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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 칼럼] ‘야생마’, ‘살짜기 옵서예’의 뮤지컬 배우 겸 가수, 김하정의 삶과 사랑[3]
물 흐르듯 살고 싶어 이름을 ‘하정(夏廷)’에서 ‘하정(河廷)’으로 바꾸다
2022년 05월 12일 (목) 10:52:41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사랑’, ‘야생마’. ‘금산 아가씨’, ‘살짜기 옵서예’, ‘미련’, ‘사랑이 남긴 것’의 가수 김하정씨는 1968년 이광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사랑’의 주제가로 데뷔했다.

1971년,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에서 김하정은 주인공인 ‘애랑’ 역을 맡았다. 춤과 노래 그리고 연기가 바탕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 이후 뮤지컬 ’바다여 말하라‘, ‘땅콩 껍질 속의 연가’, ’캬바레‘, 그리고 드라마 ‘석양의 나그네(MBC-TV), TV 뮤지컬 ‘황진이’와 ‘대춘향전’ 등의 타이틀롤을 맡아 전성기를 구가하던 김하정.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였지만 이후 누구보다도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야 했던 가수 김하정. 그의 삶과 사랑 그리고 노래 이야기, 그 세 번째.

글 l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1972년, ‘김하정 리사이틀’첫 무대에 서다

▲ ‘공연계의 블루칩’으로 부상한 김하정의 중앙문선단 공연 중에서, 1987년

1972년 1월, 김하정은 생애 첫 단독 리사이틀을 연다. 장소는 조선호텔 뮤직홀 ‘투머로우’. 리사이틀 뉴스는 신문마다 상세히 보도되었다. 당시 급박히 돌아가는 정치 상황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한 달 전인 1971년 12월 6일,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제정세 급변'과 '북한의 위협' 등을 언급하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어 12월 27일엔 비상사태 아래서 대통령이 언론·출판의 자유와 국민의 권리 등을 제약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공포한다.

정치 상황은 얼어붙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무렵 '스마일 뱃지(smile badge)'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방긋 웃는 얼굴 모양의 이 뱃지는 특히 학생들과 버스 안내양의 옷에 항상 달고 다니도록 권장했다. 사실상 웃을 일 찾기가 쉽지 않았던 이 정치의 겨울에 역설적으로 '웃으며 살자'는 스마일 운동이 일제히 시작된 것. 일종의 캠페인인 셈이었다.

때를 같이해 연예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쇼흥행모임단체인 한국흥행(주)은 비상사태 이후 연예활동의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기 위해 특별 프로그램을 기획, 발표하는데 그 첫 시도가 바로 ‘김하정 리사이틀’이었다. 한국흥행(주)은 당시 활동하던 각각의 쇼 단체들이 모여 탄생시킨 ‘KEAA(한국연예대행연합회)’로 5백여 명의 단원이 소속되어있었다. 가수들의 새로운 활동을 유도하기 위해 시작된 이 ‘뮤직홀 투머로우 리사이틀’은 김하정을 시작으로 한 달에 두 차례씩 정기 리사이틀을 갖기로 합의, 결정한다. 두 번째 리사이틀의 주인공은 패티김이었다. 이런 정치적, 사회적 상황과 맞물려 김하정 리사이틀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

“제 개인적으로는 첫 리사이틀이었어요. ‘살짜기옵서예’에 이은 대형공연이었죠.”
김하정이 리사이틀이라는 이름의 무대에 처음 선 것은 이보다 1년 전인 1971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렸던 ‘패티김 리사이틀’ 무대였다. 이때 게스트로 출연했다.

”패티김 리사이틀은 TBC ‘쇼쇼쇼’가 기획한 무대였어요. 패티김 선배는 자신의 리사이틀에 반드시 신인 한 명을 지목해 출연시켰는데 그때 제가 선정되었지요. 그런데 노래를 한 곡만 부르라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섭섭했지요.”

그에게는 이미 ‘사랑’과 ‘야생마’ 등 히트곡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악단 지휘를 맡은 여대영 단장이 ‘아생마’를 선정해주며 ‘이 노래 한 곡에 여러 곡을 부르는 효과를 만들어 주겠다’며 말들이 질주하는 효과음을 도입부에 넣어 새롭게 편곡을 했다.

“정말 웅장하고 드라마틱했어요. 말이 달리는 효과음과 함께 전주가 시작되면 동시에 저절로 노래가 나왔을 정도로 멋진 편곡이었죠. 연습하면서 그 새로운 분위기에 사뭇 감동했지요. 그런데 정작 공연 때는 본의 아니게 실수를 했어요. 연출을 맡은 황정태 국장이 무대 중앙까지 나가서 노래 부르라고 했는데, 전주의 분위기에 취하다 보니 한쪽 귀퉁이에서 그냥 불렀어요. 그 부분이 한편 아쉽지만 잊지 못할 감동의 무대였습니다. 때문에 제 리사이틀 무대에서는 정신 바짝 차리고 신경 써서 나름 완벽하게 소화했죠.”

‘김하정 패키지쇼’ 결성, ‘공연계의 블루칩’으로 부상

이 리사이틀을 계기로 김하정은 무대공연의 다크호스로 부상한다. 동시에 그 위상에 걸맞게 직접 자신의 그룹을 만든다. 이름하여 ‘김하정 패키지쇼’. 멤버는 김하정을 비롯해 한익평무용단 출신의 무용수 양자영, 이헌재, 그리고 가수 문영 등 남자 둘, 여자 둘로 구성된 4인조였다.

“주 레퍼토리는 ‘아다지오 쇼(Adagio show)’였어요. 아다지오는 ‘천천히’, '조용하고 느리게’란 뜻이죠. 느린 음악에 맞추어 조용히 춤을 추는 쇼를 말하는데, 가는 곳마다 환호성이 대단했죠.”

특히 대표곡인 ‘야생마’의 인기는 절정이었다. “그 무렵 한 미국인 흑인 무용수에게 특별 지도를 받았어요. 무교동에 있던 극장식 비어홀 ‘라데팡스’에서 함께 전속으로 출연했던 무용수였는데 세계적으로 명성이 대단한 분이었죠. 어느 날 제가 무대에서 ‘야생마’를 부르는 것을 보더니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며 새롭게 춤 동작을 만들어주었어요. 이를테면 벽을 잡고 노래를 시작해서 허리를 섹시하게 돌리며 돌아서면서 손동작, 그리고 손가락 끝을 빙빙 돌리는 테크닉까지... 1주일 동안 지도를 받으며 연습했죠.”

이 패키지쇼의 인기와 더불어 김하정은 공연계의 달러박스로 부상한다. 그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쉽게 시도하지 않았던 과감한 스테이지로 김하정쇼 무대는 나날이 화려해져 갔다.
 
사실 그의 안무는 광주MBC 전속가수 시절인 데뷔 초, 광주여고 엄영자 선생에게 사사 받으며 이미 기초가 탄탄하게 다져진 것이기도 했다.

계속해서 1973년 6월, 김하정은 ‘가수의 대향연’ 무대에서 악극 ‘이수일과 심순애’를 공연, 심순애 역을 맡는다. 상대역인 이수일 역엔 나훈아씨.

다재다능한 팔방미인으로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 그리고 탤런트로 활동하며 다양한 장르에서 재능을 펼쳤던 김하정씨는 명실공히 노래, 춤, 연기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춘 스타였다.
 

▲ 1970~80년대 김하정 발표 음반들

스탠더드팝 스타일의 번안곡, 그 청춘영화 주제가들

가수로서 그는 어느 특정 장르에 머물지 않고 스탠더드팝 스타일의 노래를 비롯해 트로트, 그리고 팝 번안곡은 물론 민요를 디스코로 편곡해 부르는 등 다양한 창법을 보여주었다.

이때까지 김하정은 특별히 창을 배우지 않았지만 그녀의 고향 진도는 밭을 매다가도 창을 부르는 등 어릴 때부터 몸에 배인 요소들이 가수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다.

1972년에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 ‘사랑한다고 말했지’는 카펜터즈의 ‘Superstar’를 번안한 곡이다.

1. 아득한 옛날이었었지/나는 반했네 당신의 그 모습/기타 소리에 말려들었네/당신은 없었고 라디오였어요/날 사랑한다는 그 말을 기억하나/날 사랑한다고 그대 말했지/오 그대 그대 그대 오 그대/사랑해 사랑해요.

2. 외로움은 정말 슬퍼요/그대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어떻게 하면 그대 오는가/어서 돌아와 기타를 울려요/날 사랑한다는 그 말을 기억하나/날 사랑한다고 그대 말했지/오 그대 그대 그대 오 그대/사랑해 사랑해요. -‘사랑한다고 말했지(신동운 역사, 황중원 편곡, 김하정 노래)’

이 무렵 외국 청춘 영화주제가도 여러 곡 번안해 발표했다. ‘언제나 마음은 태양’의 주제가인 ‘To Sir With Love’를 번안한 ‘그리운 여학생 시절’, 리칭 주연의 ‘위험한 레슨’의 주제가인 ‘자장가’, ‘더 러브’의 주제가인 ‘빛나는 눈동자’ 등 외국영화주제가 번안곡이 그것. 이 영화들은 당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단체관람을 하던 청춘 영화들이었다.

‘천의 입을 가진 사나이’로 불리던 쓰리보이와 결혼

이 무렵 김하정 관련 뉴스 하나가 각종 언론의 연예면 톱을 장식한다. 바로 ‘천의 입을 가진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코미디언 쓰리보이와의 약혼기사다.

쓰리보이의 본명은 신선삼. 이름 영문표기에 알파벳 S가 세 번 들어간다고 해서 지은 예명이다. 원맨쇼의 남보원, 백남봉 등과 함께 활동하며 직접 노래까지 취입할 정도로 재능이 많았던 인물. 당시 김상국, 트위스트김과 더불어 극장쇼 무대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었다. 동시에 늘 크고 작은 말썽이 끊이지 않았던 이슈메이커이기도 했다.

“약혼기사가 떴지만 실제로 약혼식을 한 건 아니었어요. 쓰리보이 측에서 의도를 가지고 기자들에게 거짓 소문을 냈던 거죠.”

▲ 쓰리보이와의 결혼으로 화제를 모았던 김하정. 그리고 결혼 기간 중 유일하게 발표한 김하정 독집음반 ‘그 남자’

그러나 결국 이들은 1973년 11월 10일 결혼식을 올린다. 끈질긴 구애, 그녀의 동의도 없이 두 사람의 결혼 가능성을 언론에 유포한 후, ‘저렇게 내가 좋다는데 고생은 안 시키겠지’하는 마음, 또 당시에는 여자 연예인들에게 있어 결혼 스캔들은 치명타가 되던 때이기도 했다. ‘부부쇼를 구성해 재능을 썩히지 않겠다’는 약속을 믿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부터 자신의 결혼이 잘못되었어도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우선 남편 쓰리보이는 그녀의 바깥출입을 일절 금지시켰다. 방송 출연 또한.

“방송국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고 자기도 연예인이면서 의상을 모두 찢어버리고...”

결국 김하정은 1973년 11월부터 1976년까지, 결혼 기간 3년 동안 연예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MBC 스타쇼-쓰리보이 편’ 출연 이후 결혼생활 중 유일한 독집음반, ‘그 남자’ 발표

결혼 기간 내내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던 김하정씨가 유일하게 낸 독집 음반이 ‘그 남자’를 타이틀로 한 음반이다. 1974년도 12월에 발표되었다.

당시 1974년 11월, MBC TV가 ‘톱스타가 엮는 버라이어티쇼’라는 부제로 ‘스타쇼’-쓰리보이편‘을 방송한다. 쓰리보이편의 주제는 ‘극장’. 이 프로그램에 김하정씨가 찬조 출연해서, 노래와 뮤지컬을 선보이는데 이때 부른 노래가 바로 ‘그 남자’를 비롯해 ‘그날’, ‘우리는 비둘기’ 등 신곡이었다. 프로그램을 위해 쓰리보이와 절친한 동료인 장고웅씨가 만든 노래다. 프로그램이 방송된 후 좋은 평가가 나오자 곧바로 독집음반으로 출시했다. 그러나 이 음반 수록곡 중 ‘내 이름은 사랑(장고웅 작사, 작곡)’이 금지곡이 되면서 음반도 함께 사장되었다. 3년 사이에 유일하게 발표한 독집음반도 그렇게 묻혔다.

그렇듯 가수로써 대중 앞의 그녀는 매우 행복했지만 가정적으로는 결코 순탄치 못했다. 결국 이들은 3년 뒤 결별한다. 다행히도 양육권은 김하정씨에게 주어졌다.

“인생이 왜 이렇게 가고 있을까. 그 좌절, 절망감... 그런 게 진짜 힘들었어요. 그나마 노래를 하는 가수라는 것이 천만다행이었죠. 노래로 그런 것을 다 쏟아내고, 풀어내고 나면 숨통이 뚫리는 것 같고...” 지난 2013년, 그녀가 KTV의 프로그램 ‘대한늬우스와 함께 하는 리사이틀 인생쇼’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이름을 하정(夏廷)에서 하정(河廷)으로 바꾸고 운명처럼 만난 노래, ‘내가 걸어온 길’

실의의 날은 계속되었다. 결국 김하정은 1977년 6월, 하정(夏廷)에서 하정(河廷)으로 이름을 바꾼다. '여름'에서 '물가'로 바꾼 것.

"성격이 뜨거운 편이죠. 쉽게 반하고 매섭게 단념하고, 그런데 고명한 스님 한 분이 하정(夏廷)이란 이름과 성격이 무관하질 않대요. 뜨거움을 타게 마련인 이름이라 내게 필요한 것은 물(水)처럼 모난 데 없는 온유함이라면서, 하(夏)를 하(河)로 바꿔 써주셨어요." 그 뜻처럼 물처럼 유유히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이름을 바꾼 얼마 뒤 한 작곡가 그를 찾아왔다. 작곡가 엄진. 그는 ‘내가 걸어온 길’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비롯해 10여 곡의 악보를 꺼내며 김하정씨를 주인공으로 만든 노래라고 했다. 보는 순간 노랫말이 와닿았다. 그중 하나.

‘괴로운 맘 잊고 억세게 살고파/내가 걸어온 길엔 높은 산도 많았고/기쁜 일도 많았고 슬픈 일도 많았네/내가 걸어온 길엔 깊은 강도 있었고/즐거운 일 많았고 서러운 길 많았다네.’ -내가 걸어온 길(엄진 작사 · 작곡, 김하정 노래. 1977년)

이 노래를 음반으로 취입한 얼마 후. 이번에는 MBC 드라마 제작진이 찾아왔다. 그동안 살아온 길을 다큐 드라마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 새 출발에 대한 집념을 보였던 시절에 발표한 ‘내가 걸어온 길’ 음반, 1977년

MBC 라디오 실화극, 모노드라마 형식의 ‘고백’

김하정씨에게 견뎌야 했던 고통은 매우 혹독한 것이었지만 또 그만큼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 또한 강했다. 그의 이러한 파란만장한 스토리는 방송작가 정하연씨에 의해 라디오 드라마 ‘고백’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전파를 타면서 청취자들에게 오히려 감동을 주기도 했다.

1977년 8월, MBC 라디오를 통해 모노드라마 형식의 '고백(연출 황기찬, 구성 정하연)'이 방송되었다. 약 한 달 반 동안 매일 15분씩 방송된 이 프로그램 ‘MBC 라디오 실화극, 고백’에서 김하정은 본인의 배역을 본인이 직접 맡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때문에 녹음 도중 울음을 터트리기도 수차례. 심지어 그 무렵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뺨을 13바늘이나 꿰매는 등 전치 3주의 부상에도 드라마를 감행, 재출발에 대한 강한 집념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 방송을 통해 오히려 많은 이들로부터 따듯한 위로를 받았고 그 때문에 스스로도 좌절을 딛고 새롭게 살아야 할 힘을 추스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회고한다. 이 드라마에서 주제가로 사용된 노래가 바로 ‘내가 걸어온 길’이었다.

1978년, ‘미련’을 발표하며 재기의 시동을 걸다

이혼에 이어 교통사고까지 당했던 김하정씨가 점점 웃음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동안 무려 여덟 개의 밤무대에서 활약한 끝에 급기야 수유리에 35평짜리 집을 마련한 것, 아울러 작곡가 길옥윤 선생으로부터 '정 때문에'와 고향을 배경으로 한 향토색 짙은 노래 '진도가이나', 그리고 서승일 작곡의 ‘미련’를 발표하며 재기의 시동을 건다.

‘그 님이 떠나던 날 마음은 슬퍼도/가지마 가지마 그 말을 못했네/세월 속에 묻혀버린 미련이라고/차라리 까마득히 잊어버릴까/아니야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사랑해 사랑해 그 말을 할 거야’ -미련(서승일 작사 · 작곡, 김하정 노래, 1978년)

슬로우록 리듬의 ‘미련’은 작곡가 서승일씨가 김하정씨의 이전 창법을 생각하고 구상해 만든 노래다. 인생의 아픔을 겪은 여인이 가슴 속 진실한 목소리로 부를 수 있는 노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많이 느꼈기 때문에 가슴으로 우러나오는 노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동안 조용히 지내면서 창 공부를 많이 했지요. 내 고향이 진도라 남도창을 하시는 성창순 선생께 흥부가까지 배웠어요. 마음이 괴로울 때 창으로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면 아픈 마음이 조금 달래져요. 가수로써 목을 틜 수 있는 발성도 되고요.”

아울러 고향 진도를 배경으로 한 향토색 짙은 노래 ‘진도가이나(가시내의 전라도 사투리)’의 경우 음반 재킷에 아예 진도 출신의 백포(白浦) 곽남배 화백의 직품을 실었다. 이 무렵 김하정은 1978년 5월, 목포MBC 주최 ‘진도군민 위안공연’에 나서 10년 만에 고향 진도를 찾아 고향 사람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비로소 먼 길을 돌아 다시 가수로 돌아온 듯한 감격의 무대였다.

▲ 현대 젊은이들의 애정관과 성 모럴을 날카롭게 파고든 문제작, 뮤지컬 ‘땅콩 껍질 속의 연가’ 중에서. 사진 가운데 인물이 김하정

1979년 들어 김하정은 뮤지컬 ‘땅콩 껍질 속의 연가’ 무대에 선다. 송영의 소설을 원작으로 디스코 뮤지컬화 한 이 공연은 세종문회회관 대강당에 올려졌다.

실험부부의 생활을 통해 현대 젊은이들의 애정관과 성 모럴을 날카롭게 파헤친 이 뮤지컬은 극단 미리내와 KBS가 주최했고 음악은 최창권씨가 맡았다.

“돈이 없어 월세 때문에 단칸방을 함께 쓰며 부부인 척 살아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죠. 당시의 서울 풍속도는 물론 젊은이의 이색적인 사랑과 갈등을 파헤친, 슬프고도 아름다운 뮤지컬이었어요. 저는 이 뮤지컬에서 진도댁으로 출연했지요.”

‘땅콩 껍질 속의 연가’에서 ‘진도댁’으로 출연한 그는 전라도 말씨를 구수하게 구사하며 복덕방 영감 김성원씨와 함께 한바탕 코믹연기를 펼쳐 호평을 받았다.

1980년대 들어 김하정은 무대를 세계로 옮긴다. 8.15 광복절 기념공연 차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 민요가수 최정자, 그리고 박상규 등과 함께였다.

3개월의 일정으로 출발한 공연이었지만 독일공연을 마친 후 김하정은 프랑스 파리를 거쳐 미국 LA와 뉴욕 등, 미국 전역을 돌기 시작한다. 활동무대가 세계로 바뀐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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