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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림은 뒤늦게 만난 죽마고우”
2021년 10월 06일 (수) 12:38:05 윤담 기자 hyd@newsmaker.or.kr

예술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 이상의 힘이 있다. 작가가 오랫동안 닦아온 철학적 기반 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작업을 하면 그 농축된 정신적 에너지가 타인에게 내적 치유와 함께 삶의 돌파구까지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윤담 기자 hyd@

설파 안창수 화백의 행보가 화제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안창수 화백은 나이 예순에 그림에 입문했지만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예술혼을 바탕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명성을 얻고 있는 작가다.

▲ 안창수 화백

최고령 유학생, 뛰어난 예술성으로 중국과 일본 화단 휩쓸다
“나에게 그림은 뒤늦게 만난 죽마고우다. 이보다 행복할 순 없다. 인생 2막에 재능을 발견한 덕이다. 친구 따라 서예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꿈도 못 꿨을 삶이다.” 만 58세가 되던 해, 30여 년간 몸담았던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정년퇴직 후 귀향한 안창수 화백. 고향에서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그에게 서예를 배워보라는 친구의 권유는 그의 예술인생에 있어 결정적인 시작점이 되었다. 경전을 베껴 쓰며 붓과 친해진 지 6개월 쯤 되었을 때 부산에서 열린 그림전을 접한 후 자신도 한번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재미삼아 그렸던 닭 그림에 주위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너도 나도 그에게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보며 자신에게 그림을 그리는 소질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는 그는 2005년, 만 60세의 나이에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열정 하나로 백발 나이에 교수들을 찾아다닌 끝에 추천서를 받고 항저우미술대에 들어가 그림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도 그는 최고령 유학생이었다. 유학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좁은 기숙사에서 지내며 삼시세끼를 학교식당에서 때우면서 그림과 씨름했던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부터 밤 12시까지 그림에 매달렸다. 그러다 보니 붓을 쥔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뒤로 젖혀지지 않은 적도 있었다.

설파 안창수 화백은 “좌절하고 힘들 때마다 스승님의 한 마디가 저를 잡아줬다”면서 “스승님은 ‘청나라의 대표적인 화가 금농은 쉰이 넘어 붓을 잡았고 예순 넘어 대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최고 민속화가로 꼽히는 그랜드마 모제스는 일흔여섯까지 10남매를 키운 주부로 살다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살에 타계할 때까지 1600여 작품을 남겼다’며 저를 이끌어주었다”고 회고했다. 노력은 안 화백을 배신하지 않았다. 반년 만에 호모 배 전국서화 대전에서 닭 그림으로 입선한 그는 이듬해엔 임백년 배 전국서화 대전에서 호랑이 그림으로 1등 상을, 독수리를 그려 중화 배 전국서화예술대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한국으로 귀국한 지 한 달 만에 그림에 대한 공부를 좀 더 심도 있게 해보고자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으로 두 번째 유학길에 올랐다. 경비 마련을 위해 노후 대비책으로 장만했던 서울의 오피스텔을 처분하기도 했다. 그렇게 떠난 일본에서도 안 화백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소화미술대전 입선, 전일전에서 예술상, 장출판상 준대상 수상, 전일본수묵화수작전 갤러리수작상, 남일본신문사상, 일본전국수묵화미술협회가 학습용 교재로 발간한 룡화집인 ‘新 龍(신 용)을 그리다’의 작가 선정, 제46회 일본수묵화수작전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외무대신상’에 이어 ‘제49회 전일본수묵화수작전’에서 <투계도>를 출품해 국제문화교류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예술혼 불태우며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가다
올해로 그의 나이 일흔 여섯, 조금은 쉬어갈 만도 하건만 그림에 대한 안창수 화백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올 가을, 안 화백은 열일곱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지난 2월에는 KBS <아침마당>에 출연해 ‘도전하는 인생 2막’을 주제로 강연과 퍼포먼스도 수행했다. 화가가 게스트로 나온 것은 <아침마당>이 시작된 지 30년 이래로 처음이다. 안 화백은 시청, 양산종합사회복지관, 통도아트센터 등에 작품을 기증하며 지역문화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5년 째 양산부산대 평생교육원 나래관에서는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동안 후진 양성을 위한 동양화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멀리 부산과 울산 등지에서 소문을 듣고 자신의 작업실을 찾는 문하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니어 배우로도 활동 중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에 일본 문부대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던 그는 울산 KBS의 공익광고에 ‘폐지 줍는 할아버지’로도 출연했다. 안 화백은 재능을 찾는 법에 대해 “1막에 못한 하고 싶었던 일,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게 뚜렷하지 않으면 남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는 일을 하면 된다”면서 “그런 일도 없다면 전문가의 강의를 찾아가 듣고, 롤 모델도 만나보고, 책도 읽으면서 내가 끌리는 게 뭔지 탐색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저의 최종 목표는 세계무대에 진출해 서양화단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면서 “이를 위해 동양화의 멋을 동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구로 확산하려는 노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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