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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억울한 항명 누명을 벗긴 충무공의 후예
2022년 01월 06일 (목) 23:50:32 황인상 전문기자 his@newsmaker.or.kr

고광섭 국립목포해양대학교 해군사관학부 교수의 이순신 연구 행보가 화제다. 고광섭 교수는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미국 Clarkson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문무를 겸비한 군인출신 학자다.

황인상 기자 his@

해군대령으로 예편하기까지 모교인 해군사관학교 항해학과 교수로 현역 생활을 했던 고광섭 교수는 우리나라 해양계 대학의 전자항법과 GPS·인공위성항법의 교육과 연구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모교인 해군사관학교에서 해군사관생도 교육을 오랜 기간 하다가 국립목포해양대학교로 적을 옮긴 이후에는 해양사관 양성에 혼신의 힘을 쏟으면서도 충무공 이순신 연구를 하며 충무공 정신을 전파하기위한 유튜브 활동(검색어: 고광섭 교수)도 꾸준히 하고 있다.

▲ 고광섭 교수

<이순신의 출전 명령 거부 또는 항명설의 근거 사료 ‘선조수정실록 기록’의 실체와 오류 연구> 주제로 발표
고광섭 교수는 지난해 12월 3일, ‘제3회 민·학·관·군 합동 학술대회-정유재란 전·후 이순신과 조선수군 행적 재조명’에서 <이순신의 출전 명령 거부 또는 항명설의 근거 사료 ‘선조수정실록 기록’의 실체와 오류 연구>라는 주제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이번 연구는  이순신의 출전 거부 및 항명의 근원인 1597년 2월 1일 『선조수정실록』 기록의 진위 여부를 살펴보기 위한 2차 연구로서 기존에 발표한 1차 연구 결과에 대한 검증을 목표로 추진되었다.
앞서 같은 해 3월 고 교수는 이순신 사후 현재까지도 정유재란 직전 이순신이 ‘선조의 출전명령을 받고도 선조의 명을 거부했다.’고 알려진 이순신의 항명설을 사실로 볼 수 없다는 연구 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정유재란 발발 시기 이순신의 작전계획 분석
고 교수는 2차 연구에서 오리(이원익의 호)선생문집에 수록된 사도도체찰사 이원익의 장계를 기반으로 이순신의 작전계획을 분석하는 데 치중했다. 정유재란 시기 체찰사 이원익은 전선을 오가며 도원수 권율은 물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등의 군 지휘관 지휘는 물론  선조와 군 지휘관 간의 가교 역할을 했다. 정유재란 발발 시기 이순신이 남긴 일기 기록이 없고, 선조실록에 수록된 이순신의 장계 기록이 극히 제한적이어서 당시의 이순신의 작전계획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고 교수는 이순신을 지휘했던 사도도체찰사 이원익의 장계를 검토·분석하는 일이 정유재란 발발 전·후의 전황과 이순신의 작전계획을 파악하는 데 매우 유익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순신 항명의 근거 사료인 『선조수정실록』1597년 2월 1일 기사에는 “순신은 ‘바닷길이 험난하고 왜적이 필시 복병을 설치하고 기다릴 것이다. 전함을 많이 출동하면 적이 알게 될 것이고, 적게 출동하면 도리어 습격을 받을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거행하지 않았다.”라고 적혀있다. 이 기록이 근거가 되어 이순신이 정유재란 발발 전 선조의 출전 명령을 거부하고 항명한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과연 이게 사실일까?
고 교수는 이순신의 항명설에 대한 합리적 의문을 젊은 청년 장교 시절부터 가져왔다고 했다. 그 이유로는 절대군주 시기에 변방의 군 지휘관이 불법 침공하는 적을 격퇴하라는 국왕의 명령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과, 전투에서 물러선 사례가 없는 이순신의 군사전략과도 완전 다른 점을 들었다. 이순신 항명설에 대한 수십 년간의 의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전역 후 시작되었으며, 지난해 그동안 집중 연구한 1차 결과 공개에 이어 최근에 항명설의 근거 사료 『선조수정실록』 기록의 실체에 대한 연구 결과를  입증 사료와 함께  발표한 것이다. 
고 교수가 지난해 12월 3일, 제3회 민·학·관·군 합동 학술대회에서 공개한 연구 결과의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선조의 명을 받아 이순신을 직접 지휘했던 직속 상관 이원익은 정유재란 발발 전이던 1596년 12월부터 심지어 왜군이 침공한 첫 날이던 1597년 1월 12일의 장계에 ‘이순신이 가덕도나 다대포 등 부산해역으로 출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기록하여 수차례 선조에게 보고했음이 확인되었고, 둘째, 이원익이 이순신의 왜군 침공에 대비 가덕도나 다대포로 출전하고자 하는 작전계획에 대해 출전 경로에 주둔하고 있는 적들(당시 안골포, 거제도 등지 주둔 왜군을 의미)의 선제공격이나 방해작전 등을 우려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오히려 적들의 방해를 뚫고 출전해야한다고 주장했음이 확인되었다. 

고광섭 교수는 “지금까지 두 차례의 연구 결과와 입증 사료 공개를 통해 이순신 사후 60여년 후에 완성된『선조수정실록』1597년 2월 1일 기사에 기록된 ‘이순신의 출전 거부·항명’에 대한 내용은 사실과는 전혀 다른 허구임이 밝혀진 셈이다.”라고 강조했다.
『선조수정실록』 기록에 근거해 오늘날까지도 이순신은 항명죄를 저지른 명예롭지 못한 군인으로 또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정의로운 공직자로 인식되는 등 왜곡 평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고광섭 교수는 “정유재란 발발 시기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국왕의 명령을 거역하지도 않았고, 항명을 저지르지도 않은 군인 본분을 다한 참군인이었다.’ 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면서  “젊은 시절부터 합리적 의문을 갖고 있었던 이순신의 항명설에 대해  늦게나마 연구를 통해 실체를 밝히고, 이순신의 누명을 벗긴 데 대하여 충무공의 후예로서 기쁘게 생각하며, 우리가 몰랐던 이순신의 왜곡된 역사가 올바르게 조명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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