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寫經)이란 문자 그대로 ‘베껴 쓴 경전’을 말한다. 불경(佛經)을 필사해 국가의 안녕, 개인의 발복(發福)을 기원했으며 목판인쇄가 발달하기 전까지 불교 전교(傳敎)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부차적으로 사경은 ‘공덕을 쌓는 일’로 통했다.

황태일 기자 hti@

사경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시작된 유서 깊은 불교 수행법이다. 특히 고려사경은 단순히 불교에서 공덕을 쌓기 위한 행위를 넘어 회화, 서예, 역사학 등 고려 시대의 예술, 문화의 정수가 담겨 있다.

한국 현대 사경예술의 살아 있는 역사
다길(多吉) 김경호 사경장의 행보가 화제다. 고려 이후 억불정책을 펼쳤던 조선을 거치며 700년 가까이 명맥이 끊기다시피 한 고려 전통 사경의 원형 복원에 매달려온 김경호 사경장은 지난 2020년 정부가 사경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신규지정하면서 선정된 사경장 보유자 1호다. 사경은 지극한 정성과 신심의 결정체다. 전법의 수단이며 구도의 과정이고 법신사리를 모시는 불사이기도하다. 사경의 구성은 크게 필사와 경전 내용을 상징하는 변상도(變相圖), 표지장엄 등으로 구성된다. 0.1mm 붓 끝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물론 몸과 마음, 재료 세 가지가 청정한 가운데 이뤄지는 종합예술이면서 수행이기도 하다. 지난 1997년 조계종이 개최한 제1회 불교사경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한국 사경의 전통을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한 김경호 사경장은 2010년 ‘대한민국 전통사경기능전승자’로 선정됐다.

▲ 김경호 사경장

2002년부터 한국사경연구회를 조직해 제자와 동호인들을 다수 배출했고, 2013년에는 한국전통사경연구원을 열고 다년간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문 서적을 저술하는 등 사경의 전승을 위해 활동했다. 40여년 넘는 세월을 오로지 고려사경의 전통복원을 위해 바친 김경호 사경장은 선대의 유산들을 살피고 연구하는 것은 물론, 재료 하나하나 혼자 힘으로 복원해낸 것은 물론 글씨와 그림에서 뛰어난 예술성으로 사경을 새로운 경지로 올렸다. 아울러 전통 사경을 되살리고 널리 전하기 위해 수많은 서적을 탐구하고 연구하며 이론 체계를 정립한 것은 물론 저술과 방송 강의 등을 통한 교육으로 후학을 양성하고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특히 사경을 알리고 전수하는 일에 몰두했던 김경호 사경장은 사비를 들여 미국에 건너가 30회 정도 특강과 시연 행사를 열었으며 2003년에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초대전을 갖기도 했다. 이러한 김 사경장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오늘날 해외에서도 사경을 한국 고유한 전통문화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우리 정부도 사경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데 이어, 김경호 사경장을 첫 번째 사경장 보유자로 지정하게 된 것. 당시 문화재청은 김 사경장을 사경장 보유자 1호로 인정 예고하며 “김경호 원장은 국내외 교육기관에서 사경 관련 강의를 하고, 다년간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문 서적을 저술하는 등 사경의 전승을 위해 활동했다”며 “아울러 전통 사경체를 능숙하게 재현할 뿐 아니라 변상도 등 그림의 필치가 세밀하고 유려하다”고 밝혔다.

전통사경을 전통예술의 한 분야로 정립시키다
지난 2002년 한국사경연구회를 설립, 전통사경의 복원과 함께 국내외에 전통사경을 알리며 전통예술의 한 분야로 정립시키는데도 심혈을 기울여 온 김경호 사경장. 지난해 10월 개최한 금니 금강경사경전에서는 14자의 고려대장경의 형식을 감지에 금니 사경으로 그대로 옮겨 금강경 사경의 표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0.1mm의 섬세한 붓 끝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수행의 결정체가 하나의 예술로 승화한 9.4미터의 금니 금강경을 비롯해 화엄경약찬게와 변상도, 10음절만트라 등 10여점을 선보인 금니 금강경사경전에서는 천연염료를 활용한 도덕경과 성경, 코란, 만다라 등 융·복합 사경으로 전통 사경의 변화에 시도했다.

오늘날 ‘한국 현대 사경예술의 살아 있는 역사’로 평가받고 있는 김경호 사경장은 현재 화엄사에서 700년 만에 문을 연 전통사경원 원장으로 활동하며 매년 수백 명의 교육생을 양성함으로써 고려시대 못지않은 사경의 시대를 열고자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전통사경원에서 사용할 512페이지 분량의 교재 ‘화장(華藏)’을 출간하고, 수업에 사용할 화엄사 체본을 정리하면서 ‘법화경’ 사경에 매진하는 것 역시 그 일환이다. 고려사경을 세계적인 예술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라는 김경호 사경장. 그는 “정성을 다해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가운데 일자(一字)에 일불(一佛)을 이루는 사경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온 불교수행법인 동시에 시대문화를 반영한 예술의 정점”이라며 “부처님의 제자로서 사경의 기능적·문화적 의미를 넘어 그 속에 담긴 정신까지 오롯이 보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