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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모는 청년의 협객화 운동이자 건달조직의 의인집단화 운동”
정의사회실천모임 박종선 이사장
2010년 04월 02일 (금) 14:13:57 황인상 전문기자 his@newsmaker.or.kr

‘협객(俠客)’. 호방하고 의협심이 있는 사람. 많은 이들은 요즘의 시대를 논하며 정의가 죽었다 한다. 온갖 부정부패와 사회적 악행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요즘, ‘이 땅의 쓰러진 정의를 되살리겠다’고 나선 협객에 사회가 주목을 하고 있다.
 
대담 황인상 국장 his@ / 정리 장정미 기자 haiyap@

   
▲ 『명동주먹신사 번개 박종선』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무신(武神)>이 머지않은 미래에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하는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는 박종선 이사장
‘명동 주먹신사 번개 박종선.’ 사람들은 과거의 그를 그리 불렀다. 지난 1960-70년대 호남주먹 1세대로 한국 주먹계를 풍미했던 그가 이제는 세계문무협회 총재, 정의사회실천모임 대표로 사회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시대의 ‘마지막 협객’, 정의사회실천모임의 박종선 이사장를 만나보았다.

이 시대 마지막 협객 박종선 이사장
전쟁 후 내로라하는 한국 주먹들은 혼란하고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타고 정치판에 흘러들
었다. 이권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은 혈기왕성한 주먹들을 노골적으로 이용한 후 토사구팽시
켰다. 유지광, 이정재, 임화수, 이화룡 등 당시 한국 주먹계를 풍미했던 거물급 주먹들은 ‘정치깡패’로 비참한 최후를 맞거나 운명을 달리하는 등 이제는 모두 저세상 사람이 됐다. 이정재의 동대문 사단에서 활동할 당시 인연을 맺은 후 평생 박 씨를 친동생처럼 여기고 돌봐주던 낙화유수 김태련 씨마저도 3년 전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쟁쟁한 인물들과 교류하며 한국주먹사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박종선 이사장은 신상현(신상사) 정종원(오따) 등과 함께 현존하는 마지막 주먹으로 꼽힌다. 그는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당시에는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았고, 나는 그 법의 사각지대에서 질서를 바로잡고자 했다.”고 말한다.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는 깡패가 아니었다.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짓을 한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당시에는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았고, 나는 그 법의 사각지대에서 질서를 바로잡고자 했다.”

그는 늘 자기만의 이익을 좇아 폭력을 일삼고 정치인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주먹은 주먹이 아니라는 신념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권력 앞에서 약해지고 힘없는 소시민들 앞에서 강해지는 비겁함 따위는 없었다. 소시민들의 편에 서서 늘 그들의 힘이 되어주었던 그를 향해 사람들은 민족을 위해 주먹을 휘두르던 정의로운 의인이라 말했다. 그리 살아온 그였다. 그가 이사장으로 몸담고 있는 정의사회실천모임(이하 정사모)은 2002년 출범, 폭력세계를 정화하고 폭력을 뿌리 뽑는데 앞장서고 있다. 정사모는 1989년부터 범죄추방운동을 펼쳐온 민주시민연합의 전재혁 의장에 의해 결성된 단체로 박 이사장은 2002년부터 이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흔히 건달세계에 몸담은 사람치고 피가 뜨겁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 혈기를 참지 못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것” 이라면서“그들에게 의협심을 불러일으킨다면, 그들 스스로 정의를 실천하게끔 한다면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하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사모는 범죄예방 활동은 물론 한때의 유혹을 못 이겨 나락으로 빠져들었거나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이들을 교화시키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폭력세계 정화 위해 정사모 출범

   
▲ 한국의 조폭은 일제강점기와 광복공간의 ‘낭만파 주먹시대’, 자유당 정권시절 정치권과 결탁한 ‘정치깡패시대’, 5·16 군사 쿠데타로 숨죽여 지냈던 조폭들이 피비린내 나는 조직간 전쟁을 벌인 ‘전국구 주먹시대’, 현재의 ‘기업형 폭력시대’로 특징 지워진다.
“우리에게는 사회의 밑바닥을 볼 수 있는 특별한 눈이 있다. 경찰과 같은 공권력이나 시민단체들이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폭력 청소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재소자들이 건전한 형태로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데 힘이 되고 싶다.” 지난 2002년 전재혁 의장이 박 이사장을 찾아와 “폭력세계를 정화하자”는 뜻을 밝혔을 때 그는 선뜻 이사장직을 수락했다. “내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는 없지만 그때와는 시대가 많이 변했고, 후배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전국의 원로급 ‘주먹’들과 후배들에게 모임의 성격을 설명하고 함께 참여할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지난 2002년 1960-70밤의 세계를 주름잡던 200여 명의 주먹들이 모여 정사모가 출범할 수 있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자유당 시절 유지광 씨와 함께 동대문 사당을 이끌었던 ‘낙화유수’의 김태련 씨가 고문직을 맡았었으며, 권태근, 유서영, 김현기 씨 등 과거 유명한 주먹들이 집행위원부위원장과 감찰위원장, 감찰부위원장 등으로 참여했다.

“내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는 없지만 그때와는 시대가 많이 변했고, 후배들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개과천선한 깡패, 건달, 조폭들이 뜻을 모아 철없이 날뛰며 서민을 괴롭히는 조직폭력배들을 정화하겠다”며 출범한 정사모였지만, 당시 검·경 등 사법당국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꺼렸던 조폭 두목들이 정사모란 단체를 통해 언론과 국민들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조직 재건에 나섰다”며 “과거 조폭들이 이제 와서 학원 폭력 정화에 나선다면 오히려 조폭이 영웅시 되는 등 악영향이 더 크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박 이사장은 그러한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 현직주먹은 철저히 배제하고 모임의 취지를 훼손하는 회원은 가차 없이 퇴출시켰다. 그리고 묵묵히 청소년 선도활동에 힘을 쏟았다. 서울 시내의 학교를 돌며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한 불량 서클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배들의 경험을 살린 강의를 열고 자활원을 건립해 소년범들의 재활을 도왔다. 이러한 정사모의 활동에 사법당국의 차가운 시선도 많이 사그라졌다. 이제는 경찰과 공동으로 방범활동을 할 정도로 경찰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위하여
정사모는 현재 2,000여 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이들 중 대다수가 소년원이나 교도소에서 적응하지 못해 또다시 어둠의 세계로 빠져들 위험에 처해 있다. 박 이사장은 “사회적으로 이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서 “교도소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바르게 살고자 마음을 먹고 나와도 사회는 이들을 향해 마음을 닫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범죄자의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이 찾아오는 정사모는 그들을 교육, 교화시키는데 앞장서오고 있다. 정착금을 쥐어주며 취업알선도 해준다. 정사모를 거쳐 간 이들 중에서 바람직한 사회인이 된 이들도 많다. 어느 덧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은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정사모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올바른 길을 걷지는 못했다.

“청소년들이 한번 범죄에 발을 들여 놓으면 빠져나가기가 힘들다.
가정에서부터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중요하다”

   
▲ 박종선 이사장과 그의 일대기를 소재로한 드라마 <무신(武神)>에서는 격동기 우리나라의 시대상과 그 시대의 진실한 아픔과 역사를 그리게 된다.
이에 그는 청소년들 범죄에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청소년들은 범죄인지도 모르고 우발적으로 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아, 이를 애초에 바로잡아 폭력배가 될 소지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박 이사장은 “청소년들이 한번 범죄에 발을 들여 놓으면 빠져나가기가 힘들다. 시간이 흐르면서 ‘범죄예비군’이 되는 것”이라면서 “아직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자칫 순간적인 실수로 어둠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도록 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한번 실수했다고 해서 평생을 범죄자로 낙인찍기보다는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들도 인격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이에 가정에서부터 청소년들을 이해하고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게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건달’과 ‘깡패’는 다르다
“정사모는 청년의 협객화 운동이자 건달조직의 의인집단화 운동이다. 한발 더 나아가 건달이 의로운 시민이 되어 의협심 있는 시민들과 함께 지역사회에서 범죄를 예방하는 주체가 되고자 하는 운동이다.” 박종선 이사장은 ‘건달’과 ‘깡패’라는 말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60~70년대 건달은 의리와 정으로 뭉쳤지만 요즘 깡패는 이권에 따라 모이고 흩어진다는 것. 그는 “속된 말로 60년대 건달들은 의리 빼면 시체였다. 건달들에겐 또 그 시대만의 낭만이 있었다. 술과 풍류를 즐길 줄 알았다. 그만큼 주먹에도 걸어가야 할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싸움을 할 때에도 주먹 이외에 다른 것은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결과에 대해서도 깨끗이 승복했다”면서 “깡패들에게는 의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친구들 사이에 배신을 밥 먹듯 한다. 주먹보다는 ‘연장’이 먼저 등장하고 이권과 권력에 따라 자기들 주먹을 팔고 산다. 60년대 건달들의 의협심이 아쉬운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혼탁한 주먹세계가 바로 서려면 후배들 스스로 그릇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신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가치관과 국가관이 선행되어야 한다”

60년대 건달은 어려운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정사모에 참여한 한 회원은 서울의 미아리에서 많은 선행을 베풀었다. 헐벗고 굶주렸던 시절, 미아리는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그곳에서 대부분의 서민은 노점상을 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그러한 노점상들에게 장사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준 것은 국가가 아닌 지역의 건달들이었다. 그는 “의리나 정의감은 뒤로 한 채 이권에 얽매여 모든 것을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면서 “이러한 혼탁한 주먹세계가 바로 서려면 후배들 스스로 그릇된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신념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가치관과 국가관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과거의 그 역시 젊었을 때 끓는 피를 억제하지 못했다. 그는 “몸이 가는대로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사는 것이 멋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었다”며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가족들에게 불성실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정이 가장 소중한 것인데, 젊은 시절에는 그걸 깨닫지 못했다”라고 술회했다. 과거 그가 경험했던 뼈아픈 후회를, 후배들에게는 대물림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그는 “후배들의 열기를 사회의 올바른 곳으로 유도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건달생활을 할 당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피해를 입었을 사람들에 대한 속죄의 마음에서 기인한 책임감인 셈이다.

   
▲ 정사모는 1989년부터 범죄추방운동을 펼쳐온 민주시민연합의 전재혁 의장에 의해 결성된 단체로 박 이사장은 2002년부터 이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자서전 『명동주먹신사 번개 박종선』 통해 인생 고백
“요즘에는 ‘건달’이라고 하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놀고먹는 사람을 칭한다. 하지만 과거의 건달은 그러한 개념이 아니었다. 건달은 신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행동에 있어서 정도(正道)를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깡패나 조폭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옳고 그르다’의 틀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그것이 자신의 직업이라고 말한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번쯤 의문을 품게 된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조직폭력은 과연 언제부터 등장했던 것일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한국 조직 폭력의 태동 시기를 구한말로 본다. 상업의 발달과 함께 이권이 생기면서 ‘주먹’도 함께 등장했다. 한국의 조폭은 일제강점기와 광복공간의 ‘낭만파 주먹시대’, 자유당 정권시절 정치권과 결탁한 ‘정치깡패시대’, 5·16 군사 쿠데타로 숨죽여 지냈던 조폭들이 피비린내 나는 조직간 전쟁을 벌인 ‘전국구 주먹시대’, 현재의 ‘기업형 폭력시대’로 특징 지워진다. 주먹을 업(業)으로 삼는 조폭의 등장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먹고살길 없던 농촌 출신 주먹들이 도시로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당시 경성은 조선인이 주도하던 종로 상권과 일본인이 밀집한 명동 상권으로 나뉘어 있었다. 상권에 기생해 먹고 살았던 주먹패들도 자연 양분됐다. 한편 한국전쟁 이후 정통성이 결여된 자유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권은 폭력조직의 힘을 빌리기 시작했다. 주먹과 권력이 본격적으로 손을 잡는 이른바 ‘정치깡패의 시대’가 도래한 것. 1954년 김두한의 정계입문으로 현대적 의미의 조직 개념을 도입한 이정재가 급부상했다. 동대문 상인조합 이사장이 된 이정재는 막강한 자금과 조직력을 앞세워 자유당 이기붕에게 접근해 정치권과 손을 잡는다. 57년 장충단 야당집회 방해사건 등을 주도했다. 그러나 그는 5·16쿠데타이후 등장한 군사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후배들에게 올바른 정의와 국가관을 일깨워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자서전 『명동주먹신사 번개 박종선』출간

   
▲ 정사모는 범죄예방 활동은 물론 한때의 유혹을 못 이겨 나락으로 빠져들었거나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이들을 교화시키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06년 박종선 이사장은 그의 일대기를 적은 자서전 『명동주먹신사 번개 박종선』을 출간했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나에 대한 역사이고 어찌 보면 주먹세계에 대한 역사이다.” 세상을 향한 그의 인생 고백이다. 후배들에게 올바른 정의와 국가관을 일깨워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자서전을 통해 60~70년대 한국 주먹계를 주름잡던 동대문사단의 이정재, 유지광, 김태련 그리고 명동파의 신상사 등 동시대에 활동하던 전설적인 주먹들의 세계와 자유당 정권, 5·16쿠데타, 유신헌법, 광주항쟁 등 굵직한 역사적 변혁의 시기를 소설과 같은 문체로 풀어냈다. 또 첫사랑에 대한 애틋한 사연, 이승만 대통령 시절 정치권에서의 활동 5·16 당시 국가 재건대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사건, 벽제에서 도축장 운영에 실패한 일, 명동에 건설회사를 차린 일 등 격동기의 틈바구니에서 겪은 자신의 일대기를 일기 형식으로 서술해 나갔다.

박종선 이사장 일대기 그린 드라마 <무신(武神)>제작
최근 김성수 감독은 박종선 이사장의 자서전을 본 후 드라마로 기획해 보는게 어떻겠냐는 제의를 해왔다. 자신을 너무 미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박 이사장은 그간 수차례 고사했다. 혹시나 자신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 같은 시대를 겪어온 선후배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보잘 것 없는 내가 책을 낸 것만으로도 부끄러운데 드라마로까지 제작한다고 하니 선뜻 응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몇 번이고 그를 찾아와 권유하던 김성수 감독의 진정성에 감복해 드디어 드라마 제작을 수락했다. 그렇게 제작되는 드라마 <무신(武神)>에서는 격동기 우리나라의 시대상과 그 시대의 진실한 아픔과 역사를 그리게 된다. 김 감독은 “이제까지 60-70년대 주먹 세계를 그린 영화 중 단 한 편도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진실은 감추고 흥미 위주로 영화를 만드는 점이 늘 못내 아쉬웠던 부분이다”라며 “이번 무신(武神)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시대의 진실한 아픔과 역사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 그런 면에서 박 선배가 가장 적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 시대 무인들의 정신과 사상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을 거라 확신이 들었다”고 무신(武神)에 대한 남다른 자신감을 보였다. 김 감독은 60-70년대 건달들을 정치가 어떻게 가지고 놀았는가에 대한 시대적 풍자와 그 속에서 거칠게 살아온 진정한 남자들의 세계를 그릴 계획이다.

박종선 이사장의 일대기 그린 드라마 <무신(武神)> 통해 시대의 진실한 아픔과 역사를 제대로 보여줄 터

“나는 한국전쟁과 빈곤, 5·16과 광주항쟁 등 역사의 격동기를 겪던 시절에 건달생활을 한 과거를 갖고 있다. 그 과거사를 드라마로 제작한다고 했을 때 너무나 부끄러워 응하지 않았는데 막상 드라마가 촬영에 들어가니 그것을 보고 많은 분들이 건달세계의 참 모습을 알게 되었으면 한다. 근래에 주먹세계를 미화한 작품이 많아 청소년들이 이쪽을 동경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나 가슴이 아팠는데 그 드라마를 통해 제대로 알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항상 의로운 편에 서 있던 박종선 이사장. 싸우던 상대가 다치면 구급차를 불러주었으며 자신의 배부름보다 없는 이들의 굶주림을 먼저 생각했던 그는 한국 최고의 주먹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니 그것이 모두 부질없는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상대를 네 품으로 안아줘라”는 어머님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온 그는 늘 나보다 못한 이들을, 나보다 아래 사람을, 동지든 적이든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품으로 안았으며 깨끗하게 살려고 노력해왔고 또한 그리 살아왔다. 이제 그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자신이 옳다고 여길 때 행동해라.”
『명동주먹신사 번개 박종선』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무신(武神)>이 머지않은 미래에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하는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는 박종선 이사장. 그는 “오늘의 성인이 내일의 악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잘못을 뉘우치고 살아가는 전과자들을 색안경을 끼지 말고 고운 눈으로 봐달라”며 당부의 말을 남겼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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