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근본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인간으로서 삶과 세상을 경험한다. 이런 경험을 정의하고 또 재정립하고자 하는 시도는 수많은 철학자, 문학가, 예술가들에 의해 인류의 역사만큼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윤담 기자 hyd@

지구상의 다양한 생태계에 미치는 인류의 영향이 점점 더 많은 관심과 연구를 받는 인류세(Anthropocene) 시대에 들어서며 현대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탐구하는 예술가의 작업은 어느 때보다 더욱 절실하다.

▲ 기옥란 작가

내면적 성찰 통한 시간과 공간의 지평으로 새로운 시대성 창조하며 예술의 본질을 찾다
주목받는 작가 기옥란은 깊은 내면적 성찰과 폭넓은 인문학적 식견으로 하나의 정형화된 틀 속에 안주하지 않고 다양한 조형적 실험과 자유로운 기법으로 디오니소스적 예술에 천착해 왔다. 그의 주요 화두인 트랜스휴먼은 오랜 성찰과 탐구를 통한 예술 세계의 결집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의 개념에서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의 단면을 잘 포착해 동시대인들이 인간과 사회 그리고 미래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트랜스휴먼이라는 거대한 파고 속에서 인간을 특권화하지 않는 휴머니즘으로 접근하는 기 작가는 소통의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시대성을 창조하고 예술의 본질을 찾고자 시공간을 뛰어넘는 또 다른 탐색과 창조의 공간인 자신만의 내면의 동굴 속에서 매혹적이고 영감이 넘치는 예술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기옥란 작가는 “트랜스휴먼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한 부분을 찾아 보완함으로서 완벽하게 개조된 새로운 존재로 인간 실존과 변화의 연속성 안에 있는 인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면서 “‘진보’에 대한 계몽주의적 사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인류, 즉 인간 존재의 일부이면서 환경에 의해 형성되거나 변화된 ‘우리의 모습’과 ‘존재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저는 작품을 통해 휴머니즘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인간중심적으로 사고해 온 이성적 인간의 삶과 환경의 변화를 포착하고 이를 무한한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을 섭렵하며 사유의 폭을 넓혀온 기옥란 작가는 그간 스테인리스 금속과 천연섬유, 컴퓨터의 다양한 부품, 추상사진 등 다양한 기법으로 트랜스휴먼과 네오노마드를 표현해왔다.

그의 작품은 조화로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많은 이들에게 인간성 회복과 더불어 생명에 대한 충동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극복이라는 원초적인 문제에서부터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집중한다. 기 작가는 “오늘날 인간은 진정한 정신의 지향점을 상실한 채 방황하고 있다. 생명, 평등, 평화, 도덕적 가치가 끊임없이 훼손되고 있는 지구촌에서의 참혹한 전쟁, 편견과 이념적 대립에 의한 정치적 분열, 빈부격차와 물질만능주의 등 인간은 인종과 지역과 종교와 가진 것으로 분리하며 서로에게 허구의 미움과 갈등, 비탄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우리 모두는 저 우주적 생명력으로부터 나온 하나의 존재다.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본질의 힘을 깨닫게 하고 모두를 감싸 안아 하나로 느끼게 하는 진정한 예술을 추구하고 싶다”고 전했다.

▲ 네오노마드_우주여행.

깊은 예술적 숙고 통해 미래상에 대한 경각심 일깨워
절제된 구성으로 사물의 형태를 단순화시켜 재해석해 표현하는 기옥란 작가의 조형 방식은 비대칭적 기하학적 표현과 상징적인 기호를 통해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일정한 형식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재료와 미술 사조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는 기옥란 작가. 그는 최근 ‘관계와 소통을 위한 변주곡’, ‘공간에 대한 사유’, ‘원형으로부터’,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위한 변주곡’ ‘은하수와의 조우’ 등 유사한 작품세계를 더욱 심화,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하며 깊은 예술적 숙고를 통해 비인간화된 현대문명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상을 분명하게 경고한다.

이에 대해 기옥란 작가는 “변화무쌍한 우리들의 삶 속에서 개개인의 내면적 인간성에 대한 자성을 시작으로 평화로운 지구촌이 형성된다. 무한한 문명사회의 변화 속에서 자발적인 조화와 화해의 노력은 항상 기억하고 지녀야 할 중요한 가치”라면서 “공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기술의 편리함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기술적 편리함만이 아닌 인간성과 도덕성의 재고와 재환기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이어 “인간은 생명 진화과정의 정점에 존재하고 있으며 인류 역사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고, 욕망과 초월이 교차하며, 정착성과 유목성이 혼재하고 있다”면서 “사람들은 유위에서 무위로, 도시에서 자연으로, 인간에서 자연으로, 채움에서 비움으로, 소유에서 존재로, 복잡성에서 단순성으로 사유의 축을 옮겨야 하고 존재세계와 인간이 화해하는 세상을 열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 세텍 컨벤션센터 2023 뱅크 아트페어 및 아트광주 2023, 10-11월 갤러리 트랜스휴먼초대전과 영갤러리 초대전에 이어 지난 1월 용산아트홀 개인전, 2월 아트엑스포 전시, 3월 뱅크 아트페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기옥란 작가는 오는 8월 뱅크 아트페어, 10-11월 갤러리 트랜스휴먼초대전 등을 앞두고 있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