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특수상대성이론 발표      1905년

▲ 1905-아인슈타인

1905년은 과학계에서 ‘기적의 해’로 불린다. 무명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 마치 신의 계시라도 받은 듯 불과 수개월 사이에 광양자 이론, 브라운운동 이론, 특수상대성 이론 등 3편의 논문을 독일의 유명 학술지 ‘물리학 연보’에 잇따라 발표함으로써 과학계의 기존 인식을 뿌리채 흔들어놓은 해가 1905년이었기 때문이다. ‘빛의 발생과 변화에 관련된 발견에 도움이 되는 견해에 대하여’(광양자 이론), ‘정지 액체 속에 떠있는 작은 입자들의 운동에 대하여’(브라운 운동)라는 제목의 두 논문도 대단했지만 특히 ‘운동하는 물체의 전기역학에 대하여’(특수상대성 이론) 논문은 스위스 연방 특허국의 말단 심사관이었던 아인슈타인을 일약 물리학계의 총아로 만들어주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이 세상에 나오기 전, 빛의 속도를 둘러싼 물리학계의 최대 난제는 17세기 중엽의 ‘뉴턴의 법칙’과 19세기 중엽의 ‘맥스웰 법칙’ 사이의 모순이었다. 뉴턴의 이론에 따르면, 물체의 속도는 무한히 빨라질수 있기 때문에 빛의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반면 맥스웰의 이론에 따르면 빛의 속도가 가장 빠르므로 어떤 경우에도 물체의 속도가 빛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의 이론을 토대로 ‘사고실험’을 거듭하던 중 어느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빛의 빠르기는 일정하며 어떤 물질도 빛보다 빨리 달릴수 없다는 가설을 토대로 그가 주목한 것은 시간과 속도의 함수였다. 속도는 ‘거리÷시간’의 식으로 표시된다. 그런데 항상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빛을 이 식에 들어맞게 하려면 시간이나 거리(공간)가 상대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특수상대성 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따라서 물체는 운동속도가 빨라지면 길이(거리)가 짧아지고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이것은 관찰하는 사람에 따라 시간과 속도가 다르게 관찰된다는 놀라운 발상이었다. 이로써 특수상대성 이론은 그때까지 전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해오던 시간과 공간을 결합시킨 시공간이라는 4차원의 세계가 존재함을 알려주었다. 더불어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어서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다는 뉴턴의 이론은 심대한 타격을 받았다.
몇주 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의 논문에서 수학적 표현이 빠져있는 것을 알고 부록에 해당하는 3장의 보충 논문(물체의 관성은 에너지 함량에 의존하는가)을 ‘물리학연보’에 다시 보냈고, 논문은 11월호에 실렸다. 그 유명한 ‘질량에너지 등가원리(E=mc²) 방정식이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이 방정식에서 E는 에너지의 거대한 영역이고, m은 우주의 물질에 관한 것이며 c는 빛의 속도다. 즉 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것이다. 그전까지 에너지와 질량은 서로 다른 영역의 독립적인 세계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두 영역은 아무런 관련 없이 홀로 발달해왔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에너지와 질량 사이에는 자연스러운 전이가 발생할 수 있고 속도가 그 둘을 연결하는 환산인자라는 사실을 규명한 것이다.
빛의 속도를 이용해서 에너지와 질량이 같다는 사실을 규명한 것은 실로 놀라운 통찰이었다. 그러나 당시 아인슈타인의 논문들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무명 물리학자라는 것도 한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다른 물리학자들의 논문을 거의 참고하지 않고 오로지 ‘사고 실험’에 의해 논문을 완성하다보니 다른 물리학자들이 이 위대한 논문을 대충 훓어보거나 무심히 지나쳤기 때문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이처럼 인류가 유사 이래 지녀왔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파괴했으나 말 그대로 특수한 경우 즉 빛처럼 등속운동을 하는 물체만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일반적인 가속운동이나 회전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물리법칙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했던 아인슈타인에게 이것은 커다란 난관이었다. 자신의 이론이 반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동안 다시 끙끙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1915년 11월25일 중력장 방정식을 완성하고 1916년 3월20일 ‘물리학 연보’에 ‘일반상대성 이론의 기초’라는 논문을 발표, 뉴턴의 중력이론마저 무너뜨렸다.
특수상대성 이론이 ‘빛의 빠르기는 일정하다’는 광속도 불변의 법칙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라면 일반상대성 이론은 ‘중력과 가속도가 같다’는 등가원리에서 출발한다. 등가원리의 중요한 결과는, 중력이 본질상 모든 물체를 서로 끌어당기는 힘(만유인력)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인슈타인에게 중력은 ‘힘’이 아니라 ‘장(필드)’이었다. 태양계의 경우, 뉴턴의 중력이론에서는 태양과 지구가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에 의해 지구가 태양 주위를 타원운동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태양과 같은 거대한 물체는 중력장에서 자신을 둘러싼 공간을 휘게 만들고 그 휘어진 공간을 통해 물질이 이동한다. 지구는 휘어진 공간 내에서 직선운동을 하는데 이것이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도는 공전현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지구를 기준으로 태양 뒤편에 별이 있을 경우 이 별빛은 지구로 오다가 태양의 강한 중력 때문에 진로가 굽어져서 지구로 들어오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별의 위치가 치우쳐 보이게 된다.
그러나 당시 과학자 중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은 학자는 거의 없었다. 그런 가운데 영국 왕립학회의 천문학자 에딩턴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확인할 목적으로 1919년 5월 29일의 개기일식에 맞춰 아프리카의 한 섬으로 찾아갔다. 에딩턴은 평소 낮엔 별을 볼 수 없지만 개기일식 때는 달이 해를 가려 태양 주변에 나타나는 별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 별들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가 약 6개월 뒤 그 별들이 다시 밤하늘에 나타날 때 그 전에 찍은 사진과 비교할 생각이었다. 에딩턴은 개기일식 때 찍은 16장의 사진을 토대로 반년동안 분석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별이 원래의 위치를 벗어난 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별빛은 휘어있었고, 일반상대성 이론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1919년 11월 6일 왕립학회장이 “인간사고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과 가운데 하나”라고 연설을 하고 11월 7일 런던타임스가 1면 톱기사로 ‘과학의 혁명-뉴턴주의는 무너졌다’는 제목으로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우주적 거시세계에서 뉴턴의 법칙은 영원히 추방되었다.

■세계최초 라디오방송     1906년

▲ 1906-최초 라디오 레지날드 페센덴

1906년 12월 24일 밤 8시쯤. 뉴잉글랜드 근해를 항해 중이던 몇몇 선박의 무선사들 귀에 난데없는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누가복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들려주고 바이올린을 연주했으며 녹음된 헨델의 ‘라르고’를 틀어주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바란다”는 작별인사를 끝으로 방송은 몇 분만에 끝이 나고 다시 귀에 익은 모르스 부호가 삑삑거렸다. 세계최초의 라디오방송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캐나다 출신의 발명가 레지날드 페센덴이었고 발신지는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페센덴의 브랜트로크 연구소였다. 그는 모르스 부호의 점과 선 대신에 실제 소리를 방송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전선과 튜브, 배터리와 테나 등을 만지면서 길고 외로운 밤낮을 보내온 사람이다.
페센덴이 4년에 걸친 연구 끝에 최초의 방송에 성공했을 즈음, 또 한명의 연구가가 무선연구에 빠져있었다. 미국의 물리학자 리 드 포리스트였다. 그는 1907년 자신이 발명한 라디오 진공관 특허를 받았고, ‘오디온’으로 명명된 이 진공관은 곧 모든 라디오의 필수품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나는 허공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제국을 발견했다”고 자랑했다.
페센덴과 포리스트에 앞서 라디오 시대를 열어젖힌 이는 이탈리아 청년 마르코니였다. 그는 1896년 무선전신을 발명하고 1901년 대서양횡단 장거리 무선통신에 성공한, 무선통신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였다. 페센덴이 첫 방송을 내보내고서도 라디오방송은 수년동안 무선통신의 중요한 분야로 자리잡지 못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가진 공연을 생방송으로 중계한 것을 포함해 방송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한 적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다급한 정보들을 알리는데 쓰였다.
다양화된 방송프로그램 덕분에 상업방송이 등장한 것은 1920년 11월 2일이었다. 미 웨스팅하우스사의 데이비스가 자사(自社)의 라디오 판매를 늘리기 위해 프랭크 콘라드 박사의 도움을 얻어 피츠버그에서 첫 상업방송을 시작한 것이다.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완성       1907년

▲ 1907-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여름, 수개월 동안 두문불출하던 파블로 피카소가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언덕 한 켠에 자리한 허름한 셋방에 파리의 지인들을 불러 모았다. 스페인에서 태어난 피카소가 몽마르트에 정착한 것은 1904년 그의 나이 23세 때였다. 피카소의 파리 생활은 때로는 굶는 날도 있을 만큼 궁핍했다. 아틀리에도 수도와 화장실이 없는 건물에 있었다. 100여장의 데생을 구겨버리고 무수한 덧칠 끝에 완성한 6m의 대작을 그리는 동안 피카소는 누구에게도 아틀리에 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 방문이 열리던 날, 지인들은 경악했다. 피카소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홍등가 ‘아비뇽’의 매춘부 5명을 그렸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림 속 여인들은 눈이 비뚤어지거나 얼굴이 뒤로 돌아가 있었다. 입체감은 커녕 평면적인 묘사에 각으로 꺾어진 선과 만화같은 여자들의 표정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선배 화가 마티스는 화를 냈고 친구 조르주 브라크는 외면했다. 20세기 미술의 시발점으로 평가받는 ‘아비뇽의 처녀들’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러나 이듬해 그렇게 혹평하던 친구 브라크는 피카소의 그림처럼 ‘입방체(큐브)’를 쌓아놓은 듯한 풍경화들을 살롱전에 출품, 피카소의 화풍에 동조했다. 마티스는 브라크의 그림을 보고 “작은 입방체가 모여있는 것 같군”이라고 평함으로써 이 낯선 회화운동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1914년 1차대전 발발로 사그라들 때까지 서양 미술계를 풍미했던 ‘큐비즘(입체주의)’이었다.
의기투합한 피카소와 브라크가 본격적으로 ‘입체주의’ 작품들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파리 화단은 이내 ‘큐비즘’ 열풍에 빠져들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르네상스 이후 500년 가까이 군림해오던 회화의 ‘법칙’들을 해체한 대혁명이었다. 피카소는 원근법, 명암범, 운필법 등 전통적인 기법을 완전히 내팽개치고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본 모습을 동시에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먼저 대상을 모든 방향에서 보이는 부분으로 분할하고 이것을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재구성해 강렬한 형상을 창조했다. 그 결과 그의 그림은 회화를 전통의 굴레로부터 해방시켜 추상화의 길을 열었다. 미술의 혁명이었다.
큐비즘은 피카소 혼자의 머릿 속에서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폴 세잔느의 화풍, 스페인 카달로니아의 로마네스크식 양식, 그리고 20세기 초엽 프랑스 예술가ㆍ지식인들에게 일대 붐을 일으켰던 아프리카의 목제조각이 혼합되어 그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여러 수법을 혼합하고 거기에 자신의 독창적인 해석을 가미한 새로운 형태의 그림이 ‘아비뇽의 처녀들’이었다. 원시미술에서부터 현대미술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입체적 화면을 다섯 여자를 통해 한 화면에 집대성한 것이다.
피카소의 실험은 19세기와 20세기 미술 사이에 그어진 단절의 획이었다. 큐비즘은 프랑스 밖으로까지 번져 다양한 미술운동을 촉진시키고 조각, 건축, 무대미술 등으로부터 문학, 음악에 까지 20세기 예술의 전 영역에 침투해 20세기 예술혁명을 이끌었다. 그럼에도 그의 그림은 1920년에서야 팔렸고 1927년에서야 일반에 공개되었다. 생전에 피카소는 말했다. “자연은 강간당하기 위해 존재한다.”

■포드자동차 ‘모델 T’ 생산         1908년
1908년 10월 1일 첫 선을 보인 '모델 T'는 ‘자동차 왕’ 헨리 포드가 부의 상징물이었던 자동차를 일반 대중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게 한 신개념의 자동차였다. 볼품은 없었으나 견고하고 조작이 간단해 운전과 수리가 쉬웠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 평범한 노동자들도 ‘마이 카’를 꿈꿀수 있었다. 다른 자동차 값이 평균 2000달러였을 때 825달러짜리 '모델 T'의 등장은 포드자동차의 신화를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 1908-모델T

‘모델 T’는 최초의 자동차도 그렇다고 최초의 포드 자동차도 아니었다. 자동차가 실용화된지 이미 30년 이상이나 지났고 모델 T가 선보이기 전 이미 모델 A, B,C, F, K, N, R, S 등 여러 종류의 포드자동차가 나왔었다. '모델T의 신화는 5년 뒤에 시작되었다. 1913년 4월 1일, 미국 미시간주 하일랜드 파크의 포드자동차 공장에서 물흐르듯 연결된 콘베이어 벨트를 타고 ‘모델 T'가 생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량생산→가격할인→대량소비를 가능케하는 컨베이어 생산방식은 포드의 오랜 꿈이었다. '1초 이상 걷지 않는다' '결코 몸을 구부리지 않는다' 포드가 구상한 2대 원칙을 충족시킨 컨베이어의 등장은 대당 생산시간을 630분에서 93분으로 단축시켰고, 연간 7∼8만대에 불과하던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증대시켰다. 1914년의 자동차 생산량과 노동자를 비교해보면 ‘모델 T’의 생산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당시 포드자동차는 1만 3000명의 노동자들이 27만 700대를 생산한 반면 미국의 나머지 299개 자동차업체들은 6만 6000명의 노동자로 28만 6000대를 생산했다.
‘제2의 산업혁명’이라고도 불렸지만 한편으로는 ’비인간적 공정‘이라는 비난도 비등했다. 지나치게 단순화된 작업공정으로 노동의 즐거움을 빼앗긴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포드는 1914년 1월 생산방식 혁신에 따른 생산비 절감의 효과를 노동자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선언했다. 높은 이직율을 줄이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했다. 노동시간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이고 동종업계 평균임금이 2.38달러에 불과할 때 하루 최저임금을 5달러로 인상했다. 이처럼 후한 보수를 주었지만 단조롭고 반복적인 작업과 비인간적인 작업환경에 노동자들의 불만은 줄어들지 않았다. 올더스 헉슬리는 풍자소설 ’멋진 신세계‘(1932)에서 포드를 저주와 마법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했고, 채플린은 영화 ’모던 타임스‘를 통해 컨베이어 생산방식의 비인간화를 고발했다. 그럼에도 컨베이어 벨트는 ’모델 T'의 가격을 290달러까지 떨어뜨려 ‘모델 T'의 시장 점유율을 1924년 한때 50%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1927년 단종될 때까지 모두 1500만대의 판매를 가능케 했다. 이 기록은 1970년대에 독일의 국민차 폴크스바겐의 '비틀'이 기록을 깨기까지 단일 모델로선 세계최대 생산기록이었다.
포드와 ’모델 T'의 등장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20세기적 생산?소비양식의 출발점이었다. ‘모델 T’는 모양이 우스꽝스럽고 최고속도는 64km에 불과했으나 힘이 좋고 거의 모든 장소를 달릴수 있었다. 험한 고개길이나 심지어 도로가 없는 곳에서도 ‘모델 T’는 전진할 수 있었다. 특별장치는 아예 부착하지도 않았고 차들을 표준화시켰다. 표준화는 부속을 바꿔 끼울수 있다는 것을 뜻했고 누구라도 간단한 수리쯤은 손수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던 포드의 신화도 19년만에 내리막길을 걸었다. ‘모델 T'의 기본설계를 바꾸지 않으려는 포드의 고집 때문이었다.  실용성만 강조하며 자동차의 색깔도 줄곧 검정만 고집하는 사이 후발 경쟁사 제너럴 모터스의 자동차들이 모양과 색채를 바꾸어 포드를 앞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1924년은 포드에게 영광과 위험이 함께 시작된 해였다. 이 해는 ‘모델 T’의 누계 생산량이 1000만대를 넘어선 해이자 제너럴 모터스의 시보레가 출시된 해였다. 시보레는 모델 T의 단점을 보완한 신선한 스타일로 눈길을 끌었다. 시보레는 자동차 시장을 급속히 잠식했지만 포드는 검은 색의 모델 T에만 집착했다. 자신의 차가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            1909년  

▲ 1909-안중근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30분. 중국의 하얼빈역 하늘에 7발의 총성이 울렸다. 첫 3발은 일본 초대 내각총리와 초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옆구리, 배를 관통하고 나머지 4발 중 3발은 하얼빈 총영사 등 3명의 일본인을 쓰러뜨렸다. 이토는 죽고 3명의 일본인은 중경상을 입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무분별한 팽창에 엄중한 경고를 내린 주인공은 서른살의 안중근(1879~1910)이었다. 그는 적의 심장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 뒤 권총을 머리 위로 내던지고 러시아 말로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를 힘차게 외치고는 현장에서 러시아군에 체포되었다.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친의 영향을 받아 개혁적 사고를 지녔고, 18세였던 1897년 부모를 따라 천주교에 입교해 토마스라는 세례명을 부여받았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 체결로 주권을 빼앗기게 되자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기 위해 애국계몽운동에 뛰어들었다. 교육계몽운동과 산업진흥운동, 국채보상운동 등에 매진했으나 1907년 7월 정미7조약 체결로 나라가 사실상 망국의 길로 들어서자 러시아령 연해주로 망명했다.
1908년 봄 김두성이 총독, 이범윤이 총대장으로 추대된, 두만강 부근의 러시아령 연추에 근거지를 둔 300여명 의병부대의 참모중장이 되어 현장에서 의병부대를 지휘했다. 1908년 6월 함경북도 경흥군의 일본군수비대를 급습, 일본군 수명을 사살하고 수비대의 일부 진지를 파괴하는 제1차 국내 진공작전을 성공시켰으며 7월에도 홍범도 의병부대와 제2차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해 또다시 일본군을 격파했다. 2차 작전에서는 4명의 일본군을 생포하는 전과를 거두었으나 안중근의 포로석방으로 자신은 물론 의병부대도 큰 곤경을 겪었다.
포로석방은 "사로잡힌 적병이라도 죽이는 법이 없으며 또 어떤 곳에서 사로잡혔다 해도 뒷날 돌려보내게 되어있다"는 만국공법(국제법)을 의식하고 천주교 신자로서 박애주의에 입각한 결정이었지만 풀려난 포로들로 인해 의병부대의 위치가 드러나는 바람에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안중근은 자책감과 좌절감에 빠져 의병부대를 떠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교포신문 대동공보의 기자, 대동학교의 학감 등으로 활동하면서도 안중근은 어떻게든 일본에 타격을 가할 궁리에 여념이 없었다.
1909년 2월 7일에는 11명의 동지들과 함께 ‘단지(斷指)동맹’을 맺어 항일결의를 다졌다. 안중근은 동지들과 함께 태극기를 펼쳐놓고 왼손 약지 끝마디를 자른 뒤 생동하는 선혈로 태극기에 ‘대한독립’ 이라 크게 쓰고 "대한독립 만세"를 세 번 외쳤다.
1909년 9월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와 회동하기 위해 하얼빈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안중근은 이토를 처단하기 위해 도착지인 하얼빈역을 목표지로 삼았다. 그러나 혹시 이토가 하얼빈에 못 미친 채가구(차이자거우)에 내릴 가능성에 대비해 우덕순과 조도선 두 동지를 채가구로 보내고 자신은 하얼빈역을 지켰다. 불행히도 채가구의 두 동지는 그들을 수상하게 여긴 러시아 헌병들에 의해 여관방에 감금되었다가 거사후 체포되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가능성은 안중근 뿐이었다.
3월 26일 오전 9시, 이토를 태운 특별열차가 하일빈역에 도착하자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프체프가 귀빈칸으로 올라가 이토와 회담을 시작했다. 회담을 마친 이토가 기차에서 내려 러시아 악대와 군대, 외교사절단을 사열하는 동안 역내 귀빈 대합실 한 구석에서 차를 마시던 안중근이 플랫폼으로 접근했다. 이토가 안중근으로부터 5m 앞 지점을 지나는 순간 안중근의 1900년식 브라우닝 권총이 불을 뿜었다. 고꾸라진 이토는 범인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리석은 녀석"이라고 중얼거리다 곧 의식을 잃고 30분 뒤 죽음을 맞았다.
안중근은 11월 3일 여순감옥으로 옮겨져 1910년 2월 7일부터 6차례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서 안중근은 자신의 거사는 개인 자격으로 한 일이 아니라 '대한국 의병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장을 포살한 것이므로 만국공법(국제법)에 따라 전쟁포로로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토를 저격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등 15가지를 조목조목 말했다.
2월14일 일제는 안중근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우덕순과 조도선에게는 각각 징역 3년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하면서 당시 그가 집필하고 있는 자서전 ‘안응칠 역사’과 자신의 사상을 정리한 ‘동양평화론'을 다 쓸 수 있을 때까지 사형집행을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일제는 그럴 뜻이 없었다.
안중근은 다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3월 25일에 형을 집행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일제는 순종의 생일인 3월 25일에 사형을 집행했다가 혹시라도 무슨일이 일어날지 몰라 이번에도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사형집행은 3월 26일로 연기되었고, '동양평화론'은 미완의 저작이 되고 말았다.
사형집행을 하루 앞둔 3월 25일 정근·공근 두 동생과 마지막 면회를 했다. 안중근은 먼저 노모에게 불효의 죄를 용서해주도록 말씀 여쭈어달라고 부탁한 뒤 자신의 장남은 신부로 길러달라고 말했다.
3월 26일 형장으로 가기 전 비단천에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뜻의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을 크게 쓰고 왼손을 찍었다. 모친이 보낸 하얀 명주 한복을 입고 의사가 교수대 옆 대기실로 옮겨 간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오전 10시 4분 교수형이 집행되고 10시 15분 감옥의가 죽음을 확인했다. 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의사는 유언을 통해 "하얼빈 공원에 묻어달라"며 "조국이 독립하면 그때 유해를 가져가달라"고 당부했으나 순국한 그날 밤 일본인 간수들이 의사의 시신을 여순감옥 근처에 몰래 파묻어 지금도 행방을 찿을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