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1.11.25 목 13:40 전체기사 l 기사쓰기 l 자유게시판 l 기사제보 l 구독신청 l 광고안내 l 회사소개
> 뉴스 > 피플·칼럼
     
숭고한 인류애로 희망의 새 시대 여는 대한민국의 초석 마련하다
2021년 08월 03일 (화) 15:54:30 윤담 기자 hyd@newsmaker.or.kr

인간의 권리는 하늘이 내려준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건, 부자건, 장애인이건, 외국인이건, 인간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보호받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에 국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중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

윤담 기자 hyd@

인권은 위기의 시기에 인류를 인도하는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글로벌 보건위기가 전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운 가운데,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은 보편적 가치이자 불가침의 권리로서 반드시 수호돼야 한다.

‘무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으로 8만여 명 구제
이성원 희망원 원장의 행보가 재조명되고 있다. 대한민국 1호 인권운동가인 이성원 원장은 50여 년을 훌쩍 넘는 오랜 세월동안 청소년 선도와 사회봉사에 헌신해온 인물이다. 국내 최초로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 경종을 울림으로써 사회적 의식을 높였을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숭고한 봉사의 삶을 살아온 그의 가장 큰 업적을 꼽으라면 단연 ‘무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이다. 이 원장은 ‘무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으로 호적이 없던 8만여 명에게 구제의 길을 열어주었다.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됐던 우리나라에는 부모형제를 잃고, 굶주리며 방황하는 부랑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1960년대 당시 무적자 수만 해도 12만명에 달했다. 무적자는 출생신고 이후 호적 등록 단계에서 행정 착오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로 '정치·사회적 지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에 이성원 원장은 호적이 없어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무적자들이 처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1965년 12월10일 세계인권의 날에 ‘무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을 주창했다. 이후 각 언론사뿐 아니라, 대통령, 대법원장, 국무총리, 내무부장관, 보건사회부장관, 서울시장, 각 시도지사 변호사협회장, 중앙청소년보호대책위원회 등에 호소문을 발송했으며, 직접 플랜카드를 어깨에 메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거리 캠페인을 펼쳤다.

▲ 이성원 원장

이성원 원장은 “병역기피자나 범법자 4만 명을 제외한 8만 명은 갖가지 사연으로 호적을 갖지 못해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권리나 의무를 행사할 수 없는 비참한 상황이었다”면서 “무적자들은 학교 교육뿐 아니라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고, 병역의 의무는 물론 결혼을 해도 혼인신고도 못했으며, 자식을 낳아도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고 배경을 밝혔다. 민간인으로서 무적자들에 대한 인권의식에 경종을 울린 최초의 범국민적 인권수호운동이었던 ‘무호적자 호적 만들어주기 운동’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위대한 업적이었다. 이에 언론사마다 이 원장의 인권옹호 활동을 앞 다퉈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이 주도하는 운동은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 원장은 무적자들에게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 무호적자들을 사회 안전망에 들여놓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인 결과 법무부로부터 무호적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이 발표되는 등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호적 정리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증도 발급하게 하는 등 행정부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는 도민증, 시민증으로 지역을 구분했지만, 1968년 10월 말부터 전 국민들에게 12자리의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등 차별 없는 사회로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던 것.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성원 원장은 법무부로부터 ‘인권 옹호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얻었다.

청소년 선도 및 자립 위해 ‘희망원’ 설립
1935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심훈의 장편소설인 <상록수>는 브나로드 운동이 전개되었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쓰인 작품으로 일제강점기에 농촌계몽운동과 민족주의를 고취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성원 원장이 인권수호를 위해 펼쳐온 지난날의 행보는 ‘인간 상록수’라 칭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치원역에서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1960년대부터 이성원 원장은 보릿고개 시절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청소년 선도 및 자립을 위해 조치원역 대합실에 ‘청소년 상담소’를 설립했고, 1963년 BBS연기지부를 조직해 불우 청소년들을 각 기관, 유지 등에 결연을 맺어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으로 청소년들의 자립을 도왔다. 1964년도에는 흑벽돌로 된 보육원인 ‘희망원’을 설립해 자립을 위한 구심점으로 삼았다.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성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구두닦이를 비롯해 농사, 토끼·돼지 키우기, 철사 수공품 만들기 등 각종 기술을 가르치며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고 토끼와 돼지, 닭 등을 무료 분양하기도 했다.

국가 보조금 없이 순수 사재를 털어 희망원을 운영하면서도 4H구락부 운동과 가축보급 운동도 펼쳤으며 학교 순회 선도 교육에도 앞장섰다. 1970년대에는 국내 최초 민간인 주도 합동결혼식을 열어 1,500여명 하객들의 축하 속에서 희망원생들이 부부의 연을 맺도록 뜻 깊은 자리를 마련한 바 있다. 지난 2019년에는 그의 58년의 봉사 발자취를 담은 기록 사진집 <그늘진 곳에 희망을 보급한 58년의 찬란한 기록>도 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성원 원장은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하면 정말 힘들고 아프기도 했지만 이젠 다 큰 희망회의 우리 자식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고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남은 일생도 이들과 함께 주위를 살피며 살아가고 싶다”고 전했다. 지치지 않는 봉사 열정과 숭고한 인류애로, 희망의 새 시대를 여는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하는데 일익을 담당해온 그의 행보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NM

ⓒ 뉴스메이커(http://www.newsmaker.or.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뉴스메이커About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10-999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1가 163 광화문오피시아빌딩 14층 뉴스메이커 | 전화 : 02-733-0006 | 팩스 : 02-733-0009
청소년보호책임자 : 안상호
뉴스메이커는 (주)뉴스메이커에서 발행하는 시사종합월간지로서 특정언론과는 전혀 무관한 완전한 자유 독립 언론입니다.
뉴스메이커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뉴스메이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ewsmaker.or.kr