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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튼 스쿨’을 꿈꾼다
자율화산중학교 심의두 교장
2010년 03월 16일 (화) 14:07:11 황인상 전문기자 his@newsmaker.or.kr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있다. 인재 양성이 국가와 사회발전의 근본초석이고 그 영향이 심원하기 때문에 ‘백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을 세워서 행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교육은 한 국가, 한 사회를 유지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며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체계적인 계획으로 사회적 자원을 투입하여 이루어져야 하는 대업이라는 뜻이다. 때문에 교육을 담당하는데 있어서는 철저한 소명의식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대담 황인상 국장 his@ / 정리 장정미 기자 haiyap@

   
▲ 화산중학교가 전국에서 손꼽히는 자율중학교로 우뚝 선 데는 학교 설립자인 심의두 교장의 공이 절대적이다
자율화산중학교의 심의두 교장은 성인교육에서 시작, 화산학원, 화산고등공민학교를 거쳐 국내 제1호, 자율중학교인 화산중학교를 설립한 상록수 교사이자 교육자, 농촌계몽가이자 육영사업가다. 완주군의회에서 100% 찬성과 도의회에서 다시 100% 찬성으로 교육위원과 의장에 당선된 경이적인 기록을 보유한 심 교장은 교육행정가이자 ‘중학교 의무교육 실시’ 및 ‘사립학교 시설비 지원’의 일등 공신으로 백년지대계인 우리 교육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숨은 교육발전의 유공인사다.

국내 1호 자율중학교로 거듭난 화산중학교
전북 완주에 위치한 화산중학교는 중학교 자율학교로는 국내 1호다. 지난 2000년 농촌 이농 심화 현상으로 학생 수가 급감 하면서 한때 폐교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이를 굳건히 이겨내고 전국 명문교로 거듭났다. 화산중학교의 모든 교육은 학교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사교육 광풍에서 자유롭다. 학생들은 정규수업이 끝난 후 이어지는 보충학습으로 인해 학원이나 과외 등의 사교육이 끼어들 틈이 없다. 전체 학생의 70%인 250명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화산중학생들은 사교육을 하지 않으면서도 실력이 월등해 전국단위 각종 학력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전국에 명성을 떨치고 있다. MBC아카데미·중앙일보 주최 수학학력평가 경시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한국생물올림피아드대회 동상, 국제영어대회(IET) 동상, 전국 중고 외국어경시대회 대상 금상 은상 장려상 등 화산중 학생들의 각종 대회에서의 수상 실적은 화려하기만 하다. 특히 지난 2008년 ‘제11회 MBC아카데미 전국 초·중 영어수학 학력평가’에서는 화산중 학생 43명이 대상, 금·은·동상, 장려상을 휩쓸었으며 해마다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명문고에 다수 진학해 명문학교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그렇다면 화산중학교의 교육과정은 일반 중학교와는 무엇이 다른 걸까? 화산중학생들의 정규 수업은 오후 5시에 끝이 나며 저녁식사를 끝내고 이어지는 방과후 학습은 밤 9시에 끝이 난다. 일반 학생들 수업은 한 시간만 하며 나머지 시간은 자율학습, 영재학급은 3시간 수업을 받는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밤 11시까지 자율학습을 하며 교사들은 기숙사에 상주하며 학생들의 학습을 돕고 있다. 또 화산중학생들의 예체능 특기 활동을 돕기 위해 전문 강사를 초빙하여 지도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졸업 전까지 태권도, 유도 등의 호신술을 2단 이상 따야 한다. 한편 학생들의 학습을 독려하기 위한 다양한 장학금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학교는 지난해에 교과부에서 처음 실시하는 교과교실제에서 전국1위가 되어 15억원의 지원과 3년 동안 1억 5천만원의 운영비 지원도 받고 있다.
   
▲ 화산중학교 전경

최상의 교육환경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 기울여
화산중학교가 전국에서 손꼽히는 자율중학교로 우뚝 선 데는 학교 설립자인 심의두 교장의 공이 절대적이다. 화산중학교의 역사는 교육에 평생을 몸 바쳐 온 심 교장의 인생행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95년 전북 교육위원에 선출된 심 교장은 교육위원회 의장과 전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장을 거쳐 1999년 9월 화산중학교 교장으로 복귀했다. 외환위기로 나라가 휘청거리던 2000년 화산중은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관내 7개 초등학교 중 6개가 폐교되면서 화산중의 전교생은 54명으로 줄어들었고 그해 입학한 학생이 17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심 교장은 다각도의 개혁을 통해 화산중학교를 살리고자 70억 원에 달하는 사재를 털어 현대식 기숙사와 체육관을 짓고 영재교육 프로그램 등 교과과정을 새로 편성해 학교의 경쟁력을 높였다. 그러한 심 교장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 2005년 5월 정부는 화산중학교를 국내 최초의 자율중학교로 지정했다. 이때부터 전국 각지의 우수한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2006년 입학경쟁률이 10대 1에 달했고 학생 수는 350명을 넘어섰다. 심의두 교장은 입학 후 전 학생의 실력 향상과 선의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장학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입학식 때에는 1등에게 100만원과 초등학교의 담임에게도 30만원을 지급하며, 2등 50만원, 3등 3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또 매학기 평균 95점 이상은 10만원씩의 장학금을 별도로 지급해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있으며 졸업생 중 민족사관고등학교나 부산과학영재학교나 상산고에 합격하면 100만원씩 지급하고 조기졸업을 시키기도 한다.
   
▲ 원어민교사 수업

이 외에도 졸업 후에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 대학이나 사법고시,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그 졸업생에게도 100만원씩을 지급해온 심 교장의 장학금 제도는 이제 전국의 모든 학교의 롤모델이 될 만큼 깊이 뿌리 내린 제도로 평가받는다. 이에 화산중학교는 한국의 ‘이튼’학교로 불리면서 국내 최고의 중학교로 거듭나 전국의 뜻있는 교육자는 물론, 중국 소주시의 한소영 부교육감 일행과 인민위원회 부주석, 일본, 프랑스, 미국, 호주, 몽고 등 각국의 교육시찰단들이 다녀갔으며 여름방학에도 소주시의 교장단들과 호주의 이사장들이 찾아오는 세계적인 명문학교로 명성을 높여 지난 2005년에는 CNN에서 방송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국내 최연소 교장으로 어린 시절의 꿈 이뤄
화산면이 고향인 심 교장은 초등학생 시절 꿈이 교사였다. 학생들이 조금만 잘못해도 아이들에게 매질을 하는 것을 보고 세상에서 선생님이 제일 높은 사람인 줄 알았던 그는 나중에 커서 선생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어났던 사건 하나가 그의 꿈을 선생에서 교장으로 바꾸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는 “어느 날 친구들과 교무실 청소를 하다가 교장선생님의 회전의자에 앉아 봤다. 갑자기 나타난 주번 교사가 ‘꼬마 교장선생님 부임하셨네’라고 말했다. 장난으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주번 교사는 ‘그 의자가 어떤 의자인지나 알아, 교감도, 나도 지금까지 앉아보지도 못한 의자야, 그런데 네가 감히 앉아’ 하면서 그를 흠씬 두들겨 팼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지만 평소 아버지께서 ‘남자는 팔다리가 부러지더라도 울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눈물을 꾹 참았다. 그 이후 교장이 교사보다 더 높다면 교장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가정 형편상 완주에 신설된 완주중학교에 3회로 입학, 그마저도 그가 보채고 졸라 입학한 후 3개월이 지나서야 입학할 수 있었다. 점심도 못 싸가지고 다니는 데다 통학 거리가 왕복 100리가 되다 보니 어린 심의두는 피곤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코피를 쏟곤 했다. 이때 그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대까지 화산에 중학교가 없으면 내가 세운다’는 굳은 각오와 꿈을 되새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기엔 그의 집은 너무나 가난했다.
   

결국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자립을 결심, 서울에 가서 성공해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6.25가 지나간 1954년 당시 서울 시내 전체가 폐허가 된 상태에서 일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였다. 콩비지나 눌린 보리밥에 반찬은 소금 하나만으로 백일을 연명하기도 했고, 일주일을 굶고 자살을 하기 위해 한강철교 위에까지 올라갔다가 ‘앗 참으시오’ 라는 글귀를 보고 마음을 되돌리기도 했다. 신문배달, 행상, 가정교사, 체신청 사서함 열쇠를 고치는 공장 등을 전전하면서 그는 고진감래 끝에 박사학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값진 고교 졸업장을 받았다. 고교시절부터 어렵게 구한 생명과 같은 직징인 컴퍼스 공장을 친구에게 양보할 수 있는 미덕을 가지고 있던 그는 근무도 남보다 1시간 전에 출근하고 1시간 늦게 퇴근하면서 남의 일이었지만 자신의 일 이상으로 열심히 했고, ‘항상 나보다는 가정이 우선, 가정보다는 직장이 우선, 직장보다는 국가가 우선’임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월급을 배로 받는 행운도 얻을 수 있었다. 청년으로 성장한 심의두가 면회의실을 빌려 성인교육을 시작한 건 대학 4학년 시절인 1963년이었다. 그는 “성인교육을 하면서 중학교를 설립한다 하면 전 면민들이 환영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 반대였다. ‘국가에서도 돈이 없어 못 세우는 중학교를 어떻게 개인이 세워?’라며 그에게 조소를 보냈다”고 당시를 기억한다. 심지어 그의 부친이 면사무소에 나온다 치면 ‘미친 아들 뒀다면서’라고 비웃기까지 했다. 결국 부자간의 불화로까지 이어져 1964년 그의 부친은 쌀 한가마니를 주며 ‘땅 590평을 타 가지고 사랑채로 나가라’며 엄명을 내려 결국 분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삽과 괭이, 쇠스랑을 고산장에서 사가지고 와 땅을 개간하기 시작, 방학을 이용하여 부인과 함께 동내 종산 약 1천 평을 개간했다. 그 땅에 고추농사를 시작, 3년 동안 대풍작이 들어, 돈을 모은 그는 당장에 학교 부지부터 장만해 학교를 설립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하루에 4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는 그는 2년째 회의실 칸을 막아 혼자서 1학년 52명, 2학년 33명의 학생들을, 전 과목을 왔다갔다  하며 주당 72시간씩 가르쳤다. 학교 부지를 구매해 빡빡한 재정이었지만 교실의 문제도 시급했다. 6개의 교실을 신축하기 시작한 그는 결국 빚더미에 앉을 수밖에 없었고 공사비 문제로 경찰서, 검찰청, 법원 등을 수도 없이 들락거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지혜롭게 극복 6개의 교실을 신축하고 완공에 앞서 화산고등공민하교 설립인가도 받았다. 이후 1968년 학교 법인 인가신청을 했으나 당시 문교부에서 6개월 만에 반려사유서 한 장 없이 반려되어 이에 청와대와 교육부 문턱이 닳을 정도로 드나들어 결국 1969년 학교법인 ‘화산학원’ 설립 인가를 받고 화산중학교 인가를 받았다. 그의 나이 당시 28세, 전국 최연소 교장이었다. 한편 국내 최초로 미국 학교들과 자매결연을 맺어 미 오하이오주 우드모어중학교와 미 뉴욕 리퍼블 고등학교에서 보내준 2,500불로 1971년 강당을 준공했으며 그 강당을 막아 교실로 사용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한 교실로 1972년 CAC 사령관이었던 송호림 장군을 설득하여 4개 교실을 증축했고 1978년에는 12학급으로 증설 인가를 받을 수 있었다.
   
▲ 교내체육대회

국내 교육계 현실 개선에 큰 축 담당
1969년 중학교 인가는 났으나 당시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이라 국가에서 책정한 수업료를 받을 수가 없다 보니 심의두 교장은 교사들의 월급을 월 3천원 밖에 줄 수 없었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들이 3만원의 월급을 받았으니, 얼마나 교사들이 어려웠을지는 가히 짐작이 된다. 교사들에게 하숙비를 대줄 수 없어 그는 부친의 사랑채에 살면서 옆집 방을 빌려 기숙사로 사용하였고 식사는 그의 집에서 부인이 직접 해주다 보니 농촌의 바쁜 일손에 심 교장 부부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 교장은 “그러한 속사정을 모르는 지역 주민들은 심 교장에게 하숙비까지 챙긴다며 욕심도 많다고 수군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변명 한 마디 못하고 그러한 잘못된 생각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중학교 의무교육 밖에 없다고 판단해 1969년부터 16년 동안 줄기차게 청와대를 드나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 중학교 의무교육과 사립학교 시설비 지원, 면 단위 학교부터 초중등 교사 숙직면제 등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가로 얻어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중학교 의무교육은 당장 돈이 없으니 화산중, 위도중, 무풍중을 1985년부터 5년간 시범학교로 운영하여 점진적으로 실시키로 하고, 시설문제는 개축교실부터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화산중학교는 1985년 의무교육 시범학교가 되어 교사들의 월급이 100% 지원되고, 교사들의 일숙직이 면제되었다. 이후 심 교장의 요구대로 1990년 면단위, 1993년 읍단위, 2002년 전국적으로 중학교 의무교육이 실시되었다. 이 외에도 심 교장의 끈질긴 요구로 ‘사립학교 시설비 지원’은 1985년 제일 처음으로 전북에 4억 3천만원이 배정되었는데, 그 중 심 교장은 8천 2백만원을 지원받고 나머지는 전주농고 앞의 집과 화월리 산을 팔아 18개 교실 본관을 개축 완료했다. 평생을 교육에 몸담아 온 그에게 주위에서는 교육 위원으로 나가라는 권유에 1995년 출마하게 된 그는 완주군회의에서 100%지지와 전북도의회에서 100%지지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교육위원에 당선되었다. 선거사상 유례없는 두 번의 100% 찬성에 각 신문마다 기네스북에 올라야 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후 또 다시 그가 의장에 당선되자 대통령 비서실장과 국회의언 270여 명으로부터 “어떻게 선거에서 100%가 두 번씩이나 나올 수 있느냐, 공산국가에서도 그렇게 나오지는 못한다.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의장이 된 그는 짧은 임기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가치관, 곧 ‘신의’를 지키는 인성교육을 확실하게 심어주는 반면, 도시위주에서 농촌 위주로, 큰 학교에서 작은 학교 위주로의 평준화 교육을 포함한 교육계의 수많은 현안들을 개선했다. 이후 교육 위원의 임기를 마친 후 전주 중앙여고 교장으로 부임, 한국의 위대한 여성지도자교육에 힘썼던 그는 “그 동안 이 학교에 입학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의 지도자 교육에 우린 활짝 웃어요”라며 각 학급 실장들의 말 한마디를 가슴에 고이 간직해 두고 있다. 그를 통해 학생들은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심 교장은 “겨우 10개월을 근무하고 화산중학교를 살리기 위해 떠나는데 중앙여자 고등학교 노인석 이사장님을 비롯, 김광택 교감 선생님 등 전교직원과 전교생이 교장실에서 교문까지 양편으로 줄을 선 송별식이 눈시울을 적시었다”고 당시를 술회했다.
   
▲ 예능발표회

농촌은 뿌리요, 도시는 꽃이다
국내 교육계 발전에 큰 획을 그은 심의두 교장은 어떠한 일을 할 때에는 천지를 개벽시키겠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화산중학교는 호연지기를 넓히기 위해 중국 쑤저우 청하이학교, 일본 쓰시마 남양중학교 등과 자매결연을 맺어 방학 중에 상호교환학습을 실시하고 있다. 국내에서 자매결연을 맺은 학교로는 영등포초등학교, 세인고등학교, 한국과학게임고등학교, 민족사관고등학교 등이다. 그간 화산중학교는 38회 졸업에 5,30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1980년대 초 컴퓨터 이름도 모르고 있을 때 화산중학교 출신인 국중각씨가 컴퓨터 박사 1호로 배출되었는가 하면, 김영만 씨는 한빛게임으로 2,000억의 거부가 되었고, 청와대 국중호 민원국장,(20억을 투자 기숙사를 지어준 광진갑 민주당 임동순 위원장) 건설의 맹주 심기주 사장, 검사를 거쳐 1등 변호사가 된 박승권, 서울대를 형제가 합격한 임학순 박사(장학금지원) 외 기라성 같은 인재들이 배출되었으며 특히 지난 2004년에는 전북 정보올림피아드대회에서 당시 1학년생이었던 배민석 군이 3학년을 압도하고 1위에 입상했으며, 2학년생이 한국과학영재학교에 합격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금년도에도 성윤재 학생은 부산한국영재과학고에, 김법창 학생은 토익955점으로 상산고에 사교육 없이 합격하였다. 심 교장은 “화산중학교의 프로그램은 한국의 미래 지도자를 육성하고 위기에 직면한 농촌학교도 살릴 수 있는 해결책이며 사교육비도 줄이고 외국유학도 방지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앞으로도 학생들이 훌륭한 지도자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황 선생이 말한 ‘계승, 개혁, 창조’를 지도자의 덕목으로 꼽고, ‘신의, 성실, 노력’을 교육철학으로 지니고 있는 그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농촌은 뿌리요, 도시는 꽃이다”라며 농촌학교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자고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농촌을 무시하고 도외시 하는 정권은 얼마가지 못해 막을 내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그는 “농촌은 우리 인간 생명체의 근원이기 때문에 식물로 말하면 뿌리에 해당된다. 뿌리가 없으면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가 없다”면서 “위정자들은 이러한 깊은 뜻을 감지하고 농촌학교와 농촌을 살릴 수 있는 특별법을 하루 속히 만들어야 한다. 왜 우리의 선인들은 ‘농자는 천하지대본이라 했겠는가?’를 음미할 때”라고 역설했다.
오늘날 교육의 힘은 국가운명을 좌우한다. 단순히 교육에 머물지 않고 최첨단 경쟁 사업으로까지 급부상하고 있다. 이의 뜻을 잘 간파한 완주군청에서도 수년 전부터 교육에 깊은 관심을 갖고 교육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전주 김홍술 사장은 화산고등학교 설립을 위하여 30억원을, 원대 김인숙교수는 10억원의 지원을 약속하였다.(전 중학교 기숙사도 전주 유용수사장이 20억을 투자 건축하였음)  이런 새 바람이 일자 최규호 교육감님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로써 심교장은 전설의 고장답게 한국의 정사는 물론 세계의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지도자를 육성한다는 평소의 뜻을 꽃피우게 되었다. NM


화산자율중학교 심의두 교장
   
▲ 자율화산중학교의 심의두 교장은 성인교육에서 시작, 화산학원, 화산고등공민학교를 거쳐 국내 제1호, 자율중학교인 화산중학교를 설립한 상록수 교사이자 교육자, 농촌계몽가이자 육영사업가다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가치관 교육을 잘하면 그 교육은 성공하였다 하며 이를 시키지 못하면 실패하였다고 한다. 이에 나는 한국의 교육지표를 ‘신의’로 하자고 과감하게 제의한다. 새롭게 전개되는 21세기는 폭넓은 견문과 새로운 지식, 창의적인 사고력, 과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물질문명은 더욱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갈 것이다. 이에 맞서 학생들에게 정신적인 지주를 심어주고 온 국민과 함께 실천할 수 있는 한국 교육의 지표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일찍이 조일우(照一隅)를 교육의 지표로 정하고 이 교육을 강조하여 전 국민에게 뿌리내려 오늘날 경제대국으로 성장 발전하는 초석이 되었다. 조일우는 ‘내가 맡은 하나의 분야를 제일로 빛낸다는 단순한 생각의 차원을 벗어나 하나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데도 이것만은 세계 어느 곳에 가서도 제일 빛낼 수 있는 물품을 만든다’는 관념이 깃들어 있다고 한다. 즉 국민이 무엇을 하더라도 자기가 하는 일이 제일 중요하며, 전 세계 어느 구석에 가서도 자기가 한 일이 제일 빛나게 하겠다는 실천철학이다. 이 조일우 정신은 오늘날 일본에 있어 한 해에 ‘수천억 달러’라는 지상에서 유례없는 흑자를 낳은 무서운 힘을 가져온 것이다. ‘신의’ 교육의 실천철학은 일본의 조일우 정신도 따라올 수 없는 정신적인 교육이다. 인간 생활의 원동력인 이 신의를 우리 교육의 지표로 정하고 이를 우리 국민의 생활 철학으로 실천할 때 교육력 증가는 물론 개인생활의 발전에서부터 국력신장에 이르기까지 크게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교육은 선각자 또는 선구자의 위치에서 인간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정신적인 지주, 즉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신의의 실천철학을 근원적으로 생각함과 동시에 꼭 실천해야 할 우리 모두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신의를 지키고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이것이 우리 교육자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신의는 개인생활에서부터 가정생활, 사회생활, 국가생활에 이르기까지 없어서는 안될 원동력이다. 그러므로 현대 사회 속에서 신의는 전 국민의 실천생활 철학이자 우리 교육의 지표로 정하고 우리 교육자는 물론 전 국민이 철저히 교육할 것을 거듭 강조하는 바이다. 국민의 마음 속 깊이 신의 정신이 파고들 때 새로운 천년을 맞이한 대한민국은 보다 나은 지상천국으로 탈바꿈하리라 확신한다.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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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i
(182.XXX.XXX.22)
2011-05-19 12:00:42
XORxghOEHzZVUBvjwVw
Hey, good to find smenooe who agrees with me. GM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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