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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영토문제가 아닌 일본에 의해 침탈된 한국의 역사”
안재영 영토문화관 독도 관장
2015년 05월 11일 (월) 03:39:32 황태일 기자 hti@newsmaker.or.kr


과거 일본정부는 독도(일본측 주장:다케시마)가 자국의 영토라 노골적으로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 2008년부터는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직접적으로 10가지 항목을 한국어, 영어, 중국어를 비롯한 11개국 언어로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기를 시작했다.

황태일 기자@

일본측의 자국영토 주장 10가지 항목 중, 사실상 일본이 중점을 두고 있는 항목은 단 두 가지 뿐 이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항목인, 1905년 2월 독도의 시마네현 편입주장이다. 이 주장도, 처음에는 주인이 없던 독도였기에 일본이 선점하였다고 주장(무주지 선점론) 하다가, 무주지 선점론 주장이  자신의 주장 2번째인 독도의 일본 고유영토 주장과 충돌하게 되자, 이후에 다시 원래 독도가 일본 영토였는데 재편입하였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안재영 영토문화관 독도 관장을 만나 일본의 이 주장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본측 주장에는 속임수 있어
   
▲ 안 관장은 “오늘날 소위 ‘독도문제’는 영토영유권 문제가 아니라 지난 날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과정에서 치밀하게 기획하며 일으킨 한반도 침략전쟁에서 첫 번째로 빼앗긴 한국의 고유 영토였다"라고 밝혔다

일본이 독도를 영토로 재편입하였다고 주장하는 1905년 2월, 일본이 한국을 강제병합(1910년 8월)하기 이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아무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기에 국제법적으로 독도는 일본영토다-라고 주장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일본의 독도 편입주장(1905년 2월)이 한일강제병합(1910년 8월)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독도의 일본 편입에 대해 아무 항의를 안 하였기에 자국(일본)에 독도 편입조치는 국제법적으로 유효하다-라는 주장이다. 언뜻 보기에, 우리 국민들을 포함한 제 3국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도 이런 일본 측의 주장은 일견상 상당히 타당성 있어 보인다. 하지만, 당시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일본의 주장에는 큰 속임수가 숨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재영 관장은 “그 첫 번째는 1905년 2월 당시 한국정부는 겉모습만 주권국가였지 사실상 모든 주권을 일본 제국주의 폭력에 의해 빼앗긴 상황 이였기에 항의를 할 수 없었으며, 인지할 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면서 “국제법상 무주지에 대한 선점시, 반드시 인접 국가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중앙관보에 고시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다케시마 편입주장은 중앙관보가 아닌, 지방 시마네현에서 중앙정부 고시도 아닌 지방정부내 회람정도의 내부서류상 이루어져 당시 실질적 피지배국 상태에 놓여있던 한국으로서는 인지할 수도 항의할 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래 일본에 의한 한국 침탈 상황일지를 살펴보면, 1905년 일본이 주장하듯이 한국은 과연 제대로 주권국가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는데도 일본에 의한 ‘독도’ 불법편입을 항의하지 않았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 무렵 일본의 한반도 침탈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1873.10월    일본내각 정한론(征韓論) 의결
1875. 5월    일본군함 운양호를 부산항 및 강화도 부근에 불법 침입시켜 조선의 군사적
              상황 점검이후 노골적인 조선침략 계획 진행
1894. 5월     대대적인 반봉건적 농민운동군 전주성 점령.
              일본군의 조선 침략이 걱정된 조선정부와 농민군 전주화약성립(6월 11일)으로 농민군 자진 해산
1894. 6월10일 일본이 불법으로 대병력을 제물포(인천항)에 상륙시킴.
              조선정부가 즉각 일본군의 철수를 요구하였으나, 일본군 서울진입.
1894. 6월14일 청나라 일본에 일본군 철수요청
1894. 7월23일  일본군 경복궁점령 후 대원군을 중심한 신정부 수립 (조선국왕 감금).
1894. 7월 30일 일본의 강압으로, 조-일맹약체결(군작선상 일본의 편의 확보). 조선정부는
               일본군의 경복궁철수 조건으로 수용.
1894. 10월23일 제2차 동학농민군 공주에서 대패한 후 해산
1894. 11월21일 일본군 청나라 해군기지 뤼순 점령(18000명 학살)
1895. 8월1일  청일전쟁 선전포고
1895.10월 8일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하에 조선국모 명성황후 시해
1897. 10월     대한제국으로 국호선포
1904. 1월     일본군 대한제국 황궁 점령
1904. 1월28일  러일전쟁 개시(제물포항).
1904. 2월23일 한일의정서 강제체결로 일본군 서울전역 완전점령
1904. 7월    제1차 한일강제협약으로 고문정치 실시(대한제국 재정권/외교권 실질적 상실)
1905. 2월22일 일본의 독도침탈-일본 시마네현 지방정부에서 고시하여 대한제국에서 인지할 수 없었음.
1905. 11월    을사늑약(제2차 한일강제협약)으로 대한제국 외교권 완전 박탈당함
1910. 8월29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병합.

세계인들이 사실 직시할 수 있도록 운동 펼쳐야
안재영 관장은 독도가 겪었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고 양심 있는 일본인들과 제 3세계인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1905년 2월 22일 일본이 독도를 불법 편입하였지만 한국 정부 측의 항의나 다툼이 없었다는 일본 측의 주장은 위에 기술한 당시 한국 상황을 알고 나면 일본 측 주장이 얼마나 기만적인 행위인지를 알 수 있으며, 이를 만방에 알려, 일본과 제 3국의 양심 있는 세계인들이 사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운동을 펴야 한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국제법적으로 선언하였다는 독도의 영토 재편입 주장은,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였다는 주장을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상반된 주장이다. 세계 역사 속에서 자국의 고유영토에 대해 재편입하는 조치는 선례도 없을 뿐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으며, 이런 조치는, 일본 스스로가 1905년 당시에도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들어내 보여주고 있다. 안 관장은 “오늘날 소위 ‘독도문제’는 영토영유권 문제가 아니라 지난 날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과정에서 치밀하게 기획하며 일으킨 한반도 침략전쟁에서 첫 번째로 빼앗긴 한국의 고유 영토였다”면서 “일본에 현 아베정권이 독도의 일본 고유 영토론을 주장한다는 것은 20세기 초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침략의 고통을 겪었던 한국, 중국, 대만 등 여러 인접 국가들에 대한 침략 근성이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는 반증이 되므로 이러한 때에 우리 한국 국민들은 이웃나라들과 함께 인접국가들간에 선린 우호관계를 깨게 되는 아베정권의 위험한 침략/팽창주의 정책에 대해 힘을 합쳐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고 피력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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