초의 연산컴퓨터 ‘콜로서스’를 완성했다. 1500여개의 진공관으로 만들어진 ‘콜로서스’는 길이와 폭이 5m, 높이가 3m나 되는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었다. 초당 5000자의 암호문이 종이 테이프를 타고 들어가면 콜로서스는 에니그마의 암호와 일치할 때까지 암호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암호를 풀었다. 이후 콜로서스는 독일의 거의 모든 비밀통신을 도청하고 독일의 전력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훤히 꿰뚫어 보았다. 그런데도 독일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사실을 모른 채 전쟁을 치렀다.
전쟁 후 콜로서스의 존재는 오랫동안 비밀로 처리되었다가 1974년 당시 암호해독 작전에 참여했던 한 요원이 ‘울트라의 비밀’이란 책을 내고 1975년 10월 영국 정부가 콜로서스 사진을 공개하고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전쟁 후 튜링은 “기계도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골몰한 끝에 1950년 ‘컴퓨터와 지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은 1980년대에서야 연구가 본격화된 인공지능 컴퓨터의 가능성을 제시한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튜링은 1952년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곤경에 빠졌다.
당시 동성애는 처벌받아야 할 중범죄였다. 튜링은 전쟁 중의 공로를 인정받아 감옥행은 면했으나 대신 동성애 성향을 치료하기 위해 여성 호르몬을 규칙적으로 복용해야하는 시험적 처방에 따라야 했다. 튜링의 몸에 정해진 간격으로 정해진 양의 여성 호르몬이 투입되면서 튜링의 몸에서는 약물처방 후 발기불능과 중추신경계 손상, 특히 여자처럼 가슴이 발달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튜링은 충격에 휩싸였다. 처방은 1953년 4월에 끝났지만 증상은 여전했다. 그러던 1954년 6월7일 저녁, 동화속의 백설공주가 독사과를 먹고 죽은 것처럼 그역시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검 옆에 떨어진 사과에는 여러번 베어문 자국이 있었다.

■8·15 해방          1945년
1945년 8월 15일. 기온은 27.2도였다. 오전 9시 하늘에는 80%의 구름이 끼어 있었으나 오후 3시 무렵에는 쾌청했다.
우리말 신문으로는 단 하나 밖에 없던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조간인데도 오전에 배달되지 않았다. 오전 8시40분쯤, 일본 헌병대로부터 경성방송국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모든 것을 불태워라.” 곧 일본도로 무장한 헌병들이 방송국에 들이닥쳤다. 낮 12시, 알아 듣기 어려운 40대 중년 남성의 떨리는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히로히토 천황의 육성이었다. 잡음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표현도 어려워 무슨 말을 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뒤이어 일본인·한국인 아나운서의 부연설명이 있고서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해방이었다.
라디오 수신기가 전국적으로 몇 만대에 불과할 때고 더구나 한낮이었던 터라 한국인 중 극히 일부만이 들었을테지만 분명 해방을 알리는 방송이었다. 그러나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고 길거리에는 여전히 총칼로 무장한 일본군이 깔려있었다. 거리로 뛰쳐나와 부둥켜안고 감격의 만세를 부른 군중은 없었다. 따라서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만세 소리가 울려퍼지고 태극기가 물결쳤으며 환호의 아우성이 터져나왔다는 훗날의 각종 증언은 사실이 아니다.
그날 서울 큰 거리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매일신보는 오후가 되어서야 배달되었다. 그런데 1면에만 기사가 실렸고 2면은 백지상태였다. ‘평화재건(平和再建)에 대조환발(大詔渙發)’ 역시 제목만으로는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오히려 ‘경거(輕擧)를 엄계(嚴戒)하야 냉정침착 하라’는 아베 총독의 발표문이 더 눈에 들어왔다.
오후 내내 천황의 육성 방송과 우리말 방송이 반복적으로 방송되었기 때문에 그날 저녁 무렵에는 대다수 국민들이 독립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날 저녁 60여명의 미결수가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났다. 형무소 앞에서 외친 그들의 독립만세 소리가 서울의 저녁 하늘에 메아리쳤다. 가슴속 응어리가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기결수들은 다음날 풀려났다.
8월 15일 밤 경기 개성에서는 시내로 몰려나온 군중들이 기물을 파괴하고 불을 질렀다.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조선 사람들의 집이 공격 대상이었다. 지방에서는 조선인에게 겁을 주기위해 밤하늘을 향해 기관총을 쏘아댄 일본인도 있었다. 8월 16일 아침,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정말 전국적으로 누구랄 것도 없이 전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급조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36년 동안의 일제 통치는 이렇게 그 막을 내렸다.
이미 항복사실을 알고 있던 아베 총독은 직원들과 함께 천황의 항복 방송을 들은 뒤 ‘유고(諭告)’를 낭독했으나 심한 충격으로 유고를 끝까지 읽지 못했다. 뒤이어 일반 직원들이 중요 서류를 소각했다.
종전과 더불어 조선총독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조선은행(한국은행)에 보관되어 있던 약 300만원 어치의 지금은(地金銀)과 약 8톤의 아편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지금은’은 당초 일본으로 보내려다가 나중에 미국이 문제 삼을 것을 두려워해 조선은행에 그대로 쌓아두었고 아편은 민간인을 통해 일본으로 보내려다가 미군에 발각되어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았다.
아베 총독은 9월9일 오후 3시45분 총독부 회의실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서명이 끝난 오후 4시30분, 총독부 정문 앞에 걸렸던 일장기가 내려가고 성조기가 게양되었다. 이처럼 우리가 맞이한 해방은 연합국의 승리에 따른 ‘주어진 해방’일 뿐이었다. 치안은 일본군에서 미군으로 넘어갔고 태극기는 게양되지 않았다. 곧 해방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 말고는 우리를 지배하는 세력이 일본으로부터 미국과 소련으로 넘어간 것에 불과하고, 분단의 시작임을 깨달았다.

■‘사해문서’발견        1947년
1947년 이른 봄, 예루살렘 동쪽으로 16km 떨어진 사해(死海) 서북쪽 쿰란에서 아랍계 베드인족 양치기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 바위산을 헤매고 있었다. 문득 가파른 언덕 위에서 낯선 동굴을 본 양치기는 동굴 안으로 돌멩이를 던져보았다. “쨍그렁”하는 항아리 소리가 들리자 호기심이 발동한 양치기는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넓다란 동굴 안에는 8개의 큰 항아리가 있었고 그 속에는 곧 부스러질 것 같은 두루마리가 엉켜있었다.
양치기는 그러나 그가 1900년만에 동굴 속으로 들어간 첫 사람이고 그의 손에 쥐어진 두루마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알지 못했다. 양치기가 가져온 두루마리는 골동품상을 거쳐 시리아 정교회 소속 성 마르코 수도원의 사무엘 대주교 손에 넘겨졌다.
두루마리가 구약성서의 원본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대주교는 당시로서는 거금인 24파운드에 구입해 헤브루대 수케닉 교수에게 보관을 요청했다. 수케닉이 예루살렘에 있는 미국 동방연구소의 트레버 박사에게 두루마리를 보여주자 트레버는 고대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여진 두루마리를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두루마리가 구약성서 이사야 사본임을 확인해주었다.
1948년 2월 트레버가 사진으로 만들어 전세계 유명 고고학자들에게 보내자 한달만인 1948년 3월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한 고고학 교수로부터 사무엘 대주교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문서는 구약성서의 원본이며 기원전 100년경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20세기 성서고고학 최대 발견’으로 일컫는 사해문서임이 확인된 것이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성서 고고학자들이 추가 발굴에 관심을 보였으나 1948년 5월 제1차 중동전의 발발로 탐사를 못하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서야 조직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당시 쿰란 지역은 이스라엘이 아닌 요르단 영토에 속했다.
1952년부터 1956년까지 학자들은 쿰란 주변의 험한 바위산에서 267개의 동굴과 바위 틈을 뒤졌다. 그 중 문서가 발견된 동굴은 양치기가 발견한 동굴까지 합쳐 모두 11개였고 동굴에서는 850여개의 문서들이 발견됐다. 조그만 조각까지 포함하면 2만5000점이나 되었다.
문서의 연대를 측정해보니,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 사이에 작성된 사본으로 확인되었다. 에스더를 제외한 구약성서 전체와 구약에 포함되지 못한 외경, 그리고 쿰란 사람들의 공동생활 규율 등 수많은 내용들이 한꺼번에 발견된 것이다. 이사야서처럼 원형 그대로 발견된 것도 있어 학자들을 경악시켰다. 요르단 정부가 관리하던 사해문서는 1967년 요르단이 6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이스라엘 손으로 넘어가 현재는 이스라엘 박물관에 대부분이 소장되어 있다.
그러면 사해문서의 어떤 점이 서양인들을 흥분 속으로 몰아넣은 것일까. 지금까지의 성서가 서기 8~10세기 무렵의 사본을 바탕으로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었으나 사해문서가 제작된 연도는 그보다 한창 전인 기원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에서 성서 고고학적 가치가 컸기 때문이다. 사본을 작성한 당시 사람들의 생활규칙에 관한 기록까지 발견되어 예수 시대의 종교·정치·사회·문화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밝혀낼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컸다.
사해문서를 작성한 주인공들은 자칭 ‘빛의 아들’이라고 칭햇던 에세네파였다. 이들은 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바리새파, 사두개파와는 달리 쿰란 근처에 틀어박혀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수많은 필사본을 만들어냈다. 에세네파는 서기 70년 로마의 예루살렘 함락직전 마사다 요새로 피신했다가 그곳에서 로마군과 장기간에 걸친 마지막 항전 끝에 전원이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에세네파는 로마군의 침입 소식이 전해지자 필사본을 양피지로 싼 다음 항아리에 담아 로마군의 눈에 띄지 않는 동굴 깊은 곳이나 메마른 바위 틈새에 숨겼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정        1948년
1948년 5월 제헌의회가 구성되자 다음은  대한민국의 밑그림이 될 헌법을 제정할 차례였다. 건국헌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법학자이자 소설가였던 현민 유진오이다. 먼저 그는 남조선과도정부 사법부 산하 법전기초위원으로 헌법안 작성에 발을 들여놓았다.
유진오는 1948년 5월초에 헌법안 작성을 끝냈으나 헌법안을 법전기초위원회에 제출만 했을 뿐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영향력이 더 컸던 행정연구회로부터 동참 제의를 받은 것이 불참의 이유였다. 행정연구회는 일제시대 고위관리들로 구성된 단체로 별도의 헌법안을 마련 중이었다. 그들은 제헌의회가 친일파였던 자신들의 헌법안을 심의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상대적으로 친일색이 엷은 유진오의 이름을 빌리기로 한 것이다.
유진오 역시 이승만과 신익희의 지원을 받는 행정연구회와 함께 연구해야 자신의 헌법안이 제헌의회의 심의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양측의 공동 노력으로 작성한 헌법안인데도 오늘날 ‘유진오안’으로 불리는 것은 내용이나 표현에서 유진오의 뜻이 대폭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최종 공동안은 제헌국회가 개원되기 불과 몇시간 전인 5월 31일 새벽 2시경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제헌의회 개원을 앞두고 모든게 백지상태였기 때문에 의원들은 개원 전에 먼저 임시준칙을 마련해 개원당일 오전에 통과시켰다. 임시준칙은 헌법 및 정부조직법 기초위원 30명과 국회법 및 국회규칙기초위원 15명을 선출하고 이 기초위원 선출을 위하여 10명의 전형위원을 선임할 것을 규정했다. 또 제헌 작업은 헌법기초위원회에서 헌법안을 기초하고 본회의에서 이를 심의·확정하는 순서로 진행되도록 정해졌다.
임시준칙에 따라 전형위원은 먼저 국회법 및 국회규칙기초위원회를 구성했고 이들이 마련한 국회법 초안은 6월 8일 본회의 상정을 거쳐 6월10일 초안 그대로 통과되었다. 전형위원들은 6월 2일 조봉암 김준연 허정 이청천 등 30명의 헌법기초위원들을 추천했다. 헌법기초위원회는 6월 3일 첫 회의를 갖고 한민당의 서상일을 위원장, 독촉계 이윤영을 부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유진오 권승렬 윤길중 고병국 등 10명을 전문위원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6월 4일 첫 돌발변수가 발생, 초반부터 기초위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헌법기초위원회가 유진오안을 기대하고 전문위원회에 심의의 기초로 사용할 헌법안을 제출하도록 요청했을 때 예상치도 않았던 권승렬 전문위원이 유진오안과는 별개로 자신의 헌법안을 제출한 것이다.
권승렬은 정부수립 후 초대 검찰총장과 2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사람으로 일제시대에는 변호사로 신간회에 참여하고 보안법에 비판적인 글을 기고하며 독립운동가를 변론했던 인물이다. 권승렬안은 유진오안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큰 문제는 없었으나 역사적 정통성을 깊이 고려하고 친일파 등에 대해 소급 처벌이 가능하도록 근거 규정을 부칙에 마련해 놓은 점 등이 유진오안과는 달랐다.
기초위원회는 두 안 중 어느 것을 선택할수 없어 유진오안을 심의의 주축안으로 삼고 권승렬안을 참고하기로 했다. 헌법기초위원회의 조문별 토의는 6월 7일부터 중앙청 제1회의실에서 시작되었으나 각 정파는 6월 10일부터 시작된 권력구조에 대한 심의에 촉각을 세웠다.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중심제, 양원제와 단원제, 대통령 직선제와 간선제 중 각각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주요 쟁점이었다.
유진오안은 내각책임제와 양원제였다. 양원제·단원제 문제는 무소속 의원들이 양원제를 주장한 것과 달리 단원제를 선호안 한민당에 의해 6월 10일 단원제로 결정되었다. 대통령 선출방식도 의원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선제로 결론이 났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대통령제와 내각책임제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는데 이승만은 이미 6월 7일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제 지지의사를 천명해 공개적으로 기초위원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당시 이승만의 정치적 권위를 감안할 때 이것은 기초위원회에 상당한 압력이었으나 내각책임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기초위원들은 6월 11일 내각책임제를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그런데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제헌사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 연출되었다.
이미 기초위원들이 내각책임제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상태인데도 이승만은 대통령 중심제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막판 뒤집기를 시도한 것이다. 이승만은 6월 21일 헌법기초위원들에게 “대통령제를 채택하지 않으면 정부에 참여하지 않고 민간에 남아 국민운동이나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승만이 정부 구성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나마 취약했던 제헌국회의 정당성을 송두리째 날려버릴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이승만에 먼저 굴복한 것은 한민당이었다. 이승만의 엄포에 놀란 백관수 김도연 서상일 조병옥 등 한민당 의원들이 6월 21일 밤 계동의 김성수 집에 모여 내각책임제를 대통령중심제로 바꾸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6월 22일 기초위원회의 마지막 회의에서 한민당측 인사들이 전날 수정한 헌법안을 제출했다.
번안(안건을 뒤집음) 동의는 출석인원 총 22명 중 1명만이 기권하고 나머지 전원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헌법안 중 가장 중요한 내용이 하루밤 사이에 바뀐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번안 헌법안 역시 완전한 대통령제는 아니었다. 원래의 내각책임제 헌법안에서 몇가지 핵심적인 사항만을 겨우 수정한 것에 불과했다.
6월 23일 드디어 헌법안이 제17차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고, 본회의는 헌법기초위원회가 결정한 헌법안 모두를 매일 심의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결정되고 태극기가 우리 국기임이 확정되었으며 국방군은 국군으로 바뀌었다. 총 103조의 헌법안이 최종 통과된 것은 1948년 7월 12일이었다.
헌법안 확정은 의원들의 기립표결로 이뤄졌다. 국회 속기록에는 전원이 기립했다고 되어있으나 현장을 지켜본 한 기자는 3명의 의원이 기립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사회를 보던 이승만이 눈시울을 적신 채 가결을 선포했을 때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원들의 박수가 터져나왔다. 헌법은 하루 전 가결된 정부조직법과 함께 7월 17일 국회의사당에서 성대하게 공포되었다. 헌법의 서명·공포는 부칙 제99조에 따라 국회의장 이승만이 행했다. 마침내 대한민국의 골격이 완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