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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
2021년 09월 07일 (화) 15:22:46 차성경 기자 biblecar@newsmaker.or.kr

경기도 광주는 조선시대 왕실도자기를 제작하던 곳이다. 1467년(세조 13) 사옹원의 분원이 설치된 후부터 1884년(고종 21)까지 약 400여 년 간 선조들의 혼이 담긴 우수한 자기가 생산됐다. 약 220여 개소의 가마터가 발견될 정도로 조선백자의 연구와 생산의 중심이 되었던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차성경 기자 biblecar@

도원요의 대표인 지당 박부원 도자명장의 행보가 화제다. 조선왕실도자기를 대표하는 백자 달항아리 제작에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바친 박부원 명장은 광주시 첫 도자명장의 칭호를 받은 광주왕실도자 1대 명장이다. 경기도 도자분야 지정문화재 4호인 故 도암 지순탁(1912~1993) 선생에게 사사했으며 1975년 광주시 초월읍에 도원요를 설립하고 작품활동을 해왔다.

달항아리의 재현 및 발전 선도해온 왕실도자기의 명장
보름달을 닮은 달항아리는 자연을 담아낸 작품과 추상적 표현이 담긴 작가만의 특색이 살아있는 작품으로 한국도자의 아름다움과 문화의 향기를 넉넉하게 품고 있다. 달을 닮은 항아리의 조형적 아름다움은 조선시대의 백자 달항아리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였으며 오늘날 회화의 영역을 비롯해 여러 예술의 영역에서 작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달항아리의 형태는 대부분 비대칭인데, 매끈한 균형과 흠 잡을 데 없는 좌우비례를 갖춘 게 아니라 좌우가 엇박자다. 그 당시 달항아리 제작기법은 한 번에 큰 항아리를 만들 수가 없어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뒤에 둘을 붙이는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통 가운데 볼록한 부분에 이런저런 흔적이 남게 되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조금씩 다 다르다.

▲ 박부원 도자명장

달항아리가 천의 얼굴을 지녔다고 일컬어지는 이유다. 둥근 모양에 가운데가 텅 빈 순백의 달항아리 작품은 박부원 명장의 도예생활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박부원 명장은 “달항아리는 도교 사상에서 말하는 마음을 비운 상태, 즉 공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며 “중국과 일본을 비롯해 세계 어느 도자기 역사에서도 달항아리는 없고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있다”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박 명장은 “달항아리는 광주시 분원 금사리에서 영조, 정조때부터 만들어졌다”며 “국가에서 광주에 사옹원 분원을 만들고 우수한 도공들을 모아 임금님께 상납하기 위한 상급의 작품을 제작했고,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12점의 달항아리는 국보와 보물로도 지정돼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달항아리의 대가인 박 명장은 조선 달항아리를 재현한 것은 물론, 이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분청귀얄암각문항아리(粉靑刷毛目岩刻文壺)’에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서 영감을 받아 수천 년 세월 속에서 풍화된 바위의 모습을 담았다.

넉넉한 원형이 아닌 마름모 형태로 빚어진 ‘주동채용천(朱銅彩溶川) 달항아리’는 박 명장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가마 안에서 산화동 유약이 요변(窯變)을 일으킬 때 , 불꽃의 성질이나 잿물의 상태 따위로 가마 속에서 변화가 생겨 도자기가 예기치 못한 색깔과 상태를 나타내거나 모양이 변형되는 일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푸른 바탕 위에 붉은 빛이 갈라지는 모습의 달항아리가 바로 이 작품이다. 그 빼어난 아름다움엔 국경을 막론하고 탄사가 이어지고 있다. 전광식 전 고신대 총장은 “전통 항아리의 질박미를 뛰어 넘는다”며 “혼돈과 공허가 깨지면서 천지가 만들어지는 창조의 장엄한 순간이 보인다”고 극찬했으며. 화려한 색상에 익숙한 중국 도예가들조차 “이처럼 신비로운 색은 중국에서도 만들지 못한 빛깔”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다.

예술가에게는 언제나 새로움이 요구된다
스물넷의 나이에 처음 도자의 길에 입문했다는 박부원 명장. 인사동 그릇 가게에서 우연히 본 사발 하나에 매료돼 그 그릇을 만든 사람을 수소문했고, 그렇게 한국 도자계의 대부인 지순탁 선생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팔남매의 장남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당시 예술가보다는 ‘그릇쟁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도공이라는 직업에 대해 집안의 반대도 거셌지만, 박부원 명장은 도공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 박부원 명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광주 왕실의 도자기 명장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왕실도자기협회 회장, 세계도자기엑스포 추진위원을 역임하며 광주왕실도자기의 우수성과 도자예술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는 박 명장은 “도예가로 성공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게 가능하지도 않은 사회였다”면서 “사람은 평생에 한 번은 뜻을 세운다. ‘도자기를 만들어 무엇을 이루어야겠다’가 아닌 ‘도자기를 만들어야겠다’가 제 뜻이었다”며 지금껏 걸어온 도자인생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도자기를 빚는 과정에서 전통을 계승하며 새로운 시도도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거친 불길의 흔적이 가변적으로 나타나는 ‘요변 호’와 현대적 무늬를 새기거나 고대 암각화를 표현한 항아리 등의 실험적인 작품들이다.

박 명장은 “예술가에겐 언제나 ‘새로움’이 요구된다. 사회와 시대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작가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각을 먼저 읽어내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작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면서 “전통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기에 머물러 똑같은 작품만 만든다면 예술가가 아니라 ‘재현가’다. 전통에도 남겨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있다. 그 둘의 구분 없이 그대로 따르기만 하는 것은 모방일 뿐이다. 과거의 자산을 지금에 맞게 더 발전시켜야 오히려 옛것의 가치가 사라지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의 계승이다”고 강조했다. 올해로 83세, 은퇴라는 단어조차 무색할 나이가 됐지만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나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박부원 명장. 그는 “반평생을 도자기에 몰두한 제가 앞으로 얼마나 작업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욕심이 있다”면서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꾸준히 사랑받는 작품을 남기고픈 깊은 열정이 있기에 마음과 손은 자연이 준 고귀한 흙을 놓을 수 없다”고 피력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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