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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강제병합 100년
2010년 경인년은 한일관계의 새 이정표
2010년 02월 08일 (월) 02:05:05 뉴스메이커 webmaster@newsmaker.or.kr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사 정리돼야

2010년 새해는 역사적으로 뜻 깊은 기념일이 많이 든 해다. 그 가운데 20세기를 통틀어 국토와 겨레의 운명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원죄라 할 ‘경술국치’ 100년을 빠뜨릴 수 없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아 한 세기 넘도록 지속된 원죄의 굴레를 이제는 벗어내야 한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5000년 민족사에 가장 부끄러운 날로 꼽히는 1910년 8월22일 경술국치에는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삼기 위해 ‘그럴듯하게’ 체결한 조약이 자리한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사법·군사권을 차례로 빼앗아간 일본은 국권 찬탈 마지막 과정으로 ‘병합조약’을 체결했다. 이날로 조선왕조 519년 역사는 막을 내렸고 36년간 치욕스러운 일본의 식민 통치가 이어졌다. 비록 1945년 광복 후 남북이 갈려 저마다 독립국가의 기치를 내건 지 60여 년이 지났지만 일본 식민지 지배가 뿌린 악의 씨앗은 여전히 한일 양국 관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일본 정부 진정한 참회의 조처 취해야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조약이 공포됐다. 조약은 공포 일주일 전에 맺어졌다. 대한제국의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8월22일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약을 통과시켰다. 일제는 조약체결 일주일 뒤인 8월 29일 순종에게 양국(讓國)의 조칙을 내리도록 했다. 8개조로 된 이 조약은 제1조에서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고 규정했다. 대한제국은 사라졌다. 자주적 근대국가로의 길은 끊겼고, 식민 지배 체제가 도래했다. 일제는 식민통치기관으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조선을 일본의 속국으로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경제적으론 조선을 식민지 수탈체제로 재편했다. 일제의 폭압과 수탈은 강해졌지만, 독립을 향한 민족의 열망과 투쟁은 간단없이 지속됐다. 국권을 되찾는 데는 그로부터 35년이 걸렸다. 일제 식민 지배는 유예된 자주적 통일국가 건설이라는 과제를 안겼고, 그를 위해서는 식민 유제의 청산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식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서 미완의 숙제로 남았다. 2004년 친일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되고, 친일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된 데서 보듯 일제 청산의 문제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1910년 한일병합조약문. 양국 문서가 동일 필체로 작성된 점은 일제가 강압해 체결한 근거로 꼽힌다. 이렇게 영원할 것만 같은 한일 양국 관계의 질곡을 이제는 끊어내자는 조용한 움직임이 한일병합 100년 만에 양국 지식인 사이에서 시작됐다. 이를 위해 먼저 일본 정부가 이제는 진정한 참회의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일본 내 지식인들과 시민사회 단체의 양심적인 목소리와 활동이 돋보인다. 이들은 새해 들어 그 상징적 첫걸음으로 100년 전 한국을 식민지로 만든 ‘병합조약’을 하토야마 총리가 나서서 불법 무효라고 선언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도쿄 대학 사카모도 교수와 와다 하루키 교수, 무샤코지 전 유엔 대학 부총장, 오에 겐자부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요카 미야 아사히신문 주간 등 일본 내에서 대표적 지한파이자 양심적 지성으로 꼽히는 이들이다. 최근 한일병합조약 100년을 앞두고 일본을 방문해 이들을 만나고 돌아온 김영호 유한대학 총장(전 산자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 지식인 그룹과 NGO에서는 한일병합조약 무효 선언과 관련해 마지막 남은 것은 일본 정치가의 진실에 대한 용기뿐이라고 보고 있다”라고 전했다.
   
▲ 일본의 경우 진보세력이 중심이 된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이 54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해 전반적으로 한일관계에 햇볕이 들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 정부, “기본적으로 합법 조약”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한일병합조약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당시 체결한 한일기본조약에는 구한말 일제의 강압 아래 체결한 일련의 조약, 즉 을사늑약(1905), 정미7조약(1907), 한일병합조약(1910) 등의 효력에 대해 제2조에 ‘이미 무효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의 시점을 두고 한일 양국 정부는 지난 45년간 팽팽히 대립했다. 한국 정부는 당연히 조약들을 ‘체결할 당시부터 무효’라는 주장을 폈다. 1965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원칙적 접근을 외면한 채 졸속으로 체결해 아직도 큰 후유증을 남기고 있는 한일 기본조약에 박정희 대통령이 서명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1945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이 패망한 시점부터 무효’라고 해석한 뒤 그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일병합조약은 국제적으로 합법이고 그에 따른 한국의 식민지 통치가 정당했기 때문에 아무런 사과도 보상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이 협정 체결 당시 일본의 기본 자세였던 것이다. 이런 문제는 당시 박정희 정권이 일제 식민지 지배의 본질적 문제들을 비켜간 채 청구권이라는 이름의 경제 원조를 받는 데 급급해 일본에 저자세로 끌려 다니는 졸속적인 기본조약을 체결한 데서 비롯된 측면이 컸다. 이런 한일 협정문을 기반으로 한 일본의 고자세와 오만함에 비례해 한국민의 반일감정은 나날이 깊어갔다. 일본 정부도 형식적으로는 사과성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부분 ‘과거 식민지 시절 한국민에게 고통을 줬다’거나 ‘불행을 안겨서 유감’이라는 식의 어정쩡한 발언에 그쳤다. 계속되는 한국인들의 반일감정 격화와 일본 내 지식인들의 식민지 사죄 촉구 운동이 뒤따르면서 결국 1995년 무라야마 총리 담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식민지 지배의 근거가 된 한일병합조약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라야마는 “한일병합조약은 정황상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이다. 그 결과 종국에는 한국인에게 많은 고통을 줬다는 점에 대해 사과(오와비)한다”라는 요지로 담화를 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실 인정 표현이었지만 무라야마는 담화 후 자국 보수파 의원들에게 호되게 시달렸다. 당시 “일한병합조약이 불법적이었다는 뜻이냐”라고 따져 묻는 의회 질의에 무라야마는 “강제적으로 맺어진 조약이기는 하지만 국제법상 합법적이었다”라고 답했다. 무라야마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 표현은 형식상 2002년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선언’을 계기로 더욱 진전되었다. 고이즈미는 당시 북·일 수교 협상을 위해 평양을 찾아 “조선인들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 성격의 합병을 함으로써 조선인들에게 많은 고통을 줬다. 이에 대해 사과(오와비)한다”라고 표현했다. 역사적으로 나온 일본 정부 차원의 최고 사과 표현이다. 결국 지금까지 정리된 한일병합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기본적으로 합법 조약이지만 체결 과정에 강제성이 있었고, 이후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한국인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정도로 정리된 것이다.
   
▲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설명할 때 가장 흔히 쓰는 표현이 ‘가깝고도 먼 나라’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2010년 경인년(庚寅年)을 한일관계의 새 이정표를 세우는 해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설명할 때 가장 흔히 쓰는 표현이 ‘가깝고도 먼 나라’다. 이는 정치적인 부분뿐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그랬다. 일본은 우리에게 경제규모나 기술수준 면에서 너무나 멀리 있어 벤치마크의 대상이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지난 2010년,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 3·4분기 영업이익(4조2,300억원)이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 주요 전자회사 9개의 영업이익을 모두 합친 것보다 2배 이상 많다. 자동차·휴대폰·반도체·TV 등 우리나라 제조업 분야의 기술수준도 크게 향상됐다. 일본은 이제 우리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 아시아에서 유이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유사한 경제시스템, 선진 자본·기술 등 양국은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닮았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 저출산 고령화, 재정건전성, 사회 양극화 등의 고민거리도 마찬가지다. 이에 한국과 일본이 동북아시대를 이끌고 공존할 수 있도록 경제 파트너십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을 넘어 동아시아를 통합할 비전을 함께 만듦으로써 상생 및 경쟁하는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양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사회 시스템이 유사한 두 나라가 문제들을 각자 풀려고 하지 말고 긴밀한 협의채널을 통해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훗날 다이쇼 천황이 된 일본 황태자가 1907년 조선을 방문한 기념사진

대일 무역역조는 수년 째 해결되지 않는 문제
한국의 대일 무역역조는 수십 년째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무역통계가 잡힌 지난 1965년 이후 2008년까지 44년간 우리나라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누계는 3,438억 달러. 대일무역수지는 2006년 -254억 달러에 이어 2007년 -299억 달러, 2008년 -328억 달러를 기록했고, 최근 10년간 무역적자도 2,003억 달러(224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우리나라가 올해 1~11월 동안 377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내면서 일본의 240억 달러를 앞질러 처음으로 연간 무역 흑자규모가 일본보다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부품·소재 산업의 대일의존도가 높은 탓에 수출이 늘어난다 하더라도 부품·소재 수입이 덩달아 증가해 대일 적자가 더 빨리 커지는 구조는 여전하다. 근본 원인은 국내 부품·소재 산업의 기술력 및 공급량 부족으로 전체 대일 수입의 60% 가량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반도체 등 IT분야 핵심소재는 아직도 대부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양 국가가 자동차, 정보기술(IT) 등 제조업 중심의 비슷한 산업구조여서 한국 상품의 일본시장 확대가 어려운 것도 한 요인이다. 일본 시장은 유통구조가 복잡하고 폐쇄적이어서 우리 기업의 신규시장 진출이 불리하다. 우리나라는 대일 무역역조를 해소하기 위해 일본과의 기술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고 있다. 일본에서 부품·소재 전시회 및 공동구매 등도 진행하며 무역역조를 줄이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에 투자해 양사가 함께 일본 시장을 개척하는 협력 모델을 지원하고 있으며, 중소기업중앙회는 연내 민간 해외기술교류 협력지원센터를 설치할 예정이다. 중소업계도 중기중앙회 및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을 통해 일본 부품소재업계와 기술교류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기술제휴는 부메랑 효과가 큰 만큼 일본 입장에서 선뜻 나서지 않는 게 현실이다. 기술협력은 민간차원의 문제라 정부의 지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점점 커가는 중국을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즉, 한국과 일본이 손잡고 중국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또한 에너지, 환경, 녹색기술과 같은 새로운 분야의 경우 양국이 협력한다면 시너지를 얻기도 수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구본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한일 부품소재 관계 극복은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태양열 등의 신사업 분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문제와 대일 무역역조 등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의 FTA는 아직 협상 개시조차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이 미국·유럽연합(EU)·인도 등 경제대국들과의 FTA 체결을 확대해 나가자 일본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우리 측은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우리는 일본의 자동차·기계·부품 등의 대거 유입을 우려하고 있고, 일본은 자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한국 농산물 관세 철폐에 난색을 표한다. 일본의 관세(2%)가 한국(7%)보다 낮아 FTA의 실익이 거의 없다는 것이 우리 측의 반대 논리다. 이 같은 이유로 양국은 지난 2003년 12월부터 2004년 11월까지 6차례 협상을 진행했다가 중단한 바 있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해부터 FTA협상 재개 검토 및 환경 조성을 위해 최근까지 4차례 실무협의를 가졌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우리는 FTA를 체결할 경우 일본의 고급 부품ㆍ소재를 많이 들여올 수 있어서 산업협력 강화,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 기술자 활용 등 무역불균형을 다른 형태로 보완하자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협상 개시만을 내세울 뿐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역내 교역이 증가한 EU(유럽연합), SADC(남아프리카경제공동체)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장기적으로 역내 상호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향후 안정적인 수출이 보장되지 않는 만큼 한국과 일본, 나아가 동아시아의 통합도 필수적이다. 민간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글로벌 위기 때 한국과 일본이 금융이 아닌 실물 부분에서 피해를 입은 것은 역외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장기적으로 역내 시장을 수출시장이 아닌 내수시장의 외연 확대 차원으로 접근, 무역장벽을 최대한 제거해 내수와 유사하게 만든다면 구매잠재력이 큰 아시아의 판매시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규장각에 보관 중인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 당시 작성된 대한제국측 문서와 일본측 문서 원본

차후 보다 미래 지향적 발전관계로 정립해야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2010년 경인년(庚寅年)을 한일관계의 새 이정표를 세우는 해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100년 얽히고설킨 양국 관계를 보다 미래 지향적 발전관계로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일관계는 다른 국가들 간의 관계보다 한층 더 민감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따라서 양국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방면에서 새롭고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사가 반드시 정리돼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양국이 원하는 발전적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말 다시 불거졌던 일본 역사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따른 양국관계 급랭은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일본이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되기에 얼마나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은 양국의 역사인식에서부터 비롯되는 셈이다. 한일강제병합에 따른 해방 이후 한일관계에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1965년 6월 정식으로 국교가 수립될 때까지 정상적 차원의 교류는 드물었다. 그러다 1965년 6월22일 도쿄에서 ‘한일 양국의 국교관계에 관한 조약’을 조인함으로써 한일 양국 정부는 공식으로 수교를 맺었다. 이후 한일관계는 주로 역사 문제를 놓고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양국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은 우호관계로 발전시킨다는 것이지만 일본 측의 도발로 우리 국민의 반일감정은 잊혀질 만하면 고개를 들게 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지난해 12월에도 마찬가지였다. ‘우애와 공생’을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모토로 내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정권이 집권함으로써 한일관계는 어느 때보다 개선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일본이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해설서에 사실상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을 싣고 가와바타 다쓰오(川端達夫) 문부과학상의 ‘독도는 일본 땅’ 발언으로 우리 정부는 강한 유감을 표했다. 사실 일본의 자체적인 반성으로는 1995년 ‘무라야마(村山) 담화’와 이를 한일 양자 간 문서로 채택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의 ‘신(新) 한일관계 파트너십’ 선언 등이 있다. 하지만 독도를 비롯한 민감한 역사적 소재를 일본 정치인들이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일이 근절돼야 이러한 파트너십 선언 등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야만 역사를 역사의 잣대로만 평가하고 돌아보게 돼 역사 인식에 대한 양국의 공감대를 조금씩이나마 넓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10년 한일 양국은 정상 간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전반적인 협력기조를 유지하면서 대북 공조, 경제 통상 현안 협력,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기후변화 및 녹색성장, 지역 협력 등을 확대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오는 11월 한일 양국은 각각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주최할 예정이므로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과 내수 확대, 그리고 보호무역 반대와 저개발국 지원, 저탄소 녹색성장 등의 목표를 공유하는 협력을 취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큰 이슈는 단연 일왕의 방한 여부
   
▲ 순종의 항복 조서 전문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바라볼 때 이명박 정부와 일본 민주당 정부의 역사관이 매우 중요하다. 이들 양국 정부의 기조가 새 한일관계 100년을 여는 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명박 정부는 한일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을 고려해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미래지향적 성숙한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다는 실용주의적 접근법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경우 진보세력이 중심이 된 하토야마 민주당 정권이 54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해 전반적으로 한일관계에 햇볕이 들 것으로 기대된다. ‘아시아 중시 외교’를 표방한 만큼 그동안의 자민당 정권과는 달리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최근의 사태를 보면 민주당 정권 역시 영토 문제에 관한 한 과거 정권과 별 차이가 없다. 따라서 한일관계는 일본 내 정치세력 교체와 상관없이 일본 사회 전체 역사인식 변화가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6자회담 틀 내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는 국제사회의 움직임 속에서 한일 간의 정보교류와 협력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현재 일본은 자국민 납북사건 해결을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는데 이에 대해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는 국제적 여론이 높다. 여기에 한일 FTA도 중요 화두다. 앞으로는 넓은 시장을 확보하는 경제 주체가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지금 한일 FTA는 농·수산업 등을 대표하는 이른바 일본 내 족(族) 의원들의 입김으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여기에다 우리는 한일 무역 불균형을 극복해야 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09년 1월부터 11월까지 대일 수출은 197억1,000만 달러이나 대일 수입은 442억7,000만 달러에 달한다. 무려 245억6,000만 달러의 대일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한 것. 수출보다 수입이 두 배 이상 많은 것이 양국 경제관계의 현실이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올해 한일관계 주요 사안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이슈는 단연 일왕의 방한 여부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방한이 올해 이뤄진다면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의 한 단락을 정리하고 협력적 관계라는 진전을 이룰 기회를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여건들을 감안할 때 일왕 방한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난관이 많이 남아 있어 올해 일왕 방한이 성사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일본 민주당 정권 내의 대표적 지한(知韓)파인 오카다 가쓰야 외상은 지난해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이 일왕을 초청한 것과 관련해 “내년 방한은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으나 그 어떠한 결론도 나지 않은 상태”라며 “방한 목적이나 언행 등이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일본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검토할 생각”이라고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 정부의 한 외교 소식통은 “일왕의 방한 여부는 관련 여건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현지 정치권에서도 일왕 방한 문제와 관련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성사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역사교과서나 독도 문제 등은 여전히 일왕 방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과거 노태우 전 대통령 이래 역대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할 때마다 매번 일왕의 방한을 제안했지만 우리 국민정서나 일본 정부의 우려로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일본의 민주당 정부로서도 일왕 방한 문제를 섣불리 꺼냈다가 반감 여론에 휘말릴 경우 지지도가 낮아지고 2010년 7월 참의원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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