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맞춤법 통일안 발표             1933년
1921년 12월 발족한 조선어연구회는 한글날인 ‘가갸날’을 제정(1926.11)하고 동인지 형식의 ‘한글’(1927.2)을 발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역점을 둔 사업은 조선어사전  편찬이었다.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이극로 이윤재 최현배 안재홍 이광수 이희승 정인보 조만식 주요한 등 각계 인사 108명이 발기인이 되어 1929년 10월 31일 발족한 기구가 ‘조선어사전편찬회’다.

▲ 조선어학회 회원들

표준어 기본원칙 중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는 규정은 쉽게 결정되었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보통학교용 철자법에서 경성말(서울말)을 표준어의 기준으로 삼고 있었고, 당시 신문들도 대체로 서울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맞춤범을 통일하는 데 최대 난관은 철자법이었다. 그때까지의 철자법은 발음위주의 철자법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구한말부터 쓰여온 성경 철자법도, 한일합병 직후인 1912년 4월 조선총독부가 공식 발표한 조선어철자법도 발음 위주였다. 이는 주시경과 조선어연구회가 줄곧 주장해온 형태주의 철자법과는 거리가 멀었다.
형태주의 표기법에서 ‘읽으니’ ‘높고’로 표기하는 것을 ‘일그니’ ‘놉고’로 표기하는 표음주의는 소리나는대로 쓰기 때문에 편리하다는 게 장점이었다. 반면 형태주의 표기는 ‘읽으니’ ‘읽는’ ‘읽어’ 등에서 ‘읽’ 형태를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의미 파악을 쉽게 한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조선어연구회측이 형태주의 철자법을 관철시키려면 이미 표음주의 원칙을 공표하고 있는 조선총독부를 설득해야 했다. 그래서 조선어연구회는 조선총독부의 철자법 개량조사위원회에 조직적으로 참여했고, 이러한 노력 덕에 1930년 4월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형태주의에 입각한 철자법을 채택하게 되었다.
조선어연구회는 1931년 1월 조선어학회로 명칭을 바꾸고 1932년 12월 맞춤법의 원안(原案)을 완성했다. 원안을 두고 3년간 120여차례나 회의를 거듭한 끝에 최종적으로 완성된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세상에 공표된 것은 1933년 10월29일이었다.
총론에선 1.표준말을 그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삼는다. 2.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 3.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쓰되 토는 그 웃 말에 붙여쓴다로 정의되었다.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제정·공표한 후 다음 단계의 중요한 작업은 표준어를 조사하고 결정하는 사정(査定) 작업이었다. 문제는 표준어의 기준을 ‘중류사회의 서울말’로 정하다보니 다수의 방언이 탈락한다는데 있었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산재해 있는 수많은 방언을 한 지역 혹은 한 계층의 말로 대체해버린 것은 결과적으로 표준화 과정의 폭력성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연구회와 편찬회가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발표한 것은 1936년 10월28일이었다. 사정된 어휘수는 표준어 6111개를 포함 총 9412개에 불과했지만 맞춤법과 표준어에 준거한 최초의 어휘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전의 등대 역할을 하는 데는 손색이 없었다.
조선어학회측은 1940년 3월 조선총독부로부터 사전편찬을 허가받고 1940년 6월25일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까지 발표함으로써 조선어사전을 편찬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일제가 1938년 4월 제3차 조선교육령 개정으로 조선어를 교육과정에서 선택과목으로 추방하고 1940년 2월 창씨개명을 강요하며 1941년 3월 일제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불령선인(不逞鮮人)’들에 대한 예비검속을 강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조선사상범 예방구금령’을 발동하면서 조선어학회에도 탄압의 손길이 뻗쳤다.
결국 사전 편찬을 앞두고 1942년 9월에 터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관련자들은 줄줄이 구속되었고 사전원고는 압수되었다. 중단된 사전발간은 해방 후인 1947년 제1권이 나오고 1957년이 되어서야 마지막 6권이 나왔다.

■히틀러 독일 총리 취임           1933년

▲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가 힌덴부르크 독일 대통령을 만나고 나온 1933년 1월30일 밤 괴벨스는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마치 꿈같다. 새로운 독일이 탄생했다. 독일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독일도 아닌 오스트리아 출신에다 미술학교를 두 번이나 낙방해 거리를 배회하던 부랑자, 특별히 내세울 학력이나 경력도 없는 육군 하사 출신의 히틀러가 마침내 독일 총리가 된 것이다.
총리 위에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는 이미 86세로 무력한 존재에 불과했다. 1차대전의 패배와 경제난, 그리고 승전국의 무리한 요구로 독일 국민들이 절망과 굴욕감에 몸부림치고 있을 때 히틀러가 총리가 되었다는 것은 곧 인류에게 닥쳐올 대재앙의 서곡이었다.
1차대전에 참전해 두차례 부상을 입고 철십자 1급·2급 훈장을 받았던 히틀러는 전쟁이 끝났어도 여전히 군인 신분이었다. 그에게 상급부대로부터 ‘독일노동자당’이라는 정치단체를 정탐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1919년 9월12일은 히틀러 운명의 일대 전환점이었다. 독일노동자당은 몇몇의 노동자들이 모여 결성한 그야말로 별볼없는 단체였다. 그러나 히틀러가 독일노동자당에 입당하면서 당원 7명에 재산도 전무했던 이 단체는 머지않아 20세기 최고로 악명을 떨친 정당으로 변모해 나갔다.
1920년 4월 독일노동자당이 당명을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NSDAP’으로 바꾼 시점에 맞춰 히틀러도 군복을 벗었다. 이듬해 나치당 당수에 선출된 히틀러는 한편으로는 세력을 키우고 또 한편으로는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의 마음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그의 수족이 될 루돌프 헤스와 헤르만 괴링을 만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당시 독일 경제는 연합국측의 무자비한 배상금 독촉으로 파탄상태였다. 게다가 1922년 겨울 프랑스가 배상금 지불을 강요하기 위해 석탄과 철강생산 지대 루르 지방으로 진군해 들어오면서 급상승하던 인플레율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다. 마르크는 1922년 중반 1달러 대 400마르크에서 1923년 말 1달러 대 무려 40억 마르크까지 올라 불쏘시개로 쓰일 정도로 폭락했다.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던 독일인들이 ‘옛 게르만의 영광’을 꿈꾸고 있을 때 그들 앞에 히틀러가 나타난 것이다.
1923년 히틀러는 독일 전체를 지배하는 독재자가 되겠다는 계획아래 뮌헨에서 ‘비어홀 폭동’을 일으켰다. 체포되어 반역죄로 기소되었으나 법정은 오히려 히틀러를 전국적인 인사로 만드는 자리가 되었고, 9개월의 수감생활은 유명한 ‘나의 투쟁’을 탄생시켰다. 출감 후 히틀러는 실패로 끝난 비어홀 폭동을 거울삼아 합법적인 수단에 의한 새로운 집권투쟁을 준비하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1924년 5월 총선에서 비로소 6.5%의 득표로 32석의 의석을 획득했으나 1928년 5월 총선에서는 득표율 2.6%에 의석수 12석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1929년 대공황이 밀어닥치면서 천우신조의 기회를 맞게 된다. 대공황으로 공업생산은 불과 3년 사이에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수출은 60%, 수입은 65%나 격감했다. 은행의 연쇄파산으로 급기야 독일 전 은행이 휴일선언을 하는 등 최악의 경제난 덕에 1930년 9월의 총선에서는 18.3%의 득표로 107석을 얻어 일약 제2당으로 급상승했다.
나치는 혼란한 틈을 타 군부의 지지를 획득하고 기업의 후원을 얻어가면서 정권 장악을 행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돌격대(SA)와 친위대(SS)는 완전무장을 갖춘 사병조직으로 발전했고 경찰조직에도 나치 동조 세력이 침투했다. 히틀러는 이런 사회분위기에 편승해 1932년의 대통령선거에 나섰다. 결선투표까지 올라 36.8%의 득표율로 아쉽게 주저앉았으나 몇 개월후 치러진 총선(1932년 7월)에선 37.4%의 득표율로 230석을 획득해 마침내 사회민주당을 누르고 제1당으로 부상했다. 힌덴부르크가 그를 총리로 임명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된 것이다.
총리 취임 다음날 히틀러는 의회를 통한 연립 정부를 해체하고 3월 5일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과반수 의석 확보가 목적이었다. 나치가 장악한 국영 라디오는 하루종일 나치의 선전·선동으로 시끄러웠고, 길거리는 공산당 등 반대파를 향한 나치스 돌격대의 집요한 공격으로 어수선했다. 선거를 일주일 앞둔 1933년 2월27일, 갑자기 일어난 베를린 국회의사당 화재는 히틀러에게 독재자의 문을 열어주었다. 화재는 히틀러에게 반대세력을 탄압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구실을 제공했다.
내각과 의회의 승인을 받은 대통령령을 발동, 총선 전까지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영장없는 수색금지, 적법 절차에 의하지 않은 재산몰수 금지, 우편물과 전화통화를 개봉 또는 도청당하지 않는 사생활권 등을 정지시켰다. 히틀러는 독일인을 상대로 집단최면을 걸었고 독일인들은 그 최면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히틀러는 담배도 안피우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여자도 좋아하지 않았다.
총선 결과 나치당은 44%를 획득, 기대 만큼의 지지를 확보하진 못했으나 곧 우파인 국가인민당과 연립을 이뤄 절대다수를 실현시켰다. 이어 중도파까지 포섭해 ‘전권위임법’을 통과시켜 독재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렇게 독일은 히틀러의 나라가 되어갔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며 1당 독재체제를 구축해가는 히틀러의 진짜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민들은 1934년 8월 대통령 힌덴부르크가 죽자 90%의 지지로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히틀러가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동시에 수행하는 총통직을 선물했다. 자신감과 신뢰감을 불어넣어준 히틀러를 믿은 것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경제도 호전되고 있었다. 600만명이던 실업자는 2년만에 200만명으로, 4년후인 1937년에 100만명 이하로 그리고 6년후인 1939년에는 불과 몇만명으로 격감했고 같은 기간 생산도 2배로 늘어났다. 고속도로(아우토반) 건설, 국민차(비틀) 보급, 경제회복, 직업학교 위주의 교육개혁 등으로 독일 경제는 날개를 달았다.
의지할 곳 없던 독일 국민의 무력감과 절망감은 신뢰감과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히틀러는 독일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독일인들의 꿈을 담보로 한 침략의 정지작업일 뿐이었다. 환호와 열광으로 지내던 어느날 국민들이 불현듯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나 있었다. ‘선택’의 주체가 갑자기 ‘강요’의 대상으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징병제(1935년)가 실시되었고 중립지대였던 라인란트(1936년)가 짓밟혔으며 오스트리아·체코 등도 아무런 저항도 받지않고 합병됨으로써 히틀러는 성큼성큼 야욕을 향해 질주했다. 그리고 1939년 9월 마침내 폴란드까지 침공함으로써 인류를 파멸로 내몰았다.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           1934년
1930년 12월, 장개석은 지난 몇 년 사이 부쩍 성장한 중국 공산당의 홍군을 소탕하기 위해 10만명의 병력을 동원, 강서 소비에트 등 홍군의 본거지를 상대로 한 제1차 초공전(剿共戰)을 펼쳤으나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다. 1931년 5월과 6월에도 20만명~30만명의 병력으로 2차·3차 초공전을 펼쳤으나 매번 홍군에게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 대장정 후 생존자들

홍군은 ‘적이 진공하면 우리는 퇴각하고(敵進我退), 적이 주둔하면 우리는 교란하고(敵駐我擾), 적이 피로하면 우리는 공격하고(敵疲我打), 적이 퇴각하면 우리는 추격한다(敵退我追)’는 이른바 모택동의 ‘16자 전법’을 적절히 활용, 병력과 무기면에서의 압도적인 열세를 극복했다. 농민들과 불만을 품은 국민당군들까지 공산군에 합류하면서 공산군의 사기는 충천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일어나 장개석이 4차 초공전을 미루고 남경으로 돌아간 사이, 모택동은 1931년 11월 강서성 서금에 정식으로 중화소비에트 공화국을 세웠다. 중국 역사상 최초의 공산당 정부가 세워진 것이다.
만주사변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즈음인 1933년 4월 장개석이 또다시 제4차 초공전을 펼쳤으나 또 일생일대의 치욕스런 패배를 맛보았다. 공산 소비에트를 뿌리 뽑기 위해 시도한 2년간에 걸친 4차례의 포위섬멸작전이 모두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장개석은 1933년 10월 다시 70만명의 대군을 동원해 철조망과 시멘트로 물샐틈 없는 포위망을 펼치며 5번째 총공격에 나섰다. 이번에는 지난 네 차례에 있었던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수백대의 비행기와 기관총 등 신무기로 무장했다. 반면 공산당의 홍군은 18만명의 병력에 무기래야 소총 10만정이 전부였다.
장개석은 독일 군사고문의 권고에 따라 도로와 토치카를 건설하면서 매우 느리게 전진하는 새로운 전술을 펼쳤다. 홍군의 유격전을 봉쇄하기 위해, 점령한 마을은 불태우고 주민은 쫓아내는 초토화 작전을 썼다. 공산당의 홍군은 전통적인 유격전을 버리고 진지전으로 승부했으나 수적으로 월등한 장개석군에 대패하고 거의 궤멸 직전에 이르렀다. 포위망은 점점 좁혀오고 생필품과 의약품까지 동이 나자 공산당 지도부는 사태가 절망적임을 깨닫고 탈출을 결심했다.
서금이 곧 함락될 것 같던 1934년 10월15일, 부녀자와 병자 등 2만8000명을 남겨둔 채 홍군 10만명의 대탈주극이 시작되었다.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대장정(大長征)’이었다.
유격대 6000여명이 장개석 군대와 후방에서 혈투를 벌이는 동안 주력부대는 가까스로 적의 추격을 벗어났다. 장개석 군대의 저지선을 뚫고 광동성과 광서성을 거쳐 호남성에 들어간 뒤에는 방향을 돌려 그대로 북쪽으로 올라갔다. 한편으로는 집요한 장개석군의 추격을 따돌리고 한편으로는 지역 군벌과 적대적인 부족들과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이면서 24개의 강을 건넜고 18개의 산맥을 넘었으며 12개의 성을 지났다. 추위와 더위, 질병과도 싸워야 했고 때로는 4000m의 만년설을 넘기도 했다. 이동 중 만난 무려 2억이 넘는 사람들에게는 공산주의 이념을 전파해 중국 대륙을 붉게 물들여 나갔다.
밤낮으로 1만2500km를 행군하기를 1년여. 1935년 10월20일, 마침내 북서쪽 섬서성 연안에 도착함으로써 대장정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출발 때의 병력 10만명 중 모진 시련을 이기고 살아남은 자는 불과 7000명 뿐이었다. 살아남은 것 만으로도 축복이었고 가슴벅찬 승리였다. 행군도중에 모집한 1만5000명의 병력과, 역시 장개석 군대를 피해 후퇴해온 다른 공산군 부대까지 연안에 도착함으로써 홍군은 약 3만명으로 불어났다. 장정은 ‘불패의 홍군’이라는 신화를 만들었고, 모택동은 장정을 통해 중국 공산당의 유력한 지도자로 부상했다.

■‘2차 대전의 리허설’ 스페인 내전 발발           1936년
1920년대부터 시작된 나치(독일)와 파시즘(이탈리아)의 등장에 유럽의 좌파와 자유주의자들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한 것은 소련 공산당의 하수격인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이었다. 코민테른은 먼저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 공산당, 사회당, 무정부주의자 등으로 연립구성한 ‘인민전선’을 발족시켰다. 1934년 2월에 구성된 프랑스 인민전선 내각과, 1936년 2월의 총선승리 후 수립된 스페인 인민전선 정권도 이런 연장선에 있었다.

▲ 프랑코

특히 스페인의 인민전선은 정치범 석방, 노동자의 임금인상, 중소기업 보호 등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정책을 단행, 기층 민중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이를 무기로 군부 실력자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는 카나리아 제도의 경비사령관으로 좌천시키고 극우정당인 팔랑헤당은 불법화시켰다. 가톨릭 교회들은 불태워지고 대지주와 대자본가들 중 일부는 살해되었다. 그러자 왕당파, 가톨릭, 대지주, 대자본가, 군부 등이 폭탄?테러 등으로 인민전선 정부에 맞섰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스페인에는 두개의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을 띠었다. 어차피 한번은 무력충돌로 담판을 지어야 할 상황에서 기선을 제압한 것은 가톨릭과 대자본의 지원을 받고 있는 군부 세력이었다.
1936년 7월 17일 오전5시 아프리카의 모로코에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킴으로써 마침내 터질 것이 터졌다. 7월18일 프랑코 장군이 카나리아 제도에서 공표한 쿠데타 선언을 신호탄으로 스페인 본토 각지에서도 반란이 시작되었다. 프랑코는 7월19일 모로코로 날아가 현지에서 반란군을 지휘했다. 3년에 걸친 스페인 내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군부는 기습작전을 벌여 단시일 내에 전국을 제패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프랑코군의 본토 상륙이 늦어지고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등 주요 도시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결사적으로 반군을 막아서는 바람에 양측의 대결은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이번의 군부 쿠데타 역시 1841년 이래 일어난 202차례의 군부 쿠테타 가운데 하나로 끝날 수도 있는 사건이었으나 양측의 힘이 팽팽한게 문제였다.
정부군은 서전에서 기습을 당해 잠시 밀리긴 했으나 곧 전세를 가다듬었다. 정부군은 공업 요지, 인구 밀집지역, 그리고 수도를 장악하고 있었고 금보유고도 상당했다. 반면 반란군은 각 지방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군수물자가 부족했으며 파시즘을 추종하는 세력과 왕정복고를 꾀하는 세력 간에 알력이 있었다. 그런데도 최종 승리는 군부 파쇼에게 돌아갔다. 정부군이 패한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자금이 충분한데도 같은 민주주의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 등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할수 없었던 게 첫 번째 이유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스페인에 대한 무기수출이 히틀러를 자극시켜 급기야 세계대전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불간섭주의를 고집했다. 반면 히틀러(독일)와 무솔리니(이탈리아)는 프랑코의 모로코 부대를 본토로 수송해주는 등 내전 초기부터 프랑코를 지원했다. 무솔리니는 최정예 ‘검은셔츠단’대원 3만명을 파견했고, 독일은 전투기 등 각종 신병기를 스페인에서 시험했다.
프랑코가 10월1일 국가 대원수에 올라 반군을 총지휘하게 된 것도 독일·이탈리아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것이다. 반군에 맞서 정부군을 지원한 것은 소련과, 세계 각지에서 달려온 국제의용군이었다. 앙드레 말로, 어니스트 헤미웨이, 조지 오웰 등 유명 작가들을 포함 4만여명이나 되는 각국의 자유주의자, 반파시스트주의자, 공산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이 ‘국제여단’을 편성해 인민전선을 도왔다.
그러나 ‘뜨거운 가슴’만으로는 정규군으로 구성된 프랑코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인민전선 내부에 알력이 생겼고 내전이 ‘전쟁이냐 혁명이냐’는 소모적인 논쟁을 일삼는 바람에 전열이 약화되었다. 특히 소련이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행세하면서 인민전선 정부군과 국제의용군을 장악한 것은 내전의 역설이었고 비극이었다. 소련은 내전의 승패가 사실상 갈라질 즈음인 1938년 중반, 돌연 스페인 내전에 등을 돌리더니 패전의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정부주의자, 반스탈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제거하더니 다음에는 이상주의의 꿈에 감염된 철부지들을 처리하는 수순을 밟았다. 마지막으로는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처리자들’을 처리했다.
이로써 ‘지식인의 희망과 긍지와 치욕의 상징’이었던 스페인 내전은 사실상 종전 단계로 접어들었다. 결국 내전은 1939년 바르셀로나(1.26)에 이어 마드리드(3.28)마저 프랑코군에 함락되면서 2년 8개월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사이 30만∼60만명이 죽었고, 25만∼50만명이 스페인을 떠나 망명했다. 이로써 1931년에 발족한 제2공화국도 7년 9개월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나일론의 등장…20세기 의류혁명의 시작      1938

▲ 나일론을 신고있는 여성

나일론의 등장은 20세기 의류혁명의 시작이었다. 혁명은 시대를 앞서나간 듀폰사의 안목과 투자의 산물이었지만 혁명의 피날레를 장식한 주인공은 월리스 흄 캐러더스(1896~1937)였다. 캐러더스가 화학을 공부하던 1920년대는 유기화학사에서 중요한 시기였다. 단백질과 섬유, 고무 등 천연 고분자의 구조가 알려지면서 이것들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려는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캐러더스가 1924년 화학박사 학위를 받은후 하버드대 강사를 거쳐 세계 최대의 종합화학회사인 듀폰 중앙연구소 기초과학연구부장으로 입사한 것은 1928년 2월이었다.
이듬해 불어닥친 세계 대공황으로 연구에 차질이 빚어질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기초연구와 신기술 제품 개발만이 불황을 돌파하는 길이라는 듀폰의 판단에 따라 캐러더스는 계속 고분자 연구에 매달릴수 있었다. 그 결과가 1930년에 개발된, 천연고무보다 우수한 물성을 가진 인공 합성고무 ‘네오프렌’이었다. 다시 연구에 매진한 캐러더스는 1935년 3월 최초의 인공 합성섬유 ‘폴리아미드 66’을 합성하는데 성공했다. 20세기 섬유혁명의 기관차 ‘나일론’이 개발된 것이다.
새로운 발명품이 그렇듯 나일론 역시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태어났다. 당초 캐러더스는 자신이 합성한 인공섬유가 어떤 유용한 성질을 가졌는지는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날 캐러더스의 조수 줄이언 힐이 시험관에 달라붙은 인공합성섬유를 유리막대로 긁어내다가 유리막대 끝에서 실크처럼 영롱하고 가느다란 실이 끝없이 나오는걸 발견하면서 나일론이 세상에 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일론이라는 이름을 짓기도 전에 듀폰이 먼저 상품화한 것은 1938년 2월24일 처음 시판된 나일론 칫솔이었다. 그전까지의 칫솔에는 주로 돼지털이 사용되었다. 칫솔이 나왔을 때 캐러더스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1937년 4월 한 호텔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 것이다.
1938년 9월 20일 나일론으로 특허를 받은 듀폰은 나일론의 상품화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1938년 10월 27일 뉴욕박람회장에서 ‘나일론(Nylon)’이라는 이름의 합성섬유의 등장을 알리며 ‘석탄과 물과 공기로 만드는 섬유’라고 자랑했다. 나일론을 대표하는 상품은 여성용 스타킹이었다. 실크보다 질기고 면보다 가볍고 신축성까지 있어 스타킹 소재로는 적격이었다. 나일론 스타킹은 1939년 10월 24일 듀폰사가 위치하고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톤에서 처음 판매되었다. 1940년 5월15일부터는“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강하다”는 선전문구와 함께 뉴욕 등 전국의 대도시에서 팔려나갔다. 켤레 당 1.15~1.35달러나 받아 실크 스타킹보다 2배 가량 비쌌지만 백화점과 속옷 가게 앞에는 스타킹을 사려는 여자 손님들이 장사진을 쳤다. 나일론 시대가 화려하게 개막된 것이다.
그러나 나일론은 미국의 2차대전 참전과 더불어 잠시 소비자들의 곁을 떠나야 했다. ‘전시 생산위원회’가 모든 나일론을 군수용으로만 쓸 것을 명령했기 때문이다. 전쟁 중 나일론은 타이어 텐트 로프 판초 등 각종 군수품 원료로 쓰였다. 값비싼 아시아산 실크로 만들었던 낙하산의 새 원료로도 환영받았다.
전쟁후 나일론 제품은 본격적인 전성기를 누렸다. 스타킹은 물론 속옷, 블라우스 등 나일론으로 만든 첨단패션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1953년, 20세기 화학섬유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폴리에스테르’가 개발되면서 합성섬유의 왕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래도 여전히 잘 팔리긴 했으나 20세기 후반, “인체에 해롭다”, “환경을 파괴한다”는 등 각종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결국에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